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진영의 논리에 사로잡히면 용두사미가 된다!
계사년 뱀띠 해 새해가 밝았다. 뱀띠 해를 맞이하여 뱀과 관련된 덕담들이 오가고 있지만 필자는 자꾸 ‘용두사미’라는 사자성어만 연상된다.
용의 해에 이어 시작되는 뱀의 해를 글자 그대로 표현하면 용두사미가 된다. 그저 수천 년을 이어온 시간의 흐름일 뿐인데 용두사미라는 악담을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책망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말이다, 용의 해에 뱀의 해가 이어지는 것이야 수천 년을 이어온 그저 관행일
뿐이겠지만 지난 해 말 치러진 대선결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을 생각하고,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세계금융위기까지 고려한다면 진짜
‘용두사미’를 걱정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우, 기우...’하는 주문을 외운다. 그렇다,
그야말로 기우일 것이다. 본인의 정치적 성향과 대선 후 생긴 트라우마를 지나치게 드러낸 기우가 아니냐는 누군가의 비판처럼 기우임에 틀림 없다.
특별히 그렇다 할 것도 없는 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할 때 대선 후 트라우마 같은 게 있을 리 없다고는 생각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용두사미는 기우라고 하자.
대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해 12월 26일 발표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13
문화예술의 새로운 흐름(trend) 분석 및 전망'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흐름은 치유, 공정한 시장, 복지 등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보고서는 문화부가 우리 사회의 변화와 수요를 살펴보고 문화정책의 사회적 책임과 소통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의뢰해 2010년부터 실시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는데, 내년 문화예술계 흐름을 10개로 요약하고 있다.
보고서는 '공감의 문화예술, 아픈 사회의 치유(힐링, healing)'를 첫 번째 흐름으로 전망했는데, "불안한 사회와 각박한 삶 속에서
현대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스스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손쉬운 힐링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이라며 "가벼운 힐링 수단으로서 힐링 서적이
인기를 끌고 힐링 전문방송이 등장하며 힐링여행 관련 상품들이 인기를 끄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흐름으로는 '공동체(커뮤니티,
community)와 예술, 함께 길을 찾다'가 예측됐는데,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젝트 붐이 일고 있고, 주민이 예술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저작권 관련 이슈, 영화산업의 양극화, 대형제작사와 독립예술가의 명암 등을 포함한
'문화예술, 공정한 시장을 요구하다'와 예술인복지법 시행, 문화예술 협동조합 설립 등을 아우른 '예술가로 먹고살자: 예술인 복지와 협동조합의
본격화' 흐름도 제시했다. 이 밖에도 ▲한류의 새로운 이름, K컬처로 비상하다 ▲여가소비의 세대별 다층화와 문화복지 화두의 부상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 ▲문화다양성, 문화정책의 키워드로 부상하다 ▲누리소통망(SNS)으로 놀기, 말하기, 뭉치기 ▲노블리스 오블리주에서 시티즌
오블리주(시민에 의한 나눔)로 등이 새로운 흐름 등을 전망하고 있다.
필자는 이 보고서를 보면서 공감과 치유가 문화예술의 첫 번째 흐름으로 반영된 결과에 대해 공감대가 그다지 형성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음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2 년여에 걸쳐 문화예술분야의 모든 주제와 이슈들을 총망라한 방대한 내용을 10가지 흐름으로 정리하는
가운데 대선후보들의 공약도 물론 반영되었겠지만 특별히 차기 대통령인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과 상호 소통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5년 간 집권하게 된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문화국가’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다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 당선인은 국민의 문화기본권을 보장하는 ‘문화기본법’, ‘문화예술후원 활성화법’
제정과 논란 속에 마련된 ‘예술인복지법’ 손질도 예고한 바 있다.
기존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분리될 문화기본법은 문화복지 전문 인력 양성과 지역·계층별 맞춤형 프로그램 제공 등의 내용을 담게 될 것이며,
문화예술후원 활성화법을 통해 문화예술 기부금에 소득공제 혜택이 부여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지난 11월부터 형식적으로 시행돼 온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의 창업, 취업 지원 등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쪽으로 개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입법 과정에서 추진됐다 무산된 4대
보험의 일괄 적용 여부라든가 공연·영상 분야 스태프를 위한 처우 개선 등 창작 안전망 구축 여부가 관건이라 하겠다.
한류와 관련해선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콘텐츠코리아 랩’을 설립하고 ‘위풍당당 콘텐츠 코리아 펀드’를 조성할 방침이며,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남북 예술작품 교류
전시회 등도 구상 중이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맞아 관광 분야에선 여행 바우처 지원이 확대되고 고령자, 장애인을 위한 인프라
확충이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는 이 같은 박 당선인의 공약을 분석한 정책 대안을 마련해 이달 초쯤 대통령직 인수위에 보고할
예정이나 총체적인 한류나 남북문화교류 정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핵심은 박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건 문화
재정 비율 2% 달성이다. 올해 기준으로 1.14%(3조 7194억원)인 전체 예산 대비 문화 부문 예산 비율을 2017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인 2%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의 실현 가능성이 문제다.
문화 재정 확충 방침을 바라보는 문화계의 시각은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국가 예산이 늘어나는 속도에 맞춰 임기 내에 2%까지 문화 재정 비율을 늘리겠다는 계획이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화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우선순위가 확고하지 않은 한 실제로 예산을 늘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처음으로 1%를 넘긴
문화 재정 비율은 역대 대통령마다 문화를 강조해 왔으나 그동안 제자리였고, 그 결과 1%에서 1.14%가 되는 데 13년이 걸렸다.
하지만 문화예술계는 비교적 낙관적이다. 1월 1일 새벽에 가까스로 통과된 2013년 예산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 분야의 예산총액이 겨우
5조원으로 전체예산의 1.5%를 차지하였을 뿐이지만, 경제 위기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위기의식이 팽배한 가운데 그나마 2천억 원의 증액이
이뤄지면서 처음으로 문화재정이 4조원을 돌파한 것에 고무된 결과로 보인다. 관련 업계는 2% 문화재정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낙관적인 기대가 가능한 것은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보이는 일본 등 다른 나라의 비관적 상황과의 상대적 평가 때문일 것이다.
특히 현재 일본 문화예술계가 우려하고 있는 오사카발 문화예술 파괴의 전국화 가능성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8년 초 자민당과 공명당의
공천으로 오사카부(府) 지사 선거에 출마, 38살이라는 최연소 나이로 당선된 하시모토는 당시 5조2487억엔(약 75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부채
때문에 파산 직전이었던 오사카부를 2년 만에 흑자로 돌려 세웠다. 2010년 지방정당인 오사카 유신(維新)회를 설립한 그는 2011년 11월
오사카시와 오사카부의 통합을 기치로 오사카 시장에 출마하면서 측근을 오사카부 지사로 내세워 압승을 거뒀다. 그가 지사 및 시장 취임 이후 단행한
행정 개혁 가운데 문화예술 지원금의 대대적인 삭감과 문화예술 기관의 폐지가 포함돼 오사카를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이 존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 물론 한국에선 아직 오사카에서와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가 갈수록 악화돼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점점 줄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공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만에 하나 하시모토 같은 지자체 단체장이라도 등장한다면 그 충격은
훨씬 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문화예술 지원의 필요성에 회의적인 하시모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오사카에서의 문화예술 파괴가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일 것이다. 일본 지자체 가운데 상당수가 재정난에 처해 있어서 ‘제2의 하시모토’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데다
민주당과 자민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하시모토가 입각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일본의 경우만이 아니고 최근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나 스페인 등에서도 문화예술 지원을 거의 삭감하는 등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국가나 지자체에서 문화예술을 언제까지나
지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나 지자체의 직간접적인 모든 유형의 지원행위 자체를 금기시하는
경제철학도 문제가 될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철학이 전파되면 될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지원을 금기시하는 여론이 비등해질
것이다. 일본 문화예술계가 하시모토를 비판하는 것과 달리 시민들 가운데선 오히려 하시모토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예술가들은 문화예술이 공공재인 만큼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이 당연하다는 입장이 확고하지만 시민들도 과연 이를 확고히 동의하고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 와중에 신자유주의 철학에 포섭된 정부가 예술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기 위한 명분으로 규제완화와 자율을 내세운다면, 그리고
경제마저 더욱 어려워져 구조조정의 명분까지 제공한다면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랬고 박근혜 정부 역시 그런 이명박 정부와 같은 새누리당 정권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다른 경제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박 당선인 진영에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문화계 인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선 과정에서 멘토단 등의
형식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문화예술인은 문재인 후보 쪽이 훨씬 다수였으며 질적으로도 박 당선인 쪽을 압도했다고 생각된다. 박 당선인을
지지해 온 단체라야 고작 ‘21세기 문화비전운동포럼’과 예술인 단체인 ‘문화가 있는 삶’ 등 문화예술계에서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은 단체를
손꼽을 정도였다. 문화예술분야의 통합과 소통이 크게 우려되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박 당선인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자화자찬할 게 틀림없는 조중동문 같은 이른바 수구언론들의 비뚤어진 시각이 더해졌을 때
불통이 가장 극대화될 것이라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앙일보의 논설위원이자 문화전문기자라는 노재현은 문화예술계에서 일반화된 박 당선인의
열세의 원인을 문화예술에 대한 새누리당의 무관심과 냉대에서 찾지 않고 그저 문화계의 진영화된 정치지향성에서 찾고 있다. “인기 TV드라마 제목을
빌리자면 요즘 문화계는 ‘넝쿨당’ 신세, 당신의 당이 아니라 파당(派黨)의 당”이라고 비판하면서 권력이 바뀌면 진영에서 호박 넝쿨처럼
기관장·단체장을 차고앉는 5년 단위 블랙코미디 연속극이라는 식의 양비론 같지만 사실은 편파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노재현
만의 생각이 아니라 박 당선인 진영의 지배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맥이 닿아 있는 것이라면, 그런 가운데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그런 논리에 문화상품의 실질적 수혜자이자 소비자인 대중이 그런 논리에 동조하게 된다면 문화예술계의 불통현상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재현이 “어쭙잖게 저 옛날의 참여·순수 논쟁을 되풀이하자는 게 아니지만 예술가와 정치가는 정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얘기,
즉 물리적 거리야 가깝든 멀든 간에 창조적 본능을 자극하는 팽팽한 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다시 생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예술이
정치와의 최소한의 거리, 긴장감을 잃어버리면 최악의 경우 권력에의 ‘역(逆)시녀화’ 현상이 빚어진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는 나름의 거리와 긴장감을
되찾고, 정권도 대통합의 길을 가겠다는 박 당선인의 약속대로 문화예술계에 포용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2% 문화재정을 위한
예산 확충도 중요하지만 새 정부의 문화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핵심 인사로 누가 중용될지 하는 문화예술부문의 인사라든가, 문화예술위,
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지원센터, 문화의 집 등 비슷한 성격의 예술 관련 기관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하는 정부부처 편제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예술계 역시 예술이 부유한 일부 계층의 향유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예술가들이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술계가 지원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관리해왔는지 등에 대한 자각을 함께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그렇고 문화예술계를 위해서도 그렇고 용두사미가 될 것이라는 기우는 기우로 끝나야 한다.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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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February 1, 2013
Wednesday, December 19, 2012
“이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다!”실종된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 공약을 찾아서...
