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9, 2012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 - 새로운 미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

새로운 미술

글 변재진

쉰베르크는 “<새로운 미술〉이라는 말은 필요 없다. 미술이라면 당연히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 하였다.1) 그의 말처럼 미술은 새로운 미술재료를 발명 해왔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 해왔고, 새로운 표현기법을 개발 하면서 항상 새롭게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요즘 일반인들이 미술관에 가면 “이해 하기 어렵다”, “혼돈스럽다”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이것이 미술인지 영화인지, 무용인지, 문학인지, 음악인지, 시인지, 컴퓨터 게임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전통적인 미술이라는 관점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미술들을 보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혼돈 속에 빠지고, 당혹스런 느낌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같다.

심지어는 미술전문가들조차도 왜 하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칫 난해한 놀이에 빠지기 쉬운 테크놀로지의 제스처가 필요한가?2)라고 과학기술의 도입에 대해서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또 어떤 미술평론가는 매너리즘 시대와 유사하게 놀랍고, 기발하고, 전에는 보지 못한 것만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단세포적인 사고가 유행하고 있다3)라고 하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모르겠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 시대의 미술은 전문가들에게도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미술이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진화하는 현대미술을 따라 잡기 위해서는 왜 이런 변화가 발생을 했는지를 이해하여야 한다. 과거의 서구미술의 근본적인 법칙들을 해체하고, 파괴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특징은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면, 쉽게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미술의 특성

1. 자유와 해방

과거의 미술은 오랜 세월 동안 원근법과 자연의 재현이라는 정확하고, 불변의 법칙의 지배 하에 있었다. 그리고 부패한 정치권력을 미화하고, 찬양하거나, 종교를 우상화 하고 신비화 하는 도구로도 사용 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과거의 고정적인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전복적인 반예술로 변화를 하였다.

르네상스 이후 오랜 세월동안 원근법을 통하여 입체감이 있는 미술을 추구하는 것이 회화의 영구불변의 법칙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모더니즘미술은 이러한 서구미술의 근본이 되었던 원근법을 무시하는 평면적인 회화를 추구 하였고, 더 나아가 입체주의는 원근법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부패한 왕권과 교권을 미화한 과거를 비판하고, 인간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표현주의 등과 같은 전통적인 회화의 원칙들을 파괴한 새로운 미술들이 나타났다. 추상미술은 미술이 보이는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불변의 법칙마저도 파괴한 미술의 혁명 이었다. 그리고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고, 표현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심리상태를 그리는 초현실주의가 등장 하였다.

그 후 다다, 독일의 플럭서스, 프랑스의 누보레알리즘 등 더 급진적이고, 파괴적이고, 추하고 폭력적인 미술4)이 등장 하면서 미술은 모더니즘미술이 새롭게 정의 한 법칙에서조차도 해방되어, 더욱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와같이 현대미술은 과거의 불합리를 비판하고, 고정적인 틀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보이지도 않고, 표현 불가능한 인간의 내면세계을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유와 해방의 정신을 가지고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 하였다. 그러나 매너리즘 시대의 미술과 다른 점은 매너리즘 미술은 과거의 모방과 변형이지만, 현대미술은 과거의 법칙을 비판하고, 과감히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은 현재 과거의 오래된 집을 파괴하고 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새롭게 아름다운 집을 지으려는 과정에 있다고 비유할 수 있다. 그러니 옛집을 부수고 있는 현재를 보고 “이해 할 수 없다”, “부서진 잔해 뿐이다”라고 하며 혼돈스러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현대미술의 핵심은 자유이고, 해방이다. 모든 오래된 고정관념과 틀에서 벗어나 모든 허구적인 신화들을 부정하고, 그리고 새롭게 살아있는 예술로 재창조 되는 과정에 있다.

2. 예술장르의 붕괴와 통합 현상

독일 작곡가 바그너가 1849년에 쓴 “미래의 예술 작품 (The Artwork of the Future)”이라는 글에서 “미술, 문학, 음악이라는 이 세가지 예술이 총체적인 작용 속에서 역량을 통합하는 "종합예술 (total artwork)"에서야 말로 각각의 장르들이 자신들의 최고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 하였다.5) 바그너가 주장한 종합예술이라는 말처럼 현대미술은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탈 장르와 장르의 융합, 상상을 초월하는 특이한 미술재료의 사용 등 자유분방한 실험과 전위가 발생을 하고 있다.

이와같은 예술분야의 장르혼합 현상은 일찍이 발레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러시아 발레 발레뤼스의 발레 제작자 디아길레프는 무용, 음악, 시, 회화를 종합하는 혁신적인 아방가르드적인 공연6)으로 파리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피카소는 다섯번이나 발레 뤼스의 무대디자인과 의상디자인에 참여를 하였고7), 스페인 화가 미로, 러시아 여성화가 곤차로바 등 많은 미술가들이 무대미술에 참여를 하였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발레와 오페라에서는 문학, 연극, 회화, 음악, 무용 분야를 망라한 다양한 분야의 최고예술가들의 예술혼이 어우러져서 파격적인 종합예술을 창작하였다.

