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9, 2012

한국화장사

▲고구려 여성화장

▲조선시대장소품

▲고려시대화장법

▲고구꾸기

▲흰 분과 가장법
한 국 화 장 사
글 권경애


【 1. 서론 】

화장은 인간의 미적 본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화장은 신체 보호, 종교적인 욕구 충족, 사회적 지위 등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부터 발전해서 현대에 와서는 자신의 개성과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화장은 사회가 지닌 미의 개념에 부합하도록 선천적인 외모를 수정함으로써 자기 만족과 심리적 안정을 얻도록 해주며 타인에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다양한 예술 장르와 매체가 발달한 현 시점에서 화장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기본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배우, 모델, 가수 등의 외모를 이미지나 배역에 맞도록 재창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화장 분야는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화장에 대한 개념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먼저 화장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논의하게 될 부분은 화장의 변천사에 관한 내용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메이크업 분야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20세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화장의 문화사와 발전 방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 2. 화장의 기원 】

인간은 태고적부터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욕구를 다양하게 표출해 왔다. 이러한 본능이 화장의 기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화장욕구는 성욕이나 식욕과 더불어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화장이 신분, 계급, 종족, 남녀 성별을 구분하기 위한 치장이 미화 수단으로 발전했다는 신분표시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개 사회를 보면 부족의 추장은 매우 화려한 장신구나 문신을 하고 있으며 종족에 따라서도 매우 개성 있는 치장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신분에 따른 의복이나 장신구등이 발달한 점도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을 하고 있다. 예전에 통치자나 귀족등과 같이 상류층이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멋을 낸 것과 같이 요즘에도 부유층은 명품이나 고가의 장신구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의견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 자신을 보호하거나 위장하기 위한 치장이 미화 수단으로 발전했다는 보호설이 있다. 부족 내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 칠을 하거나 수풀 등을 몸에 달았던 것과 고대 이집트의 여성들이 태양열과 독충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두덩에 발랐던 푸른 색깔이 눈 화장으로 발전되었다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있는데 삼한시대의 바닷가에 살았던 사람들이 바다와 강에 들어가기 전에 쪽으로 손과 발에 물감을 들인 기록이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주술적,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전승을 기원하기 위해서 얼굴에 칠을 하는 관습은 지금도 미개발 민족간에 남아있고 질병이나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마귀를 쫓기 위해서 얼굴이나 몸에 색칠을 하는 관습도 계속 남아 있다.

【 3. 한국 화장 문화 】
(1) 고대 세계 화장의 유래
화장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이 이집트이다. 이집트에서의 메이크업의 문화는 이미 4천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집트에서는 그 시대에 이미 연지, 분 등의 미안료가 제조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목욕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 먼저 시작된 것으로 본다. 더운 기후로 인해 목욕과 향유가 발달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헬레니즘시대에는 머리 모양, 장신구의 모양과 위치, 베일의 색깔 등이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로마는 향유, 마사지, 향수와 함께 목욕 문화가 발달했다. 눈 아래쪽에 초록색을 눈꺼풀에 코올로 검게 칠한 이집트 여인들의 강렬한 눈 화장이 잘 보여주듯이 색채화장을 비롯한 화장 기술은 클레오파트라시대에 극치를 이룬다. 이 시대는 미용에 관련된 기구 중에 가슴 발육 기구까지도 끼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메이크업의 역사는 매우 일찍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한국의 화장 역사 ( 20세기 이전 )
1) 고조선 시대
단군신화를 살펴보면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었다는 애기가 나온다. 쑥과 마늘은 미백 효과를 지닌 미용 재료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곰과 호랑이에게 햇볕을 보지 못하게 하고 쑥과 마늘을 준 것은 백색 피부를 가꾸기 위한 일종의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백의 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은 고대부터 백색을 숭상하였다. 따라서 백색 피부는 고대에 있어서 미의 중요한 요소였으며 메이크업도 이 관점에 맞추어져 발전했다. 예를 들어 한반도 동북방에 거주했던 읍루 사람들이 겨울에 돈고라는 돼지기름을 발랐다는 기록이 있는데 돼지기름은 햇볕에 그을림을 예방하고 피부를 희고 부드럽게 하는 성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오줌으로 세수한 말갈인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채협총에서 출토된 채화칠협을 살펴보면 이마를 넓히기 위해 머리털을 뽑은 흔적이 뚜렷하고 마한에서는 문신이 유행했다는 기록이 내려오고 있다. 마한의 문신은 장신구, 색깔 무늬 등의 장식이 포함된 멋내기 수단이였고 신분과 계급을 표시하는 방편이였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한국인 최초의 정형화된 치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고조선에서는 수렵을 위해서 독약을 제조하는 기술이 매우 발달했는데 이는 고도의 화학 지식을 필요로 하므로 고조선 사회의 경제와 문화 수준을 보았을 때 문신 이상의 화장과 화장품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피부 보호제나 미백제 따위가 제조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2) 삼국시대
신라의 화장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신라인의 미의식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박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은 입술의 닭의 주둥이와 같은 결점이 있으므로 북천에 데려가 목욕시켰더니 그것이 빠져 완벽한 미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서 목욕의 의미는 단순히 씻는 것을 벗어나 분장이나 문신등을 나타내고 있다. 화랑 역시 미소년이라는 조건하에 선발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미소년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분을 바르고 구슬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영육일치사상’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미의식의 추구가 화장품과 화장술의 발달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전래는 화장과 화장품의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 교리가 향을 중시하고 종교의식에 향을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목욕재계를 중시한다는 점은 향과 목욕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몸을 깨끗이 해야만 마음도 정결해진다는 사상을 통해 가정에도 목욕 시설이 구비되었으며 팥, 녹두, 쌀겨 따위로 만든 세제 등의 목욕 용품 또한 나타났다. 신라인의 화장기술 및 화장품 제조기술은 매우 뛰어나서 이를 중국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동백, 아주까리, 수유의 열매는 머릿기름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고 유두날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한 쌀이나 분꽃씨의 분말, 백토, 활석 등으로 분을 만들었다. 신라인들은 또한 연지를 만들어 볼과 입술을 치장하였는데 연지는 홍화로 만든 것이었다.