“이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다!”
실종된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 공약을 찾아서...
글 최용일
“지난 대선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정책을 내놓은 것 같다.” 지난 11월8일 ‘2012대선 미디어? 문화예술? 정보통신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문재인, 안철수 등 당시 야권 후보 캠프가 내놓은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11월 15일 문화예술계가 내린 평가였다. 당시 야권의 두 후보가 내놓은 정책들을 정리해보면 문화산업 분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업의 독과점 규제, 예술인 복지 정책 마련, 표현의 자유 확대, 지역문화 활성화, 문화예술인의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이었는데, 야권 후보 단일화를 꿈꾸던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두 후보의 문화예술 정책은 대체로 닮아 있었다.
이날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던 한국독립영화협회 원승환 전 배급지원센터 소장은 “두 후보 진영 모두 문화예술 정책 공약이 비슷했다. 차이라면 독립영화, 인디음악을 지원하겠다고 명시한 문 후보와 달리 안 후보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문화예술인 복지를 실시한다면 국가 자격 제도를 실시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와 국가 자격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는 안철수 후보의 의견이 다른 점 등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두 후보의 정책이 지난 대선에 비해 완성도는 있지만 여전히 선거용 공약에 머문다는 의견도 만만찮았다. 올해까지 4번째 대선 정책 모니터링을 맡고 있는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일단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현장에서 요구하는 목소리를 정책에 많이 반영했다고 본다. 현장의 요구를 수용하다보니 두 후보 간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분석하면서도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법 제도 개편, 예산 편성과 같은 실질적인 해결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나 자본적으로나 문화산업의 크기가 커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력 대선 후보라면 문화정책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있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토론회를 열어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비판이 덧붙여졌었다. 이상 문-안 두 후보의 문화예술정책 비교는 물론 의미 있는 것이고, 비판 또한 적확했지만 두 야권 후보가 문 후보로 단일화 된 이 마당에는 또 다른,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문화예술정책과의 비교분석과 그로부터 나온 비교우위 내지는 경쟁력일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 후보는 “문화예술 부문 예산을 국가 예산의 2%까지 올리겠다”는 선거용 공약 말고는 문화예술분야의 정책 공약을 단 하나도 내놓지 않고 있다. 박 후보의 10대 정책공약 중 ‘창조경제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 내용 중에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세부사항을 포함시킴으로써 상상력과 창의력 제고를 위한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의 내용 중에는 꿈과 끼, 인성과 창의력을 열거함으로써 직접적인 문화예술 정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방점을 찍었겠지 하는 기대를 해봤지만 그렇게 오해할 만한 건덕이마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 나선 각 후보들의 정책 공약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 어느 대선보다도 냉정한 것 같다. 어느 누구의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구체성, 전문성 및 사회 변화에 따른 정책의 유연성이 결여돼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매우 추상적이고 형식적이었으며, 더욱 심각한 것은 각 후보들의 정책적 차별성을 논하기조차 어렵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대안적이고 생산적인 문책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부재한 상태임을 드러낸 것은 물론, 보다 근본적으로는 각 분야의 정책 필요성에 대한 철학과 이념이 매우 빈곤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문화예술 공약에 이르면 그 평가는 냉정하다 못해 가혹한 것 같다. 물론 정치개혁이나 경제민주화, 사회통합, 복지지상주의 등 모든 공약 하나하나가 과대몰입을 요구하는 공약들인 만큼 문화정책에까지 정성을 쏟을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후보 대부분이 정치, 경제 등 표와 직결된다고 판단되는 분야의 정책 마련과는 달리, 문화정책에 있어 중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고민과 연구가 부재한 것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의 문화예술 정책 공약이 과연 얼마나 허접하기에 그처럼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단 말인지 지난 대선과 비교해보자. 그런데 2007년 대선이 “문제는 경제”라는 유일무이한 프레임에 갇혀 기업인 이명박이 손쉬운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선거라는 점까지 고려하여 이번 대선의 비교 대상을 2002년 대선으로 해보자.
2002년 대선 당시 대부분의 후보들이 문화의 공공성, 다양성, 자율성 보장 관련 공약을 내놓았고, 노무현 후보 등을 비롯한 대다수 후보들이 문화 분야 위상 제고를 위해 문화부총리와 대통령 직속 문화예술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문화예산 확보 목표치를 제시했고, 문화진흥기금 확충 방안까지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표현의 자유 보장과 문화예술인에 대한 생존권 보장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나 문화예술인 복지조합의 설립 지원 등 창작여건 개선 공약도 나왔다.
또한 남북문화 교류 활성화 역시 이회창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공약으로 제시됐고, 문화 향수권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소득공제제도의 도입, 사랑티켓제도 확대, 기업메세나를 위한 세제개혁 등의 정책들의 공약화 논의가 있었으며, 정치, 경제, 사회적 소수자 및 지역 문화 균형 발전방안으로 여성문화진흥기본법 제정이나 여성문화기금 신설 등의 공약이 진보진영 후보들로부터 나왔다. 그 밖에 체육, 관광, 출판산업 정책, 문화유산 보존, 관리 방안 마련 등의 공약도 대다수 후보들이 수용했다.
단일화 국면을 거친 여야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현 대선과 데자뷰 현상까지 보여주었던 2002년 대선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을 거꾸로 올라간 시점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지금보다 더 참신하고 치열한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대결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대선 후보들은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문외한 내지는 국외자에 가깝다는 것이고,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 이번 대선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 2007년 대선의 화두가 “문제는 경제”였다면 이번 대선의 화두는 사실 “문제는 문화”였어야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여전히 경제도 화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특수 상황을 염두에 둔다 해도 “문화경제, 즉 컬처노믹스(Culturenomics)가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정체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후퇴인 셈이다.
컬처노믹스란 문화와 경제의 결합을 강조하는 말로 문화가 경제에 중요한 시대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한편에서는 현대를 ‘문화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경제의 시대’를 말하는, 다시 말하자면 문화만으로는 뭔가 2%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나온 ‘컬처노믹스의 시대’를 설명하기 위한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컬처노믹스는 문화경제학이면서 동시에 ‘문화를 경작한다’는 의미에서 문화경영학이기도 하다. 처음 등장한 1990년대에는 해당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현지인을 고용하거나 현지 브랜드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소극적인 의미의 문화경제학으로 파악되었다면, 2000년대에는 문화와 산업의 창조적 융합, 문화의 상품화, 문화를 통한 창의적 차별화로 고(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경영학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한편 컬처노믹스는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한데, 초기의 문화경제학이 거시적인 관점이었다면 후기의 문화경영학은 미시적 관점일 것이다. 지금 세계에 퍼져가고 있는 한류를 주도한 것이 문화경영학의 힘이었다면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미시적인 문화경영학에서 거시적인 문화정책학으로 돌아가 보면 컬처노믹스가 말하는 바는 단순해진다. 문화의 강국이 곧 세계적 강국이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한국도 그랬고 미국도 그랬지만 정치권의 프레임은 누가 경제라는 아젠다를 선점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국가 아젠다는 문화가 빠진 경제만으로는 안 될 것이며, 그렇다고 경제는 뒷전인 문화만으로도 안 될 것이다. 국가 아젠다에서는 문화가 빠진 채 기업 차원에서는 문화를 상품화하는 문화경영학도 한계가 있다. 2003년 프랑스에서 메세나 지원법이 통과된 것에 고무되어 2007년 우리나라에서 발의된 메세나지원법이 여전히 계류 중인 상황을 생각하면 우리의 컬처노믹스가 가야할 상황은 끝이 없는 터널을 헤매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바로 왜 컬처노믹스가 국가 아젠다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흔히들 현대는 융합의 시대, 창의력의 시대, 감성의 시대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부르는데, 컬처노믹스는 바로 창의력과 감성을 융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화의 소프트웨어화, 인프라화가 시급하며, 이에 대한 관심과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문화의 시대’라는 말과 ‘융복합의 시대’, ‘창의력과 감성의 시대’라는 말들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렇다고 상상력과 창의력, 꿈과 끼를 내세우면서 그것의 바탕이 되는 것이 문화라는 것을 감지조차 못한다면 그건 뭐랄까, 비문화적이라기보다는 비상식적인 말이라는 생각이다.
앞에서 야권 후보들의 공약은 지난 대선 때보다 참신하지만 그건 완성도면일 뿐 여전히 선거용 공약일 뿐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집권당 후보로부터는 아예 공약다운 문화예술 공약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지난 대선보다 오히려 문화예술면에서 정책공약의 수준은 후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일개 평범한 국회의원도 아닌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의 문화예술 공약이 이 정도라면 경제대통령을 넘어 문화대통령을 갈구하는 시대적 요구인 컬처노믹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특히 현재 국정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집권당의 후보이자, 퍼스트 레이디 경력 등 국정운영 경험이나 여성후보로서의 감성과 참신성을 차별화 요인으로 한껏 내세우면서도 그 모든 것이 강점으로 승화될 법한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정작 무정책 무개념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 후보의 분발이 촉구되는 이유일 것이다.
실종된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 공약을 찾아서...
글 최용일
“지난 대선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정책을 내놓은 것 같다.” 지난 11월8일 ‘2012대선 미디어? 문화예술? 정보통신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문재인, 안철수 등 당시 야권 후보 캠프가 내놓은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11월 15일 문화예술계가 내린 평가였다. 당시 야권의 두 후보가 내놓은 정책들을 정리해보면 문화산업 분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업의 독과점 규제, 예술인 복지 정책 마련, 표현의 자유 확대, 지역문화 활성화, 문화예술인의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이었는데, 야권 후보 단일화를 꿈꾸던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두 후보의 문화예술 정책은 대체로 닮아 있었다.
