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9, 2012

성진민,Sung Jin min



▲성진민-뽀송이 재료 뽀송이114x91cm 2012
성진민 평문


놀기, 변형과 조립

인간의 모든 행(行)과 사(事)는 종종 유희나 게임으로 비유된다. 호이징거가 인간을 정의했던 개념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는 인간의 본질이 유희에 있으며, 더 나아가 모든 사회와 제도가 인간의 유희 본능으로부터 나타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모든 관습이나 의례도 이러한 유희에 바탕을 둔 것이다. 유희는 개별적이거나 자의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의미에서 유희나 게임 혹은 놀이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으며, 그 법칙을 따라야만 놀이가 진행될 수 있다. 그러므로 놀이는 제도이며, 이를 통해서 인간은 욕망인 유희를 충족하고 표현하며 획득한다. 인생은 하나의 게임과 같다는 식의 이야기는 인간의 운명이 이러한 제도적인 법칙 혹은 규약으로 조절되며, 또한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현실화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법칙을 정했단 말인가? 작가는 그 법칙을 만든 주체에 대해 - 그 존재의 정체성을 묻는 대신에 - 자신의 반(反) 유희적인 유희로 대답한다.

-조립하는 예술 arte combinatoria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한다. 그리고 작품의 형식적인 측면은 바로 작품의 언사(言辭)적 태도이자 유희이기도 하다. 성진민의 작업은 놀이를 연상시키는, 그러므로 놀이에 대한 상징성이 강한 이미지들을 화면 위에 배치한다. 체스나 장기판, 말이나 레고를 조립해서 만든 이미지들이 작가가 사용하는 주 형상들이다. 이 형상들의 배치와 구성으로 형성된 그림세계는 단순하고 유아적이다. 그렇다고 이 형식이 유치하다는 평가를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련된 조형언어를 지양함으로서 얻어지는 역동성을 작가 스스로 갈구하고 있다는 쪽이 더 정확한 지적이겠다. 단순성은 또한 직설법에 가까운 상징적인 형태로도 나타난다. 이러한 상징물들을 결합시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특정한 플롯을 만들어내는 일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면, 이것은 서구에서 오래된 예술인식 중에 하나인 arte combinatoria와 유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예술은 단순한 재현이나 대리(representation)가 아니라 기존의 형상을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구축해 나가는 일이다. 여기에는 변증법적인 의미구축도 포함된다. 즉 유희성이나 유아적 단순함이 모호한 사물이나 상징이미지와 결합되면서 제2 혹은 제3의 의미를 파생시킨다는 뜻이다.

성진민 작가는 유희에 연관된 상징물을 화면 위에 조립(결합)함으로서 구문을 만든다. 특징이라면 언급했던 단순함 외에 그 결합이 파생시키는 비합리적인 논리성이다. 사실 필자도 이 조합을 어떻게 해제해야 할 지 난감하다. 단견에는 이탈리아의 Pittura Metafisica가 시도했던 메타포로서 구성되는 의미의 세계를 추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낯선 장소와 일상적인 것들의 이질적인 결합이 만들어내는 작가의 유희적인 풍경화는 그래서 키리코(Chirico)나 카라(Carra) 등이 구성한 관념적인 색채가 짙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그림과 닮았다. 하지만 그 정서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오히려 르네 마그리트에 가깝다. 물론 언급한 근대의 거장들과 비교하면 성진민의 그림이 지닌 공격성이나 난해함은 그다지 강한 편이 못된다. 오히려 차분하다고 보는 편이 났다고 할 수 있으며, 대신에 시각적인 유희성이나 마치 놀이동산이나 동물원을 연상시키는 그런 풍경으로 사변적인 엄숙함을 피해간다. 이런 정서적 태도는 어쩌면 작가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어 하는 나름의 가벼운 회의주의적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미궁에 빠진 운명의 게임

과거 작가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일관했으며, 설치에서 행위까지 다양한 표현방식을 찾아다녔다. 천과 같은 오브제를 사용하거나 거친 화법으로 구성된 표현주의적인 화면은 그의 궤적이 남긴 흔적들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며 당시에 서구 화단에서 유행했던 신표현주의 기법을 응용한 그의 그림들은 제도에 대한 반항과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오브제를 결합한 작품에서 작가는 이미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론을 구성하려는 의도를 보였었고, 그 반론의 문법은 오브제가 지닌 상징성을 직렬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결합하는 것은 연속되고 있지만, 그 결합이 만들어내는 언사는 보다 은유적(metaphoric)으로 변모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운명에 대한 낙천성과 유희적인 태도가 그 근본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미로에 갇힌 말>에서 드러나듯이 작가가 처한 상황이나 제도적 구속에서 스스로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레고맨>에서 거대한 형상으로 장기판 위를 걸어 나오는 사람(?)의 모습에서 작가는 초인이 되어 이 상황의 설정을 뒤집어엎고 싶은 욕망을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유희의 종말에서 나타날 여러 징후들에 대해서도 첨언을 한다. 유희는, 언급했듯이, 특정한 제도적 산물이고 자체의 논리에 의해 진행된다. 그러나 어떤 논리에도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결함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의 파행으로 치닫고 만다는 것을 그림은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자체의 모순율로 인해 갇혀버리면서, 게임은 미궁이 되고 한다. 간혹 그 게임 판을 뒤엎으면서 폭력적 종말을 보고 만다. 작가는 어떤 결과를 꿈꾸고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체크 메이트 check-mate, 게임 끝!