3) 고려시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화장을 장려하고 화장법을 가르친 것은 고려 태조 왕건 때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왕건은 궁궐 안에 교방을 설치해 기생이 갖춰야할 여러 가지 교양과 몸매를 익히게 했으며 화장법도 가르쳤다.
고려시대의 화장술과 화장품의 제조는 신라의 화장 문화가 전승, 발전된 것이었다. 고려 태조가 신라의 정치제도와 문화를 계승하는 정책을 시행한데다가 종교 역시 불교를 계속 신봉하였고 영육일치사상이 계승되었다. 그 결과 고려의 화장 문화는 외형상으로는 사치스러워졌고 내면으로는 탐미주의적인 색채가 강해지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목욕 문화가 더욱 발전하여서 고려도경에 의하면 하루에 서너 차례나 목욕을 할만 큼 깨끗한 신체를 간직하고자 노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흰 피부로 가꾸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강구되었는데 이를 위한 전신 목욕이 성행하였다. 부유층에서는 갓난아이 시절에 복숭아 꽃물에 세수시키거나 전신목욕을 시킴으로써 희고 부드러운 살결을 간직하도록 하였다. 또한 부유층 여성들의 경우 난초를 넣어 삶은 난탕 즉 향수에 목욕함으로써 희고 부드러운 피부를 간직하고자 하였고 늘 몸에서 향내가 나도록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신분에 따라서 화장하는 법도 달랐는데 기생들은 분을 도포한 듯이 하얗게 바르고 눈썹을 가늘게 가다듬어 또렷하게 그리며 빰은 복숭아빛처럼 입술은 앵두빛처럼 연지를 칠하였고 머릿기름은 반질거릴 정도로 많이 바르는 분대화장을 주로 많이 하였다. 이러한 분대화장법은 교방에서 가르쳤다. 이 시대에는 구리로 만든 면약호가 유행했으며 염모가 행해졌다. 면약호는 액상으로 된 안면용 화장품으로 피부를 희고 부드럽게 하는 영양크림과 로션의 중간형태로 추정되어 진다. 가장 널리 사용된 화장품은 백분이었다. 납분이 제조되었는데 이는 일부 계층에 한정되었을 것이다.
고려인들의 화장구로는 족집게와 손톱다듬기가 있었다. 대부분의 족집게는 오늘날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모양이나, 가리마를 타는 동시에 이마의 솜털을 뽑는 데 사용했음직한 족집게도 있었다. 또 손톱을 다듬던 기구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하릴없는 여인이 손톱만 다듬고 있노라’라는 시구로 미루어 볼 때 일부 여성들만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권경애

상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한성대학교 패션예술학과 분장예술학
이화여자대학교 의류학과 박사과정
독일 (서울분원)스테이지 메이크업 스쿨 수료
프랑스 크리스챤 쇼보 메이크업 스쿨 수료
프랑스 아뜨리에 인터내셔널 마끼아제 수료
일본 야마노 미용대학 연수
일본 시세이도 화장품 연수
일본 가네보 화장품 연수
독일 CMS-cosmetic ursula schneider
퍼머넨트 메이크업 수료
독일 CMS Pink Temtoos - Zeichnerin (타 투)수료
플로라 웨딩드레스 , KA516 메이크업 스튜디오 운영
KA516 메이크업 스튜디오 운영
권경애 뷰티과학 (KBS) 대표















권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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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학교 패션예술학과 분장예술학
이화여자대학교 의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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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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