이날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던 한국독립영화협회 원승환 전 배급지원센터 소장은 “두 후보 진영 모두 문화예술 정책 공약이 비슷했다. 차이라면 독립영화, 인디음악을 지원하겠다고 명시한 문 후보와 달리 안 후보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문화예술인 복지를 실시한다면 국가 자격 제도를 실시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와 국가 자격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는 안철수 후보의 의견이 다른 점 등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두 후보의 정책이 지난 대선에 비해 완성도는 있지만 여전히 선거용 공약에 머문다는 의견도 만만찮았다. 올해까지 4번째 대선 정책 모니터링을 맡고 있는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일단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현장에서 요구하는 목소리를 정책에 많이 반영했다고 본다. 현장의 요구를 수용하다보니 두 후보 간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분석하면서도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법 제도 개편, 예산 편성과 같은 실질적인 해결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나 자본적으로나 문화산업의 크기가 커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력 대선 후보라면 문화정책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있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토론회를 열어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비판이 덧붙여졌었다. 이상 문-안 두 후보의 문화예술정책 비교는 물론 의미 있는 것이고, 비판 또한 적확했지만 두 야권 후보가 문 후보로 단일화 된 이 마당에는 또 다른,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문화예술정책과의 비교분석과 그로부터 나온 비교우위 내지는 경쟁력일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 후보는 “문화예술 부문 예산을 국가 예산의 2%까지 올리겠다”는 선거용 공약 말고는 문화예술분야의 정책 공약을 단 하나도 내놓지 않고 있다. 박 후보의 10대 정책공약 중 ‘창조경제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 내용 중에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세부사항을 포함시킴으로써 상상력과 창의력 제고를 위한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의 내용 중에는 꿈과 끼, 인성과 창의력을 열거함으로써 직접적인 문화예술 정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방점을 찍었겠지 하는 기대를 해봤지만 그렇게 오해할 만한 건덕이마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 나선 각 후보들의 정책 공약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 어느 대선보다도 냉정한 것 같다. 어느 누구의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구체성, 전문성 및 사회 변화에 따른 정책의 유연성이 결여돼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매우 추상적이고 형식적이었으며, 더욱 심각한 것은 각 후보들의 정책적 차별성을 논하기조차 어렵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대안적이고 생산적인 문책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부재한 상태임을 드러낸 것은 물론, 보다 근본적으로는 각 분야의 정책 필요성에 대한 철학과 이념이 매우 빈곤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문화예술 공약에 이르면 그 평가는 냉정하다 못해 가혹한 것 같다. 물론 정치개혁이나 경제민주화, 사회통합, 복지지상주의 등 모든 공약 하나하나가 과대몰입을 요구하는 공약들인 만큼 문화정책에까지 정성을 쏟을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후보 대부분이 정치, 경제 등 표와 직결된다고 판단되는 분야의 정책 마련과는 달리, 문화정책에 있어 중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고민과 연구가 부재한 것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의 문화예술 정책 공약이 과연 얼마나 허접하기에 그처럼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단 말인지 지난 대선과 비교해보자. 그런데 2007년 대선이 “문제는 경제”라는 유일무이한 프레임에 갇혀 기업인 이명박이 손쉬운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선거라는 점까지 고려하여 이번 대선의 비교 대상을 2002년 대선으로 해보자.
2002년 대선 당시 대부분의 후보들이 문화의 공공성, 다양성, 자율성 보장 관련 공약을 내놓았고, 노무현 후보 등을 비롯한 대다수 후보들이 문화 분야 위상 제고를 위해 문화부총리와 대통령 직속 문화예술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문화예산 확보 목표치를 제시했고, 문화진흥기금 확충 방안까지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표현의 자유 보장과 문화예술인에 대한 생존권 보장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나 문화예술인 복지조합의 설립 지원 등 창작여건 개선 공약도 나왔다.
또한 남북문화 교류 활성화 역시 이회창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공약으로 제시됐고, 문화 향수권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소득공제제도의 도입, 사랑티켓제도 확대, 기업메세나를 위한 세제개혁 등의 정책들의 공약화 논의가 있었으며, 정치, 경제, 사회적 소수자 및 지역 문화 균형 발전방안으로 여성문화진흥기본법 제정이나 여성문화기금 신설 등의 공약이 진보진영 후보들로부터 나왔다. 그 밖에 체육, 관광, 출판산업 정책, 문화유산 보존, 관리 방안 마련 등의 공약도 대다수 후보들이 수용했다.
단일화 국면을 거친 여야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현 대선과 데자뷰 현상까지 보여주었던 2002년 대선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을 거꾸로 올라간 시점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지금보다 더 참신하고 치열한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대결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대선 후보들은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문외한 내지는 국외자에 가깝다는 것이고,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 이번 대선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 2007년 대선의 화두가 “문제는 경제”였다면 이번 대선의 화두는 사실 “문제는 문화”였어야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여전히 경제도 화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특수 상황을 염두에 둔다 해도 “문화경제, 즉 컬처노믹스(Culturenomics)가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정체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후퇴인 셈이다.
컬처노믹스란 문화와 경제의 결합을 강조하는 말로 문화가 경제에 중요한 시대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한편에서는 현대를 ‘문화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경제의 시대’를 말하는, 다시 말하자면 문화만으로는 뭔가 2%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나온 ‘컬처노믹스의 시대’를 설명하기 위한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컬처노믹스는 문화경제학이면서 동시에 ‘문화를 경작한다’는 의미에서 문화경영학이기도 하다. 처음 등장한 1990년대에는 해당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현지인을 고용하거나 현지 브랜드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소극적인 의미의 문화경제학으로 파악되었다면, 2000년대에는 문화와 산업의 창조적 융합, 문화의 상품화, 문화를 통한 창의적 차별화로 고(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경영학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한편 컬처노믹스는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한데, 초기의 문화경제학이 거시적인 관점이었다면 후기의 문화경영학은 미시적 관점일 것이다. 지금 세계에 퍼져가고 있는 한류를 주도한 것이 문화경영학의 힘이었다면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미시적인 문화경영학에서 거시적인 문화정책학으로 돌아가 보면 컬처노믹스가 말하는 바는 단순해진다. 문화의 강국이 곧 세계적 강국이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한국도 그랬고 미국도 그랬지만 정치권의 프레임은 누가 경제라는 아젠다를 선점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국가 아젠다는 문화가 빠진 경제만으로는 안 될 것이며, 그렇다고 경제는 뒷전인 문화만으로도 안 될 것이다. 국가 아젠다에서는 문화가 빠진 채 기업 차원에서는 문화를 상품화하는 문화경영학도 한계가 있다. 2003년 프랑스에서 메세나 지원법이 통과된 것에 고무되어 2007년 우리나라에서 발의된 메세나지원법이 여전히 계류 중인 상황을 생각하면 우리의 컬처노믹스가 가야할 상황은 끝이 없는 터널을 헤매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바로 왜 컬처노믹스가 국가 아젠다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흔히들 현대는 융합의 시대, 창의력의 시대, 감성의 시대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부르는데, 컬처노믹스는 바로 창의력과 감성을 융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화의 소프트웨어화, 인프라화가 시급하며, 이에 대한 관심과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문화의 시대’라는 말과 ‘융복합의 시대’, ‘창의력과 감성의 시대’라는 말들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렇다고 상상력과 창의력, 꿈과 끼를 내세우면서 그것의 바탕이 되는 것이 문화라는 것을 감지조차 못한다면 그건 뭐랄까, 비문화적이라기보다는 비상식적인 말이라는 생각이다.
앞에서 야권 후보들의 공약은 지난 대선 때보다 참신하지만 그건 완성도면일 뿐 여전히 선거용 공약일 뿐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집권당 후보로부터는 아예 공약다운 문화예술 공약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지난 대선보다 오히려 문화예술면에서 정책공약의 수준은 후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일개 평범한 국회의원도 아닌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의 문화예술 공약이 이 정도라면 경제대통령을 넘어 문화대통령을 갈구하는 시대적 요구인 컬처노믹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특히 현재 국정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집권당의 후보이자, 퍼스트 레이디 경력 등 국정운영 경험이나 여성후보로서의 감성과 참신성을 차별화 요인으로 한껏 내세우면서도 그 모든 것이 강점으로 승화될 법한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정작 무정책 무개념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 후보의 분발이 촉구되는 이유일 것이다.
Tuesday, November 20, 2012
싸이가 ‘피에타’를 부른다면...
싸이가 ‘피에타’를 부른다면...
B급 문화에 장착한 A급 전략
지금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가히 신드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B급이라 부르고, 또 남들도 그렇게 인정했던 가수 싸이가, 그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인 B급 문화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강남스타일은 9월 14일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64위에 진입한 여세를 몰아 1주일 만에 11위에 오르더니 다시 1주일 만에 2위까지 수직상승했다.
그로부터 4주째 2위에 머무르면서 빌보드 차트의 난공불락을 잘 보여주기도 했지만 싸이 이전에 한국 가수들의 빌보드 차트 도전사에 비추어 볼 때, 빌보드 차트의 명불허전을 생각해볼 때 그 성과가 얼마나 기록적인지는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강남스타일은 빌 보드 차트 4주 연속 2위라는 숨고르기를 하면서도 10월 1일 영국의 공식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영국 차트에서 3위로 내려앉은 상태여서 영미 공식차트 동시석권이라는 대기록은 어렵게 됐지만 영미 양국의 공식차트를 모두 차지하는 또 하나의 대기록 달성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라 하겠다.
한편, 지난 10월 20일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게재 98일 만에 5억뷰를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22일 오전 10시 현재 약 5억 2500만 건을 기록하면서 뮤직비디오 조회수에서 역대 3위에 올랐다. ‘강남 스타일’을 앞선 뮤직 비디오는 현재 약 7억 9000만 건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캐나다 출신 팝스타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베이비(Baby)'와 약 6억 1000만 건으로 2위에 올라있는 라틴 팝스타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의 '온 더 플로어(On The Floor)'뿐이다. 이 밖에도 강남스타일은 9월말 미국, 영국 등 41개국의 아이튠즈 차트 1위를 기록했고 2~5위를 기록한 19개국까지 60개국의 음원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런 모든 기록들이 한국 최초의 기록이며 또한 모두가 현재 진행형이다.
강남스타일 신드롬은 지금 한국 문화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B급 문화 전성시대의 한 단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B급 문화 전성시대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장악한 음악계뿐만 아니라 영화계에도 마찬가지로 도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의 영화를 스스로 B급 영화라고 하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으며, 또 다른 B급 소재를 다룬 영화 '도둑들'은 1000만 관객을 끌어 모으며 한국영화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강남스타일 신드롬’과 함께 개그맨들이 주도하는 ‘개가수 신드롬’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개가수’란 얼핏 욕처럼 들리지만 개그맨과 가수의 합성어로 가수같이 노래하는 개그맨이라는 뜻일 뿐이다. 개그맨 유세윤과 뮤지가 결성한 ‘UV’, KBS '개그콘서트'의 신보라·박성광·정태호로 구성된 ‘용감한 녀석들’,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이적이 결성했던 ‘처진 달팽이’, 정형돈과 래퍼 데프콘이 만든 ‘형돈이와 대준이’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정통음악이라 부르기 힘든 이들 개가수들의 노래가 음원차트 상위권을 장악하는 현상에서 B급문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사실 노래하는 개그맨 가수들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개가수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요새 개가수들은 단순히 인지도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존 노래 가사가 가진 통속성이나 상투성을 뒤집으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과거 탈렌트나 영화배우들이 대중음악과 뮤지컬 분야에 진출하던 트렌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퓨전 스타일이 아닌가 하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장르의 B급 문화 현상으로는 맥락 없이 전개되는 가벼운 웹툰이 수천만 회 이상 젊은이 눈을 사로잡는 ‘병맛만화’를 들 수 있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병맛만화’는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풍자와 조롱의 내용을 담은 만화라는 뜻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생겨난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인 ‘병맛’은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로, 원래 비주류, 저급 문화 콘텐츠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무언가가 수준 이하일 때 '병맛 같은 정치인' '이런 병맛 같은 드라마'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처음엔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꼴 때 쓰였던 ‘병맛’이 요즘엔 거꾸로 기발하고 창의적인 행동이나 표현을 칭찬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맥락도 뜻도 없지만 재밌으면 그만이다. 잘 만들어진 완벽함보다 무언가 조악하고 결핍된 어설픈 그림과 영상이 소위 '찌질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에 '병맛 같다'고 칭찬한다. 주부들이 욕을 하면서 막장 드라마를 보듯, ‘병맛’이라고 지적하면서 즐기는 식이다.