성진민 작가는 이러한 놀이 중에 가장 제도화된 것인 장기판과 말을 형상의 재료로 삼아 자신의 세계를 (재)구성한다. 이 그림 속 세계는 그래서 초현실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구성은 그런 형태들이 의미를 구축하는 방식을 취한다. 의미의 구축은 작업 자체가 지니는 또 다른 유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장기판, 레고, 용도를 모르는 기학학적 구조들이나 나름 유기적인 형상물들, 장기판의 말과 같은 것들이나 풍선 등이 형상의 주종을 이룬다. 유아적인 형상이어서 이전의 심각했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 유희적인 성격 속에 무서운 메시지를 담고 있음은 분명해졌다. 그래서 약간 섬뜩하다. 마치 그것들의 이질적인 변주와 변형 - 작가는 이것을 작업의 중요개념으로 삼고 있다 - 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유희성이 다분한 초현실주의이지만, 비현실을 넘어서는 형상언어의 진지함은 현실을 향한다. 그 환상적 상황과 장소에는 왠지 모를 불안감과 논리가 무장해제 당한 일종의 아나키즘적인 정신적 공황이 느껴진다.

김정락(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미술사학)


Play, Transformation and Assembling

Kim Jung Lock (Art Historian)

All of human's actions and life is often compared to a game or an amusement.
Hoi Zoinger's definition of human as "Homo ludens" is on the human's intuitive amusement, and further more, all of the society and institution are result of the human's nature to amuse. In fact, all the customs and rituals are based on this amusement. It is neither individualistic or arbitrary. Socially, the amusement, game, or play has a consistent rule, and by complying to this rule, the game can only progress. Therefore, the game is an institution, and through this institution, human can fulfill, express and earn their amusement. The story of a life as an another game defines as the human's destiny being controlled by an institutionalized rule or code, but also through it, the individual desire is realized. Then who the hell defined this rule? The artist, on the subject of creating this rule, - instead of asking for the identity of its existence- answers it with half of his/her playful amusement.


-Assembling Art arte combinatoria-

Artist speaks through his/her work.
And the formal aspects of the work is work's rhetoric attitude, as well as the playful attitude. Sung Jin Min's work reminiscent a play, therefore strong symbolic images that represent plays are placed on top of a screen. Images created by assembling a chess or a checkerboard, a word or a lego are the common artist's contours. This image world formed by the geometry of these figures's deployment and formation is simple and infantile. But that doesn't mean this form has simply less attractive assessment. The more accurate assessment would be that the artist has craved the dynamic created through his rather stylish refined visual languages.
Simplicity also appears indicative near to the iconic form. If this specific plot is produced through the combination of these forms by the artist's intent, then this can be similar to one of the oldest art recognition in the west "arte combinatoria".
To explain this concept, art is not mere reproduction or the surrogate (representation), but rather it is building a new meaning combined with the existing shape. In it, the building of a dialectic sense is also included. Thus, playfulness or infantile simplicity coupled with ambiguous objects or symbolic images derive secondary or third meaning.


Artist Sung Jin Min creates the symbols associated with playfulness, assembled on top of the screen (combined) by syntax. Other than mentioned simplicity, the features are the derived combination of illogical reasonableness. As a matter of fact, this combination is also embarrassing to oneself as to how it can be released. In narrow sense, it seems it formed the world of meaning similar to the one that Italy's Pittura Metafisica had attempted - "Metaphor". The artist's playful landscape, created through heterogeneous combination of unfamiliar place, everyday things, and configured with Kiriko (Chirico) or Kara (Carra), resembles an uneasy image with the notion of dense pyschological color. However, when looked from the emotional aspect, it is more akin to Rene Magritte's. Of course, when compared with the mentioned modern art masters, Sungjin Min's picture doesn't depicts the aggressiveness or the inaccessibility side. Rather, viewing it as more calm is better, and in replace, reminiscenting the visual playfulness or an amusement park or zoo can avoid the speculative solemnity. This emotional attitude is maybe what the artist's skeptic attitude ultimately wanted to show.

-미궁에 빠진 운명의 게임-The Fate of the Game missing in a Labyrinth

Writers in the past consistently put an effort to find a woman's identity, expressing various methods, including installments and plays.
Using a rug like object or rough language consisting of expressionism screen was the trace of his trajectory. During the 1980s, when he was attending college, the popular Neo-expressionism technique using the western flower beds was applied into his paintings, revealing the his rebellious and aggressive attitude toward the existing institute. In the artwork consisting the configuration of human perception and thoughts, the artist wanted to show his rebuttal intent, and his rebutting grammar was a way to combine the symbolism and objectiveness. When compared with the current works, the combination work continues, but the combined work transformed into more metaphoric approach than rhetoric, and these changes formed the performance of the fundamental optimistic fate and playful attitude. But as evident in the , the artist's situation or institutional confinement shows lost and wondering appearance, or in , a great human shaping walking on top of the checkerboard cautiously expresses the artist desire to become a superhuman and overthrow the given situation.


Artist also incidentally mentions the end of the amusement symptoms.
Amusement, as mentioned, is specific institutional products, and by the logic of its own. But in any logical sense, contradiction, absurdity, and defects have the end of the claudication, and consequentially head to the uneqivocal term. Due to its ironical scale, it traps and the game becomes a labyrinth. Sometimes, subverting the game board, a violent ending is shown. For what result is the artist dreaming and playing a game?

