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9, 2012

“이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다!”실종된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 공약을 찾아서...

“이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문화다!”
실종된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 공약을 찾아서...

글 최용일


“지난 대선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정책을 내놓은 것 같다.” 지난 11월8일 ‘2012대선 미디어? 문화예술? 정보통신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문재인, 안철수 등 당시 야권 후보 캠프가 내놓은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11월 15일 문화예술계가 내린 평가였다. 당시 야권의 두 후보가 내놓은 정책들을 정리해보면 문화산업 분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업의 독과점 규제, 예술인 복지 정책 마련, 표현의 자유 확대, 지역문화 활성화, 문화예술인의 협동조합에 대한 정부 지원 등이었는데, 야권 후보 단일화를 꿈꾸던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두 후보의 문화예술 정책은 대체로 닮아 있었다.


이날 정책토론회에 참석했던 한국독립영화협회 원승환 전 배급지원센터 소장은 “두 후보 진영 모두 문화예술 정책 공약이 비슷했다. 차이라면 독립영화, 인디음악을 지원하겠다고 명시한 문 후보와 달리 안 후보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문화예술인 복지를 실시한다면 국가 자격 제도를 실시하겠다는 문재인 후보와 국가 자격 제도는 실효성이 없다는 안철수 후보의 의견이 다른 점 등인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두 후보의 정책이 지난 대선에 비해 완성도는 있지만 여전히 선거용 공약에 머문다는 의견도 만만찮았다. 올해까지 4번째 대선 정책 모니터링을 맡고 있는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은 일단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현장에서 요구하는 목소리를 정책에 많이 반영했다고 본다. 현장의 요구를 수용하다보니 두 후보 간에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분석하면서도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법 제도 개편, 예산 편성과 같은 실질적인 해결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나 자본적으로나 문화산업의 크기가 커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력 대선 후보라면 문화정책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있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토론회를 열어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비판이 덧붙여졌었다. 이상 문-안 두 후보의 문화예술정책 비교는 물론 의미 있는 것이고, 비판 또한 적확했지만 두 야권 후보가 문 후보로 단일화 된 이 마당에는 또 다른, 사실상 유일한 경쟁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문화예술정책과의 비교분석과 그로부터 나온 비교우위 내지는 경쟁력일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 후보는 “문화예술 부문 예산을 국가 예산의 2%까지 올리겠다”는 선거용 공약 말고는 문화예술분야의 정책 공약을 단 하나도 내놓지 않고 있다. 박 후보의 10대 정책공약 중 ‘창조경제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 내용 중에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세부사항을 포함시킴으로써 상상력과 창의력 제고를 위한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의 내용 중에는 꿈과 끼, 인성과 창의력을 열거함으로써 직접적인 문화예술 정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방점을 찍었겠지 하는 기대를 해봤지만 그렇게 오해할 만한 건덕이마저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 나선 각 후보들의 정책 공약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그 어느 대선보다도 냉정한 것 같다. 어느 누구의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구체성, 전문성 및 사회 변화에 따른 정책의 유연성이 결여돼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매우 추상적이고 형식적이었으며, 더욱 심각한 것은 각 후보들의 정책적 차별성을 논하기조차 어렵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대안적이고 생산적인 문책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부재한 상태임을 드러낸 것은 물론, 보다 근본적으로는 각 분야의 정책 필요성에 대한 철학과 이념이 매우 빈곤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문화예술 공약에 이르면 그 평가는 냉정하다 못해 가혹한 것 같다. 물론 정치개혁이나 경제민주화, 사회통합, 복지지상주의 등 모든 공약 하나하나가 과대몰입을 요구하는 공약들인 만큼 문화정책에까지 정성을 쏟을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후보 대부분이 정치, 경제 등 표와 직결된다고 판단되는 분야의 정책 마련과는 달리, 문화정책에 있어 중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고민과 연구가 부재한 것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의 문화예술 정책 공약이 과연 얼마나 허접하기에 그처럼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단 말인지 지난 대선과 비교해보자. 그런데 2007년 대선이 “문제는 경제”라는 유일무이한 프레임에 갇혀 기업인 이명박이 손쉬운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선거라는 점까지 고려하여 이번 대선의 비교 대상을 2002년 대선으로 해보자.


2002년 대선 당시 대부분의 후보들이 문화의 공공성, 다양성, 자율성 보장 관련 공약을 내놓았고, 노무현 후보 등을 비롯한 대다수 후보들이 문화 분야 위상 제고를 위해 문화부총리와 대통령 직속 문화예술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데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문화예산 확보 목표치를 제시했고, 문화진흥기금 확충 방안까지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표현의 자유 보장과 문화예술인에 대한 생존권 보장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나 문화예술인 복지조합의 설립 지원 등 창작여건 개선 공약도 나왔다.


