Friday, February 1, 2013

인물에 투영된 현대인의 자화상 - 정연홍

▲절취선_62x27cm_나무선반에 담배속지를 붙인 후 아크릴릭_2012

▲현실도피_150x55cm_책상원목에 아크릴릭_2010

▲반창코가 필요해_108x78.5cm_종이에 오일파스텔,아크릴릭_2012

▲거울벽_108x78.5cm_종이에 오일파스텔,아크릴릭_2012




▲나의 지난 시간들_53x39cm_하드보드지에 볼펜,매직,아크릴릭_2012





인물에 투영된 현대인의 자화상



작가 정연홍 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슬퍼 보이는가 하면 고함치는 것처럼 보이기도하고 때론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한 것들부터. 저마다의 고함 소리로 보는 이의 발길을 붙든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군상들의 합창소리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며 그의 작업을 찬찬히 들여다보게끔 하는 마력을 가진지도 모른다.
작가의 약력은 조금 특이하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자신의 그림을 아트상품으로 만들어 쇼핑몰을 운영하는 등, 현실과 가까우면서도 어디서나 인물들을 끄적거려서 만들어 내는 “생활 밀접 형” 작가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듯하다. 그의 작품속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것 인가?
이문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찾기로 했다.


1. 작업의 주재인 인물들만을 특별히 그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화초 가꾸시는 일을 좋아 하셔서 때로는 꽃 사진을 찍으러 홀로 길을 나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아들인 저는 보편적인 예쁨과 아름다움이 가슴에 와 닿은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찍어온 아름답고 신기한 꽃을 봐도 ‘그냥 꽃’일 뿐이었죠. 반면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사랑하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슬퍼함은 궁극의 아름다움보다도 더 매력있고 즐거운 일이기에 자연스럽게 인물 위주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2. 아트상품 등을 제작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류 등에 그림을 그린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8~9년 전 즈음 직물물감을 제조, 생산하고 주부들 대상으로 핸드페인팅 교육을 하는 사장님을 알게 되고 그분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쪽 분야를 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친한 동생과 핸드페인팅 쇼핑몰을 만들었고 공판식의 찍어내는 카피위주의 그림이 아닌 저만의 캐릭터와 스타일을 붓으로만 의류에 직접 그리는 방법으로 5년 넘게 운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의류라는 틀 속에 갖힌듯한 느낌, 상업성과 개성의 어쩔 수 없는 줄타기는 창작의 욕구를 저해하는 적이기에 계속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3. 작업들이 반드시 캔버스가 아닌 판넬이나 기타 재료로 보이는데요. 굳이 그렇게 선택하신 건지요?
캔, pet병, 담배곽 등 먹고 버려지는 것들에 얼굴을 그려 넣어 새 생명을 불어넣다보면 그 친구들도 어느새 제 방의 식구가 됩니다. 캔버스에 그리는 것도 좋지만, 버려진 가구나 합판에 자주 그리는 이유도 위와 비슷합니다.

4. 대부분 작업의 일부 중 재미있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가, 이를 드러내고 있은 얼굴, 노래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함을 치고 있은 것 같기도 한 모습들을 한 표정들이 저에게는 의미 있게 다가오는데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만 잠이 들 무렵 오늘 내가 했던 말과 행동에 반성을 하며 먼지만큼 성장을 합니다. 그것들이 쌓여 ‘나 정도면 마음이 넓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가 결국 바가지만한 자아를 만나게 되고 스스로 부끄러워 하다가 잠이 듭니다. 이러한 반복은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그 결과로 노래를 부르는 듯 고함을 치는 듯한 그림들이 종종 등장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5. 누구나 그렇듯 작가의 작업에는 그의 생활이나 살아온 과정과 경험 등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특히나 지금 보여 지는 일련의 작업들은 저에게는 어쩐지 그런 경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편의점, 서빙, 막노동, 주방일, 전기 관리직, 디자이너, 옷가게MD, 쇼핑몰 운영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쇼핑몰 운영 중 에는 손님들과 MT를 가기도 했었죠. 사람들을 좋아하기에 그 속에서 나누는 수많은 이야기와 많은 생각들이 그림을 그리는 중요한 양분이 됩니다.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오히려 저 스스로에 대해 더 명확해 지는 것도 있고요.

6.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정연홍에게 예술이란 어떤 의미인지요?
예전 노래를 듣다보면 잊고 지낸 친구나 오래전 만났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날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 예술이란 그런 노래, 그런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누군가 저의 그림을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거나 현재를 되새김질 한다면 그 순간이 예술이고, 그 순간을 만들고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7. 끝으로 작가만의 작업 비전이 궁금해집니다.
거창하거나 번지르한 자기포장은 지양하며 나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솔직하고자한다면 저의 그림을 보는 관객들과 작지만 따뜻한 소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정연홍 경력 사항


1998. 남서울대 애니메이션과 수학

2004. 핸드페인팅 업체 <가야미> 디자이너.

2006~09. 라이브 페인팅 의류 사이트 운영 및 디자이너.
영화 및 TV프로그램 페인팅 의상협찬.


2007. 대구 패션페어 참여.
광주 전국체전 참여.
단양 청소년 축제 캐리커쳐 참여.

2009. 갤러리 시우터 <크리스마스 몬스터즈> 그룹전 참여.


2012. 코엑스 <홈 데코 페어> 개인 작품 전시.

2012. 갤러리 팔레 드 서울 <함께하는 세상> 기부전 참여.