- Check-Mate, Game Over!

Artist Sungjin Min reconfigured his world using a checkboard and a Horse, which are the most often used in institutionalized games. Within this image world, the surreal situation is shown, and the configuration of those forms is build to represent their own meanings. The construction of meaning is the work itself beloning to another amusement. At the moment, a checkboard, a lego, geometric structures without purpose, organic shapes, a horse on top of the checkboard, similar things or a balloon mainly represent the shape of the form. Because of an infantile shape, the previous serious appearance is hard to find. But within the playful manner, it is very clear that there is a scary message. So it was little eerie. It is as if these heterogenous deformations and various formed world- the author focuses on these as the important concept of this work - may have variety of playful surrealism, but beyond unreality, the seriousness of the shape language is aimed toward realism. In its fantastic situation and place, the anarchist mental panic can be felt, as if the unknown anxiety and strange logic has been disarmed.

Kim Jung Lock (Art Historian)

성진민,Sung Jin min



성진민 리뷰-게임, 욕망과 유희의 장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성진민의 근작은 상징과 우의적인 표현을 빌어 자신의 내면에서 소용돌이 치는 여러 생각들을 이미지화하는 일이다. 그것들이 모여 인생과 삶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을 상징화, 형상화 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림은 여러 단상과 충동에 따른다. 그러니까 그림들은 한결같이 작가의 현재 삶에 대한 이런저런 상념들을 콜라주해 놓은 듯하다. 생각과 마음의 갈래들이 모여 형태를 이루고 색채를 거느린다. 구체적인 형상이 들어가면서도 전체적인 화면 구성은 다분히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편이다. 이질적인 공간이 상호침투하고 낯선 사건들이 병치되는 한편 특정한 도상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실, 줄, 혹은 정해진 법칙에 종속되고 있으며 또한 얽혀있음을 암시한다. 삶에 대한, 현실에 대한 은유다. 페인팅의 여러 측면들도 다채롭게 섞여있다. 도상적인가 하면 추상표현주의적이고 팝적이면서도 미니멀하고 구상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 근작은 이 작가가 페인팅에 대한 여러 매력을 점검하거나 확인해나가는 흔적을 또한 흥미롭게 보여준다.
사실 작가들에게 화면은 일종의 마음이 투사되는 장이다. 동시에 모든 것들이 가능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결국 작가의 마음과 정신의 영토이기도 한 셈이다. 그 공간에 체스판, 장기판, 별모양의 놀이판, 농구대, 여행가방, 과녁, 주사위 등이 그려져있다. 일종의 놀이기구들이자 게임도구들이다. 그것들은 현결같이 유희적 측면과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장치들이다. 규범과 규칙이 작동하고 있고 그 주어진 틀 안에서 허용되는 길들을 끝까지 가야 하는 일종의 규칙과 범주가 작동되고 있는 상항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모두 삶에서 주어지는 여러 제도에 순응하며, 맹목적으로 살아간다. 동시에 그러한 과정 중에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더러 그러한 우연성은 돌연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 같은 화면 장치 역시 삶의 은유인 셈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임은 상대 편의 말들을 잡아 먹고 목표물, 영역을 행해서 돌진하는 한편 그것을 성취해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들어있다. 치열한 수싸움과 전략, 스릴과 좌절, 욕망과 분노, 유희와 짜릿함이 수시로 몸을 섞는다. 인생이나 게임이나 모두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상대방을 정복하고 목표물을 성취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동반하는데 그 안에는 쾌락과 유희 역시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알 수 없는 쓸쓸함, 슬픔 같은 것이 달라붙는다. 어쨌든 그 같은 무한 경쟁은 단지 게임이나 운동경기에 머물지 않고 이 자본주의사회가 작동되는 삶의 모든 틀 안에서 더욱 노골화된다. 산다는 것은 그 같은 경쟁구조에서 낙오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남을 이기고 넘어서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비정하고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흔히 인생을 게임에 비유하거나 장기판에 갖다붙이기도 한다.
삶 역시 정해진 규범이나 사회적 제도 안에서 작동된다. 그 안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그 틀 안으로 들어가 게임을 한다. 성공하기 위해, 실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 제도는 또한 우리들 존재를 끝없이 옧죄거나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성진민의 작업은 게임의 틀 안에 갇힌 자아의 초상이자 동시에 그 틀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한 징후적 발언이다. 어떤 징후에 대한 이미지화인 셈이다. 징후란 대개 정신 싱경증에서 육체적인 병으로 나타나며 이런 병에 대해 의사들은 의학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없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징후는 "억압되었던 것의 회귀"이다. 정신 분석은 정신 분석을 받는 환자로 하여금 징후를 의식적인 사고로 해석하여 그것을 해소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징후는 '무의식으로 부터 나온 암호화된 메시지'다. 생각해보면 이 징후는 우리의 정체성의 핵심이다. 따라서 징후를 보호하고 그것을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다.
성진민의 그림은 거대한 게임 같은 이 삶을 사는 여성으로서 지닌 억압들에 대해, 사회와 현실을 살아가면서 겪는 상처에 대한 무의식적인 징후의 발설이다. 삶에 대한 작가의 은유적 표현은 흥미롭다. 일단 게임에 들어선 이상 우리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회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게임이 작동되는 룰, 규칙들에 대해 반성적으로 성찰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끝까지 가면서도 지나간 과정들에 대한 반성과 회의가 수시로 교차하는 현기증을 견디며 나아가는 일이 삶이고 작업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작업이란 것도 능력껏 잘 그리고 시작한 것을 끝내는 것에 불과하다. 삶이 그렇고 게임이 그렇듯이 말이다.