이상에서 국내 문화계에 흐르고 있는 B급 문화 현상에 대해 살펴보았고 그런 관점에서 강남스타일이 국내의 B급 문화 유행에 힘입어 대히트를 친 것은 이해할 수 있겠는데, 세계적인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내의 B급문화가 이제야 생성되기 시작한 것일 뿐 세계적으로 B급 문화는 이미 오래 전에 형성되어 하나의 트렌드가 돼 버렸다는 가설이 검증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에 앞서 B급문화를 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저예산이나 범죄, 포르노 영화, 인디음악, 무협지, 판타지소설, 웹툰 등을 정서상 B급이라 부르면 사람들이 대체로 동의할 것 같다. 하지만 B급에 대한 해석이 쉽지 않고 학술적으로 내려진 정의도 없기 때문에 역사적인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동시상영 영화가 유행했는데, A급 할리우드 영화의 끼워팔기용이 B급 영화(B-Movies)였다. 한물간 스타나 무명배우를 써서 제작비가 싸면서도, 소재와 형식에서는 대중의 즉흥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영화였다. 1930년대 등장한 '키치(kitch)' 문화도 B급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키치란 '싸게 만들다'라는 뜻의 독일어 동사(verk itschen)에서 유래된 말로 초점은 역시 싼 제작비였지만, 이후 통속 취미에 영합하는 저속한 예술작품으로 확대 해석하고 가벼움, 유치함, 촌스러움 등이 키치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키치 문화는 일부러 천박한 방법을 동원해 엄숙한 기성예술을 조롱하는 대안문화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에는 B급 판정기준이 돈에서 내용으로 바뀌면서 B급 영화에 대한 개념도 바뀌고 있다.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145억원의 거액을 쏟아 부은 영화 '도둑들'은 저예산이라는 잣대가 아니라 가벼운 도둑 얘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B급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둑들’은 한국영화사상 최초의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 수상작인 피에타가 80만도 못 되는 관객을 겨우 동원할 때 1200만을 넘어 관객수에서 국내영화 역대 1위 기록을 세웠다.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두 영화 모두 어떤 면에서는 B급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 국내용 B급영화와 국제용 B급영화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또 다른 기준으로 철학적인 시각을 들 수 있는데, 철학적 시각에서 B급은 주류 문화에 대한 반감과 새 영역으로의 도전으로 풀이된다. 196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히피 문화'나 일본의 오타쿠(御宅) 문화와 같이 고상한 주류 문화가 채울 수 없는 대중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류계층의 문화적 취향도 B급문화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실린 신조어 '차브(Chav)'는 집시어 '차비(Chavi·로마어로 어린이를 의미)'에서 유래한 말로, 하류계층의 문화적 취향을 의미하는 촌스러움의 상징으로 통했다. 이렇게 차용된 차브라는 용어가 세련미와 동떨어진 악취향의 청소년 문화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는데, 번쩍이는 싸구려 금붙이를 주렁주렁 달고 짝퉁 브랜드의 야구모자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젊은이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차브 스타일이다. 그러나 현재는 젊은이의 고유한 문화적 취향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되었다.
과거 B급문화는 소수만의 비주류 문화로 치부됐지만 최근 들어 최상위층 아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는 추세를 보이면서 B급과 A급 문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과거 어둡고 칙칙하고 냉소적이던 B급 문화에 즐거움과 자부심이라는 새로운 코드가 첨가됨으로써 새로운 A급문화가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저급한 가사와 영상이 웃음거리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음악적 완성도만큼은 A급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세계인의 기본 정서를 날카롭게 포착하여 SNS를 통해 대중을 포섭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기획사는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YG엔터테인먼트였으며, 작곡가 겸 가수인 싸이 역시 B급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탄탄한 조건을 갖췄다. 그런 점에서 치밀한 전략으로 A급이 B급을 흉내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기덕의 피에타 역시 세계가 인정하는 A급 감독이 A급 배우들을 통하여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B급영화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가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과 잔혹한 현실을 다루면서 9시 뉴스가 더 잔인하지 않느냐는 항변으로 일관하면서 사회나 관객과의 소통을 거부한 면이 없지 않고, 영화계 내부에서도 끊임없는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스스로 B급영화의 울타리에 갇히기를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런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싸이의 ‘강남스타일’나 김기덕의 ‘피에타’를 단순한 B급 문화로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강남스타일은 싸이 스스로가 소수에 의한, 소수가 즐기는 성격이 강했던 기존의 음악에 B급 문화에 필수적인 중독성을 찾아내 이를 IT기술과 결합시킴으로써 대중적 흡인력을 극대화시키는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B급 문화가 언어와 사회적 맥락 없이도 전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소수에 의한, 소수가 즐기는 성격의 중독성을 더 많이 채색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발상과 소재를 채택함으로써 상류층 문화에 저항하는 자신만의 자존심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아마도 김기덕 감독이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문화창조자는 백남준이 아닐까 싶다.
무대 위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때려 부수거나 넥타이를 자르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던 백남준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행을 일삼는 예술인' 정도로 치부됐고, 제대로 된 예술이 아니라는 평가도 나왔다. 백남준이 창시한 비디오아트가 B급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렇지만 A급으로 편입되면서 지금은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백남준과 비슷한 또 다른 예로 팝 아트를 예술로 승화시킨 앤디워홀이 있는데, 역시 김기덕 감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대중들의 포용력은 더 커질 것이며, A급과 B급의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질 것이고, 비주류 문화가 주류 문화로 편입되는 현상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백남준까지는 벤치마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앤디 워홀까지 벤치마킹할 수는 없어 보인다. 반대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넘어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보여준 것과 같은 시대적 흐름까지도 충분히 접근했다고 생각된다. B급문화에 장착된 A급의 문화전파 전략이 하나의 신드롬이 되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다.
B급 문화에 장착한 A급 전략
지금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가히 신드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B급이라 부르고, 또 남들도 그렇게 인정했던 가수 싸이가, 그의 노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인 B급 문화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강남스타일은 9월 14일 처음으로 빌보드 차트 64위에 진입한 여세를 몰아 1주일 만에 11위에 오르더니 다시 1주일 만에 2위까지 수직상승했다.
그로부터 4주째 2위에 머무르면서 빌보드 차트의 난공불락을 잘 보여주기도 했지만 싸이 이전에 한국 가수들의 빌보드 차트 도전사에 비추어 볼 때, 빌보드 차트의 명불허전을 생각해볼 때 그 성과가 얼마나 기록적인지는 말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강남스타일은 빌 보드 차트 4주 연속 2위라는 숨고르기를 하면서도 10월 1일 영국의 공식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영국 차트에서 3위로 내려앉은 상태여서 영미 공식차트 동시석권이라는 대기록은 어렵게 됐지만 영미 양국의 공식차트를 모두 차지하는 또 하나의 대기록 달성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한 상태라 하겠다.
한편, 지난 10월 20일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게재 98일 만에 5억뷰를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22일 오전 10시 현재 약 5억 2500만 건을 기록하면서 뮤직비디오 조회수에서 역대 3위에 올랐다. ‘강남 스타일’을 앞선 뮤직 비디오는 현재 약 7억 9000만 건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캐나다 출신 팝스타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의 '베이비(Baby)'와 약 6억 1000만 건으로 2위에 올라있는 라틴 팝스타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의 '온 더 플로어(On The Floor)'뿐이다. 이 밖에도 강남스타일은 9월말 미국, 영국 등 41개국의 아이튠즈 차트 1위를 기록했고 2~5위를 기록한 19개국까지 60개국의 음원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런 모든 기록들이 한국 최초의 기록이며 또한 모두가 현재 진행형이다.
강남스타일 신드롬은 지금 한국 문화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B급 문화 전성시대의 한 단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B급 문화 전성시대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장악한 음악계뿐만 아니라 영화계에도 마찬가지로 도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의 영화를 스스로 B급 영화라고 하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으며, 또 다른 B급 소재를 다룬 영화 '도둑들'은 1000만 관객을 끌어 모으며 한국영화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다.
대중음악계에서는 ‘강남스타일 신드롬’과 함께 개그맨들이 주도하는 ‘개가수 신드롬’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개가수’란 얼핏 욕처럼 들리지만 개그맨과 가수의 합성어로 가수같이 노래하는 개그맨이라는 뜻일 뿐이다. 개그맨 유세윤과 뮤지가 결성한 ‘UV’, KBS '개그콘서트'의 신보라·박성광·정태호로 구성된 ‘용감한 녀석들’,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이적이 결성했던 ‘처진 달팽이’, 정형돈과 래퍼 데프콘이 만든 ‘형돈이와 대준이’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정통음악이라 부르기 힘든 이들 개가수들의 노래가 음원차트 상위권을 장악하는 현상에서 B급문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사실 노래하는 개그맨 가수들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개가수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요새 개가수들은 단순히 인지도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존 노래 가사가 가진 통속성이나 상투성을 뒤집으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과거 탈렌트나 영화배우들이 대중음악과 뮤지컬 분야에 진출하던 트렌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퓨전 스타일이 아닌가 하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장르의 B급 문화 현상으로는 맥락 없이 전개되는 가벼운 웹툰이 수천만 회 이상 젊은이 눈을 사로잡는 ‘병맛만화’를 들 수 있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병맛만화’는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풍자와 조롱의 내용을 담은 만화라는 뜻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생겨난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인 ‘병맛’은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로, 원래 비주류, 저급 문화 콘텐츠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무언가가 수준 이하일 때 '병맛 같은 정치인' '이런 병맛 같은 드라마'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처음엔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꼴 때 쓰였던 ‘병맛’이 요즘엔 거꾸로 기발하고 창의적인 행동이나 표현을 칭찬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맥락도 뜻도 없지만 재밌으면 그만이다. 잘 만들어진 완벽함보다 무언가 조악하고 결핍된 어설픈 그림과 영상이 소위 '찌질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에 '병맛 같다'고 칭찬한다. 주부들이 욕을 하면서 막장 드라마를 보듯, ‘병맛’이라고 지적하면서 즐기는 식이다.
