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1, 2013

박근혜의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진영의 논리에 사로잡히면 용두사미가 된다!

박근혜의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진영의 논리에 사로잡히면 용두사미가 된다!



계사년 뱀띠 해 새해가 밝았다. 뱀띠 해를 맞이하여 뱀과 관련된 덕담들이 오가고 있지만 필자는 자꾸 ‘용두사미’라는 사자성어만 연상된다. 용의 해에 이어 시작되는 뱀의 해를 글자 그대로 표현하면 용두사미가 된다. 그저 수천 년을 이어온 시간의 흐름일 뿐인데 용두사미라는 악담을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책망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말이다, 용의 해에 뱀의 해가 이어지는 것이야 수천 년을 이어온 그저 관행일 뿐이겠지만 지난 해 말 치러진 대선결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을 생각하고,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세계금융위기까지 고려한다면 진짜 ‘용두사미’를 걱정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우, 기우...’하는 주문을 외운다. 그렇다, 그야말로 기우일 것이다. 본인의 정치적 성향과 대선 후 생긴 트라우마를 지나치게 드러낸 기우가 아니냐는 누군가의 비판처럼 기우임에 틀림 없다. 특별히 그렇다 할 것도 없는 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할 때 대선 후 트라우마 같은 게 있을 리 없다고는 생각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용두사미는 기우라고 하자.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해 12월 26일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13 문화예술의 새로운 흐름(trend) 분석 및 전망'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흐름은 치유, 공정한 시장, 복지 등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보고서는 문화부가 우리 사회의 변화와 수요를 살펴보고 문화정책의 사회적 책임과 소통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의뢰해 2010년부터 실시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는데, 내년 문화예술계 흐름을 10개로 요약하고 있다.

보고서는 '공감의 문화예술, 아픈 사회의 치유(힐링, healing)'를 첫 번째 흐름으로 전망했는데, "불안한 사회와 각박한 삶 속에서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스스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손쉬운 힐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이라며 "가벼운 힐링 수단으로서 힐링 서적이 인기를 끌고 힐링 전문방송이 등장하며 힐링여행 관련 상품들이 인기를 끄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흐름으로는 '공동체(커뮤니티, community)와 예술, 함께 길을 찾다'가 예측됐는데,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 붐이 일고 있고, 주민이 예술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저작권 관련 이슈, 영화산업의 양극화, 대형제작사와 독립예술가의 명암 등을 포함한 '문화예술, 공정한 시장을 요구하다'와 예술인복지법 시행, 문화예술 협동조합 설립 등을 아우른 '예술가로 먹고살자: 예술인 복지와 협동조합의 본격화' 흐름도 제시했다. 이 밖에도 ▲한류의 새로운 이름, K컬처로 비상하다 ▲여가소비의 세대별 다층화와 문화복지 화두의 부상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 ▲문화다양성, 문화정책의 키워드로 부상하다 ▲누리소통망(SNS)으로 놀기, 말하기, 뭉치기 ▲노블리스 오블리주에서 시티즌 오블리주(시민에 의한 나눔)로 등이 새로운 흐름 등을 전망하고 있다.

필자는 이 보고서를 보면서 공감과 치유가 문화예술의 첫 번째 흐름으로 반영된 결과에 대해 공감대가 그다지 형성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음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 년여에 걸쳐 문화예술분야의 모든 주제와 이슈들을 총망라한 방대한 내용을 10가지 흐름으로 정리하는 가운데 대선후보들의 공약도 물론 반영되었겠지만 특별히 차기 대통령인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과 상호 소통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5년 간 집권하게 된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문화국가’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 당선인은 국민의 문화기본권을 보장하는 ‘문화기본법’, ‘문화예술후원 활성화법’ 제정과 논란 속에 마련된 ‘예술인복지법’ 손질도 예고한 바 있다.