Sung, Jin min
성 진민 (成 眞旼)
kielm@naver.com

학력
1998 University of pennsyvania (mixed media)
펜실베니아대학원 졸업(MFA)
1994 숙명여대 대학원 졸업
1990 숙명여대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0 갤러리 썬
2009 AW 컨벤션 센터
메이준 갤러리
1999 종로 갤러리
1994 나무 갤러리
1993 서경 갤러리



단체전
2012 we. now 인사아트센터
하얀 정글 (갤러리 연)
문화 예술 관광 옥션 (문신 갤러리)
2011 볼트갤러리 오픈기념전
Ithaca art festival (Merson park in New york)
작은 그림전 (갤러리 소꿉)
2010 LA art fair (LA convention center)
SOAF (코엑스 컨벤션홀)
Itaca festival (stewart park in New york)
스카이연갤러리 개관전(스카이연)
청담미술제
2009 대한 민국 최고작가 선정전 ( 서울시립 미술관)
돌아와 돌아온 (파란 네모 갤러리)
쑈쑈쑈 전 (믿음갤러리)
2008 윈도우전 (갤러리 썬)
2006 서울의 화두는 평양 (시립 미술관)
그 숲 에서의 하루(국립 국악원)
침묵의 경매전(화이트홀)
혼합재료전 (마이얼슨 갤러리)
판화전(어써로스 갤러리)
페인팅쇼 (마이얼슨갤러리)
2005 굿바이 굿모닝 (토탈미술관)
호호탕탕 일월영측 (시립미술관)
심연의노래 (국립국악원)
폴리오판화제(마이얼슨 갤러리)
2003 혼합재료전(마이얼슨 갤러리 필라델피아)
페인팅 그룹쇼(마이얼슨 갤러리)
유펜그룹쇼 (뉴욕갤러리,뉴욕)
art soup(토트홀 필라델피아)

경력
1997-8 Teaching assistant (University of pennsyvania)
2008-9 갤러리썬 아트디렉터
2010 드림아트 디렉터

현재
숙명여대. 안산대. 외래교수

수상
2009 대한 민국 최고작가상(미술과 비평)






EDUCATION

1998 University of pennsylvania dept of painting (MFA)
1994 Graduated sook myung women's univ
for graduate dept of painting(MFA)
1990 graduated sook myung women's univ
dept of painting (BFA)

SOLO SHOW

2010 Gallery sun
2009 AW Convention center
Mayjune gallery
1999 Jongro gallery
1994 Namu gallery
1993 Se kyung gallery

Group show

2012 We now (In sa art center)
White jungle (Gallery yean)
Art and culture auction (Moon shin gallery)
Togather in the world (pal le de seoul)
2011 Volt gallery open show
Ithaca art festival(Merson park in N.Y)
Small art show (Gallery so gup)
2010 LA art fair (LA convention center)U.S.A
SOAF(Koex convention center)seoul
Ithaca Festival(stewart park in new york)U.S.A
sky yeon opening show(sky yeon gallery)Seoul.korea
Chung dam art festival .Seoul. korea
2009 Korean artist award (Seoul National city Museum)Seoul.korea
come on, come on (blue square gallery)Seoul.Korea
show.show.show(mete eume gallery)Seoul.Korea
2008 window show(gallery sun)Seoul.Korea
2006 Seoul and phyang(seoul city Museum)Seoul.Korea
The day in the forest (national museum contempory art)Seoul.Korea
Silent Auction(philadelphia Whate hall)U.S.A
Painting show.(Philadelphia Myerson Hall)U.S.A
2005 Good bye.Good morning(Total contemporary art
Museum)Seoul.Korea
Hoho tang tang (Seoul national city Museum)
Song of image (Natiol museum of contemporary art Museum)
2003 Mixed media show(Myerson hall)U.S.A