이상에서 국내 문화계에 흐르고 있는 B급 문화 현상에 대해 살펴보았고 그런 관점에서 강남스타일이 국내의 B급 문화 유행에 힘입어 대히트를 친 것은 이해할 수 있겠는데, 세계적인 흐름을 만들어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내의 B급문화가 이제야 생성되기 시작한 것일 뿐 세계적으로 B급 문화는 이미 오래 전에 형성되어 하나의 트렌드가 돼 버렸다는 가설이 검증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에 앞서 B급문화를 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저예산이나 범죄, 포르노 영화, 인디음악, 무협지, 판타지소설, 웹툰 등을 정서상 B급이라 부르면 사람들이 대체로 동의할 것 같다. 하지만 B급에 대한 해석이 쉽지 않고 학술적으로 내려진 정의도 없기 때문에 역사적인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동시상영 영화가 유행했는데, A급 할리우드 영화의 끼워팔기용이 B급 영화(B-Movies)였다. 한물간 스타나 무명배우를 써서 제작비가 싸면서도, 소재와 형식에서는 대중의 즉흥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영화였다. 1930년대 등장한 '키치(kitch)' 문화도 B급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키치란 '싸게 만들다'라는 뜻의 독일어 동사(verk itschen)에서 유래된 말로 초점은 역시 싼 제작비였지만, 이후 통속 취미에 영합하는 저속한 예술작품으로 확대 해석하고 가벼움, 유치함, 촌스러움 등이 키치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키치 문화는 일부러 천박한 방법을 동원해 엄숙한 기성예술을 조롱하는 대안문화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에는 B급 판정기준이 돈에서 내용으로 바뀌면서 B급 영화에 대한 개념도 바뀌고 있다. 마케팅 비용을 포함해 145억원의 거액을 쏟아 부은 영화 '도둑들'은 저예산이라는 잣대가 아니라 가벼운 도둑 얘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B급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둑들’은 한국영화사상 최초의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 수상작인 피에타가 80만도 못 되는 관객을 겨우 동원할 때 1200만을 넘어 관객수에서 국내영화 역대 1위 기록을 세웠다.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두 영화 모두 어떤 면에서는 B급영화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 착안, 국내용 B급영화와 국제용 B급영화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또 다른 기준으로 철학적인 시각을 들 수 있는데, 철학적 시각에서 B급은 주류 문화에 대한 반감과 새 영역으로의 도전으로 풀이된다. 196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히피 문화'나 일본의 오타쿠(御宅) 문화와 같이 고상한 주류 문화가 채울 수 없는 대중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류계층의 문화적 취향도 B급문화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실린 신조어 '차브(Chav)'는 집시어 '차비(Chavi·로마어로 어린이를 의미)'에서 유래한 말로, 하류계층의 문화적 취향을 의미하는 촌스러움의 상징으로 통했다. 이렇게 차용된 차브라는 용어가 세련미와 동떨어진 악취향의 청소년 문화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는데, 번쩍이는 싸구려 금붙이를 주렁주렁 달고 짝퉁 브랜드의 야구모자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젊은이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차브 스타일이다. 그러나 현재는 젊은이의 고유한 문화적 취향을 지칭하는 신조어가 되었다.
과거 B급문화는 소수만의 비주류 문화로 치부됐지만 최근 들어 최상위층 아래의 대중문화로 자리 잡는 추세를 보이면서 B급과 A급 문화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과거 어둡고 칙칙하고 냉소적이던 B급 문화에 즐거움과 자부심이라는 새로운 코드가 첨가됨으로써 새로운 A급문화가 창조되고 있는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저급한 가사와 영상이 웃음거리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음악적 완성도만큼은 A급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았으며, 세계인의 기본 정서를 날카롭게 포착하여 SNS를 통해 대중을 포섭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기획사는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YG엔터테인먼트였으며, 작곡가 겸 가수인 싸이 역시 B급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탄탄한 조건을 갖췄다. 그런 점에서 치밀한 전략으로 A급이 B급을 흉내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기덕의 피에타 역시 세계가 인정하는 A급 감독이 A급 배우들을 통하여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B급영화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가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과 잔혹한 현실을 다루면서 9시 뉴스가 더 잔인하지 않느냐는 항변으로 일관하면서 사회나 관객과의 소통을 거부한 면이 없지 않고, 영화계 내부에서도 끊임없는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스스로 B급영화의 울타리에 갇히기를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런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싸이의 ‘강남스타일’나 김기덕의 ‘피에타’를 단순한 B급 문화로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강남스타일은 싸이 스스로가 소수에 의한, 소수가 즐기는 성격이 강했던 기존의 음악에 B급 문화에 필수적인 중독성을 찾아내 이를 IT기술과 결합시킴으로써 대중적 흡인력을 극대화시키는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B급 문화가 언어와 사회적 맥락 없이도 전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소수에 의한, 소수가 즐기는 성격의 중독성을 더 많이 채색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발상과 소재를 채택함으로써 상류층 문화에 저항하는 자신만의 자존심을 선택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아마도 김기덕 감독이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문화창조자는 백남준이 아닐까 싶다.
무대 위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때려 부수거나 넥타이를 자르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던 백남준은 사람들 사이에서 '기행을 일삼는 예술인' 정도로 치부됐고, 제대로 된 예술이 아니라는 평가도 나왔다. 백남준이 창시한 비디오아트가 B급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렇지만 A급으로 편입되면서 지금은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백남준과 비슷한 또 다른 예로 팝 아트를 예술로 승화시킨 앤디워홀이 있는데, 역시 김기덕 감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대중들의 포용력은 더 커질 것이며, A급과 B급의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질 것이고, 비주류 문화가 주류 문화로 편입되는 현상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백남준까지는 벤치마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앤디 워홀까지 벤치마킹할 수는 없어 보인다. 반대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넘어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보여준 것과 같은 시대적 흐름까지도 충분히 접근했다고 생각된다. B급문화에 장착된 A급의 문화전파 전략이 하나의 신드롬이 되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다.
런던 올림픽을 통해 본 K-컬처의 명암
런던 올림픽을 통해 본 K-컬처의 명암
올림픽 성적은 기대 이상이라는 데 문화 올림픽 성적은?
얼마 전에 끝난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를 넘어 문화 전반에서 전 세계인이 축제를 펼친 그야말로 문화올림픽이었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주최국인 영국 정부와 영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일찌감치 ‘2012 런던문화올림픽’을 선포하고 자국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총망라하는 축제 플랜을 내놓았다.
올림픽 기간 전후의 문화축제는 자칫 메달경쟁에만 매달려 황폐하기 쉬운 올림픽에 많은 풍요로움이 가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올림픽 참가국들로 하여금 스포츠 부문의 메달 경쟁 못지않은 문화 경연을 통해 올림픽의 문화제전으로서의 초심을 되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난 런던 올림픽은 앞으로 올림픽의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런던 올림픽 취지에 충실히 함으로써 세계10위권 유지라는 당초 목표를 초과달성한 것 이상의 개가를 올렸다고 생각된다. 올림픽에 맞춰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이벤트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런던 올림픽의 경우는 달랐다. 두세 개 행사나 갈라 콘서트 형태로 선보인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에다 주요공연이나 전시가 올림픽 기간인 7월 말에 집중되었고, 다수의 공연, 전시가 유럽 최대 규모의 복합 예술 공간이며 연간 2,0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다는 런던 명물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열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주영한국문화원은 이미 1년 전부터 2012년을 영국 내 한류문화 확산 원년의 해로 정하고, 코리아하우스를 오픈하여 런던올림픽을 한국 문화를 확산하는 계기로 삼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올림픽 선수단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태릉선수촌에서 땀을 흘릴 때 문화올림픽 기획단 역시 머리에 땀을 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올림픽 선수단이 세계5위라는 기대 이상의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개선했듯 문화올림픽단도 최고의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올림픽 기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는 런던 시내 곳곳에서 '오색찬란, All Eyes on Korea: Shining Bright, Korea through Colours'라는 이름의 문화축제를 100일간 개최함으로써 개최국인 영국과 올림픽에 참가한 세계 각국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힘을 쏟았다. 런던 현지의 세계적 예술기관인 사우스뱅크센터(South Bank Centre)와 함께 미술, 음악,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행한 문화축제는 스포츠 강국뿐 아니라 ‘문화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면모를, 그 오색찬란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1951년 설립된 음악, 무용, 시각예술, 공연 등의 예술 장르를 포괄해 다루는 유럽 최대의 예술 복합기관인 사우스뱅크센터의 여러 부대시설을 이용하여 영화와 한식뿐 아니라 미술과 문학, 국악 등의 전시와 공연을 펼침으로써 한국에 K팝이나 드라마 외에도 세계인과 즐길 수 있는 한국문화가 있고, 더욱이 전통과 현대가 한데 어울려 법고창신의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성을 강조한 기획이 돋보였다. 드라마나 K팝으로만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경기장 밖에서 펼쳐진 문화올림픽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류의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오색찬란, 한국의 색을 입힌다(All Eyes on Korea)’는 당초 취지가 그대로 살아났다는 평이다.
특히 미술 분야에서는 올림픽 개최 훨씬 전부터 세계적인 작가 이불의 작품전시를 했던 사우스뱅크센터가 초청한 최정화, 김범 등의 작가들이 돋보였는데, 사실상 처음 축제의 문을 연 것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작가였다. 최 작가의 야외조형물전 'Time After Time'은 한국적인 소재를 모티브로 한 팝아트 작품을 헤이워드갤러리 야외 외벽에 설치함으로써 한국 팝아트의 일면을 잘 보여주었으며, 역시 설치미술가인 김범 작가의 'The School of Inversion'전은 회화, 드로잉, 오브제 등 폭넓은 매체를 이용해 교실이라는 친숙한 공간을 새롭게 보도록 했다.
사우스뱅크센터의 초대전과는 별도로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신미경 작가는 런던 옥스퍼드가의 카벤디쉬 광장에 좌대만 남아 있던 18세기 컴버랜드 공작의 기마상을 부활시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Written in Soap'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카벤디쉬 광장에 세워졌다가 지금은 좌대만 남은 기마상을 비누로 재연한 설치작품은 앞으로 약 2년 동안 자연 풍화되면서 ‘시간’과 ‘역사’의 개념을 표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주영한국문화원 전시실에서 열린 '꼭두, 또 다른 길의 동반자'는 상여, 꼭두 인물상, 봉황 등 100여점의 전통 조형물들로 한국적인 익살과 색채감을 전했고,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서는 단청, 조각보를 활용한 이상봉의 패션쇼와 요리사 레오 강과 김소희의 한식 시연ㆍ만찬회가 같이 열렸으며, 해롯백화점에서 열린 한국 브랜드 특별전 기간 동안에는 십장생도, 의궤행렬도, 신윤복 김홍도 그림 등을 보여주는 8폭의 55인치 LED TV 병풍이 전시되었다.
미술 분야 외에도 클래식과 국악공연 역시 사우스뱅크센터 내외에서 동시에 벌어져 축제의 흥을 돋웠는데,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라이프 세겔스탐이 협연을 펼쳤으며, 타악기와 관악기로 구성된 국악그룹 ‘공명’과 또 다른 음악단체 ‘바람곶’의 공연도 열렸는데, ‘바람곶’은 <한국음악앙상블>이라는 제목으로 산조, 시나위, 굿 등 국악 및 전통문화 공연을 창조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전통 음악에 무용, 영상 등을 접합한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해온 한국음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은 <이면공작>이라는 제목아래 한국 가면극을 재해석한 공연을 선보였고, 이자람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사천의 선인’을 21세기 한국적 상황에 맞춰 판소리와 뮤지컬 형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창작 판소리 <사천가>를 공연했다.
