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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February 1, 2013

중심과 비중심의 경계에서 빈틈없이 세상을 껴안다

▲이게 왜 소리가 안나지

▲웃음으로 풀어지는 신명

▲새끼는 이렇게 꼬는 거야

▲길고 짧은 것은 재보면 되는 일, 풍물솜씨 겨루기


▲국제문화교류단 사무실 풍경




커뮤니티 국제문화교류단장 하은숙

―예비사회적기업 국제문화교류단

글 사진 이대건편집주간

“너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게다” 간단없는 미래상
‘그’ 사회에서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노인은 일도 안하고 밥만 축낸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었다. 학자들은 ‘노인 때문에 국가 재정이 바닥난다’고 주장하고 대통령까지 ‘노인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 없다’며 의료비 지원을 대폭 삭감한다. 레스토랑에는 ‘70세 이상 노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걸리기도 한다. 광고제작자들은 ‘반노인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노인들을 ‘CDPD(Centre de Detente Paix et Douceur)’라는 기관에 끌고 가 독극물을 주입해 생명을 중단시키기 시작한다. 일종의 강제 안락사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 프레드 부부에게 CDPD요원들이 찾아온다. 위기를 직감한 노부부는 이들을 피해 탈출을 감행한다. 프레드 부부의 탈출 소식은 노인사회에 급속하게 번져가고 여기저기서 많은 노인들이 잇따라 탈출하게 된다. 이들은 산 속에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정부를 상대로 저항을 시작한다. 처음 전단지를 뿌리는 정도였던 반정부 저항은 차츰 무장항쟁으로 발전한다. 주인공 프레디는 체게바라처럼 노인사회의 해방자로 불린다. 영웅이 된 것이다. ‘흰여우들’이라 명명한 노인커뮤니티는 시간이 지나면 정부가 잘못 내린 결정을 철회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자신들에게 조금만 더 애정과 사랑으로, 법적인 차별을 없애달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대응한다. 저항세력들이 모여 있는 산악 거점 지역에 독감바이러스를 살포한 것이다. 저항운동을 하던 노인들은 하나 둘 쓰러져가고 마지막 남은 사람들은 체포되기에 이른다. 주인공 프레드도 결국 체포된다. 그리고 여느 노인들과 같이 안락사 주사를 맞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주사를 놓는 젊은 병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게다.’
장편소설 『개미』로 이름 나, 우리에게는 국내작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소설의 내용이다. 『나무』라는 소설집에 실린 단편 「황혼의 반란」이다.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축한 도서관은 도대체 어찌될 것인가
노인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통째 불타는 것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2012년 대통령 선거 결과는 ‘세대 간 대결’이라 할만치 여러 가지 해석과 견해를 낳았다. 다음 아고라에서 벌어진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 청원’ 사건은 대선결과와 세대문제를 가장 첨예하게 보여준 현상이다. 도서관, 도서관은 어찌되고 있는 것인가.
몇 가지 자료로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최고의 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통계청자료에 의하면 2026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고령사회가 되고, 2036년이 되면 생산가능 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노인부양비율 50%에 육박하는 초고령화 나라가 된다. 노인의료비는 점점 급증하고 있고, OECD에서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조기퇴직과 고령자가 채용기피현상으로 노인들의 경제활동은 늘어나지 않고 있고, 일자리나 소득은 정말 열악하다.
이런 통계와 노인계층의 사회적 역할 감소는 마침내 소설 「황혼의 반란」이 예견하는 극단적인 사회로 가는 전조인가.

노인=수혜자, 공식을 깨는 신나는 축제
사뭇 다른 풍경하나를 소개한다. 나라의 허리 대전, 대전대학교 교정이었다. 하늘은 그지없이 높고, 가을이 이랬을까 싶은 단풍에 눈부신 날이었다. 사단법인 국제문화교류단에서 자리를 마련하고, 어르신들이 스스로 만들고 주변 사람들을 초대해 즐기는 축제가 열린 것이다. 하, 축제 이름은, ‘반전 있는 청춘, 2012 대국민축제’다. 하나씩 풀어보자. 반전 있는 청춘, 인생의 후반전에서 다시 인생의 반전을 꿈꾼다는 작명이다. 마침, 가수 싸이가 세계적으로 ‘말춤’ 파란을 일으키며 ‘반전 있는 여자’를 유행시키고 있었다. 대국민축제, 관련 국가 기관이나 지자체의 도움 없이 60~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획하고 준비해 모든 연령, 모든 국민을 초대한다는 취지다. 세대를 넘고, 성별을 넘고, 계층을 넘어 함께 즐기자는 잔치였다. 노인=무언가 받는 사람, 이 아니라, 그 수혜자라는 공식을 깨고, 무언가 누구에겐가 보탬이 되는 일을 벌이는 사람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자리였다.
대전대학교 맥센터(복합 체육공간)에 10여 개 어르신 모임에서 주제를 정해 ‘새끼꼬기’ ‘금줄달기’ ‘대형 윷놀이’ ‘사물놀이 체험’ ‘꽃바구니 만들기’, ‘투호와 널뛰기’, ‘떡만들기’, ‘엿 치기’ 같은 토속적인 놀이를 즐기는 부스를 꾸몄다. 사물놀이, 풍물놀이, 난타, 민요 공연이 차례로 이어졌다. 공연하는 참가자는 모두 노인세대. 며칠을 머리 맞대고 준비해, 거리낌 없이 즐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무언가를 주제로 잡고, 동아리를 만들어 서로 의지가지 살아온 결과물이었다. 축제에 함께한 사람들은 행사를 준비한 어르신들의 가족만이 아니었다. 충분한 홍보는 없었지만,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가족 단위 관람객, 대학 교정으로 단풍구경 왔다가 신명에 끌려 찾아온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