정연홍 010-4564-9153
http://blog.naver.com/paintingjung
paintingjung@naver.com




일본정예서가오인초대전에 부쳐

▲Rouichi Tomoyoshi_Dynamic striatum.Talk 230x50cmx5 2012

▲Ohsigi Hiroko_Thorn of Rose 8 69.5x67.5cm

▲Kyoko Mashimo_門出(starting) 105x105cm 2010

▲Houtan Ishii_Be torn-Sho 110x110cm 2008

▲Hiroshi Yamamoto_Cosmic egg-02·728 120x120cm 2002

세상과 어우른 한마당 큰잔치 “함께하는 세상” 전 개막식

세상과 어우른 한마당 큰잔치 “함께하는 세상” 전 개막식 _ 편집장 성진민

본지는 한국 사단법인 다문화연대 와 연계하여 지난 1월 29일 통의동- 팔래드 서울-에서 “함께하는 세상” 전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1층부터 3층 에 이르는 전관은 모두 작가들의 소중한 재능 기부로 이루어졌고 kmca다문화 밴드의 흥겨운 노래와 음악 연주는 전시장의 오픈 기념행사장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사회각계각층으로 구성되어진 다문화연대의 후원자들과. 예술과 문화의 파수꾼격인 컬처오션의 재능 기부로 행사장의 열기는 더욱 열정적 이고 훈훈한 정경을 연출했다.
취지는 그랬다. 기부도 나눔도 혼자서 하는 것에는 늘 한계가 따른다고 생각한 여러 뜻 깊은 후견인들과 본지의 대표. 그리고 한국 사단법인 다문화연대의 이사장님께서 흔쾌히 전시와 공연을 접목시켜 말 그대로 예술과 여흥이 넘쳐나는 한마당으로 이끌어 충분조건을 갖추었다. 한민족은 수천년을 단일민족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은 기실 그러한 문화적 편견과 현실 속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 하다. 그러나 우리의 자손과 가족. 이웃을 돌아보자. 한 집 건너 한 가정씩 외국에 나가 있거나 외국계기업과 관련 이 있는 등 밀접한 현실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제는 우리도 그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어려운 상황과 애매한 정체성 속에서 헤매일지 모르는 다양한 민족들과 융합하여 기꺼이 한솥밥을 먹는 식구로 인정해야 할 때인 것이다. 모름지기 남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길이라지 않은가 말이다. 새해 새날이 밝아오고 있다. 나아지지 않고 있는 미술. 공연시장의 매서운 불황에도 기부가 오고가고, 나보다 이웃을 챙기는 이러한 기부전시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행사 내내 미소지으며 지켜보았다.
이러저러한 척박한 미술경기 속에서도 선뜻 작품을 쾌척해주신 작가님들과. 재능기부로 훌륭한 공연을 펼친 kmca 밴드에게도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모쪼록 이들의 민초가 우리 다문화사회의 모든 갈등과 세대를 아우르는 한걸음으로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박근혜의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진영의 논리에 사로잡히면 용두사미가 된다!

박근혜의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진영의 논리에 사로잡히면 용두사미가 된다!



계사년 뱀띠 해 새해가 밝았다. 뱀띠 해를 맞이하여 뱀과 관련된 덕담들이 오가고 있지만 필자는 자꾸 ‘용두사미’라는 사자성어만 연상된다. 용의 해에 이어 시작되는 뱀의 해를 글자 그대로 표현하면 용두사미가 된다. 그저 수천 년을 이어온 시간의 흐름일 뿐인데 용두사미라는 악담을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책망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말이다, 용의 해에 뱀의 해가 이어지는 것이야 수천 년을 이어온 그저 관행일 뿐이겠지만 지난 해 말 치러진 대선결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을 생각하고,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세계금융위기까지 고려한다면 진짜 ‘용두사미’를 걱정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우, 기우...’하는 주문을 외운다. 그렇다, 그야말로 기우일 것이다. 본인의 정치적 성향과 대선 후 생긴 트라우마를 지나치게 드러낸 기우가 아니냐는 누군가의 비판처럼 기우임에 틀림 없다. 특별히 그렇다 할 것도 없는 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할 때 대선 후 트라우마 같은 게 있을 리 없다고는 생각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용두사미는 기우라고 하자.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해 12월 26일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13 문화예술의 새로운 흐름(trend) 분석 및 전망'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흐름은 치유, 공정한 시장, 복지 등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보고서는 문화부가 우리 사회의 변화와 수요를 살펴보고 문화정책의 사회적 책임과 소통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의뢰해 2010년부터 실시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는데, 내년 문화예술계 흐름을 10개로 요약하고 있다.

보고서는 '공감의 문화예술, 아픈 사회의 치유(힐링, healing)'를 첫 번째 흐름으로 전망했는데, "불안한 사회와 각박한 삶 속에서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스스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손쉬운 힐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이라며 "가벼운 힐링 수단으로서 힐링 서적이 인기를 끌고 힐링 전문방송이 등장하며 힐링여행 관련 상품들이 인기를 끄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흐름으로는 '공동체(커뮤니티, community)와 예술, 함께 길을 찾다'가 예측됐는데,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 붐이 일고 있고, 주민이 예술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저작권 관련 이슈, 영화산업의 양극화, 대형제작사와 독립예술가의 명암 등을 포함한 '문화예술, 공정한 시장을 요구하다'와 예술인복지법 시행, 문화예술 협동조합 설립 등을 아우른 '예술가로 먹고살자: 예술인 복지와 협동조합의 본격화' 흐름도 제시했다. 이 밖에도 ▲한류의 새로운 이름, K컬처로 비상하다 ▲여가소비의 세대별 다층화와 문화복지 화두의 부상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 ▲문화다양성, 문화정책의 키워드로 부상하다 ▲누리소통망(SNS)으로 놀기, 말하기, 뭉치기 ▲노블리스 오블리주에서 시티즌 오블리주(시민에 의한 나눔)로 등이 새로운 흐름 등을 전망하고 있다.

필자는 이 보고서를 보면서 공감과 치유가 문화예술의 첫 번째 흐름으로 반영된 결과에 대해 공감대가 그다지 형성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음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 년여에 걸쳐 문화예술분야의 모든 주제와 이슈들을 총망라한 방대한 내용을 10가지 흐름으로 정리하는 가운데 대선후보들의 공약도 물론 반영되었겠지만 특별히 차기 대통령인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과 상호 소통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5년 간 집권하게 된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문화국가’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 당선인은 국민의 문화기본권을 보장하는 ‘문화기본법’, ‘문화예술후원 활성화법’ 제정과 논란 속에 마련된 ‘예술인복지법’ 손질도 예고한 바 있다.