1960년 3월 프랑스의 한 화랑에서 턱시도를 차려입은 이브 클레인 (Yve Klein)이 물감이 들어있는 양동이를 든 세명의 벌거벗은 여인과 하얀 종이가 깔린 무대에 등장 하였다. 이 공연에는 초대 받은 관객만이 참가 할 수 있었는데, 관객석 옆에는 20명의 연주자들이 음악을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연주자들은 10분 간 지속되는 단일음조와 10분 간의 침묵이 번갈아 이어지는 이브 클레인이 작곡 한 “단일조 교향곡”을 연주하였다.8) 작가는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마치 지휘자 처럼 푸른 물감을 세 여인의 온몸에 칠하였다. 그러자 온몸에 물감이 뒤범벅이 된 여인들이 바닥 위에 깔아 놓은 종이와 무대배경에 붙여 놓은 종이에 몸을 밀착 시켜서 자신들의 신체 모양을 종이에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종이 위에 찍혀진 여인들의 육체 모양이 “인체측정”이라고 하는 이브 클레인의 작품이다.

이와같은 이브 클레인의 미술은 음악 (이브 크레인이 작곡한 단일조 교향곡)과 무용 (누드모델들이 음악에 맞추어 종이위에 몸을 찍어내는 행위) 미술 (종이 위에 찍혀진 여인들의 신체 모습) 이 세가지가 모두 융합된 형태의 미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독일지역의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무용, 시, 영화 등 다양한 장르 사이를 스스럼 없이 드나들며 상업화 되어가는 기존예술에 대한 “반예술”, 내지는 “대안예술”을 제시했다.9) 이들은 예술의 인위적인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고, 우연성과 즉흥성, 그리고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최근 인터넷 예술가들은 최첨단 하이퍼미디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미술, 음악, 무용, 텍스트, 사이버네틱 시스템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종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와같은 인터넷 아트는 다양한 디지털정보가 한데 이루어져 하나의 작품을 이루기 때문에 멀티미디어의 특성10)을 보여주고 있고, 다양한 첨단과학기술과 예술분야의 전문가들의 협업이 요구되는 작업으로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미래사회에는 전문예술인이 아니고, 과학자 혹은 기술자가 만든 작품일지라도 예술적 가치가 있고, 사람들에게 영혼에 감동을 주고,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진정한 예술작품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의미에서 요셉 보이스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어 사회의 총체적인 조형을 수행하는 확장된 예술개념인 총체예술11)이라는 개념을 주장한 것 같다.

3. 고정관념의 파괴

1951년 존케이지의 친구 로버트 라우쉔버그 (Robert Rauschenberg)의 흰페인팅 (white paintings)이라는 작품은 전시회장에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캠퍼스를 걸어 놓은 것 이었다.12) 이 빈 캠퍼스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전시장의 조명이나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관람객의 소음 등에 따라서 작품의 모습이 변화하는 우연성을 주제로 한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작품 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나타난 우연성과 관람객과의 상호작용, 불확실성이라는 아이디어는 존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952년 존 케이지 (John Cage)는 (4분 33초)라는 제명의 음악을 최초로 연주하였다. 케이지의 작품은 음악이 없는 4분 33초 동안의 시간으로 3악장으로 구성 되어 있었으나 악보에는 모두 “침묵” (Tacet)13)이라는 지시만이 있었다. 이제까지의 음악은 음표가 주인공 이었고, 쉼표는 부수적인 역할만을 했는데, 이 작품에는 음표는 전혀 없고 쉼표만 계속되고, 연주장에는 고요한 정적만이 있었다.14)

이와같은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개념미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이러한 미술이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거나 이해를 했다는 관객이 오히려 이상 할 수도 있다. 고정관념과 오래된 전통이라는 고정된 틀을 파괴하려는 반예술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과학기술과의 융합현상

광통신망과 이동통신을 통해서 초고속으로 전달되는 정보, 컴퓨터의 인터스페이스가 만들어 놓은 인터렉티브,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현실의 세계, 일상화 된 스마트 폰 등의 과학기술의 발달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미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래에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컴퓨터화면이 캠버스의 질감을 그대로 표현해낼 수 있는 기술, 자유롭게 구부릴 수 있는 컴퓨터 화면의 개발, 사람의 뇌파를 통하여 인간의 오감에 호소할 수 있는 기술, 인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술, 3D를 넘어서 더욱 입체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화면, 동공에 직접 빛을 투사하여 입체적인 영상을 보여줄 수 있는 기술 등 현재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과학기술이 실현 될 수 있다. 이와같은 기술이 창조된다면 회화와 컴퓨터 그래픽 그리고 영상과의 구분조차도 무의미해 질 것이다.

이와같이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미술은 다양한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 등의 협업이 필요한 학제적인 영역이 될 것이고, 과학기술과 예술의 융합, 과학기술의 예술화, 인간화라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게 될 것 이다. 미래에는 과학적인 연구를 하지 않는 미술가와 예술적인 창조적 작업을 하지 않는 과학자는 인정받기 어려운 세상이 올 것이다.