신명나는 축제의 중심에 그와 그들이 있다, 국제문화교류단
사단법인 국제문화교류단 관계자는 순수 민간단체에서 치르는 축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물론 ‘돈’이다. 그 ‘돈’의 대척에 선 것이 사람들의 마음과 힘이다. 대전의 몇 몇 사회단체와 서점, 특히 축제 기획에 함께 참여한 고창 책마을에서 서울의 몇 군데 출판사에 부탁해 어르신들과 축제 참가자들에게 선물할 책 400여 권을 기증했다.
‘내년부터는 작지만 예산을 마련해서 그냥 손 벌리지는 않을 거예요.’ 축제 관계자가 감사 인사 끝에 붙인 말이다. 올해 처음 열린 어르신들의 축제가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계속 이어지기를 빈다. 축제 이름이 ‘대국민축제’ 아니던가.
이 재미있는 시도를 가능하게 한 커뮤티니 이야기다. 이 단체가 위에 몇 차례 언급된 ‘사단법인 국제문화교류단’이다. 간단없는 살림살이를 챙기며 늘 새로운 기획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이가, 하은숙 대표다.
국제문화교류단은 2010년 1월 비영리 단체로 대전시에 등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식 활동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 공식, 이라는 활동은 벌써 3차례의 청소년 해외원정대 파견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바 있다. 같은 해, 2월과 7월, 제4차 해외원정대(청소년 30명 싱가포르 방문, 4박5일)와 제5차 해외원정대 파견(청소년 25명 필리핀 방문, 30박31일) 파견으로 이어진다. 해외원정대의 주 활동은, 어학연수 및 청소년 지도자 훈련, 봉사활동, 문화탐험, 청소년 간 교류, 한국 전통음악 공연활동 같은 것들이다. 그 문화 탐험과 교류 활동을 위해 국내에서 발이 닳도록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다니고, 풍물이며 판소리 들을 섭렵한다. 단체 등록 원년답게, 그 해 말 제1회 국제문화교류단 정기발표회를 연다. 해를 넘기지 않고 국제 문화교류단 사단법인 인가를 받게 된다.

어린이·청소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를 빈틈없이 보듬는
2011년에는 청소년 직업진로 찾기 프로그램을 론칭한다. 벽두부터 청소년 진로신문을 발간한다. 2013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물단지 문화단, 보물단지 인형극단 활동으로 어르신들의 활동공간을 마련한다. 또한 보물단지 작은 도서관을 개관해, 지역에서 도서관 운동에 길을 열어간다. 그리고 그해 여름 제1회 살다, 놀다, 피어나다(노인문화단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이어 11월 제2회 행사를 연이어 연다. 이 행사의 기틀이 ‘반전 있는 청춘, 2012 대국민축제’로 나타난 것이다.
2012년 국제문화교류단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다. 세상을 향한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이 예비 사회적 기업은 2012년에도 어김없이 청소년 진로교육을 위한 학교프로그램을 열었다. 그 결과로 참가 청소년들 스스로가 만든 직업체험신문이 계속 발간되고 있다. 올해는 작은 단행본으로 묶여 소중한 결과를 많은 독자들과 공유하려 한다. 또 어르신들의 공연무대, ‘살다, 놀다, 피어나다’ 또한 5회를 넘기고 있다. 청소년 해외 원정대도 벌써 7차에 이른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21박22일을 지내며 우리 전통문화의 향기를 전하고 돌아왔다.
사단법인과 예비 사회적기업을 이끄는 중심에, 하은숙 대표가 있다. 1인10역을 감당하느라 문턱이 닳도록 병원신세를 지는 이다. 올해는 과로로 상태가 위중하기도 했다. “헤헤 내가 자리에 누우면 세상 사람들이 ‘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하고 즐거워할까 봐, 절대로 지칠 수 없다”는 그다. 사회적기업까지 ‘윗돌 빼서 아랫돌 갱구’는 어려운 살림살이다. 그가 작은 어린이도서관으로부터 청소년 직업체험단, 해외원정대와 어머니 모임으로부터 노인들을 위한 크고 작은 활동까지, 흔들림 없이 달려가는 까닭이 있다. ‘내가 과거에 어린이였고, 청소년이었고, 내가 앞으로 노인이 될 것이니까’다. 세상에 사는 이유를 늘 새롭게 찾아가는 사람인 탓이다. 그가 더 아프지 말고, 그가 깔아놓은 신명나는 잔치 자리에서 그가 만들어놓은 슬로건처럼, 살다가, 놀다가, 문득문득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