Award

2010 Korea best artist award (art and criticism)Seoul.Korea


Mobil 82-10- 4114-5333
E-mail kielm@naver.com


함께하는 세상

함께하는 세상
한 해의 끝자락은 늘 아쉬워서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보람 만큼이나 우여곡절도 많았던 필자는 2012년 용의 해를 잘 보내고 희망찬 2013년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컬처오션의 큰 그림을 그려본다. 이제까지 앞만 보고 달려 온 세월에 주위를 살펴보는 여유와, 나누고 어루만져 온기를 느끼는 따스함을 실천하려 한다.
이러한 취지로 12월 26일 ~ 2013년 1월 4일까지 진행하는 기부전시 <함께하는 세상>전을 시작으로 매 분기별로 기부전시를 기획하였다.
이번 행사는 다문화 가족들의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중하며 한국문화와의 조화를 이루어 문화공생의 기틀을 이루고자 힘쓰는 (사)다문화연대와 갤러리 팔레드 서울, 컬처오션이 함께 작은 보탬이 되기 위해 기획하였고, 이 자선 전시를 통해 아이들에게는 다문화의 친근함을, 관객들에게는 편견 없이 모든 문화에는 동등한 가치의 독창성과 우수성이 존재함을 제시하고,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하고자 마련되었다.
또한 행사 기간 중에는 전시 뿐 아니라 12월 29일에는 다문화밴드의 공연이 있고, 내년 1월 3일에는 현악4중주와 모든(moden)의 공연이 있어 문화의 풍요를 한껏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험한 세상 헤쳐 나가 따뜻한 온기로 녹이고 꽃피우는 더불어 사는 삶,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해 작가와 매체, 갤러리, 기업의 후원이 결코 헛되지 않을 모두가 하나 되는 뜻 깊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필자가 근래 병원 신세를 지면서 새삼 느끼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건강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것이다. 늘 건강 하다고 자만하던 나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훌훌 털고 가슴을 활짝 피고 큰 계획을 세우며 심호흡을 해본다.
건강한 웃음을 되찾고 나누어 오롯이 컬처오션의 미래를 걱정하고 기도하는 많은 분들께 실망시키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고자 오늘도 힘차게 나아간다.
올 한해 컬처오션을 아껴주시고 지도 편달해 주신 많은 독자분들과 필자, 작가, 광고주, 컬처오션의 식구들께 지면 관계상 일일이 언급을 못하더라도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내년에 펼쳐질 컬처오션의 행보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야심찬 내일의 태양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 같이 갑시다!

권경애 뷰티과학





권경애 뷰티과학



생활환경의 변화와 여성들의 가치관 변화에 따라 미용관련 시장은 매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화장의 심리적 요인은 미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감의 추구, 자기개선의 실현 및 자아감각을 높이는 이상적인 이미지 추구에 있다.한국의 뷰티산업은 K-POP의 영향으로 세계는 물론 특히 중국의 관심이 대단히 높아 이는 또 다른 한류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세계미용기술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다. 21세기 젊은 신세대들에게 미용직업문화를 국제화시켜 세계 어디든지 미용인들이 함께 공유 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미용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한국의 전문적인 감각적 기술을 전달하고, 미용발전을 위한 다양한 교육사업을 통해 글로벌 인재양성을 목표로 한다.

Depending on the change in the living environment and women's perception of values, the beauty market has grown rapidly each year. The psychological factors of makeup consist not only as the mean to pursue beauty , but also seek the pursuit of self-gratification, the realization of self-improvement, and the improved self of ideal image. Due to the impact of the K-POP influence, South Korea's beauty industry became the major interest of the world, and China. This K-POP influence has been reflected as another Korean cultural influence, and with it, Korea has become the focus of the world beauty technology. By globalizing the culture of beauty occupations to the 21st new young generations, the professional beauty specialists, wherever in the world, can share the Korean technical skills used at the beauty industry work on-site, and for the improved development of beauty and through the various education initiatives, the growth of global talent is aimed as the objective.