또한 남북문화 교류 활성화 역시 이회창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공약으로 제시됐고, 문화 향수권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소득공제제도의 도입, 사랑티켓제도 확대, 기업메세나를 위한 세제개혁 등의 정책들의 공약화 논의가 있었으며, 정치, 경제, 사회적 소수자 및 지역 문화 균형 발전방안으로 여성문화진흥기본법 제정이나 여성문화기금 신설 등의 공약이 진보진영 후보들로부터 나왔다. 그 밖에 체육, 관광, 출판산업 정책, 문화유산 보존, 관리 방안 마련 등의 공약도 대다수 후보들이 수용했다.


단일화 국면을 거친 여야 맞대결이라는 점에서 현 대선과 데자뷰 현상까지 보여주었던 2002년 대선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을 거꾸로 올라간 시점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지금보다 더 참신하고 치열한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대결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대선 후보들은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문외한 내지는 국외자에 가깝다는 것이고,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 이번 대선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 2007년 대선의 화두가 “문제는 경제”였다면 이번 대선의 화두는 사실 “문제는 문화”였어야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여전히 경제도 화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특수 상황을 염두에 둔다 해도 “문화경제, 즉 컬처노믹스(Culturenomics)가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정체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후퇴인 셈이다.


컬처노믹스란 문화와 경제의 결합을 강조하는 말로 문화가 경제에 중요한 시대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한편에서는 현대를 ‘문화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경제의 시대’를 말하는, 다시 말하자면 문화만으로는 뭔가 2%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나온 ‘컬처노믹스의 시대’를 설명하기 위한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컬처노믹스는 문화경제학이면서 동시에 ‘문화를 경작한다’는 의미에서 문화경영학이기도 하다. 처음 등장한 1990년대에는 해당 국가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현지인을 고용하거나 현지 브랜드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소극적인 의미의 문화경제학으로 파악되었다면, 2000년대에는 문화와 산업의 창조적 융합, 문화의 상품화, 문화를 통한 창의적 차별화로 고(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경영학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


한편 컬처노믹스는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한데, 초기의 문화경제학이 거시적인 관점이었다면 후기의 문화경영학은 미시적 관점일 것이다. 지금 세계에 퍼져가고 있는 한류를 주도한 것이 문화경영학의 힘이었다면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미시적인 문화경영학에서 거시적인 문화정책학으로 돌아가 보면 컬처노믹스가 말하는 바는 단순해진다. 문화의 강국이 곧 세계적 강국이 되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한국도 그랬고 미국도 그랬지만 정치권의 프레임은 누가 경제라는 아젠다를 선점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국가 아젠다는 문화가 빠진 경제만으로는 안 될 것이며, 그렇다고 경제는 뒷전인 문화만으로도 안 될 것이다. 국가 아젠다에서는 문화가 빠진 채 기업 차원에서는 문화를 상품화하는 문화경영학도 한계가 있다. 2003년 프랑스에서 메세나 지원법이 통과된 것에 고무되어 2007년 우리나라에서 발의된 메세나지원법이 여전히 계류 중인 상황을 생각하면 우리의 컬처노믹스가 가야할 상황은 끝이 없는 터널을 헤매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바로 왜 컬처노믹스가 국가 아젠다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흔히들 현대는 융합의 시대, 창의력의 시대, 감성의 시대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부르는데, 컬처노믹스는 바로 창의력과 감성을 융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화의 소프트웨어화, 인프라화가 시급하며, 이에 대한 관심과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문화의 시대’라는 말과 ‘융복합의 시대’, ‘창의력과 감성의 시대’라는 말들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렇다고 상상력과 창의력, 꿈과 끼를 내세우면서 그것의 바탕이 되는 것이 문화라는 것을 감지조차 못한다면 그건 뭐랄까, 비문화적이라기보다는 비상식적인 말이라는 생각이다.



앞에서 야권 후보들의 공약은 지난 대선 때보다 참신하지만 그건 완성도면일 뿐 여전히 선거용 공약일 뿐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집권당 후보로부터는 아예 공약다운 문화예술 공약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지난 대선보다 오히려 문화예술면에서 정책공약의 수준은 후퇴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일개 평범한 국회의원도 아닌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의 문화예술 공약이 이 정도라면 경제대통령을 넘어 문화대통령을 갈구하는 시대적 요구인 컬처노믹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특히 현재 국정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집권당의 후보이자, 퍼스트 레이디 경력 등 국정운영 경험이나 여성후보로서의 감성과 참신성을 차별화 요인으로 한껏 내세우면서도 그 모든 것이 강점으로 승화될 법한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정작 무정책 무개념으로 일관하고 있는 박 후보의 분발이 촉구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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