Tuesday, November 20, 2012

시 한마디에 뼈와 살, 숨결로 스몄다. (말로)읽히는(노래로)불리는(일상어를)해독하는 시의 시인 김근



커뮤니티


시 한마디에 뼈와 살, 숨결로 스몄다. (말로)읽히는(노래로)불리는(일상어를)해독하는 시의 시인 김근



노벨문학상 그 집 앞 진, 풍경

2005년부터일 것이다. 10월이면 어김없이 우리 노 시인의 자택 앞에 진풍경이 펼쳐진다. 2005년 우리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그 노 시인은 ‘고은’ 시인이고 매년 10월은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시기이다. 올해, 예전만 못했지만 어김없이 그의 집 앞 풍경은 진, 했다. 물론 노벨문학상 발표와 더불어 ‘또 불발…고은, 영원한 노벨문학상 후보’ 같은 조간신문 단신 제목을 남기며, 신속 철수라는 패턴 또한 여전했다.
올 노벨문학상은 중국 작가 모옌이 수상했다. 1988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각축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여기 우리 시인 고은까지, 동아시아 문학에 대한 관심이 예전과 다르다.
1968년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라는 일본, 작가는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다. 그리고 1994년 오에 겐자부로로 이어진다. 여기에 올해 수상자(2000년 수상자 가오싱젠은 프랑스 국적이다)를 낳은 중국. 동아시아에서 역사?문화?사회 전 부문에서 서로 경쟁하는 두 나라와 ‘어김없이 불발’ 대한민국은 어떤 차이인가.

번역, 타자의 언어를 체험하는 기쁨

“이국의 언어를 모국어라는 자신의 집에 맞아들임으로써 타자의 언어를 체험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한 이가, 리쾨르다. 그의 『번역론』을 통해서다. 이 기쁨의 매개, ‘행복한 도전’인 번역의 정체는 무엇인가. 상당히 상투적이지만, 사전 한 귀퉁이를 인용한다.
“번역(飜譯)은 어떤 언어로 쓰인 글을 다른 언어로 된 상응하는 의미의 글로 전달하는 일이다. 이 때 전자의 언어를 원어 또는 출발어(source language)라 하고, 후자의 언어를 번역어 또는 도착어(target language)라고 한다.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는 원전을 이해하기 위한 문화적인 배경지식과 옮겨오는 언어의 정확하고 문학적인 문장력이 필요하다.” 위키디피아에서 ‘번역’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다. 위키디피아로 쌓인 번역의 ‘해석’은 번역의 역사와 번역가를 지나, 번역의 조건인 ‘충실함(원문과 같도록 함)과 투명화’로 이어진다. 이쯤이면 번역 이야기를 장황하게 옮기는 까닭을 알아챘을 것이다. 우리 문학의 번역, 이것이 노벨문학상과 우리 문학의 거리를 넓히거나 좁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그 사회가 쌓아온 문학(혹은 인문학)에 대한 생산과 소비의 길항(拮抗)과 함께.
노벨상에 목메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 문학의 소비 공간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보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최근에는 슬로베니아어로 번역돼 발칸 지역에까지 소개되었다는 고무적인 풍문이 들린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 아직 우리 문학의 번역은 소소하다.
서두가 참 길다. 노벨상으로부터 번역, 우리문학의 소비 공간으로 이어진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의 예고편이다. <2012 해외 원어민 번역가 초청 연수 사업> 첫 번째 문학기행에 대한 예고편.

한 사람의 시인이 사라지면?

지난 ‘죽곡열린도서관’ 편 원고에서 노인 한 사람의 죽음과 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노인 한 사람 자리에 한 사람의 시인을 대입시켜보자. 한 사람의 시인이 사라지면? 아무래도 한 나라의 정제된 혹은 가장 원초적인 언어와 생각의 창고를 잃는 것이리라. 그도 그럴 것이 인류역사 초기, 시인은 하늘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주술사였다. 하늘과 땅이 순환하는 기운 속에서 살며, 사람의 역사를 앞장서 노래로 풀어내던 예언자였다. 그 노래가 ‘백성’들 사이에 회자되며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는 ‘민의’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때 시인은 홀로 매스미디어가 되었다.
시 한편(부분이다) 읽어보자.
태를 묻지 못했으니 고향도 없다/ 몇 차례 허물을 벗었는지는 잊었다/ 허물을 벗어도 허물 안의 기억은/ 허물 바깥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것이 허물 안의 기억인지/ 어느 것이 허물 바깥의 기억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안인가 바깥인가/ 몇 차례 허물을 태우면서/ 한때 번들거렸으나 이제 푸석해진/ 한 生이 지글지글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 나는 삶인가 죽음인가/ 이승인가 저승인가/ 돌 하나 붙박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기가 돌의 고향인지는 묻지 않았다/(「뱀소년의 외출」 부분)
이 시 「뱀소년의 외출」은 《삼국유사》 의해 편 <蛇福不言사복불언>을 모티브로 한다. 이 때 사복(蛇福)은 ‘뱀아이’다. 태를 묻지 못해 고향이 없는 ‘돌’의 고향인지 묻지 않은, 그가 바로 김근 시인이다.

