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5, 2011

박종규








박종규



미니멀과 노이즈, 선택과 배제의 프로세스


황인 (Art Activist)


Layers of two dimension & three dimension은 박종규가 줄곧 사용해온 작품명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그는 오랫동안 2차원과 3차원의 공간 즉, 평면과 입체라는 상이한 공간의 층위를 기반으로 하여 가능한 조형과 이 둘 사이의 경계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조형의 가능성을 실험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크게 셋으로 대별될 수 있는데, 이제까지 그가 지속해온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평면 좌표계를 포함한 바닥 설치 작업, 사진작업, 그리고 이번에 새로 선보이는 노이즈 주제의 타블로 작업이 그렇다. 이 셋은 재료에 있어서나 조형적인 양식에 있어, 일견 각자가 분리된 전혀 다른 작업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의 일관된 사유의 프로세스에서 초래된 동일한 작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사유의 프로세스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키워드로서 공간과 시간의 제한적인 질서의 바깥에 존재하기도 하고 사물의 질료 속에 정체를 숨기기도 하는 불순물로서의 ‘노이즈’(noise)를 들 수가 있다. 작가는 이 불순함의 정체와 역할을 적극적으로 끄집어 드러내는 시도를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다.

조형의 순도

미니멀 미술이 대체로 기하학적 구조를 띄는 것은 조형의 본질과 그 질서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기하학이 땅을 떠나서 비로소 학문으로 성립되었듯이 기하학적 구조를 띄는 미니멀 미술도 조형의 여러 요소 중에서 공간의 질서에 해당되지 않는 부분 예컨대, 물성 등을 배제하려는 노력, 즉 불순물을 버림으로써 조형의 순도를 높이는 과정을 통해서 장르의 고유함과 엄격성을 실현시켰다고 할 수가 있겠다. 그는 질료를 감추거나 희박화하지 않고 질료와 순수공간 사이에 놓인 불안정한 영역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시간의 질서를 거부하거나 그 질서에 순치(馴致)되지 않으려는 어떤 거친 존재, 불순물이 상존(常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불안정하고 거칠며 불순한 그들의 정체를 박종규는 ‘노이즈’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이즈는 의도적으로 선택된 질서에서 배제된 영역을 말한다. 사운드에서의 노이즈는 똑같은 소리의 차원인 잡음이 되겠지만 조형예술에서의 노이즈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공간과 물성같이 성격이 전혀 다른 영역의 충돌 속에서, 또 공간의 영역에서도 입체와 평면, 선(線), 점(点) 등 다른 차원의 공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노이즈는 사물의 표면에 노골적으로(explicitly) 현현(顯現)해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미니멀 미술에서 보듯, 집중된 선택과 엄격한 배제라는 행위를 통해서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함축적으로(implicitly) 잠재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정체가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미니멀 미술에서는 조형의 순도를 높이는 데만 골몰할 나머지 노이즈를 무조건 배제하여 버리기만 했지 그들에게 정당한 지위와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다시 어떻게 재활용할지에 대해서는 별 고민이 없었다.

선택과 배제

굳이 미니멀 미술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선택과 배제라는 행위는 최근의 디지털 작업에서 필수불가결하게 수반된다. 예를 들어 박종규가 이번에 처음 보이는 픽셀을 응용한 타블로 작업이 그렇다. 픽셀은 인쇄에 있어 망점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언제나 유한한 숫자의 픽셀로 대상을 포착하여야만 한다. 이때 픽셀이 포함할 수 없는 영역은 배제시킬 수밖에 없다. 미니멀리즘의 운명과 흡사하다. 그런데 이렇게 배제된 로컬영역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고 픽셀에 선택된 부분을 극단적으로 확대했을 때 흐릿한 모습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흐릿함을 고의적으로 극명하게 만들면 픽셀은 직사각형이 몇 개 모여진 것 같은 구조처럼 불규칙한 거친 형상이 된다. 로컬영역으로 떨어져 나갔다고 여겨진 잠복상태의 노이즈가 단정한 픽셀의 질서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박종규의 이번 사진작업은 전시장의 오브제 혹은 특정 공간을 사진 속의 프레임에 담고 그 프레임에서 배제된 주변부의 공간 내부에 설치하여 다시 촬영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차이’를 발생시키는 일종의 자기복제의 과정이다. 이 작업을 통해 이전의 프레임에서 배제되었던 주변부의 로컬공간은 계속 틈입한다.