㈜한백ITC 오복환대표의 미얀마 문화이야기




㈜한백ITC 오복환대표의 미얀마 문화이야기


-2012년11월19일 전 세계의 눈은 미얀마로 향해있었다-

18일 밤부터 거리의 곳곳에서 미국 성조기를 들고 다니는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UCC를 찍는 이들도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 한 것이다. 미얀마 양곤 공항 활주로에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이 도착하는 순간부터 미얀마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의 언론들은 “획기적인”, “역사적인”수식어를 쓰며 보도를 했다. 대통령보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더 유명할 정도로 폐쇄된 전체주의 국가였으나, 2010년에 민간 정부가 들어선 이래 조금씩 개혁 개방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세기 동안 군부 독재체제에 시달려온 미얀마는 2007년의 ‘샤프란 혁명’을 거치며 헌법 개정에 착수, 지난해 의회 구성과 민정 이양에 성공했다.그러나 여전히 미얀마 정부는 군사 독재 체제와 맥을 잇고 있고 여전히 전체주의, 권위주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서, 오바마는 자신의 방문이 이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18일에 태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오바마는, 자신의 미얀마 방문이 이 나라의 현 정부를 승인하는 게 아니라 민주 사회로 탈바꿈하고 있는 노력을 높이 산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오바마는 인권과 정치적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로 변모하며 개방의 문을 여는 미얀마의 '국민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했다. 오바마의 미얀마 방문에는 그 성격을 규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하나 더 있다. 이 나라를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 이 나라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미얀마? 아니면 전통적으로 불러온 대로 버마로 불러야 할까? 이다. 미얀마의 정식 국명은 미얀마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이다. 예전에 미얀마는 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렇게 알려진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선택한 게 아니다.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종족이 바마르(Bamar)였는데, 여기서 버마라는 이름이 나왔다. 한편 이 종족을 좀 더 격식을 갖추어 포괄적으로 부르는 말이 미얀마였다고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이름이 함께 쓰였는데, 외국에 버마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 나라를 식민지로 다스린 영국 덕분이었다. 19세기에 이 나라를 침략한 영국은 20세기 중엽까지 영국령 인도의 일부로 삼아 식민지 지배를 유지했는데, 그 때 이 나라를 버마로 부르고 소개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48년에 독립하면서 새로 선 나라도 버마연방(Union of Burma)이었다. 1989년에 버마의 군사 정부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붙은 영어식 지명들을 고유한 말로 바꾸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나라 이름도 미얀마로 고쳤다. 정식 이름은 버마연방에서 미얀마연방이 되었다(2008년에는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다시 고침). 그러나 미얀마의 반체제 세력 일부는 새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름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당성을 갖지 못한 군사 독재 정부가 정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미얀마가 나라 이름을 바꾼 뒤 국제 사회도 이 나라의 이름을 둘러싸고 혼란을 겪었다. 영어권을 중심으로 한 서구 국가 일부는 새 이름 미얀마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써 온 버마를 고집했으며, 많은 서구 언론도 꼭 버마라고 쓴다. 이 역시 새 이름이 민주적 방식으로 국민의 합의를 얻어 결정된 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현재 미얀마를 옛 이름 버마로 부르기를 고집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그리고 미얀마의 식민국이었던 영국 등이다. 미국 CIA의 세계 국가 정보에도 버마로 되어 있다. 영문 위키피디아도 미얀마를 치면 버마라는 표제어로 연결된다. 영국 방송사 BBC도 버마를 쓰며, 인권 단체인 국제인권감시단(Human Rights Watch)도 그렇다.그러나 유엔은 이 나라의 공식 이름인 미얀마를 사용한다. 위 나라를 제외한 많은 나라가 국명 미얀마를 인정하고 그렇게 불러 준다. 웹 주소에 쓰이는 국가 식별 코드 역시 .mm 이다. 엠네스티 인터내셔널도 미얀마라는 이름을 쓰고, 언론사로는 <뉴욕 타임스>가 초기인 1989년부터, AP가 1998년부터, <파이낸셜 타임스>는 올해 1월부터 미얀마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한글 위키에 따르면 한국도 1991년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얀마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한글 위키는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대한민국의 언론사인 경향신문은 공개적으로 미얀마 표현을 영구히 쓰지 않을 것과 그 대체표현은 '버마'임을 선언하였고"라고 하였으나, 그 이후의 <경향신문> 기사 검색을 해 보면 미얀마라는 말이 흔하게 나온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 나라를 버마라고 부르지만, 당사자 앞에서는 말조심을 한다. 작년 12월에 미얀마를 방문했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얀마를 가리킬 필요가 있을 때 '이 나라(this country)'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미얀마 정부가 자기네 나라 이름에 국가 자존심을 걸기 때문이다. 2011년에 미얀마 외무장관은 "당신들은 이게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얀마'라는 국명 사용은 우리나라의 국가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다른 나라를 올바른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은 그 나라를 평등한 태도로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19일)에 미얀마 대통령 테인 세인과 회담을 마치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미얀마'라는 이름을 썼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엄청난 사상자를 낸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양곤대학 연설에서는 버마라고 표현 했고 아웅산 수치여사의 자택에서도 버마로 불렀다. 현지 미안마타임스는 오바마의 이름을 미얀마의 옛 이름인 버마와 합성해 ‘오-버마(O-Burma)’라는 헤드라인을 1면에 실었다. 미국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한 것이 미얀마 군사정부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 방문에 앞서 방콕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나의 방문이 버마 정부 지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백ITC 대표 오복환 (010-3355-4795)-미얀마 관련 자문을 해드립니다.

Hanbaek ITC Lee Bok Hwan CEO's Myanmar Cultural Story


-On November 19, 2012, the world attention focused on Myanmar.


Young people from all corners of the streets carrying the American flags at night of 18th day could easily seen, and occasionally those taking UCC caught my eye.

The incumbent US President visited Myanmar first time in the history.

The moment the US presidential plane Air Force landed on Myanmar Yangon airport runway, Myanmar began its new history. The United States press reported "breakthrough", "Historical" keywords in newspaper. Although Myanmar was a closed totalitarian state such that Mrs. Aung San Suu Kyi was enough to be more famous than the US president, but since the civilian government took office in 2010, small reform movement was noted. Having undergone a half century under the military dictatorship, Myanmar went through the "Saffron Revolution", and last year, it embarked on constitutional revision and succed in building civil administration.

However, because Myanmar government still has the military dictator system and relationship, and continues to show strong totalitarian, and authoritarian characteristic, Obama was careful to avoid in granting a political legitimacy toward its government during the Myanmar visit. At a Thailand press conference on the 18th day, prior to visiting Myanmar, Obama explained, his visit to Myanmar does not signifies the approval of its current government, but highly respects its efforts to transform into democratic society. Obama sent a celebration message to the people of Myanmar for their efforts in transforming Myanmar into a country that respect human rights and political freedom.

Obama's Myanmar visit, due to its nature of regulation. posed a difficult issue. How should this country be called? Should this country call Myanmar as its government argued? or Should it be called Burma as its traditional name?
Myanmar's official country name is Republic of Myanmar Union. In the past, Myanmar was called Burma. The country name Myanmar wasn't its people's choice. Consisting of several races, Myanmar had the central race called Barmar and the name Burma originated from it. On the other hand, when this race was more formally and comprehensively called, it was known as Myanmar. Although this country used its two names, but thanks to the British colonialism, this country became widely known as Burma. When the British invaded it in the 19th century, this country became under the colonial rule as part of the British India region, and was introduced as "Burma". For this reason, in its independence on 1948, the new country was named "Burma Union". In 1989, Burma's military government, during the task of replacing its British nomination to a traditional name, changed its country name to Myanmar. The formal name changed from Burma Union to Republic of Myanmar. (In 2008, it was renamed to Republic of Myanmar Union.) However, Myanmar's anti-government forces did not accept the name. It was not due to its bad name, but its unacceptance of legitimate country name given by government ruled by the military dictatorship.