해외 원어민 번역가와 찾은 시인의 고향, 시인의 마을

전북 고창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시인의 고향’이고 ‘시인의 마을’이다. 서정주 시인 한사람의 중량감이 그렇게 만들었다. 시인의 고향, 고창에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들과 외국 작가, 번역작가 몇이 함께 자리했다. 앞서 이야기한 <2012 해외 원어민 번역가 초청 연수 사업>의 첫 번째 문학기행 자리이다. 십여 명의 일행 가운데, 주인공은 물론 고창에 태를 묻은 40대 초반의 젊은 시인, 김근이다(‘뱀소년의 외출’과 달리 그래서 그는 고향이 있다).
시인은 중앙대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에서 지금 박사과정에 있다. 학부생들에게 시 창작론을 가르치는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한겨레문화센터와 같은 시민교양강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수천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시인이 가져야할 ‘좌표’를 일깨우는 길잡이였으니, 그 공간이 자연스레 대학으로 옮아간 것이다.
1998년 계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이름을 올린 김근 시인은, 그동안 『뱀소년의 외출(문학동네)』, 『구름극장에서 만나요(창비)』 등을 내며 폭넓은 독자층을 만들어왔다. 2000년대 우리 문단의 젊은 시인 김민정, 유형진, 황병승, 김경주, 안현미 등과 ‘미래파’라는 그룹을 지어 좌장으로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시인은 문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 만나게 하는 ‘문학나눔콘서트’ 같은 작은 문학축제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 시의, 문학의 ‘퍼포밍’을 주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국문학번역원다운 참신한 시도, 특별한 문학기행

번역원이 이번 문학기행은 여러모로 의미깊은 시도이다. 해외 원어민 번역가에게 번역 텍스트(물론 시)의 행간에 스며있는 다양한 인문학적인 요소를 직접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원문과 번역문 사이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우리 문학이 노벨상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해외 원어민 번역자’와 ‘우리’ 사이, 역사에서부터 문화까지 그 거리를 줄이지 못한 탓임을 다시 떠올린다(똑같은 이야기를 중언부언하려니, ‘한국문학 번역의 목표가 꼭 노벨상’은 아니라는 것, 이해해 주시기를).
‘김근 시인과 함께 하는 문학기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일정은, 몇 가지 키워드가 제시되어 있다. 먼저 ‘시인의 고향이자 서정주 문학관이 있는 전라북도 고창을 방문하여 작가와 대담을 진행한다.’ ‘한국, 인도, 멕시코 시인들의 대표작을 선정하여 이에 대한 토론을 진행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모한다.’ ‘해외 원어민 번역가들의 한정식, 한국사, 전통한옥 등의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이다.
이번 문학기행에 참가한 작가와 번역가를 보자. 초청작가로 김근 시인, 참가작가는 K. 스리라타(인도) 시인, 번역가는 레온 플라센시아 뇰(스페인어권)과 엘리 황(영어권)이다.
10월 11일부터 이틀동안 진행된 일정에서 일행은, 시인의 태생지 고창의 면면을 꼼꼼하게 살폈다. 서(西)로는 동호바다로부터 동(東)으로 문수사와 조산저수지까지다. 그 횡단에는 미당시문학관, 선운산과 선운사, 고창읍성과 고인돌박물관까지 역사며 문화의 지층이 켜켜로 담겼다. 특히 서해 바다와 갯벌에서부터 시인의 고향 조산마을과 조산저수지까지 하나의 키워드로 관통하는 것이 ‘물’이다. 이 물의 이미지는 김근 시인의 시를 해석하는 중요한 열쇳말이다. 바다로부터 저수지, 조산마을의 우물까지, 그의 시가 담고 있는 원초적인 물의 형상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공간이다.

물과 시, 노래가 닮아 있다

이번 문학기행에서 토론으로 올린 김근 시인의 시는, ‘뱀소년의 외출’ ‘헤헤 헤헤헤헤,’ ‘구름극장에서 만나요’ ‘물 안의 여자’ ‘焚書 3’이다. 영어로 옮겨, 함께 읽고 시안의 분분한 감각을 나누었다. ‘물 안의 집 떠다니는 방구들에 차마 눕히지 못한 물 안의 아기 물 밖으로 떠난 아비 찾아 저 혼자 떠올랐네(물 안의 여자)’ 같은 시에서도 물의 이미지를 살펴볼 수 있다.
토론자리는 밤늦도록 길었다. 시 이야기는 자연, 시를 낳은 고장의 이야기로 옮겨가고 시인의 언어를 잉태한 소리와 몸짓으로 이어졌다. 고창의 농요 한 자락, 판소리 한 대목이 걸지었고, 시인의 시에 밴 가락이 어떤 연유인지 그 원천을 자연스레 이해하는 자리가 되었다. 특히 시인이 들려준 심청가의 심청 태어나는 대목은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시는 노래였다는, 모두가 머리로 배운 것을 귀와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시와 노래의 친연(親緣)은 낭송에서 다시 확인한다. 김근 시인의 시는 노래다. 그가 노래로 읽는다. 사설조에 시를 얹혀 부르는 그의 시 낭송 방식은 벌써 한국문단에 이름짜하다. 이에 질세라 멕시코 작가, 레온 플라센시아 뇰이 멋진 낭송으로 화답한다. 그는 멕시코 유수의 문학잡지 편집장이기도 하다. 그가 그의 잡지에 김근 시인의 시를 싣겠다고 제안해, 조만간 멕시코에 우리 시가 소개될 예정이다.