이밖에도 무성영화를 포함한 한국 영화도 런던 시내 몇 개 극장에서 올해 말까지 상영되고 있으며, 주영한국문화원에서는 ‘글로벌 코리아(Global Korea)’라는 주제로 한국미술, 공연, 음식, 문학 등에 관한 현지 전문가들의 초청 강연을, 그리고 현지인 서포터스의 플래시몹도 마련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주요 행사들을 사우스뱅크센터의 기존 프로그램에 맞춰 마련해 비용 대비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처럼 미술을 비롯한 음악, 패션, 음식, 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K-컬처를 아낌없이 보여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류 확산에 크게 기여한 K-팝 공연이 오색찬란의 핵심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K-팝 공연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6월 23일 오후 올림픽을 34일 앞두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런던 밀레니엄 파크에서는 세계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K팝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생생하게 선보이기 위한 종합 문화이벤트진 'MBC 코리안 컬처 페스티벌 인 런던 2012'이 개최되기도 했다.
한국의 얼·흥·멋을 주제로 펼쳐진 이날 페스티벌은 오프닝 무대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상영한 후 타악그룹 '야단법석'의 '다이내믹 코리아' 대북 공연이 울려 퍼졌고, 사물놀이와 퓨전국악, K팝 커버댄스 유럽챔피언팀, 그룹 '포미닛'의 무대가 이어졌으며, 한복디자이너 박술녀씨는 궁중의상 패션쇼로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K팝도 아쉬운 대로 런던 올림픽 현장을 밟기는 했다. 하지만 연초(지난 1월 3일) 발표된 해당사의 2012년도 사업계획에 따르면 이날 페스티벌은 K팝을 끼워넣기 하는 방식의 페스티벌이 아니라 K팝 중심의 페스티발이었다. 당시 MBC는 구체적으로 형식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콘서트를 펼치는 그간의 K팝 페스티벌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왜 6개월 뒤의 현장에서는 K팝 팀이 한 둘 끼어든 페스티발로 전락했으며, 그나마 일개 방송사의 프로그램 말고 ‘오색찬란’ 본 프로그램에서 K팝이 철저히 배제된 것일까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런던 올림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7월 9일 당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300여명의 K팝 팬들이 투애니원과 빅뱅 등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춤과 율동을 따라하는 플래시몹(일정 시간과 장소를 정해 똑같은 행동을 벌이는 것) 퍼포먼스를 벌여 화제가 된 바 있었다. 그에 앞선 앞서 7월 6일에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와 할리우드에서 K팝 팬 170여명이 'SM타운' 공연을 열어달라며 플래시몹을 벌였다는 기록과 함께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렇게 대서양을 오가며 벌어진 한류 스타들의 공연을 촉구하는 깜짝 시위가 자연스런 한류열풍이 아니라 기획사끼리의 라이벌 대결처럼 펼쳐지는 양상에 국내 언론들이 과민하게 반응한 결과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비판의 최고조는 바로 런던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 언론 K팝 띄우기 너무 심한 나머지 일종의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로밖엔 보이지 않는다는 현지 교포사회의 비판이 나온 게 시작이었다. 당시 런던의 플래시몹도 준비과정이나 실행이 현지 팬들의 자발적 모임이 아니라 국가 기관인 현지 한국문화원이 과도하게 개입했고, 한국 언론들 역시 비뚤어진 애국심 즉,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유럽에서의 신한류 확산' 담론에 무책임하게 일조했다는 것이다. 비판에 따르면 행사 전 언론에 배포한 보도 자료만 보더라도 행사 일정, 이동 동선, 행사 진행 방식, 심지어 기자 회견 대상자와 참석자 등 모든 것을 문화원에서 미리 알고 조율했음이 쉽게 파악됐으며, 실제 현장에서는 행사 참여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한국 언론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가 예상보다 현격히 적은 참여자들에 실망하는 목소리까지 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에 소개된 기사내용은 과장일색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한국에서 직접 방문했다는 YG측도 오히려 기자에게 영국에서의 한류에 대한 정확한 현실을 물으며 혼란스러워 했다고 한다. 결국, 영국 혹은 유럽에서의 신한류는 한국 문화원과 일부 한국 언론에 의해 지나치게 속성으로 '재배'된 것으로 여겨지면서 영국 공영방송인 BBC 등 일부 유럽 언론들도 K팝을 두고 한국의 글로벌 전략상품이라 의심하며 부정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바로 1년 전 그런 사건이 K팝 한류에 역류를 일으켰던 것이며, 1년 후 K컬처에 K팝이 빠진 이유일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대중문화의 홍보도 해외 한국 문화원의 역할임이 분명하지만 지원은 뒷전인 채 현지 한류의 성공에 대한 엄청난 성과와 자긍심을 강조하는 방식의 한류를 기치로 내세운 과시성 정책 홍보가 문제였던 셈이다. 특정 거대 연예 기획사와 지나치게 공조하여 성과주의의 K-POP 홍보에 치중하는 것이 해외 주재 국가 기관으로서의 적절한 역할인지도 생각해 볼 대목이다. 그렇게 말만 앞세우다가 정작 발로 뛸 때는 뒷전으로 밀려 버린 것이 바로 런던 문화올림픽에서의 K팝의 신세였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당연히 땄어야 할 메달이라는 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정부나 각 체육단체로부터 특별한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세계적인 성과를 올린 펜싱 선수단과 역시 변변한 지원이 없는 상황 속에서 개인적으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해서 메달을 거머쥔 비인기종목의 여러 선수들이 대한민국을 5위로 올려놓은 영웅들이다. 한정된 자원 등을 고려할 때 선택적 지원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치더라도 1일 여삼추와도 같은 1초에 눈물을 흘려 그것만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펜싱선수, 심판이 갑자기 청기백기 놀이를 하는 바람에 역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유도선수와 아무리 테입을 돌리고 또 돌려도 알 수 없는 부정출발에 역시 눈물을 삼켜야 했던 수영선수, 그리고 욱일승천기는 괜찮은데 독도 그려진 한반도 지도는 정치적이라며 메달도 받지 못한 축구선수에 이르기까지, 아랫것들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되는 동안 과연 높으신 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선수들은 잘 하는데 그 반에 반도 못 따라가는 체육행정의 낙후성이나 문화올림픽에서 천시당한 K팝이나 오십보 백보 아닌가 싶다. K팝은 사실 문화 행정이나 문화 예산 항목 중 가장 소외된 분야다. 관련 진흥기구도, 발전 기금조차 없음에도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대한민국 빅 브랜드가 된 K팝이 올림픽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유감이다. 그런 점에서 펜싱이나 핸드볼 같이 참여는 가능했던 스포츠 비인기종목들은 그나마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계 각국이 문화 전쟁에 올인하는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인 K-팝 지원 정책이 절실한 타이밍에 문화부와 영국문화원이 1년 전에 그 과잉친절의 반만이라도 보여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와 관련해서도, 또한 문화와 관련해서도 정부의 지원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번 런던 올림픽을 사상 최고의 문화올림픽으로 만들어낸 영국의 문화지원정책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셰익스피어와 비틀스, 해리 포터의 나라인 영국은 문화대국이 아니라고 하면 섭섭하다 싶을 정도로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읽고 쓸 줄 아는 나라였다. 특히 난세에 오히려 강력한 문화 정책을 펼침으로써 국민 사기를 진작시키고 위기탈출의 원동력을 얻어낼 줄 아는 나라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영국 정부는 문화 진흥을 목적으로 영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신인 CEMA(Council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 the Arts)를 설치한다. 그리고 초대 회장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경제학자 J.M. 케인스를 선임했다. 나중에 영국문화예술위원회로 확대 개편된 CEMA는 영국이 전쟁, 산업화를 겪으면서 일찌감치 문화예술의 사회적 경제적 효과를 중시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으며, 케인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케인스가 이끄는 CEMA는 전후 영국의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분야 지원에 적극 노력했다. 팔 닿는 데까지 지원하되 정부의 간섭은 받지 않는 ‘팔길이(Arm’s Length) 모델’이란 비아냥을 들었지만, 사실 ‘간섭하지는 않으면서 조건 없는’ 영국식 문화 지원 모델이야말로 메세나 정책의 원류라 해도 좋을 정도였기 때문에 비아냥거림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영국이었기에 모처럼 자국이 개최한 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뭔가 부러운 나라다.
올림픽 성적은 기대 이상이라는 데 문화 올림픽 성적은?
얼마 전에 끝난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를 넘어 문화 전반에서 전 세계인이 축제를 펼친 그야말로 문화올림픽이었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주최국인 영국 정부와 영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일찌감치 ‘2012 런던문화올림픽’을 선포하고 자국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총망라하는 축제 플랜을 내놓았다.
올림픽 기간 전후의 문화축제는 자칫 메달경쟁에만 매달려 황폐하기 쉬운 올림픽에 많은 풍요로움이 가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올림픽 참가국들로 하여금 스포츠 부문의 메달 경쟁 못지않은 문화 경연을 통해 올림픽의 문화제전으로서의 초심을 되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난 런던 올림픽은 앞으로 올림픽의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런던 올림픽 취지에 충실히 함으로써 세계10위권 유지라는 당초 목표를 초과달성한 것 이상의 개가를 올렸다고 생각된다. 올림픽에 맞춰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이벤트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런던 올림픽의 경우는 달랐다. 두세 개 행사나 갈라 콘서트 형태로 선보인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에다 주요공연이나 전시가 올림픽 기간인 7월 말에 집중되었고, 다수의 공연, 전시가 유럽 최대 규모의 복합 예술 공간이며 연간 2,0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다는 런던 명물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열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주영한국문화원은 이미 1년 전부터 2012년을 영국 내 한류문화 확산 원년의 해로 정하고, 코리아하우스를 오픈하여 런던올림픽을 한국 문화를 확산하는 계기로 삼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올림픽 선수단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태릉선수촌에서 땀을 흘릴 때 문화올림픽 기획단 역시 머리에 땀을 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올림픽 선수단이 세계5위라는 기대 이상의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개선했듯 문화올림픽단도 최고의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올림픽 기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는 런던 시내 곳곳에서 '오색찬란, All Eyes on Korea: Shining Bright, Korea through Colours'라는 이름의 문화축제를 100일간 개최함으로써 개최국인 영국과 올림픽에 참가한 세계 각국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힘을 쏟았다. 런던 현지의 세계적 예술기관인 사우스뱅크센터(South Bank Centre)와 함께 미술, 음악,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행한 문화축제는 스포츠 강국뿐 아니라 ‘문화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면모를, 그 오색찬란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1951년 설립된 음악, 무용, 시각예술, 공연 등의 예술 장르를 포괄해 다루는 유럽 최대의 예술 복합기관인 사우스뱅크센터의 여러 부대시설을 이용하여 영화와 한식뿐 아니라 미술과 문학, 국악 등의 전시와 공연을 펼침으로써 한국에 K팝이나 드라마 외에도 세계인과 즐길 수 있는 한국문화가 있고, 더욱이 전통과 현대가 한데 어울려 법고창신의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성을 강조한 기획이 돋보였다. 드라마나 K팝으로만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경기장 밖에서 펼쳐진 문화올림픽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류의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오색찬란, 한국의 색을 입힌다(All Eyes on Korea)’는 당초 취지가 그대로 살아났다는 평이다.