바닥 설치작업에서 바닥의 좌표계는 카메라의 픽셀과 마찬가지로 이차원상에서 단정한 기하학적 질서를 가졌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의 굳건한 규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위에 놓인 무거운 철 단괴(團塊)는 2차원 좌표계의 차원을 벗어난 3차원의 상태일 뿐만 아니라 기하학에는 전혀 불필요한 과잉의 물성을 갖고 있다. 2차원과 달리 3차원에서부터 드디어‘사물’이 탄생할 수 있다. 따라서 2차원과 3차원의 차이는 단순히 점, 선, 면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순차적인 도약의 프로세스와는 다른 관념과 실재라는 전혀 이질적인 세계의 아득한 간극을 보여준다.

실재인 3차원을 2차원 평면 속에 담는 행위를 회화라고 한다면 회화에는 언제나 추상(abstraction)작업, 즉 배제와 관념화의 행위가 늘상 있어 왔다는 것인데 이를 인식하고 체계화시킨 것은 칸딘스키에 와서부터다. 그런데 칸딘스키의 점, 선, 면이 기하학의 그것과 다른 것은 그가 집착한 것이 조형적인 질서 보다는 회화에 있어 이들이 가진 불투명한 생성력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조형의 궁극적인 순도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이즈의 존재도 무시되어버렸다. 반면에 조형의 순도를 높이고자 애쓴 도널드 져드와 같은 미니멀리스트들은 노이즈를 인식하고도 이들을 배제해야만 그들의 회화가 가능하다고 노이즈를 고의적으로 무시했다.

박종규는 이제까지 미니멀리즘의 질서 바깥에서만 존재하던 속한 노이즈를 조형의 질서 안으로 불러내어 적극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새로운 공간감각의 생성력으로 동원하고 있다. 그가 꾸는 꿈은 이제까지 양자택일의 부담만이 주어졌던 노이즈와 미니멀 미술의 기묘한 동거의 실현이다. 실재와 관념, 이둘 중 하나가 살아남기 위해 다른 하나를 버리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순과 긴장감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새롭고도 생뚱한 세계의 작업을 즐기고 있는 듯이 보인다.




박 종 규


1966 대구출생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파리 국립 미술학교 졸업 D.N.S.A.P

개인전

2011 Layers, Dimensions, TUV Rheinland, 서울

Layers, Dimensions, Kunstdoc, 서울

2009 Layers, Dimensions, BIBI 스페이스, 대전

Layers, Dimensions, 갤러리 신라, 대구

2008 가와후네 화랑, 도쿄

2004 빛,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 시립미술관, 광주

갤러리 신라, 대구

2003 대구 카톨릭대 초대전, 예술학부 전시장

대구 아트엑스포 패션 퍼포먼스, 패션 센터, 대구

2001 갤러리 신라, 대구

1999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후쿠오카

1998 면 나누기, 갤러리 신라, 대구

1995 Gallery Area, 파리

1995 Galerie des Beaux-Art (CROUS), 파리

1994 Galerie des Beaux-Art (CROUS), 파리

1993 Galerie des Beaux-Art (CROUS), 파리

1990 그림자 그리기, 지우기 퍼포먼스, 계명대학교, 대구 단공갤러리, 대구

외 단체전 다수

출판

2009 박종규, 레이어즈, 디멘션스 , 갤러리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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