시인의 고향, 마을은 여전히 이야기를 품고 있다

문학기행 일정가운데 일행의 이목을 끈 공간은 당연히 시인의 고향마을이다. 고스란한 옛정취가 가득한 시인의 마을은 이제 없다. 고창-담양간 고속도로가 그의 고향 집 위를 지나가고 있다. “언젠가 광주에서 문학행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그 자리를 밟고 지나는데, 울컥 치미는 것이 있어, 어찌나 힘들었던지.” 그의 집과 이웃집은 고속도로에 묻혔지만 아직 그의 고향마을은 통째 사라지지는 않았다. 마을 앞 조산저수지도 그대로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일가 어른들도 세월이 내린 머리와 주름을 빼곤 그대로다. 말투며, 몸짓이며, 마음씀슴이며가.
시인의 고향은, 고향 그대로다. 고속도로에 묻힌 고향집은 사라졌지만, 산과 물과 바다가 오롯하다. 그의 시에 도톰한 살을 입혀주었던 이야기가 마을 어귀마다 생생하다.

번역, 두 주인을 섬기려다가 두 주인을 모두 배신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일

다시 번역 이야기다. 게다가 시의 번역 이야기다. 러시아 출신 언어학자 로만 야곱슨은 ‘정확히 말하면 시는 번역 불가하다’라고 결론을 짓기도 했다. 그만치 시의 번역이 어렵다는 것일 테지. 그 시가 담고 있는 형식과 내용 모두를 새로운 언어의 형식과 내용으로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 ‘쫌’ 한다 하는 독자라면 다음 구절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한글로 읽는 ‘시’도 어려운데, 영어라니. 지레 혀를 차고 읽기를 저어하지 마시기를.

I have no homeland since I could not bury my amniotic sac/ I forgot how many times I shed my skin/ Even after shedding my skin the memory inside skin/ does not disappear outside the skin/ It is hard to tell/ Which is the memory/ inside the skin/ Which is the memory outside the skin/ Am I inside or outside/ Having burnt my shed skin a few times/ Smelling a life that once was glossy/ but now crumbling/ Am I life or death/ Earth or heaven/ A pebble was stuck in the ground without a stir/ I did not ask if that was his homeland/

문학기행에 함께한 번역작가 랠리 황이 영어로 옮긴 「뱀소년의 외출」일부이다(앞서 인용한 시의 영문이다). 글의 시작에서 인용한 『번역론』에서 리쾨르는, 번역 행위란 “두 주인을 섬기려다가 두 주인을 모두 배신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가는 것, 혹은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가는 것은 결국 언어적 환대를 실행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뱀소년의 외출」한글본과 영문본 사이에서 결국 쓴 잔을 마시고 ‘무릅쓴 배신’에 빠졌는지, 아니면 기쁘게도 ‘언어적 환대’를 받았는지. 이도저도 아니어서, 우리는 ‘시’ 자체를 읽을 줄 아는지. 그리하여 우리의 ‘뱀소년’이 제 꼬리를 물고 우로보스, 쉼 없이 제자리를 찾아 영원회귀하는.(번역원의 정진권 팀장, 백지수, 신수경 님과 통역 김지영 님께 감사드립니다.)