After changing the country name to Myanmar, the international community was surrounded with confusion. Mainly English-speaking countries, including some western countries, didn't recognize the new name of Myanmar and insisted on using the previous country name Burma. So did the many western media. This, of course, was due to not obtaining the agreed country name in democratic manner.
Currently, the countries that insist on referring the country name as its old name Burma are the United States, Canada, New Zealand, and Myanmar's former colonizing country British. The US CIA's worldwide country database also name it as Burma. Even in English Wikipedia, when searched for Myanmar, the search result shows Burma. British broadcasting company BBC. as well as the human right group, International Human Rights Watch, use its previous name Burma.

However, the UN uses its formal name Myanmar. Apart from above mentioned countries, several other countries use the formal name Myanmar. The website address is also coded .mm. Amnesty International also recognized the name as Myanmar, and as for the press, started using the name since 1989, AP used it from 1998, and started using it since January of this year.
According Korean Wikipedia, Korea also started using Myanmar since 1991 under the Joint Commission of Foreign Name's decision. Although Korean Wikipedia stated, "In 2007, due to Myanmar's anti-government protest influence, Korea's media "Trend Newspaper (Kyunhyang)" will permanently not use the name Myanmar in the public and stated to use the alternative name "Burma", the newspaper search on commonly showed Myanmar.
The United States officially called the country Burma, but when talking with the country's officials, they are careful of the country name. When Secretary of State Hillary Clinton visited Myanmar last December, she referenced the word "This country" as opposed to Myanmar. Because Myanmar government puts its national pride within its country name, she avoided mentioning the country's name. In 2011, Myanmar foreign minister recalled, "Maybe you think this is a minor problem, 'Myanmar' stakes on its national identity on the country name. Correctly mentioning other country's name is showing respect to that country in equitable term."
On the 19th, after meeting with Myanmar President Thein Sein, President Obama used the word "Myanmar" in front of the reporters. This was the first time the President of United State mentioned "Myanmar". But Burma was mentioned at the Mrs. Daw Aung San home and during the Myanmar's democracy movement speech at the holy land of Yangon University, which triggered tremendous amounts of casualties in Myanmar's history. Local Myanmar Times published the word "O-Burma" as the headline of its front page, combining the word Obama and Myanmar's former name "Burma". This headline is clear reflection that "The US president visiting Myanmar isn't approving of the Myanmar's military government". At the press conference in Bangkok before visiting Myanmar, President Obama stated, "My visit does not mean that I am in support of the Burmese government."

Hanbaek ITC CEO Oh Bok Hwan (Phone: 010-3355-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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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을 없애는 자연의 힘 - 허브허 한방황토볼 원적외선 찜질케어




[힐링케어]
통증을 없애는 자연의 힘 - 허브허 한방황토볼 원적외선 찜질케어


-아픈 곳을 만드는 현대인의 생활
최근, 과학과 산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생활은 편리해지고, 의식주는 보다 풍족해졌으나 사람들은 오히려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가 힘든 새로운 질병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인의 생활 곳곳에는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잘 먹고 잘사는 것인가?’라는 의문들로 가득 채워졌다.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된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은 여러 연구와 노력 끝에 결론지어졌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간단한 해답이었다. 자연은 또 다른 자연인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조금도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고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온통 아스팔트와 회백색의 시멘트로 채워졌던 도심에는 자연 녹지가 형성되고 어디를 가나 자연과 함께 뛰고 걷고 호흡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 것, 온통 패스트푸드와 환경호르몬으로 가득 찼던 식탁에 유기농 채소 등을 비롯한 건강 식단들로 대체되는 것, 질병의 종류와 상태에 집중되어 치료하던 양의학 대신 사람(체질) 중심의 예방의학인 대체요법에 관심이 커가고 있는 것 등등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연에 닿는 방법인 허브허테라피
허브허 한방황토볼의 원적외선 찜질케어가 바로 자연의 힘을 모두어 내 몸을 건강하게 하는 활력 증진 방법으로 각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공하거나 첨가물이 없는 100% 생황토 그대로인 허브허 한방 황토볼의 자연온열과 원적외선은 인체 깊숙이 침투하여 대사효소를 자극하고 세포내 수분의 미세한 진동을 극대화하여 신진대사의 활성을 적극적으로 도모하며 이를 통하여 대부분의 불균형 요소들을 단번에 해소하게 된다. 온열과 혈점 자극, 순환을 통하여 통증을 해소하고 정상화 되도록 도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데 매우 유효한 작용을 하게 된다. 사용자들의 감사 편지를 보면 오십견의 아픈 팔을 쉽게 올릴 수 있게 된다든지 어깨통증 허리통증 등이 해소되었다는 이야기는 물론이고 자연스러운 온열감에 매료될 뿐만 아니라 통증을 해소하는데 탁월하다는데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동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연의 힘은 참으로 경이롭고 허브허 한방황토볼은 자연 이외에는 아무것도 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온열기기나 찜질기는 너무나 많지만 전기적 또는 화학적 요소가 전혀 없고 굽거나 무엇인가 섞어 가공되지 않은 유일한 온열 찜질 제품이기 때문에 허브허 한방황토볼의 특별함이 돋보이는 것이고 온전한 자연의 힘이 우리 몸에 전달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어떻게 반응하나
허브허테라피를 받게 되면 우리 몸은 크게 3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첫째로는 원적외선을 통한 대사량의 변화 반응이고, 둘째는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온열테라피에 대한 반응이며, 셋째는 각각의 증상별 한방허브들의 약리작용에 대한 반응이다.