기존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분리될 문화기본법은 문화복지 전문 인력 양성과 지역·계층별 맞춤형 프로그램 제공 등의 내용을 담게 될 것이며, 문화예술후원 활성화법을 통해 문화예술 기부금에 소득공제 혜택이 부여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지난 11월부터 형식적으로 시행돼 온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의 창업, 취업 지원 등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쪽으로 개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입법 과정에서 추진됐다 무산된 4대 보험의 일괄 적용 여부라든가 공연·영상 분야 스태프를 위한 처우 개선 등 창작 안전망 구축 여부가 관건이라 하겠다.
한류와 관련해선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콘텐츠코리아 랩’을 설립하고 ‘위풍당당 콘텐츠 코리아 펀드’를 조성할 방침이며,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남북 예술작품 교류 전시회 등도 구상 중이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관광 분야에선 여행 바우처 지원이 확대되고 고령자,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 확충이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는 이 같은 박 당선인의 공약을 분석한 정책 대안을 마련해 이달 초쯤 대통령직 인수위에 보고할 예정이나 총체적인 한류나 남북문화교류 정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핵심은 박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문화 재정 비율 2% 달성이다. 올해 기준으로 1.14%(3조 7194억원)인 전체 예산 대비 문화 부문 예산 비율을 2017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인 2%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의 실현 가능성이 문제다.
문화 재정 확충 방침을 바라보는 문화계의 시각은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국가 예산이 늘어나는 속도에 맞춰 임기 내에 2%까지 문화 재정 비율을 늘리겠다는 계획이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화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우선순위가 확고하지 않은 한 실제로 예산을 늘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처음으로 1%를 넘긴 문화 재정 비율은 역대 대통령마다 문화를 강조해 왔으나 그동안 제자리였고, 그 결과 1%에서 1.14%가 되는 데 13년이 걸렸다.
하지만 문화예술계는 비교적 낙관적이다. 1월 1일 새벽에 가까스로 통과된 2013년 예산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예산총액이 겨우 5조원으로 전체예산의 1.5%를 차지하였을 뿐이지만, 경제 위기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위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그나마 2천억 원의 증액이 이뤄지면서 처음으로 문화재정이 4조원을 돌파한 것에 고무된 결과로 보인다. 관련 업계는 2% 문화재정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낙관적인 기대가 가능한 것은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보이는 일본 등 다른 나라의 비관적 상황과의 상대적 평가 때문일 것이다. 특히 현재 일본 문화예술계가 우려하고 있는 오사카발 문화예술 파괴의 전국화 가능성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8년 초 자민당과 공명당의 공천으로 오사카부(府) 지사 선거에 출마, 38살이라는 최연소 나이로 당선된 하시모토는 당시 5조2487억엔(약 75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부채 때문에 파산 직전이었던 오사카부를 2년 만에 흑자로 돌려 세웠다. 2010년 지방정당인 오사카 유신(維新)회를 설립한 그는 2011년 11월 오사카시와 오사카부의 통합을 기치로 오사카 시장에 출마하면서 측근을 오사카부 지사로 내세워 압승을 거뒀다. 그가 지사 및 시장 취임 이후 단행한 행정 개혁 가운데 문화예술 지원금의 대대적인 삭감과 문화예술 기관의 폐지가 포함돼 오사카를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이 존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 물론 한국에선 아직 오사카에서와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가 갈수록 악화돼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점점 줄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공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만에 하나 하시모토 같은 지자체 단체장이라도 등장한다면 그 충격은 훨씬 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문화예술 지원의 필요성에 회의적인 하시모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오사카에서의 문화예술 파괴가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일 것이다. 일본 지자체 가운데 상당수가 재정난에 처해 있어서 ‘제2의 하시모토’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데다 민주당과 자민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하시모토가 입각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일본의 경우만이 아니고 최근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나 스페인 등에서도 문화예술 지원을 거의 삭감하는 등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국가나 지자체에서 문화예술을 언제까지나 지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나 지자체의 직간접적인 모든 유형의 지원행위 자체를 금기시하는 경제철학도 문제가 될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철학이 전파되면 될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을 금기시하는 여론이 비등해질 것이다. 일본 문화예술계가 하시모토를 비판하는 것과 달리 시민들 가운데선 오히려 하시모토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예술가들은 문화예술이 공공재인 만큼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이 당연하다는 입장이 확고하지만 시민들도 과연 이를 확고히 동의하고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 와중에 신자유주의 철학에 포섭된 정부가 예술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기 위한 명분으로 규제완화와 자율을 내세운다면, 그리고 경제마저 더욱 어려워져 구조조정의 명분까지 제공한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랬고 박근혜 정부 역시 그런 이명박 정부와 같은 새누리당 정권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다른 경제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박 당선인 진영에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문화계 인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선 과정에서 멘토단 등의 형식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문화예술인은 문재인 후보 쪽이 훨씬 다수였으며 질적으로도 박 당선인 쪽을 압도했다고 생각된다. 박 당선인을 지지해 온 단체라야 고작 ‘21세기 문화비전운동포럼’과 예술인 단체인 ‘문화가 있는 삶’ 등 문화예술계에서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은 단체를 손꼽을 정도였다. 문화예술분야의 통합과 소통이 크게 우려되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박 당선인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자화자찬할 게 틀림없는 조중동문 같은 이른바 수구언론들의 비뚤어진 시각이 더해졌을 때 불통이 가장 극대화될 것이라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이자 문화전문기자라는 노재현은 문화예술계에서 일반화된 박 당선인의 열세의 원인을 문화예술에 대한 새누리당의 무관심과 냉대에서 찾지 않고 그저 문화계의 진영화된 정치지향성에서 찾고 있다. “인기 TV드라마 제목을 빌리자면 요즘 문화계는 ‘넝쿨당’ 신세, 당신의 당이 아니라 파당(派黨)의 당”이라고 비판하면서 권력이 바뀌면 진영에서 호박 넝쿨처럼 기관장·단체장을 차고앉는 5년 단위 블랙코미디 연속극이라는 식의 양비론 같지만 사실은 편파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노재현 만의 생각이 아니라 박 당선인 진영의 지배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맥이 닿아 있는 것이라면, 그런 가운데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그런 논리에 문화상품의 실질적 수혜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그런 논리에 동조하게 된다면 문화예술계의 불통현상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재현이 “어쭙잖게 저 옛날의 참여·순수 논쟁을 되풀이하자는 게 아니지만 예술가와 정치가는 정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얘기, 즉 물리적 거리야 가깝든 멀든 간에 창조적 본능을 자극하는 팽팽한 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다시 생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예술이 정치와의 최소한의 거리, 긴장감을 잃어버리면 최악의 경우 권력에의 ‘역(逆)시녀화’ 현상이 빚어진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는 나름의 거리와 긴장감을 되찾고, 정권도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는 박 당선인의 약속대로 문화예술계에 포용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2% 문화재정을 위한 예산 확충도 중요하지만 새 정부의 문화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핵심 인사로 누가 중용될지 하는 문화예술부문의 인사라든가, 문화예술위, 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지원센터, 문화의 집 등 비슷한 성격의 예술 관련 기관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하는 정부부처 편제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예술계 역시 예술이 부유한 일부 계층의 향유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예술가들이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술계가 지원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관리해왔는지 등에 대한 자각을 함께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그렇고 문화예술계를 위해서도 그렇고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는 기우는 기우로 끝나야 한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문화예술이 없는 관광개발 -관광과 미술