Friday, September 14, 2012

생명의 근본자리에서 피어오르는 한 무더기 꽃, 소금장인 풍산염전 유기봉 대표


생명의 근본자리에서 피어오르는 한 무더기
,
소금장인 풍산염전 유기봉 대표


글 사진, 이대건

빛과 소금, 빛 알갱이 우리 땅 소금 자랑
빛과 소금이라고 했다. 두말할 나위 없다. 생명의 두 가지 근본 조건이다. 생명의 밖에서 작용하는 것이 빛이라면, 한 생명의 안에서 작용하는 것이 소금이렸다. ‘소금을 먹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유기체로 호흡을 멈추지 않고 향상성을 갖는 동력을 얻는다. 그 경계가 0.9%다. 우리 혈액과 세포의 소금농도. 더해도 덜해도 ‘생명유지장치’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0.9%라는 숫자와 일맥상통하는 한 가지 어휘, ‘양수’다. 생명탄생의 배경에 그 0.9%가 작동하고 있다. 소금,이다. 그런데 소금은 한 개인에게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짠맛이 나는 흰색의 결정체,로 시작하는 물질로서 소금의 사전의 정의 한편에는 “물건이 썩는 것을 막고 음식의 맛을 나게 한다는 점에서 사회도덕을 순화ㆍ향상시키는 참신자의 사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네이버 국어사전)”이라는 정의가 덧붙는다. 이 정의 곁에 괄호 열고, 기독교, 괄호 닫고, 라는 부가정보처럼 소금은 종교의 언어다. 소금이 갖는 ‘정화’의 의미 때문이다. 어디 서양의 종교뿐이랴. 우리에게도 ‘소금’은 부정한 것을 중화시키고 치유하는 힘을 가진, 주술의 언어였다.
우리 땅 소금 자랑이다. 갯벌에서 만드는 천일염은 전세계 소금 생산량의 0.1%라고 한다. 육지에서 나는 암염과 같은 소금이 대부분이다. 갯벌 천일염 가운데 86%가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천일염이다. 양으로는 40만여 톤이라고 한다. 미네랄 함량이 높고 염도가 낮아 몸에 좋고 맛이 일품인 소금이, 바로 우리 갯벌에서 일구는 소금이다.
화렴의 천년 전통 위에 태어난 고창 천일염
전라도 고창 땅에는 천년 넘게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심원면 월산리 검단마을이라는 지명의 유래담이니, 순전이 허구는 아닐 터다. 검단마을은 내륙으로 17km 넘게 뻗어 들어간 곰소만(고창만이라고도 했다)의 초입에 놓인 자연마을이다. 검단마을의 검단은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의 검단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백제가 나라를 잃자, 그 지역의 일부 백제 중심세력이 산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고 살게 된다. (고창지역이 백제 근초고왕에 복속된 것은 서기 300년에서 400년 사이라고 한다.) 갑작스레 화전민 신세로 전락한 유민들의 생활이 온전할 리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운산 인근을 지나는 행인이나, 장사치들과 실갱이가 잦아지기 시작했다(혹자는 유민을 두고, 도적패라고도 한다). 근동에 시시비비가 잦아지자, 선운사 주지 검단선사가 사태해결에 나서게 된다. 방책은 화전민들을 먹고 살게 해주자는 것, 예나 지금이나 일대의 중대사는 ‘호구지책’. 유민들을 만난 검단선사는 ‘먹고사는 일대의 기술’을 전수한다. 소금농사다. 선사의 제안은 주효했고, 유민들은 산을 내려와 심원 바닷가에 마을을 일구고 소금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여기로부터 가지 치는 천년 이야기가 화렴(火鹽, 일명 자염煮鹽)이고, 선운사 보은염(報恩鹽)이다.
화렴은 태안과 함께 고창에서 다시 복원한 천년 소금제조 방식이다. 화렴이야기만 한보따리, 날이 샐 지경이니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화렴은 사리와 같이 바닷물이 멀리 나가고 가까이 들어오는 물때를 맞춰, 오래 햇볕에 노출돼 염도가 높아진 개펄 흙을 모아 솔가지에 걸러 끓여 만드는 소금이다. 고창 심원에 가면 큰 무쇠 솟을 걸고 소금물을 끓이던 움집이 복원돼 있다. 소금벌막이다. 검단선사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매년 선운사에 소금을 시주하는 연례행사가 시작되었고 그것을 보은염 이운식이라고 이름지었다. 물경 1400년 전통이라고 한다.
삼양염전과 심원 두어염전의 성쇠
그 소금마을 고창 심원에는 일제 강점기에 대규모로 조성된 염전이 있다. 지금의 삼양사 염전이다. 조성 당시 100만 평이라던가 200만 평이라던가, 조선 2대 염전이라는 자랑이 아직 남아 있는 염전이다. 당시의 규모는 사라지고 한편은 골프장이 들어서고 한편은 농사를 멈춰 폐염전이 되어가고 있다. 몇 해 전 그 풍경을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뭍이면서 물이고 물이면서 뭍인, 겹침공간 염전. 겹쳐 있다는 것은 이편이기도 저편이기도, 혹은 아무 편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 ‘폐(閉)’는 진즉 예정된 것인가. 뭍에서 물로 염전의 물거울 표면을 파르르 흔들며 부는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려, 뙤약볕 아래 늙은 염부들이 은빛 거울 속으로 첨벙 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다시 뭍의 세계로 나올 수 있을까? 폐염전 한 귀퉁이에서 훅훅 거친 숨을 터뜨리는, 아직은 ‘살(殺)’이 아닌 산 풍경을 그린 책이다.”
‘물이면서 뭍인 ‘겹침공간’ 염전의 산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경향신문>에 『소금이 일어나는 물거울 염전(유종인 글·눌와)』의 서평으로 쓴 글이다.
대규모 염전과 조금 떨어진 심원면 두어마을, 삼양사 염전이 만들어지던 시기 엇비슷하게 만들어진 사(私)염전이 있다. 삼양염전이 일제가 전략적으로 조성한 염전이라면 이곳은 개인들이 만들고 농사지은 곳이다. 수만 평 염전가운데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딱 한 개의 염전, 풍산염전(대표 유기봉)을 찾았다. 역시나 풍산염전 또한 화렴 벌막이 있던 자리다.
