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9, 2012

김길숙,Kim Kil Soog


이성과 감성의 한계를 지워낸 멈춤의 회화



작가 김길숙의 작업은 무엇을 모사하거나 구체적 형상을 재현하는 회화가 아니다. 현대미술사에서의 비대상적 추상회화는 회화의 본질을 찾아가는 행위이었기에 자칫 그의 회화 역시 평면 회화 공간에 대한 형식 실험이라는 미술사적 흐름에 빗대어 그림을 읽고자 하는 일반적 습관에서 바라보기 쉬울 듯 하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직접 보게 되면 어떤 사물의 형상이나 상징물이 없음에도 꿈틀대는 그 무엇인가가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에서는 가시적 형상을 재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어떠한 존재를 만나거나 어떠한 에너지에 흡수되어 들어가는 것 같은 미묘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작업의 스케일이 상당히 크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붓의 움직임의 흔적과 그 붓질로 그려내는 공간이 화면의 면적 이상의 세계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가의 이러한 붓의 움직임은 무엇을 그려내기 보다는 지워내거나 멈춰선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가 하나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몇 달이나 몇 년을 빈 캔바스와 맞서서 감성적으로 느끼고, 흥분하기도 하며, 에너지를 쏟아내어 시간 보내기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어느 시점이 되어서야 붓질이 시작된다고 한다. 작업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몰입하고 멈춰서거나 그려낸 화면을 지워내면서 그가 그리워하고 만나고자 했던 그 어떤 것을 찾게 되는데, 바로 그 즈음에 작업은 멈춰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작가에게 있어서 캔바스라는 빈 공간은 어떠한 감흥 혹은 전율과 같은 비언어적 감성이 되살아나는 공간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작가에게 있어서는 캔바스는 원래 백색이라기 보다는 기억이 하얗게 지워져서 비워져 있어 보이는 공간일 수 있기에 작가가 찾고자 하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존재, 어떠한 느낌과 같은 비형상적 세계를 찾기에 더 적절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영속적인 망각의 공간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 백색 공간을 거꾸로 그의 작업 과정을 통해 망각의 막을 걷어내고 지워 나간다면 기억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을 향해 열린 공간일 수 있을 것이다.
흐릿했던 초점이 어는 한 순간 맞춰졌을 때 선명해질 수 있듯이 작가는 그리기보다는 어떻게 지워내고 걷어내어 그가 바라는 감흥의 순간을 만날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작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캔바스 앞에서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되는 캔바스의 현장이라는 것은 산모가 출산할 때 타자인 아이를 보고 나서 자신을 발견한 것과 같은 감격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자신과 동기화된 혹은 어쩌면 원래 하나인 그 무엇을 만났을 때의 본능적으로 울려 나오는 감흥을 느끼는 경험을 할 때의 상황과 유사할 것 같다.
오랜 산고는 두려울 정도로 모호하고 막연하지만 탄생한 생명체는 가슴 벅찰 정도로 신비하며 자신을 만난 것과 같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기에 작가가 작업할 때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캔바스를 만나게 되고, 기나긴 시간의 기다림 후에 작업의 절정에 이르며, 그 작업을 마칠 때마다 열병을 앓은 것처럼 녹초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산고의 고통처럼 그 창작의 과정들이 작가에게는 순간순간 절체절명의 현재들이 되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억의 소리’라는 그의 작품 명제들은 빈 캔바스라는 망각의 지점에서 시작되었지만, 산고의 고통과 같은 창작의 과정에서 작가적 에너지를 쏟아지고 또 다시 그것을 지워내는 반복된 행위 가운데 떠오른 기억들에서 연유하였거나, 작업의 결과로 자신의 분신처럼 태어난 타자이며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인 그 어떤 존재를 만난 감흥의 떨림과 이때 마치 기억을 되찾은 것과 같은 흥분으로 인해 발생되는 파장과 같은 울림들에서 찾게 된 텍스트인 듯 하다..
그리고 작가는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명확한 형상으로 재현하기 보다는 너무 선명하게 기록되지 않도록 그리기와 지우기의 간극 사이의 긴장감이 흐르는 흔적 속에 남겨두고자 한다. 그는 미지의 공간에서 서성이다가 그 무엇인가에 가까워졌을 때 멈춰서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기 보다는 지우거나 멈춰선 지점이 어느 시간 어느 지점이어야 할 것인가에 주의를 집중하고자 한다. 작가는 이렇게 할 때 막연하지만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어떤 것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에게 있어서 멈춤은 이렇듯 그가 미지의 어떤 존재와 만나는 교차점을 발견하는 절정의 한 순간 이며 찰나적이지만 영겁의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공간과 시간의 해방의 한 순간일 수 있다. 그가 그리워하는 미지의 대상이라는 존재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가둬지거나 규정될 수 없기에 재현적 형상에서 탈피하여 마주치는 그 한 순간의 불확실하고 모호한 흔적만을 남겨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마치 상처 입은 환자의 상흔 자체가 환자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어떤 문서나 사진보다 강렬한 것처럼 일체의 묘사나 재현을 제외하고 감흥의 순간을 마주한 작가적 흔적만을 캔바스에 남겨 두고자 한다. 왜냐하면 대상을 일정한 형상이나 한계에 고착시킬수록 그 대상의 존재적 실제와는 더 멀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결국 단순히 회화라는 예술장르에서의 행위 이상의 어떤 지점으로까지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재적 흔적이자 작가가 세계와 관계하는 독특한 방식을 일종의 파장과 같은 울림으로 들려주는 비언어적 기록일 수 있기에 그의 회화는 하나의 예술적 장면이지만 동시에 작가가 만난 어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감성들 즉 고통과 기쁨과 흥분과 같은 정서가 담겨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Still Paintings Erasing Limitations of Reason and Emotion
The artist Kim, Kil Soog’s works are not painting of copying something or of reproducing specific shape. Since non objective abstract painting in modern art history is an act for seeking essential of painting, it is likely to see her works from a view of an experiment in forms on flat painting space based on the flow in modern art history, which is a common practice.