문화예술이 없는 관광개발

관광과 미술

외국을 여행 할 때마다 어느 곳을 가든지 천재적인 화가들이 빚어 낸 매혹적인 예술작품을 감상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진한 영혼의 감동을 받았고, 새로운 세계와 환상적인 꿈을 느끼는 아름다운 경험을 하고는 하였다. 이와 같이 예술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영혼을 감화 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예술을 경험하는 관광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18세기 유럽 상류사회에서는 유럽 각국의 문화예술을 두루 돌아보고 최종적으로 로마와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대여행 (Grand Tour)이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교육과정 이었다고 한다. 또한 종교인들의 순례여행에서 화가들이 창작한 종교화와 조각 그리고 성당건축물을 통해 전해지는 정신적인 감화는 성스러운 종교적인 체험이었다. 이와같이 거의 모든 관광은 문화예술적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미술가들이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제작 하였다면, 관광은 예술가가 창작한 예술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감동을 시키는 역할을 담당 했다. 관광 없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존재 할 수 없고, 미술이 없는 관광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술과 관광은 아주 오래된 공생적인 동반자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관광개발과 미술

오래 전부터 문화예술은 이태리의 발전기, 프랑스의 석유산업이라고 불리웠고, 문화예술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 왔다. 최근에는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과 아부다비의 문화예술정책의 성공으로 미술이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미술관 하나로 죽어가던 도시가 살아났다는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은 국가이미지 개선을 통하여 세계인을 불러 모으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하여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문화예술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또한 국제적인 문화예술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 대규모 문화예술 인프라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고,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는 관광개발을 하기 위해서 총력을 기우리고 있다. 21세기는 본격적인 문화예술 경쟁의 시대로 들어섰다. 이제 문화예술은 국가경쟁력의 상징이고, 문화예술은 무궁무진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1) 이은기, 김미정, 서양미술사, 미진사, 2008, p. 332.


2)Fanelli, F., "Our Museums are Italy's General Motors, The Art
Newspaper, No. 33, 1993, pp. 6-7.
3)Mosser, F., "Monuments Historiques et Tourisme Culturel, Quel Project
Pour Quels Publics ?," Cahiers Espace, 1994, pp. 23-27.

4)변재진, 인터넷 시대의 미술, 컬처오션 10월, 2012년, P. 68.







이러한 점에서 관광개발은 종합적인 예술작품을 창조 하는 것이고, 문화 예술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관광객들에게 감동스러운 꿈과 환상을 창조 해주는 창조적인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별적인 예술작품 하나로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없는 분산된 관광자원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새로운 관광자원을 창조하여 집객력이 있는 관광자원으로 변화 시키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 하는 것이 관광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관광개발의 문제점

현재 우리나라에서 추진되고 있는 관광개발계획을 살펴보면 아래의 표와 같이 수조에서 수백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투자비가 필요한 관광개발계획이 각지자체에서 중복적으로 무모하게 진행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거의 모든 관광개발계획이 천편일률적으로 카지노 개발, 골프장 개발, 마리나 개발, F1 경기장, 해양스포츠시설과 같은 서로 유사한 시설을 유치하려고 하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이와같이 여러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동일한 관광 시설을 중복하여 개발하려는 무모한 관광개발과 문화예술이 없는 위락시설 건설위주의 개발계획이 진행 되고 있다.

수백조가 투자 되어야 하는 8개 해안관광지의 사업계획 청사진을 살펴보면 모두 판에 박힌듯이 천편일률적인 시설과 유사한 청사진들이 보인다. 서해안에 천문학적인 재원을 투자해서 8개의 유사한 해안관광지가 현재 계획대로 개발 된다면, 향후 발생하는 사태는 너무나도 심각 할 것으로 예상 된다. 서해안에 라스베가스와 같은 카지노 도시를 여러 개를 만들고, 그곳에 유사한 마리나 시설 10곳을 만들고, 대형 골프장을 많이 개발하면 관광객이 유치가 된다는 단순논리에 의한 관광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위락시설에 과잉투자를 하는 것 보다는 문화예술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잘 갖추어져야 관광개발은 성공할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관광개발계획을 살펴보면 영종도, 서남해안관광도시(세계최대 351홀 골프장) 새만금관광단지 (90홀) 태안기업도시 (162홀) 등에 각 지자체에 경쟁적으로 대규모 골프장을 건설 한다고 한다. 이것은 관광개발계획이 아니고 골프장 개발에 더가깝다. 전국적으로 골프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이 만약 이 계획대로 대규모 과잉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일부 계획지역의 골프장이 도산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리나시설은 서울 여의도 마리나, 잠실 플로라 마리나, 김포 아라마리나 (196척), 인천터미널 마리나, 인천 내항 마리나, 송도신도시 마리나, 영종도 왕산마리나 300척, 무의도 에잇시티 3,000척, 전곡항 633척, 제부항 500척, 안산 방아머리항 200척, 흘곳항 400척, 새만금 고군산군도 200척, 영암 서남해안 관광단지 마리나, 여수 등에 대규모 마리나 시설계획이 들어서고 있다. 이와같은 무모한 계획이 실행 된다면, 일부 지역은 마리나 시설과잉문제로 인하여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관광개발계획과 같은 과잉투자와 중복투자, 천편일률적인 관광개발계획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도산하는 골프장, 도산하는 마리나, 과잉투자로 인한 적자 관광단지의 문제로 인하여 파산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발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지역에 유사한 관광지를 중복적으로 개발 하려는 것 보다는 특정지역을 선정하여 질적으로 우수하고, 예술적이고, 차별화된 관광개발을 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4,000억원을 투자하여 F1경기장을 개발하고, 매년 500억 이상의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영암 해남 서남해안관광도시이다. 이 지역에는 세계최대 351홀 골프장도 건설 한다고 한다. 그런데 전남지역의 골프장 시설은 이미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이렇게 대규모 골프장이 건설 된다면 재정적자의 위험이 있다. 전남은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인데다가 F1 경기장 때문에 매년 천문학적인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무의도 에잇 시티에 또 하나의 F1경기장을 건설 한다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향후 영암 F1 경기장은 더욱 천문학적인 규모의 적자를 발생 시킬 것이다. 이에 더해서 세계 최대의 골프장까지 과잉개발을 해서 적자가 발생하게 되고, 여수 엑스포 시설운영에도 문제가 발생 한다면, 전남은 심각한 경제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전남 지방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진다면, 한국경제 위기의 원인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

전라북도의 새만금 관광개발도 게임시티라는 주제의 카지노 관광단지를 개발 하겠다고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영종도와 무의도, 제주도, 태백 강원랜드에 대규모 카지노 시설이 과잉 유치 되어 있는 상태이다. 세계적으로도 카지노 도시는 몇 곳이 안된다. 그런데 한국은 이 작은 땅에 카지노 도시를 각 지자체마다 유치하겠다고, 무리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골프장, 마리나, 카지노 시설을 과잉개발을 하는 것이 수익성 있는 관광개발이라는 단순한 논리에 입각한 획일적이고, 무모한 관광개발이 여러 곳에서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우려되는 현상이다.