송홧가루 일렁이는 염판 물거울에 소금 꽃이 피다
소금 팔러 나섰더니 비 온다는 격이다. 예보는 되었으되, 갑작스런 비다. 바닷가 일기려니, 금세 하늘을 가리고 구름이 머리맡까지 낮게 드린다. 쏟아지는 비, 남부에 기승하던 가뭄을 일시에 해갈하는 단비다. 몇 달 며칠 만에 만나는 단비 탓에 염전이 분주해졌다. 비를 몰고 온 꼴이라니, 얼른 장화를 챙겨 신고 소금밭에 뛰어들었다. 부지깽이 하나도 단단히 몫을 하는 여름 소금밭, 걸어 다닐 수 있는 누구든 즉시 변신가능이다. 일꾼모드.
후두둑 지는 빗방울에 땀이 스며 흐른다. 소금밭 아니랄까봐 짠맛이 더하다. 겨우 하루 지은 소금을 소금창고에 지어 부렸다. 그렇게 후다닥 게 눈 감추듯 소금 짐을 부린 사람들이 풍산염전 유기봉 대표(74세)와 아내, 막내아들 유신(38세) 씨이다. ‘비 오면 소금일은 없어’ 삽시간에 사라진 분주함, 유 대표는 손을 털고 비 탓이다.
백발의 거무스름한 얼굴이 단단한 대비를 이루는 그는 벌써 30년 가까이 풍산염전과 씨름해온 장본인이다. “사월 봄볕부터 태워서 이렇게 까맣지, 겨울 나면 또 얼굴 훤~해지네.”
검어지고 희어지고, 30년을 거듭해온 일일 테다. 그가 거듭해온 한해의 패턴이다. 이 장마가 지나 한여름, 가을까지 소금농사는 절정이다. 10월 말이면 농사는 끝, 긴 휴지기로 들어서는 염전을 다스린다. 그리고 겨울나기. 농사준비는 2월부터,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일어난 염전바닥을 다지고, 허물어진 염전 둑을 다시 곧추세운다. 단단한 채비를 마치고 시작하는 본격 소금농사는 4월부터다. 최고의 소금이 나는 오뉴월을 거치며 농사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송홧가루 일렁이는 염판 물거울에 소금 꽃이 피고, 소금이 오는 호시절이다.
광물에서 식품으로, 먹을 것 대접받는 천일염
유기봉 대표는 소싯적 고창지역의 메인스트림이었다. 부유한 부친 아래 태어나 유복했으나, 그의 부친이 규모가 큰 간척사업에 손을 잘못 대 가세가 기울면서 그 또한 빈궁한 소년기를 맞는다. 여섯 살 무렵이었다. 그 곤란을 딛고 자수성가한 그는, 고창지역사회 주류 역할을 하며 40대에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한다. ‘정치’라고 하는 단어가 함의하는 수많은 갈래를 몸소 경험한다. 정치가 작동하는 가장 기본 단위부터 그의 청춘이 함께 했던 것이다. 지방정치의 복판에서 인생의 궤를 맞춰 신명나게 움직이던 그였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도 그러하려니와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두 번의 선출직 선거에서 쓴맛을 본 뒤 그가, 쉰이 다 되어 내린 새로운 인생의 방향이 바로 염전이었다. 소금에서 은근하게 일어나는 다디단 진짜 맛의 세계였다.
“천일염이 얼마 전까지 광물이었소. 식품이 아니고.” 그가 먹을거리로서 천일염 이야기를 붙이며 고향사람 자랑 한 대목 놓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초대 농식품부 장관 정운천 장관이야기다. 그가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제안을 받고 두 가지 조건을 들었단다. 그 가운데 한가지가 천일염을 광물에서 식품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다행인 비화(秘話)다. 천일염이 식품으로 분류되고, 관리주체가 농식품부가 되면서 염전에도, 소금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먹을 것’으로 대접받게 된 것.
‘작은’이 주는 끈질긴 생명력, 풍산염전
그의 풍산염전은 람사르 습지에 등재된 고창갯벌에 있다. 염전의 둑을 넘으면 바로 곰소만(灣), 서해의 갯것들이 웅성거리는 갯벌이다. 염전으로는 천혜의 조건을 가진 그 풍산염전은 애초 ‘작은염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풍산염전을 놓고 어깨를 맞대 여러 염전이 있었다. 최근 10여년 새, 염전은 모두 사라지고 혹은 나라에 수용되었다. 풍산염전이 ‘작은’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면 그 대척점에 있던 ‘큰’ 염전도 마찬가지다. 만의 입구 쪽 풍산염전 바로 옆 서너 배 크기의 ‘큰염전’도 이미 ‘사라진’ 운명을 맞았다. 고창에서 유일한 심원 두어리 사(私)염전 지대에서 다시 ‘유일한’ 사염전 하나로 남은 셈이다. ‘작은’이 주는 이 끈질긴 생명력.
그에게도 사오년 전, 당시 시세에 서너 배에 달하는 거금으로 ‘팔기’를 청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그 요구를 물리친 이유는 간명하다. 소금농사는 근본산업이라는 것. 주변의 염전들이 다 그 ‘손’에 넘어간 뒤, 고창갯벌이 람사르 습지에 등재된다. 근본의 가치가 빛을 발한 것이다.
싱겁고 가볍고 굵은, 풍산염전 소금발
“우리 소금은 싱거.” 그의 소금은 싱겁고 가볍다. 소금 알은 굵다. 소금이 싱겁다니, 짠 게 소금 아닌가? 아니다. 소금에도 짜고 싱거운 정도가 있다. 싱거우니, 달다. 그래서 그의 소금 맛을 본 사람들은 그의 소금만 찾는다. 풍산염전 소금은 비싸다. 근동에서 나는 삼양염전 소금보다 1.5배는 더 나간다.
“한 가족이 일 년에 한가마 먹으면 많이 먹는디, 멫 천원 싸다고 맛없는 소금 먹것능가? 소금 맛 아는 사람들이.” 그의 소금 값 논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금 맛 때문이다.