If you directly see her works, however, you will feel something stirring even without any shapes or symbols of a concrete object. Although her works do not reproduce visible shape, they make you feel weird as if you encountered huge existence or you were absorbed into some energy. That can be partly because her works are of a huge scale but more significantly because they imply beyond what canvas shows with overwhelming movements of brushes and screens themselves painted with those strokes of the brushes.
What the artist says is, however, that these movements of brushes are results from erasing or making a stop for something rather than for drawing one. She says she would spend a few months or even years getting emotional and excited or focusing her energy before canvas to create a piece. It takes a while more before she starts making the brush strokes. Once she begins to work on the piece, in the blink, she finds something that she has longed for and intended to see after focusing, stopping and erasing the screen which has already been painted. It is exactly when she stops the work.
From this point of view, the empty space called canvas can be space where nonverbal emotions such as shivers or inspirations are coming back to the artist. In some sense, because the canvas can be seen as empty space where all the memories are erased rather than nothing is on, it can be rather appropriate space where the artist can find the non-shapable world with some existence or feelings which is not subject to verbal expressions. Though it can seem to be space of oblivion at a glance, it can also be open space of hope where the memories can be found by raising and erasing the curtain of oblivion through her work.
As blurred focus can suddenly be sharp, the artist focuses more on meeting the moment of inspiration which has been longed for by the artist by erasing than on making a drawing. That is why the artist could wait before the canvas so long.
The scene of canvas encountered through these processes can be as similar to when one person experiences instinct inspiration which is coming from meeting synchronized or identical existence as a mother gives birth to her child with an overwhelming feeling that she would find herself in the baby, the other existence.
Though a long period of birth pangs is horribly ambiguous, the life after the pain is of overflowing mystery and impression. The artist, therefore, faces canvas with excitement every time she works on pieces. After a long wait, she reaches its peak in her painting and is exhausted on finishing the work because every moment of her creation would be desperately dangerous moments like those of a mother.
In that sense, though the proposition of her works ‘Sound of Memory’ starts from canvas, the space of oblivion, it seems to be text which is caused by repetitive actions of focusing and erasing energies during the process of creation like labor pains or which is discovered in an impact or an echo from the excitement that the artist experiences on the artist’s other self created by her or some existence equal to herself as a result of her work.
In addition, the artist intends to leave her works between stressful traces of painting and erasing not to make her thoughts or feelings reproduced with so much vivid shape. The artist wants to stop when approaching something after wandering unknown space. Therefore, she focuses more on when and where to stop and erase than on making a drawing. It seems that the artist vaguely believes she can come near to something that has been longed for.
The halt for the artist can be a climactic moment when she and other unknown existence meet and a moment of liberation from time and space which is instant and eternal at the same time. As the unknown object that the artist longs for cannot be locked up in or defined as any physical limitations such as time or space, the artist would just leave the uncertain and ambiguous traces faced when escaping from reproducible shape.
Thus, the artist only wants to leave her traces from the moment of inspiration on canvas except detailed description or reproduction as a scar is more powerful to express patient’s pain than any other realistic literature or photograph. The more fixed an object is to specific shape or limitations, the farther it gets from the existing reality.
Her works are heading a point beyond a mere art genre of painting. Since it can be vivid traces as a human being and nonverbal record to express her unique way to communicate with the world by a kind of echoes, her paintings are not just one of artistic scenes but also one incident implying artist’s various emotions such as pain, pleasure and excitement to the unknown world which she encounters.
Lee, Seung-hoon, Cyart Research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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