5. 생활과 예술의 통합현상

미술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박물관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고급문화로만 인식이 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것은 미술관, 갤러리, 박물관 이라는 공간적인 장벽을 넘어서 건물, 공원, 집안 등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 수억명의 네티즌이 열광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에서 인터넷 예술의 위력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이와같이 인터넷이 전세계를 실시간에 연결하는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게 됨에 따라 세계가 하나의 예술공연장이 되고 있고, 미술관으로 변화 되고 있다. 그리고 포토샵, 일러스트, 플래쉬 등 다양한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개발로 누구나 인터넷 세계에 자기 자신의 예술공간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하였다.15)

일반인들이 창작한 예술작품의 예술 수준이 높든 낮든 간에 인류 역사 상 현재 보다 더 많은 인구가 예술세계를 즐긴 적은 없다. 기술의 발전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세계를 실현시키고 있고, 생활과 예술을 통합하고 있다. 전문예술인이 아니더라도 과학기술의 도움을 통하여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고, 서로 공유하고, 관람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 생활과 예술이 통합되는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결언 -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

세계미술은 급변하고 있는데 한국미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동안 우리는 우리만의 차별화된 새로운 미술이론을 만들거나 방법론을 개발하지 못했다. 미술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 한국미술은 이미 오래 전에 서구에서 유행한 추상미술, 미니멀리즘 등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미술방법론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다.

1970년대에 서구에서는 이미 하이퍼 리얼리즘, 팝아트, 키네틱아트, 추상표현주의, 플럭서스, 누보레알리즘 등 다양한 새로운 미술이론이 개발되고, 실험 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60-70년대 우리 미술은 1920년대 서구에 유행 했던 미니멀리즘과 추상미술을 최첨단 현대미술이라고 추종을 했고, 그외에 다른 실험과 시도를 하는 것조차 이단시 하였다.

과연 이러한 배타적인 흑백논리와 획일적인 미술이 옳았는지 이제는 다시 한 번 재고를 해볼만 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다양성과 이질성을 포용해 줄 수 있는 다원적인 미술교육이 이루어져야만이 창조적인 교육환경이 될 수 있다. 한국미술도 독창적이고, 이질적인 문화가 허용될 수 있는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풍토가 되어야만 창의적인 천재들이 마음껏 예술적인 영감과 다양한 창조성을 발휘하고, 혁신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미술은 지난 한 세기동안 과거의 오랜 전통과 법칙을 파괴하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기 위하여 다각적인 시도들을 하고 있다. 서양에서 이미 100년 전에 개발한 미술이론들을 서구 현대미술이라고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한국미술이 세계인의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것 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미술만의 차별화되고, 독창적인 미술방법론과 재료 그리고 미술이론을 부지런히 개발해서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K-ART를 창조하고, 미술분야의 한류시대를 열어 나가야 하겠다.

























각주)-----------------
노버트 린튼 지음, 윤난지 옮김, 20세기의 미술, 예경, 2007, p. 339.
송미숙, 미디어 아트인가 ? 테크놀로지 아트인가 ? -7회 서울 국제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Seoul Art Guide, Vol. 131, 2012.11, p. 30.
오광수, 현대는 매너리즘의 시대인가 - 오늘 미술에 대한 단상, Seoul Art Guide, Vol. 131, 2012. 11, p. 28.
서영희, 누보레알리즘에 나타난 폭력의 미학, 2012년 세미나교재, p. 6.
박영옥,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 향연, 2008, p. 199.
김영나, 서양미술사, 조선일보 2010. 12. 7.
에릭사티가 작곡하고, 장콕토가 연출을 한 “피라미드”공연에서는 피카소가 의상
을 담당했는데, 두꺼운 종이로 된 입체주의 무용의상을 입은 무용수는 거의 움
직이지 못했고, 이로인해 관객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지음, 김금미 옮김, 20세기 시각예술, 예경, 2006, p 319.
노소영, “예술독립군” 플럭서스그룹의 등장, 노소영관장 컬럼, 2012. 1.17.
이지혜, 인터넷에서 인터렉티브 넷 아트에 관한 연구, 한국디자인 문화 학회지, Vol. 11, No. 3, 2005, p. 130.
전선자, 요셉 보이스의 “확장된 미술개념”과 대안문화, 서양미술사학회, 제 29집, 2008, p. 150-160.
이난희, http://blog.daum.net/nanhee223/3461459, 2011. 10. 24.
조정환, 전선자, 김진호 지음, 플럭서스 예술혁명, 갈무리, 2011, p. 116.
노버트 린튼 지음, 윤난지 옮김, 20세기의 미술, 예경, 2007, P. 331.
한세영, 성정환, 웹패러다임과 넷아트의 상호관계연구-미쉘 푸코의 공간개념을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Vol. 10, No. 1, 2009, p. 550.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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