70대 중반의 나이, 여전히 그는 중앙지와 지방지 한 개씩 신문을 정기구독할 정도로 지적(知的 혹은 紙的)인 생활을 하고 있다. 텔레비전 뉴스로는 본질을 꿰뚫기 어렵다는 논리다. 활자를 통해서야 깊이 있는 사유가, 행간의 읽기가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의 소금 맛도 그런 그의 삶이 빚은 결과물이다. 앞사람들이 짓던 소금농사법에 조금씩 변화를 주어가며 좀 더 좋은 소금 맛을 찾아 애를 쏟은 결과다. 소금이 달고, 소금이 가벼운 이유는 소금의 도수 탓이다. 또 한가지는 결정지 판 관리에 있다. 서너번 소금을 거두고는 판을 민물로 씻어내리는 것이다. 영업비밀이니,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끝. 다만,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 식은 아니니, 일화 한토막 붙인다. 재작년부터 합류한 막내가 수확량이 떨어지는 아버지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다른 염전 방식을 빌려오자는 것이다. 아무소리 없이 그러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들이 지은 소금과 그가 지었던 소금을 놓고 맛과 결정의 크기, 색을 따져보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소리 없이’ 아버지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 그의 소금농사법은 이렇게 대를 이어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30년째 눈에 익은 일을 손으로 익혀가는 젊은 소금농부
유기봉 대표의 곁에는 그 30대 후반의 젊은 아들이 있다. 바로 유신 씨다. 유 대표가 둔 7남매 가운데 막내다. 재작년까지 서울에서 생활하던 그가 손을 털고 가족과 함께 아버지 곁으로,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다. 한해 소금농사를 시작하는 4월, 꽃피는 시절이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아마 서너 살 쯤이었을 거예요. 그 때 아버지가 저기 큰염전을 빌려 농사지을 때였는데, 어머니가 국수를 말아 새참을 나르시면 손을 잡고 같이 오곤 했죠.”
큰염전 작은염전은 그에게 놀이터였다. 그 유년의 기억이 촘촘히 스민 공간을 일터로 삼은 것이다. 이제 3년째 손이 서툰 농부련만, 그렇지 않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도와서 하던 일이라, 손에 익어 있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들어오는 물때에 양수기로 물을 퍼 놓는 저수지로부터 난치와 상난치, 그리고 상난치와 수평으로 약한 기울기를 맞춰 염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여러 증발지 판을 거쳐, 해주에 모으는 일이 여간한 눈매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눈에 익혀왔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것이다. 해주에 모인 물은, 일정한 도수가 되었을 때야 결정지 판에 올려 소금으로 거둔다. 이 때 결정지에서 소금꽃이 피고, 소금이 온다. 대패로 판을 밀면 수북하게 일어나는 소금, 장관이다.
풍산염전에서 땀깨나 흘리는 염부(鹽夫)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도, 한해한해 검어졌다, 희어졌다를 반복하며 그의 아버지처럼 소금 빛깔을 닮은 흰 머리칼로 나이 들어갈 것이다. 진짜 염부가 되어갈 것이다. 사전의 정의를 다시 빌지 않더라도,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소금의 가치, 그 소금이 만들어지는 근본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게다가 천일염의 가치를 알아챈 사람들이 늘어갈 수록 소금일이 꽤 ‘짭짤한 일’이 될 테니. 소금(salt)이 고대 로마 병사들의 급료를 뜻하는 샐러리(salary, salarium)에서 왔다지 않는가.
사진 설명
유기봉 대표 _ “아유, 난 사진 안 찍어. 천하의 인간극장이 와서도 안 찍었어.” 겨우 그의 옆 모습이다.
상난치 _ 저수지를 거쳐 난치에서 물을 끌어올린 상난치는 수평잡기가 관건이다. 미세한 높이 차이로 자연스럽게 소금물이 해주와 결정지로 흐르게 된다.
증발지1, 2_ 증발지 바닥은 단단하다. 개펄흙을 끓여 단단하게 흙만 남겨서 판을 다진 것이다. 그 위에 소금 알갱이가 앉았다. 안중에 없는 이 소금 대신 결정지에서 소금을 거둔다. 이 판을 거친 소금물이 해주로 모인다.
소금둑길_ 70년 가까이 이 둑길로 소금수레와 염부들의 걸음이 이어졌다.
소품1 _ 소금수레가 판에서 판으로 옮겨 다닐 때 사용하는 나무판이다. 이 판이 있고 없고는 천지차이.
소품2 _ 손에 잡는 긴 대가 없어진 기구다. 밑면에 판이 달려 있는 이 기구로 판의 흙을 다졌다. 지금도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판을 다진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흐트러진 판의 흙을 다지는데, 이제는 로울러를 쓴다.
유신 씨 _ 이제 3년차 소금농부, 서툴일이지만 그에게는 어릴 적부터 밴 ‘눈가남’이 있다.
갯골/ 둑너머 칠면초  _ 풍산염전 둑을 넘으면 바로 바다로 향하는 갯골, 물이 차면 이 갯골을 따라 바다가 밀려온다. 그 물로 소금을 짓는다. 이 고창갯벌이 람사르 습지다. 그 습지를 채운 칠면초 군락.
메인 _ 유기봉 대표의 막내 유신 씨. 하늘이 낮으니 농사일이 한숨 놓는다. 그가 대패를 놓는다. 비 탓이다. 며칠 일을 대패를 놓고 마무리한다.
도수계_ 풍산염전 소금 맛은 소금물의 도수에 있다. 대나무 대롱으로 만든 이 작은 기구에서 맛의 비밀이 열린다.
해주와 대패 _ 염전의 보물창고가 해주다. 결정지로 끌어올려 소금이 빚어지는 마지막 경유지다. 해주 위에 대패가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대패는 소금 일구는 마법지팡이다. 결정지 판에서 대패질 몇 번이면 피어난 소금꽃이 소금더미로 쌓인다. 오지다. 
소금발/ 소금가마 _ 천일염은 그야말로 하늘과 바람이 짓는 소금, 하늘 낮으면 천하없어도 소금발이 가늘다. 하늘낮은 날 지은 풍산염전 소금발도 천하없다.
빈의자와 전경 _ 풍산염전은 보통염전처럼 저수지부터 결정지까지 일직선 염전이 아니다. 공간효율을 높여 순환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