기존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분리될 문화기본법은 문화복지 전문 인력 양성과 지역·계층별 맞춤형 프로그램 제공 등의 내용을 담게 될 것이며, 문화예술후원 활성화법을 통해 문화예술 기부금에 소득공제 혜택이 부여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지난 11월부터 형식적으로 시행돼 온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의 창업, 취업 지원 등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쪽으로 개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입법 과정에서 추진됐다 무산된 4대 보험의 일괄 적용 여부라든가 공연·영상 분야 스태프를 위한 처우 개선 등 창작 안전망 구축 여부가 관건이라 하겠다.
한류와 관련해선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콘텐츠코리아 랩’을 설립하고 ‘위풍당당 콘텐츠 코리아 펀드’를 조성할 방침이며,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남북 예술작품 교류 전시회 등도 구상 중이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관광 분야에선 여행 바우처 지원이 확대되고 고령자,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 확충이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는 이 같은 박 당선인의 공약을 분석한 정책 대안을 마련해 이달 초쯤 대통령직 인수위에 보고할 예정이나 총체적인 한류나 남북문화교류 정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핵심은 박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문화 재정 비율 2% 달성이다. 올해 기준으로 1.14%(3조 7194억원)인 전체 예산 대비 문화 부문 예산 비율을 2017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인 2%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의 실현 가능성이 문제다.
문화 재정 확충 방침을 바라보는 문화계의 시각은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국가 예산이 늘어나는 속도에 맞춰 임기 내에 2%까지 문화 재정 비율을 늘리겠다는 계획이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화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우선순위가 확고하지 않은 한 실제로 예산을 늘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처음으로 1%를 넘긴 문화 재정 비율은 역대 대통령마다 문화를 강조해 왔으나 그동안 제자리였고, 그 결과 1%에서 1.14%가 되는 데 13년이 걸렸다.
하지만 문화예술계는 비교적 낙관적이다. 1월 1일 새벽에 가까스로 통과된 2013년 예산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예산총액이 겨우 5조원으로 전체예산의 1.5%를 차지하였을 뿐이지만, 경제 위기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위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그나마 2천억 원의 증액이 이뤄지면서 처음으로 문화재정이 4조원을 돌파한 것에 고무된 결과로 보인다. 관련 업계는 2% 문화재정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낙관적인 기대가 가능한 것은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보이는 일본 등 다른 나라의 비관적 상황과의 상대적 평가 때문일 것이다. 특히 현재 일본 문화예술계가 우려하고 있는 오사카발 문화예술 파괴의 전국화 가능성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8년 초 자민당과 공명당의 공천으로 오사카부(府) 지사 선거에 출마, 38살이라는 최연소 나이로 당선된 하시모토는 당시 5조2487억엔(약 75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부채 때문에 파산 직전이었던 오사카부를 2년 만에 흑자로 돌려 세웠다. 2010년 지방정당인 오사카 유신(維新)회를 설립한 그는 2011년 11월 오사카시와 오사카부의 통합을 기치로 오사카 시장에 출마하면서 측근을 오사카부 지사로 내세워 압승을 거뒀다. 그가 지사 및 시장 취임 이후 단행한 행정 개혁 가운데 문화예술 지원금의 대대적인 삭감과 문화예술 기관의 폐지가 포함돼 오사카를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이 존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 물론 한국에선 아직 오사카에서와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가 갈수록 악화돼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점점 줄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공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만에 하나 하시모토 같은 지자체 단체장이라도 등장한다면 그 충격은 훨씬 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문화예술 지원의 필요성에 회의적인 하시모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오사카에서의 문화예술 파괴가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일 것이다. 일본 지자체 가운데 상당수가 재정난에 처해 있어서 ‘제2의 하시모토’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데다 민주당과 자민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하시모토가 입각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일본의 경우만이 아니고 최근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나 스페인 등에서도 문화예술 지원을 거의 삭감하는 등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국가나 지자체에서 문화예술을 언제까지나 지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나 지자체의 직간접적인 모든 유형의 지원행위 자체를 금기시하는 경제철학도 문제가 될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철학이 전파되면 될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을 금기시하는 여론이 비등해질 것이다. 일본 문화예술계가 하시모토를 비판하는 것과 달리 시민들 가운데선 오히려 하시모토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예술가들은 문화예술이 공공재인 만큼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이 당연하다는 입장이 확고하지만 시민들도 과연 이를 확고히 동의하고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 와중에 신자유주의 철학에 포섭된 정부가 예술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기 위한 명분으로 규제완화와 자율을 내세운다면, 그리고 경제마저 더욱 어려워져 구조조정의 명분까지 제공한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랬고 박근혜 정부 역시 그런 이명박 정부와 같은 새누리당 정권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다른 경제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박 당선인 진영에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문화계 인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선 과정에서 멘토단 등의 형식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문화예술인은 문재인 후보 쪽이 훨씬 다수였으며 질적으로도 박 당선인 쪽을 압도했다고 생각된다. 박 당선인을 지지해 온 단체라야 고작 ‘21세기 문화비전운동포럼’과 예술인 단체인 ‘문화가 있는 삶’ 등 문화예술계에서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은 단체를 손꼽을 정도였다. 문화예술분야의 통합과 소통이 크게 우려되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박 당선인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자화자찬할 게 틀림없는 조중동문 같은 이른바 수구언론들의 비뚤어진 시각이 더해졌을 때 불통이 가장 극대화될 것이라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이자 문화전문기자라는 노재현은 문화예술계에서 일반화된 박 당선인의 열세의 원인을 문화예술에 대한 새누리당의 무관심과 냉대에서 찾지 않고 그저 문화계의 진영화된 정치지향성에서 찾고 있다. “인기 TV드라마 제목을 빌리자면 요즘 문화계는 ‘넝쿨당’ 신세, 당신의 당이 아니라 파당(派黨)의 당”이라고 비판하면서 권력이 바뀌면 진영에서 호박 넝쿨처럼 기관장·단체장을 차고앉는 5년 단위 블랙코미디 연속극이라는 식의 양비론 같지만 사실은 편파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노재현 만의 생각이 아니라 박 당선인 진영의 지배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맥이 닿아 있는 것이라면, 그런 가운데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그런 논리에 문화상품의 실질적 수혜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그런 논리에 동조하게 된다면 문화예술계의 불통현상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재현이 “어쭙잖게 저 옛날의 참여·순수 논쟁을 되풀이하자는 게 아니지만 예술가와 정치가는 정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얘기, 즉 물리적 거리야 가깝든 멀든 간에 창조적 본능을 자극하는 팽팽한 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다시 생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예술이 정치와의 최소한의 거리, 긴장감을 잃어버리면 최악의 경우 권력에의 ‘역(逆)시녀화’ 현상이 빚어진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는 나름의 거리와 긴장감을 되찾고, 정권도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는 박 당선인의 약속대로 문화예술계에 포용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2% 문화재정을 위한 예산 확충도 중요하지만 새 정부의 문화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핵심 인사로 누가 중용될지 하는 문화예술부문의 인사라든가, 문화예술위, 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지원센터, 문화의 집 등 비슷한 성격의 예술 관련 기관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하는 정부부처 편제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예술계 역시 예술이 부유한 일부 계층의 향유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예술가들이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술계가 지원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관리해왔는지 등에 대한 자각을 함께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그렇고 문화예술계를 위해서도 그렇고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는 기우는 기우로 끝나야 한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