살아 숨쉬는 문화예술공간을 만들자

우리나라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관광개발계획을 살펴보면 문화예술이 실종 된 위락시설 건설 위주의 유사한 관광개발이 중복적으로 추진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지자체가 모두 골프장, 마리나, 카지노를 유치 하여 돈을 벌겠다고 혈안이 되어서, 카지노와 골프장이 만병통치 해결책이라는 획일적인 관광개발계획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전통적인 문화예술 혹은 지역문화예술 그리고 지역산업과 연계된 지역성을 살린 차별화된 관광개발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각 지자체에서 중복적으로 계획 되고 있는 위락시설은 카지노, 마리나, 골프장 일색이고, 전혀 창의적인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외국 관광단지의 벤치마킹이 심하고, 창조적인 얼굴이 없는 국적 없는 계획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다. 콘크리트로 만든 위락시설의 수를 많이 건설 한다고 반드시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문화예술의 허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적인 개발 보다는 예술적이고, 창의적이고, 차별화 된 질적인 관광개발계획이 추진되어야 한다. 골프장, 카지노, 마리나와 같은 판에 박힌 뻔한 관광개발이 아니라, 이제까지 아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 그리고 외국 관광지나 다른 지역의 관광지와는 확실하게 차별화 될 수 있는 감동적인 관광개발계획을 추진하여야 한다.

그리고 위락시설이 다소 부족하여도, 피카소, 모차르트,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 예술가들 때문에 매년 수천만명이 방문하고, 관련 상품이 고가로 판매 되고,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일생에 꼭 한번은 방문 하고 싶어 하는 관광도시도 있다. 관광은 예술가들이 창작한 예술에 꿈과 상상의 날개를 펼쳐 주고, 무궁무진한 고부가가치의 상품으로 창조 하는 예술이다. 창의적이고 예술성이 뛰어난 문화예술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없이는 차별화 되고 경쟁력 있는 관광개발계획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개발되고 있는 여러 곳의 획일적인 관광단지에 생명력이 있는 문화예술공간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창조적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창조공간과 창작여건의 조성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각 지역에서 윌리엄 모리스가 추구 하였던 미술공예운동과 같은 예술운동이 일어나서 지역문화예술을 차별화 하고, 활성화 하여 보다 생명력이 있고, 수익성이 있는 지역 특유의 문화예술을 개발하기 위한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 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각 지역의 지역산업과 공예공방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세계에 자랑 할 수 있는 독창적인 지역의 특산품와 지역산업을 육성 하여야 한다. 네번째 전통문화예술과 현대적인 문화예술, 전위적인 문화예술, 아시아 여러 국가의 문화예술, IT산업, 스포츠 등이 융합된 풍부한 문화예술과 철학이 담긴 관광개발계획이 추진 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관광객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고, 한국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는 차별화 된 명품 랜드마크를 개발하여야 한다. 여섯번째 외국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관광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관광경찰제도를 도입 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문화예술을 창출 할 수 있는 천재적인 인재들이 지역에 유입되고, 교육을 받고, 지역에 남아 창조적인 문화예술을 창출 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문화예술 융합 교육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문화예술이 세계적으로 유명 해지고, 경쟁력을 갖추면, 외국인 관광객은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 온다. 각 지자체에서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면서 경쟁적으로 카지노, 골프장, 마리나와 같은 획일적인 위락시설을 무모하게 중복적으로 건설 한다고 해서 문화선진국가나 관광대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재정을 투자를 하고, 콘크리트로 대규모 위락시설을 건설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피카소, 한국의 모차르트를 육성하고, 예술가의 영혼이 담긴 매력적인 문화예술과 차별화된 지역특산품이라는 창의적인 문화예술 소프트웨어를 개발 하는 일이다. 세기를 뛰어 넘고, 국가를 초월하는 창조적인 예술의 힘은 위대하다.