특히 미술 분야에서는 올림픽 개최 훨씬 전부터 세계적인 작가 이불의 작품전시를 했던 사우스뱅크센터가 초청한 최정화, 김범 등의 작가들이 돋보였는데, 사실상 처음 축제의 문을 연 것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작가였다. 최 작가의 야외조형물전 'Time After Time'은 한국적인 소재를 모티브로 한 팝아트 작품을 헤이워드갤러리 야외 외벽에 설치함으로써 한국 팝아트의 일면을 잘 보여주었으며, 역시 설치미술가인 김범 작가의 'The School of Inversion'전은 회화, 드로잉, 오브제 등 폭넓은 매체를 이용해 교실이라는 친숙한 공간을 새롭게 보도록 했다.
사우스뱅크센터의 초대전과는 별도로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신미경 작가는 런던 옥스퍼드가의 카벤디쉬 광장에 좌대만 남아 있던 18세기 컴버랜드 공작의 기마상을 부활시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Written in Soap'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카벤디쉬 광장에 세워졌다가 지금은 좌대만 남은 기마상을 비누로 재연한 설치작품은 앞으로 약 2년 동안 자연 풍화되면서 ‘시간’과 ‘역사’의 개념을 표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주영한국문화원 전시실에서 열린 '꼭두, 또 다른 길의 동반자'는 상여, 꼭두 인물상, 봉황 등 100여점의 전통 조형물들로 한국적인 익살과 색채감을 전했고,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서는 단청, 조각보를 활용한 이상봉의 패션쇼와 요리사 레오 강과 김소희의 한식 시연ㆍ만찬회가 같이 열렸으며, 해롯백화점에서 열린 한국 브랜드 특별전 기간 동안에는 십장생도, 의궤행렬도, 신윤복 김홍도 그림 등을 보여주는 8폭의 55인치 LED TV 병풍이 전시되었다.
미술 분야 외에도 클래식과 국악공연 역시 사우스뱅크센터 내외에서 동시에 벌어져 축제의 흥을 돋웠는데,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라이프 세겔스탐이 협연을 펼쳤으며, 타악기와 관악기로 구성된 국악그룹 ‘공명’과 또 다른 음악단체 ‘바람곶’의 공연도 열렸는데, ‘바람곶’은 <한국음악앙상블>이라는 제목으로 산조, 시나위, 굿 등 국악 및 전통문화 공연을 창조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전통 음악에 무용, 영상 등을 접합한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해온 한국음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은 <이면공작>이라는 제목아래 한국 가면극을 재해석한 공연을 선보였고, 이자람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사천의 선인’을 21세기 한국적 상황에 맞춰 판소리와 뮤지컬 형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창작 판소리 <사천가>를 공연했다.
이밖에도 무성영화를 포함한 한국 영화도 런던 시내 몇 개 극장에서 올해 말까지 상영되고 있으며, 주영한국문화원에서는 ‘글로벌 코리아(Global Korea)’라는 주제로 한국미술, 공연, 음식, 문학 등에 관한 현지 전문가들의 초청 강연을, 그리고 현지인 서포터스의 플래시몹도 마련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주요 행사들을 사우스뱅크센터의 기존 프로그램에 맞춰 마련해 비용 대비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처럼 미술을 비롯한 음악, 패션, 음식, 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K-컬처를 아낌없이 보여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류 확산에 크게 기여한 K-팝 공연이 오색찬란의 핵심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K-팝 공연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6월 23일 오후 올림픽을 34일 앞두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런던 밀레니엄 파크에서는 세계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K팝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생생하게 선보이기 위한 종합 문화이벤트진 'MBC 코리안 컬처 페스티벌 인 런던 2012'이 개최되기도 했다.
한국의 얼·흥·멋을 주제로 펼쳐진 이날 페스티벌은 오프닝 무대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상영한 후 타악그룹 '야단법석'의 '다이내믹 코리아' 대북 공연이 울려 퍼졌고, 사물놀이와 퓨전국악, K팝 커버댄스 유럽챔피언팀, 그룹 '포미닛'의 무대가 이어졌으며, 한복디자이너 박술녀씨는 궁중의상 패션쇼로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K팝도 아쉬운 대로 런던 올림픽 현장을 밟기는 했다. 하지만 연초(지난 1월 3일) 발표된 해당사의 2012년도 사업계획에 따르면 이날 페스티벌은 K팝을 끼워넣기 하는 방식의 페스티벌이 아니라 K팝 중심의 페스티발이었다. 당시 MBC는 구체적으로 형식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콘서트를 펼치는 그간의 K팝 페스티벌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왜 6개월 뒤의 현장에서는 K팝 팀이 한 둘 끼어든 페스티발로 전락했으며, 그나마 일개 방송사의 프로그램 말고 ‘오색찬란’ 본 프로그램에서 K팝이 철저히 배제된 것일까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런던 올림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7월 9일 당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300여명의 K팝 팬들이 투애니원과 빅뱅 등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춤과 율동을 따라하는 플래시몹(일정 시간과 장소를 정해 똑같은 행동을 벌이는 것) 퍼포먼스를 벌여 화제가 된 바 있었다. 그에 앞선 앞서 7월 6일에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와 할리우드에서 K팝 팬 170여명이 'SM타운' 공연을 열어달라며 플래시몹을 벌였다는 기록과 함께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렇게 대서양을 오가며 벌어진 한류 스타들의 공연을 촉구하는 깜짝 시위가 자연스런 한류열풍이 아니라 기획사끼리의 라이벌 대결처럼 펼쳐지는 양상에 국내 언론들이 과민하게 반응한 결과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비판의 최고조는 바로 런던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 언론 K팝 띄우기 너무 심한 나머지 일종의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로밖엔 보이지 않는다는 현지 교포사회의 비판이 나온 게 시작이었다. 당시 런던의 플래시몹도 준비과정이나 실행이 현지 팬들의 자발적 모임이 아니라 국가 기관인 현지 한국문화원이 과도하게 개입했고, 한국 언론들 역시 비뚤어진 애국심 즉,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유럽에서의 신한류 확산' 담론에 무책임하게 일조했다는 것이다. 비판에 따르면 행사 전 언론에 배포한 보도 자료만 보더라도 행사 일정, 이동 동선, 행사 진행 방식, 심지어 기자 회견 대상자와 참석자 등 모든 것을 문화원에서 미리 알고 조율했음이 쉽게 파악됐으며, 실제 현장에서는 행사 참여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한국 언론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가 예상보다 현격히 적은 참여자들에 실망하는 목소리까지 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에 소개된 기사내용은 과장일색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한국에서 직접 방문했다는 YG측도 오히려 기자에게 영국에서의 한류에 대한 정확한 현실을 물으며 혼란스러워 했다고 한다. 결국, 영국 혹은 유럽에서의 신한류는 한국 문화원과 일부 한국 언론에 의해 지나치게 속성으로 '재배'된 것으로 여겨지면서 영국 공영방송인 BBC 등 일부 유럽 언론들도 K팝을 두고 한국의 글로벌 전략상품이라 의심하며 부정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바로 1년 전 그런 사건이 K팝 한류에 역류를 일으켰던 것이며, 1년 후 K컬처에 K팝이 빠진 이유일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대중문화의 홍보도 해외 한국 문화원의 역할임이 분명하지만 지원은 뒷전인 채 현지 한류의 성공에 대한 엄청난 성과와 자긍심을 강조하는 방식의 한류를 기치로 내세운 과시성 정책 홍보가 문제였던 셈이다. 특정 거대 연예 기획사와 지나치게 공조하여 성과주의의 K-POP 홍보에 치중하는 것이 해외 주재 국가 기관으로서의 적절한 역할인지도 생각해 볼 대목이다. 그렇게 말만 앞세우다가 정작 발로 뛸 때는 뒷전으로 밀려 버린 것이 바로 런던 문화올림픽에서의 K팝의 신세였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당연히 땄어야 할 메달이라는 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정부나 각 체육단체로부터 특별한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세계적인 성과를 올린 펜싱 선수단과 역시 변변한 지원이 없는 상황 속에서 개인적으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해서 메달을 거머쥔 비인기종목의 여러 선수들이 대한민국을 5위로 올려놓은 영웅들이다. 한정된 자원 등을 고려할 때 선택적 지원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치더라도 1일 여삼추와도 같은 1초에 눈물을 흘려 그것만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펜싱선수, 심판이 갑자기 청기백기 놀이를 하는 바람에 역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유도선수와 아무리 테입을 돌리고 또 돌려도 알 수 없는 부정출발에 역시 눈물을 삼켜야 했던 수영선수, 그리고 욱일승천기는 괜찮은데 독도 그려진 한반도 지도는 정치적이라며 메달도 받지 못한 축구선수에 이르기까지, 아랫것들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되는 동안 과연 높으신 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선수들은 잘 하는데 그 반에 반도 못 따라가는 체육행정의 낙후성이나 문화올림픽에서 천시당한 K팝이나 오십보 백보 아닌가 싶다. K팝은 사실 문화 행정이나 문화 예산 항목 중 가장 소외된 분야다. 관련 진흥기구도, 발전 기금조차 없음에도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대한민국 빅 브랜드가 된 K팝이 올림픽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유감이다. 그런 점에서 펜싱이나 핸드볼 같이 참여는 가능했던 스포츠 비인기종목들은 그나마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계 각국이 문화 전쟁에 올인하는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인 K-팝 지원 정책이 절실한 타이밍에 문화부와 영국문화원이 1년 전에 그 과잉친절의 반만이라도 보여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와 관련해서도, 또한 문화와 관련해서도 정부의 지원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번 런던 올림픽을 사상 최고의 문화올림픽으로 만들어낸 영국의 문화지원정책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셰익스피어와 비틀스, 해리 포터의 나라인 영국은 문화대국이 아니라고 하면 섭섭하다 싶을 정도로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읽고 쓸 줄 아는 나라였다. 특히 난세에 오히려 강력한 문화 정책을 펼침으로써 국민 사기를 진작시키고 위기탈출의 원동력을 얻어낼 줄 아는 나라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영국 정부는 문화 진흥을 목적으로 영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신인 CEMA(Council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 the Arts)를 설치한다. 그리고 초대 회장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경제학자 J.M. 케인스를 선임했다. 나중에 영국문화예술위원회로 확대 개편된 CEMA는 영국이 전쟁, 산업화를 겪으면서 일찌감치 문화예술의 사회적 경제적 효과를 중시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으며, 케인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케인스가 이끄는 CEMA는 전후 영국의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분야 지원에 적극 노력했다. 팔 닿는 데까지 지원하되 정부의 간섭은 받지 않는 ‘팔길이(Arm’s Length) 모델’이란 비아냥을 들었지만, 사실 ‘간섭하지는 않으면서 조건 없는’ 영국식 문화 지원 모델이야말로 메세나 정책의 원류라 해도 좋을 정도였기 때문에 비아냥거림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영국이었기에 모처럼 자국이 개최한 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뭔가 부러운 나라다.