이 한 장의 사진 시리즈


이 한 장의 사진 시리즈


상장에 얽힌 추억
이 사진은 초등학교 이 학년 때 천안에서 열린 미술실기대회에 참가해 받은 상장들 가운데 하나이다. 유년시절 나의 그림 솜씨를 인증해 주는 증거다. 나는 유독 상상화를 좋아했는데 선생님을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동네 풍경을 그리러 반 친구들과 함께 가던 일이다. 예쁜 여자 담임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고 걸어가셨다. 어린 생각에 그건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때 동산에서 시골 동네를 굽어보며 그린 그림이 교내 사생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어난 사건이었다.
상장을 눈여겨보시라. 명칭이 '종합 기능 실기'인 것이 재미있다. 아마 당시만 하더라도 미술은 기능이라는 인식이 강했나 보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해서 천원군(현재 천안시)이 주최한 미술 실기대회에서 당당히 입선을 해 군수가 상장을 주었다. 상상화부에 참가를 했는데 그림의 내용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당시 내가 사는 성환면 수향리에서 군청 소재지인 천안을 가려면 버스를 타야했다. 버스를 타는 일은 언제나 큰 즐거움이었다. 학교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타박타박 걸어서 갔다. 인솔 선생님과 고학년 형들하고 걸어간 기억이 난다.
나에게 천안은 대처였다. 시내에는 4-5층짜리 높은 빌딩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양옥집들이 즐비했다. 시발택시나 버스, 트럭들이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지나갔다. 그런데 내겐 휘발유 타는 그 냄새가 고소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도시 풍경이라든지 차량 따위는 내가 '현대성(modernity)'을 체험한 첫 기억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내게 편리함과 속도로 다가왔다. 빠르고 편리한 것이야말로 모던 문명의 특징이 아닌가.
당시만 하더라도 내가 사는 농촌의 시골마을은 한가롭고 여유가 있었다. 어렸을 적 동네 한 가운데에는 공동우물이 있었다. 우물 앞마당에서는 추석 같은 명절 때면 영락없이 춤판이 벌어지곤 했다. 큰 형 또래의 남자들이 치마저고리로 여장을 하고 춤을 추었다. 그것이 남사당패였는지는 지금도 판단이 잘 안 서지만, 두레패들이 장고라든지 소고, 꽹가리를 치며 법고를 돌렸다. 법고의 끝에 달려있는 흰 창호지가 길게 원을 그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수리조합 뜰로 가는 길 중간에는 상여집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상여라든지 꽃가마와 같은 동네 공동의 비품들이 들어있었다. 작은 아버지의 달걀귀신 이야기를 자주 들은 탓에 깜깜한 밤이면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곳은 낮에 지나가기에도 왠지 으스스했기 때문에 어쩌다 물고기를 잡으러 수리조합 뜰로 갈 때는 재빨리 뛰어서 갔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에 한 군인 아저씨가 사랑방에 기거한 적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퇴근길에 내게 비과를 사다주곤 했다. 그 아저씨는 나지막한 구릉 너머의 부대에 다녔기 때문에 아저씨가 돌아올 때쯤이면 나는 집 밖에 나가 구릉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아저씨는 구릉 저 멀리서 하나의 점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저씨를 다른 사람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던 까닭은 국방색 옷이 검은 점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옷은 그 당시 시골사람이 즐겨 입던 흰옷과 쉽게 구별됐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기다린 것은 아저씨가 아니라 한 줌의 달콤한 비과였던 것 같다.
가끔씩 경부선 철도와 1호선 국도를 바라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나는 동구 밖에 서서 경부선 철도와 1호선 국도를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멀리서 보면 국도 위로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차들이 가로수 사이로 재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아주 가끔이었지만 국도 너머로 시커먼 증기기관차가 연기를 내뿜으며 느리게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어느 날에는 달리는 기관차 지붕 위에 하얗게 사람들이 앉아있던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50년대 후반, 그 때는 피난시절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기관차의 지붕에 앉아 갔는지 나는 지금도 그 게 궁금하다. 아마 추석 무렵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뿐이다.
훗날, 내가 미술대학에 다닐 때 수화 김환기의 <피난열차>를 보며 어렸을 적에 본, 흰 옷 입은 사람들이 하얗게 붙어있던 그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장면은 나의 기억에 잊지 못할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동네 아주머니들은 하얀 적삼 밑으로 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다. 큰 젖도 있었고 작은 젖도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동네 아저씨들도 눈여겨보는 것 같지 않았다. 재작년에 행위예술가 문재선이 주관하는 [Pan Asia] 퍼포먼스 페스티벌에서 왕치라는 예명으로 퍼포먼스를 하면서 나는 넥타이를 한 아름 들고 나와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어렸을 때 본 여자들 젖이 수십 개는 될 것이라며 익살을 떨었다.
그 무렵 시골동네에는 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가설극장이 자주 들어왔다. 어느 날 확성기에서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같은 노래 소리가 들리면 가설극장이 들어왔다는 신호였다. 그러면 동네 앞 수리조합 뜰에서 미역을 감던 우리는 기쁜 마음에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가설극장이 들어선 학교 쪽으로 냅다 달렸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오인의 해병', '마부' 등등을 본 기억이 난다. 장동휘, 최무룡, 황해는 아이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장동이, 최무령’ 하고 배우들 이름을 친구 부르듯 하며 아이들은 미역을 감으러 가는 도중에도 영화 본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초등학교 때에는 자연이 곧 교과서였다. 우리는 들판을 쏘다니며 여름에는 참외서리를 하거나 수박으로 수구(水球)를 하면서 냇물에서 헤엄을 치며 놀았다. 헤엄을 치다 싫증이 나면 물고기를 잡았다. 안양리 아이들은 안성천이 가까웠기 때문에 물고기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물고기는 종류에 따라 잡는 법이 다 달랐다. 모래무지, 미꾸라지, 송사리, 메기, 가물치, 불거지, 뱀장어 등등 고기잡이는 모두 물고기의 생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불거지는 몸에서 무지개 빛이 났는데, 날렵하게 생긴 그 놈은 성질이 급해 잡아놓으면 금방 죽었다. 나는 알록달록한 색깔 때문에 그 놈을 유독 좋아했다. 그 외에도 들판에 아이들의 놀이는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봄에는 개구리를 잡아 즉석에서 구워먹었고, 여름에는 천렵과 함께 쇠풀을 뜯기며 메뚜기를 잡았다. 긴 강아지풀에 메뚜기를 꿰어 집에 돌아와 짚불에 구워먹었다. 가을에는 콩서리가 그만이었는데 이 모두는 아이들의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한 일종의 건강식이었다.
깜깜한 여름날 밤, 옥수수 밭에서 풍뎅이를 잡거나 건전지를 들고 뒷동산 숲 속에 들어가 참나무에 붙은 장수하늘소와 사슴벌레를 잡는 일도 재미있었다. 학교에서 곤충채집을 여름 방학 숙제로 내 주었기 때문에 그것은 의무사항이기도 했다. 장수하늘소나 사슴벌레는 참나무에 잘 서식했다. 깜깜한 밤중에 참나무의 굵은 나무둥치 위로 건전지 불을 비추면 그놈들은 꼼짝 않고 쥐 죽은 듯이 있었다. 우리는 그놈들을 잡아다 싸움을 붙이곤 했다.
뱁새 길들이기는 또 어떤가. 참새나 물총새, 종달새는 길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뱁새는 쉬웠다. 그놈은 달아나지도 않았다. 검지 두 개를 번갈아 가며 움직이면 뱁새는 재빠르게 두 발을 바꿔 손가락 위로 기어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우리 집 처마 밑에는 참새집이 있었다. 초가는 서까래 사이에 진흙을 채워 넣은 뒤 이엉을 올렸는데, 오래된 처마 밑의 진흙더미에는 자연이 구멍이 생겼다. 거기에 참새들은 알을 낳고 새끼를 깠다. 참새가 먹이를 입에 물고 구멍 속을 드나들면 새끼가 있다는 신호였다.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사다리 위로 올라가 구멍 속에 손을 넣었다. 그때 손에 잡힌 따뜻하고 물컹한 새끼 참새의 촉감이라니!
처마에서 고드름이 녹아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한 겨울의 대낮에는 아이들이 우리 집 마당에 모여 자치기를 했다. 마당에 참하게 생긴 고구마 모양으로 구멍을 파고 홈 앞쪽에 양끝을 뾰족하게 깍은 새끼 막대기를 걸쳐놓고 운동회에서 릴레이 계주할 때 쓰는 바통 모양의 나무로 쳐서 멀리 쳐내는 것이 자치기다. 그것은 야구와 비슷한 규칙을 가진 경기였다. 자치기에는 여러 놀이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멀리 달리기였다. 그것은 새끼 막대기를 쳐서 손에 받아 무한정 달리는 놀이였다. 상대편이 좇아가 몸에 터치를 하면 지는 경기였다. 그러나 달리는 아이가 새끼 막대기를 놓으면 달린 거리를 재야했기 때문에 발 빠른 아이가 최고로 인기가 좋았다. 자치기가 시들해지면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서 점심을 먹고 만화를 봤다. 시골의 점심은 김장김치나 신건지(무우를 소금에 절였다 물에 씻어먹는 것)에 찐 고구마를 먹거나 시큼한 김치에 수제비를 끓인 것, 혹은 김치 볶음밥이 인기가 좋았다. 우리 집은 누나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양한 겨울철 음식이 많았다. 어머니는 안방의 벽장 속에 곶감, 엿, 뻥튀기에 조청을 발라 쌀 강냉이를 입힌 산자 등을 숨겨 놓고 조금씩 꺼내 주셨다. 그러나 나는 용케도 숨긴 곳을 알아내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야금야금 꺼내먹었다.
점심을 때우고 나면 만화를 봤다. 긴 겨울방학은 만화책을 읽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박부성의 <고향눈>, 김종래의 <엄마 찾아 3만 리>, 추동성(고우영)의 <짱구박사>, 김성환의 <삼국지>, 김경언의 <ㄱ검사와 읍칠성이>, 김산호의 <라이파이> 등등이 내가 초등학교 때 본 만화들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박부성의 <고향눈>을 가장 좋아했다. 만화 속의 진식이는 발명왕이었다. 이 만화는 권선징악적인 내용이었는데, 진식이의 상대편인 심통이는 나쁜 짓만 골라서 했다. 몇 해 전, 어떤 이야기 끝에 이 <고향눈>이야기가 나오자 동양화가 박 아무개 교수가 말하길, 동양화의 원로화가인 J씨가 바로 박부성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뻐 바로 전화를 했는데 정작 본인은 의외로 강하게 부인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념 문제와 관련된 어떤 사연이 숨겨 있지 않나 짐작만 할 뿐이다. 나는 어린 나의 상상력을 북돋아주고 꿈을 심어준 이 만화를 언젠가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만화 100년전]에도 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삼학년 무렵, 나는 <고향눈>의 진식이가 한 대로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이면 벽돌 찍는 틀로 눈 벽돌을 만들어 성을 쌓는 일에 몰두했다. 동네 아이들과 편을 짜서 전쟁놀이를 하는데 벽돌은 생각보다 작았고 잘 찍히지도 않았다. 이때 우리들이 성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형이 "사과 궤짝으로 만들어야지."라고 말했으나, 시골에서 사과궤짝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성 쌓기는 포기해야만 했다.

중심과 비중심의 경계에서 빈틈없이 세상을 껴안다

▲이게 왜 소리가 안나지

▲웃음으로 풀어지는 신명

▲새끼는 이렇게 꼬는 거야

▲길고 짧은 것은 재보면 되는 일, 풍물솜씨 겨루기


▲국제문화교류단 사무실 풍경




커뮤니티 국제문화교류단장 하은숙

―예비사회적기업 국제문화교류단

글 사진 이대건편집주간

“너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게다” 간단없는 미래상
‘그’ 사회에서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노인은 일도 안하고 밥만 축낸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었다. 학자들은 ‘노인 때문에 국가 재정이 바닥난다’고 주장하고 대통령까지 ‘노인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 없다’며 의료비 지원을 대폭 삭감한다. 레스토랑에는 ‘70세 이상 노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걸리기도 한다. 광고제작자들은 ‘반노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노인들을 ‘CDPD(Centre de Detente Paix et Douceur)’라는 기관에 끌고 가 독극물을 주입해 생명을 중단시키기 시작한다. 일종의 강제 안락사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 프레드 부부에게 CDPD요원들이 찾아온다. 위기를 직감한 노부부는 이들을 피해 탈출을 감행한다. 프레드 부부의 탈출 소식은 노인사회에 급속하게 번져가고 여기저기서 많은 노인들이 잇따라 탈출하게 된다. 이들은 산 속에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정부를 상대로 저항을 시작한다. 처음 전단지를 뿌리는 정도였던 반정부 저항은 차츰 무장항쟁으로 발전한다. 주인공 프레디는 체게바라처럼 노인사회의 해방자로 불린다. 영웅이 된 것이다. ‘흰여우들’이라 명명한 노인커뮤니티는 시간이 지나면 정부가 잘못 내린 결정을 철회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자신들에게 조금만 더 애정과 사랑으로, 법적인 차별을 없애달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대응한다. 저항세력들이 모여 있는 산악 거점 지역에 독감바이러스를 살포한 것이다. 저항운동을 하던 노인들은 하나 둘 쓰러져가고 마지막 남은 사람들은 체포되기에 이른다. 주인공 프레드도 결국 체포된다. 그리고 여느 노인들과 같이 안락사 주사를 맞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주사를 놓는 젊은 병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게다.’
장편소설 『개미』로 이름 나, 우리에게는 국내작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의 내용이다. 『나무』라는 소설집에 실린 단편 「황혼의 반란」이다.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축한 도서관은 도대체 어찌될 것인가
노인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통째 불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2012년 대통령 선거 결과는 ‘세대 간 대결’이라 할만치 여러 가지 해석과 견해를 낳았다. 다음 아고라에서 벌어진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 청원’ 사건은 대선결과와 세대문제를 가장 첨예하게 보여준 현상이다. 도서관, 도서관은 어찌되고 있는 것인가.
몇 가지 자료로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최고의 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통계청자료에 의하면 2026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고령사회가 되고, 2036년이 되면 생산가능 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노인부양비율 50%에 육박하는 초고령화 나라가 된다. 노인의료비는 점점 급증하고 있고, OECD에서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조기퇴직과 고령자가 채용기피현상으로 노인들의 경제활동은 늘어나지 않고 있고, 일자리나 소득은 정말 열악하다.
이런 통계와 노인계층의 사회적 역할 감소는 마침내 소설 「황혼의 반란」이 예견하는 극단적인 사회로 가는 전조인가.