Friday, September 14, 2012
‘한류3.0’의 핵심은 유럽판 K컬처 아닐까…
티에리 로로가 본 K컬처 쇼크의 가능성
‘한류3.0’의 핵심은 유럽판 K컬처 아닐까…
글 최용일
유럽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K팝 열풍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5월, 또 다른 K컬처 열풍이 유럽을 강타했다. 벨기에의 불어권 공영방송인 RTBF가 ‘한국 음악인의 불가사의’라는 제목의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두 차례나 방영한 것 자체도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5월 19일과 27일이 세계 최고 권위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개막일과 폐막일이었다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울러 네덜란드어권 공영방송 VRT도 조만간 이 프로그램을 방영할 예정이며 유럽 전역을 상대로 하는 예술 채널 아르테의 방영도 추진되고 있다니 어느 선까지를 이례적이라고 해야 할 지… 이른바 ‘K컬처 쇼크’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었다. 영화적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유럽에서 한국 음악인들의 활동과 성공의 이면에 대한 현지인들의 높은 관심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한국 음악인들의 성공의 비결을 마침내 알아냈습니다"라는 멘트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만큼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에 대해 감독을 맡은 RTBF의 음악 고문 티에리 로로(54) 씨는 "한국 음악인들이 마치 산사태처럼 몰려 와 유럽 음악계를 휩쓸자 많은 사람이 이를 불가사의라고 부르며 그 배경을 물어 왔고 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불과 지난 10여 년 사이에 유럽에서 한국의 음악인들에 의해 이뤄진 ‘경이로운 변화’의 배경을 캐고 화면에 담기 위해 지난 1년 간 한국과 벨기에는 물론 한국 음악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학지 독일 등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 3대 콩쿠르의 하나인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촬영ㆍ방영을 주도해온 로로 고문은 오는 8월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지난 2010년 벨기에의 세계적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의 삶과 음악을 다룬 영화로 '제천 국제음악영화제'에 초청받은 지 2년 만이다.
로로 고문에 따르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경우 15년 전만 해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인 참가자들이 근년 들어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1차 예선 진출자 중 23.7%를 차지한 한국인 가운데 4명이 결선에 올랐다. 2010년에는 성악부문 1차 진출자의 29%를 차지한 한국인 중 5명이 결선에 진출했는데, 한 나라의 출전자가 결선 진출자 12명 중 5명을 차지한 것은 대회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당시 소프라노 홍혜란이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으며, 작곡 부문에선 한국인이 2회 연속 우승했다.
퀸 엘리자베스 뿐만 아니다. 2011년 7월1일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남녀 성악 부문에서도 한국인이 각각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피아노 부문에서 2, 3위, 바이올린 부문에서 3위에 오르는 등 5명이 한꺼번에 입상했다. 이에 로로 고문은 매년 또는 2-3년마다 열리는 세계 주요 국제 클래식 경연대회(콩쿠르) 50여 개의 지난 수십 년 간 예선과 결선 진출자, 분야별 우승자의 국적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95년 이전엔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결선에 진출한 한국인은 극소수였지만, 최근 들어 한국 음악인들의 성과는 크고 작은 콩쿠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98년부터 16년 동안 50여 개의 세계 주요 국제 클래식 경연대회의 결선에 진출한 한국인이 모두 378명이었고, 이 가운데 60명이 1등을 차지하며 다른 나라들을 압도했다(그림 참조).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인이 결선 진출 또는 우승한 분야 중 성악, 피아노, 바이올린 3부문이 90%를 차지한다는 재미있는 내용도 있다.
최근에는 또 한국의 젊은 클래식 음악가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나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 클래식 부문을 휩쓴 데 이어서 발레 무용수들이 이탈리아 시칠리아 콩쿠르를 휩쓰는 등 한국 예술인의 활약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 특별히 K컬처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K컬처와 더불어 한국 문화가 주는 파급력을 상징하는 ‘K컬처 쇼크(K-culture Shock)’라는 표현이 등장한지도 오래다. 이미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해외 진출은 이미 오래된 얘기고(이를 ‘한류1.0’이라고들 한다), K팝 열풍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 전역과 미주대륙에까지 확산되고 있으며(‘한류2.0’), 영화와 드라마, 대중음악에 이어 클래식음악, 무용 등 문화계 다방면에 걸쳐 한국의 문화(K-culture)가 주목받기 시작한 현상을 ‘한류3.0’이라고들 한다.
“원래부터 이렇게 잘했나요?” 유럽의 기자들이 한국의 문화예술계 인사를 만날 때마다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라는데, 왜 그런 인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지 이쯤 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대체로 궁금해 하는 ‘한국 음악인 성공 키워드’에 대해 영화 제작팀이 알아낸 키워드는 과연 무엇일까. 로로 고문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음악인들의 성공 비결은 조기교육과 열정, 치열한 경쟁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일찍부터 음악을 시작하고 한국예술종합원 등이 조기에 영재를 발굴해 훌륭한 스승들이 집중 교육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점과,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학생들이 ‘머리만이 아닌 근육이 음악을 기억할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음악적 기능과 기교는 완벽하게 습득하지만 부족한 자율성과 창의력 등은 독일을 비롯한 클래식의 본고장에서 유학하며 배우는 것 등의 세 가지로 파악했다.
그는 아무 선입견 없이 취재하고 자신의 판단보다는 인터뷰 대상자들의 입을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조기교육과 피나는 노력, 그리고 유학을 거쳐 국제 콩쿠르에 진출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세계무대에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것이 전형적인 한국 음악인의 성공 코스라는 점을 영화에 담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영화에는 한국 교육의 성취뿐만 아니라 많은 문제점들, 한국 부모들의 유별난 자식 교육열과 극심한 경쟁체제, 이에 따른 긍정적ㆍ부정적 현상, 유럽과 달리 가난한 사람은 예술교육을 받기 어려운 한국의 공교육과 사교육의 실상 등도 역시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로로 고문은 벌써 두 가지 면에서 ‘한류3.0’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첫째는 한국의 음악계나 관련 전문지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국제 콩쿠르에서의 한국인 참가기록들을 체계화했다는 사실이다. 최초의 조사로서 뿐만 아니라 자료적 가치에 있어서도 한류3.0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는 평을 받기에 충분해 보인다. 두 번째 기여는 한국의 예술교육의 강약점, 이른바 SWOT분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흥미로운 것은 사교육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예술분야의 이상과열 현상까지 보이는 조기교육과 유학열풍에 대해 비판적 시선이 아닌 긍정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사교육 열풍에서 찾으려 한다. 경제적 궁핍의 이유도, 그래서 결혼이 늦어지거나 기피되고 사회가 노령화되는 이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부문이 예술교육이다. 한국 부모들의 유별난 자식 교육열과 극심한 경쟁체제, 가난한 사람은 아예 예술교육을 받기조차 어려운 한국의 공교육 실상이 예술분야와 체육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사교육 문제를 다루는 어떤 사람도 예체능 분야의 사교육에 대해서는 문제 삼기를 꺼린다. 왜? 거기에는 공교육이 아예 없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사교육 문제를 비판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로로의 영화가 다루고 있는 한예종의 조기 예술교육 참여는 사교육의 일부를 공교육기관이 떠맡는 방식으로 볼 수 있으며, 사교육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사교육이나 사교육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제도화된 사교육으로 어떻게 영화에서 지적된 부족한 창의력과 자발성을 어떻게 끌어내느냐, 그래서 유학으로만 돌파구를 찾는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 하는 점일 것이다.
그런 문제도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영화가 방영되던 5월 27일 끝난 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한국인 성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성과에 비하면 미흡했다. 12명이 겨룬 바이올린 결선에 신현수, 김다미 씨와 미국 국적의 에스더 유 양 등 한국인 3명이 진출해서 신 씨와 유 양이 겨우 3, 4위를 하는데 그쳤고 작곡 부문에선 서홍준 씨가 4명의 입상자 가운데 드는 등 예년의 성적에는 미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로 고문의 평가는 다르다. "결선 진출 자체도 큰 의미가 있지만 신 씨와 김 씨 모두 해외 유학파가 아닌 한국에서 공부한 국내파라는 점에서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발전한 것이자 미래를 밝게 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화에 담겨 있는 한국 음악인의 성공코스 중 유학 과정이 빠져 있는 순수국내파가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것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얘기였다. 조기교육과 피나는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클래식의 본고장에서 유학하지 않으면 기를 수 없는 것으로 되어있던 자율성과 창의력이 스스로 창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에 이른바 K컬쳐 쇼크가 더 커졌다는 느낌을 로로 고문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한예종보다 더 확실한 사교육에 대한 대안은 SM 시스템일 것이다. 한류2.0의 도래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SM의 연습생제도와 장기계약시스템은 조기교육과 피나는 노력을 하나로 묶은 것에 불과하다. 어린 연예지망생을 뽑아 혹독한 훈련을 시키며 무려 10년 이상의 노예계약을 강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비등했었고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장기계약이나 혹독한 훈련을 없애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노예성 장기계약이라고는 하지만 연습생 기간 동안 숙식이며, 수많은 교육훈련비용을 스스로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대한민국 예체능계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의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과 졸업 후 취업난까지 생각한다면 아이돌이 되는데 개인적으로 투자하도록 했다면 과연 지금 스타가 된 아이돌 중 얼마나 그 길을 걸었을지 모를 일이다.
연습생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강요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회사에서 일부 강요도 하겠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 중에 아무런 대가 없이 일만 시킨다면 그대로 따를 사람도 없을 것이고, 연습생 개인들도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니 반드시 혹독한 훈련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적당히 연습해 세계적인 스타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고시합격에 인생을 걸고, 돈도 안 되는 예술가의 길을 걷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주경야독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고시생이나 예술가의 얘기는 이미 전설에 속하는 얘기고, 교수나 박사가 되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열심인 대학원생들과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는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은 설사 그런 특별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단지 취업난 때문에 대학 4년 동안 도서관에서 밤을 낮 삼아 공부하는 대학생들도 다반사다. 그들 모두가 누구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밤낮으로 공부한다. 연예 지망생이라고 해서 다를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예종에서 예술 조기교육을 담당하는 것이나 SM엔터테인먼트가 연습생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나 사교육을 제도권에 끌어들인 것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문제가 없지는 않겠지만 한예종의 경우는 사교육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상급학교가 사교육을 끌어안은 것이며, SM의 경우는 역시 사교육이 지향하는 평생직장이 사교육을 끌어안은 것이라는 점에서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인 셈이다. 여기에 자율성과 창의력의 발현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인 보완만 이룰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게 로로 고문이 본 K컬처 쇼크의 새로운 가능성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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