노인=수혜자, 공식을 깨는 신나는 축제
사뭇 다른 풍경하나를 소개한다. 나라의 허리 대전, 대전대학교 교정이었다. 하늘은 그지없이 높고, 가을이 이랬을까 싶은 단풍에 눈부신 날이었다. 사단법인 국제문화교류단에서 자리를 마련하고, 어르신들이 스스로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즐기는 축제가 열린 것이다. 하, 축제 이름은, ‘반전 있는 청춘, 2012 대국민축제’다. 하나씩 풀어보자. 반전 있는 청춘, 인생의 후반전에서 다시 인생의 반전을 꿈꾼다는 작명이다. 마침, 가수 싸이가 세계적으로 ‘말춤’ 파란을 일으키며 ‘반전 있는 여자’를 유행시키고 있었다. 대국민축제, 관련 국가 기관이나 지자체의 도움 없이 60~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획하고 준비해 모든 연령, 모든 국민을 초대한다는 취지다. 세대를 넘고, 성별을 넘고, 계층을 넘어 함께 즐기자는 잔치였다. 노인=무언가 받는 사람, 이 아니라, 그 수혜자라는 공식을 깨고, 무언가 누구에겐가 보탬이 되는 일을 벌이는 사람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자리였다.
대전대학교 맥센터(복합 체육공간)에 10여 개 어르신 모임에서 주제를 정해 ‘새끼꼬기’ ‘금줄달기’ ‘대형 윷놀이’ ‘사물놀이 체험’ ‘꽃바구니 만들기’, ‘투호와 널뛰기’, ‘떡만들기’, ‘엿 치기’ 같은 토속적인 놀이를 즐기는 부스를 꾸몄다. 사물놀이, 풍물놀이, 난타, 민요 공연이 차례로 이어졌다. 공연하는 참가자는 모두 노인세대. 며칠을 머리 맞대고 준비해, 거리낌 없이 즐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무언가를 주제로 잡고, 동아리를 만들어 서로 의지가지 살아온 결과물이었다. 축제에 함께한 사람들은 행사를 준비한 어르신들의 가족만이 아니었다. 충분한 홍보는 없었지만,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가족 단위 관람객, 대학 교정으로 단풍구경 왔다가 신명에 끌려 찾아온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

신명나는 축제의 중심에 그와 그들이 있다, 국제문화교류단
사단법인 국제문화교류단 관계자는 순수 민간단체에서 치르는 축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물론 ‘돈’이다. 그 ‘돈’의 대척에 선 것이 사람들의 마음과 힘이다. 대전의 몇 몇 사회단체와 서점, 특히 축제 기획에 함께 참여한 고창 책마을에서 서울의 몇 군데 출판사에 부탁해 어르신들과 축제 참가자들에게 선물할 책 400여 권을 기증했다.
‘내년부터는 작지만 예산을 마련해서 그냥 손 벌리지는 않을 거예요.’ 축제 관계자가 감사 인사 끝에 붙인 말이다. 올해 처음 열린 어르신들의 축제가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계속 이어지기를 빈다. 축제 이름이 ‘대국민축제’ 아니던가.
이 재미있는 시도를 가능하게 한 커뮤티니 이야기다. 이 단체가 위에 몇 차례 언급된 ‘사단법인 국제문화교류단’이다. 간단없는 살림살이를 챙기며 늘 새로운 기획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가, 하은숙 대표다.
국제문화교류단은 2010년 1월 비영리 단체로 대전시에 등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식 활동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 공식, 이라는 활동은 벌써 3차례의 청소년 해외원정대 파견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바 있다. 같은 해, 2월과 7월, 제4차 해외원정대(청소년 30명 싱가포르 방문, 4박5일)와 제5차 해외원정대 파견(청소년 25명 필리핀 방문, 30박31일) 파견으로 이어진다. 해외원정대의 주 활동은, 어학연수 및 청소년 지도자 훈련, 봉사활동, 문화탐험, 청소년 간 교류, 한국 전통음악 공연활동 같은 것들이다. 그 문화 탐험과 교류 활동을 위해 국내에서 발이 닳도록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다니고, 풍물이며 판소리 들을 섭렵한다. 단체 등록 원년답게, 그 해 말 제1회 국제문화교류단 정기발표회를 연다. 해를 넘기지 않고 국제 문화교류단 사단법인 인가를 받게 된다.

어린이·청소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를 빈틈없이 보듬는
2011년에는 청소년 직업진로 찾기 프로그램을 론칭한다. 벽두부터 청소년 진로신문을 발간한다. 2013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물단지 문화단, 보물단지 인형극단 활동으로 어르신들의 활동공간을 마련한다. 또한 보물단지 작은 도서관을 개관해, 지역에서 도서관 운동에 길을 열어간다. 그리고 그해 여름 제1회 살다, 놀다, 피어나다(노인문화단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이어 11월 제2회 행사를 연이어 연다. 이 행사의 기틀이 ‘반전 있는 청춘, 2012 대국민축제’로 나타난 것이다.
2012년 국제문화교류단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다. 세상을 향한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이 예비 사회적 기업은 2012년에도 어김없이 청소년 진로교육을 위한 학교프로그램을 열었다. 그 결과로 참가 청소년들 스스로가 만든 직업체험신문이 계속 발간되고 있다. 올해는 작은 단행본으로 묶여 소중한 결과를 많은 독자들과 공유하려 한다. 또 어르신들의 공연무대, ‘살다, 놀다, 피어나다’ 또한 5회를 넘기고 있다. 청소년 해외 원정대도 벌써 7차에 이른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21박22일을 지내며 우리 전통문화의 향기를 전하고 돌아왔다.
사단법인과 예비 사회적기업을 이끄는 중심에, 하은숙 대표가 있다. 1인10역을 감당하느라 문턱이 닳도록 병원신세를 지는 이다. 올해는 과로로 상태가 위중하기도 했다. “헤헤 내가 자리에 누우면 세상 사람들이 ‘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하고 즐거워할까 봐, 절대로 지칠 수 없다”는 그다. 사회적기업까지 ‘윗돌 빼서 아랫돌 갱구’는 어려운 살림살이다. 그가 작은 어린이도서관으로부터 청소년 직업체험단, 해외원정대와 어머니 모임으로부터 노인들을 위한 크고 작은 활동까지, 흔들림 없이 달려가는 까닭이 있다. ‘내가 과거에 어린이였고, 청소년이었고, 내가 앞으로 노인이 될 것이니까’다. 세상에 사는 이유를 늘 새롭게 찾아가는 사람인 탓이다. 그가 더 아프지 말고, 그가 깔아놓은 신명나는 잔치 자리에서 그가 만들어놓은 슬로건처럼, 살다가, 놀다가, 문득문득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