-원적외선에 반응하는 우리의 몸
우리의 몸은 매우 다양하고 많은 효소들의 활동을 통해 기초 기능이 수행되고 있다. 이러한 효소들은 각각 신체의 균형과 체온, 영양 등 제공되는 조건에 따라 그 활성의 차이가 크게 된다. 몸이 냉하거나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부족하거나 운동 부족, 수면 부족 등으로 활성의 정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대사효소의 활성을 극대화하는 요소 중에 대표적인 것이 원적외선의 작용이다. 원적외선이 인체에 조사되면 대사효소의 활성이 크게 증진되고 이에 따라 신진대사의 촉진이 이루어지게 된다. 세포와 기관에 산소와 영양의 공급이 증대되고 혈류의 순행이 최적화되며 이들의 체내 활동의 부산물인 노폐물 등의 운반과 배출이 원활해져 심신의 컨디션에 균형을 제공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정체로 인한 비만을 해소하는 작용을 하며 피부 나이를 젊게 하는 역할과 근육 등 인체기관의 활성을 도모하여 피로감을 줄이고 활력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이러한 반응은 인체의 기능을 회복하게하고 그 회복된 기능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온열테라피에 반응하는 우리의 몸
우리의 몸은 60~7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내 수분은 각각 혈액, 림프액, 세포조직액 등의 형태로 존재하며 끊임없이 순환을 거듭하여 우리 몸의 곳곳을 순행하고 있다. 이 체내 수분의 순환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 몸은 부종, 저체온, 노폐물?지방?셀룰라이트의 축적, 비만, 통증 등을 경험하게 된다. 몸에 이러한 이상이 왔을 때 우리는 운동, 사우나, 약물요법, 마사지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여 순환을 촉진시키려 한다. 이런 여러 가지 방법들 중에 허브허테라피는 온열 황토를 통하여 외부열에너지를 우리 몸에 흡수시키는 방법을 통해 순환을 촉진시킨다.
허브허 온열 마사지를 통해 외부의 열이 우리 몸 안으로 흡수되면 찬 기운의 체온이 데워지면서 정체가 해소되고 전체적인 순환이 촉진되어 몸 안에서 수승화강(水乘火降)의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를 통하여 전신의 신진대사가 촉진되어 수족냉증, 복부비만, 통증, 노폐물 등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한방허브의 약리작용에 반응하는 우리의 몸
허브(Herb)란 독특한 향을 지닌 약용식물을 통칭한다. 허브의 약용성분들을 체내에 흡수시키는 방법은 먹거나, 바르거나, 향을 맡는 등 다양하다. 허브허테라피는 4가지 증상별(슬리밍, 통증, 이궁, 활력)로 블랜딩한 한방허브를 피부에 문지르고, 그 과정에서 피부를 통한 흡수가 이루어지거나 허브의 향이 각각 코와 폐로 유입되는 방법인 호흡으로 우리 몸에 흡수된다.

김연주 피부과학 연구소
Tel. 02 _ 6747 _ 8500
www.herbher.kr

SPACE SPACE 유코 시라이시(Yuko Shiraishi, Japanese, b.1956)

▲Here We Go 2012 oil on canvas 214 x 193.5 cm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Look Up 2012 oil on canvas 183 x 167.5 cm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Journey 2011 oil on canvas 167.5 x 152.5 cm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Introduction 2012 oil on canvas 137 x 122 cm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SPACE SPACE
유코 시라이시(Yuko Shiraishi, Japanese, b.1956)
2012. 11. 20(화) _ 2012. 12. 23(일)
Tel. 02 _ 3210 _ 9885
www.kukjegallery.com

전시개요
국제갤러리는 오는 11월 20일부터 12월 23일까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유코 시라이시(Yuko Shiraishi)의 개인전 를 개최한다. 국내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시라이시의 개인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던 색채와 공간의 개인적 심상에 기반한 시각적 연구와 실험적이고 건축적인 접근 태도를 보여준다. 주요 작품으로는 빛과 공간을 매개로 상상력의 실제적 구현을 보여주는 구성된 설치작업과 작가의 직관력을 시적으로 읽어볼 수 있는 일련의 회화 작품들이 있다. 이번 전시는 상이한 양극단의 세계관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 시라이시만의 무한의 상상력을 통해 실재하는 현상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작품소개
시라이시는 우주, 과학, 실존, 원형과 같은 실재하면서도 근본적인 작품 주제를 탐구해왔다. 나아가 그 접근은 인류에 기반을 두기보다 무한의 상상력을 통한 시공간의 장대한 스펙트럼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설치작품 는 17세기 일본 전통 다실의 특징에 따른 공간적인 변역을 통해 물리적인 벽이나 두터운 기둥 너머의 상상력을 기대한다. 이 공간의 크기는 일본의 평방 단위를 지칭하는 다다미 넉장 반 크기의 면적으로 한 사람이 머물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로 하는 크기 및 공간의 최소 단위의 물리적인 접근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하나의 공간에서 몸을 일으키는 즉시 필요로 하는 모든 공간을 가지게 된다”는 작가의 표현과 같이 삶에서 실재하는 조건이 철학적인 사유를 통해 공간감적 상상력으로 향하는 이 작품은 마치 우주선 디자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존을 위한 목적과 함께 시공간의 초월을 지향하는 두 가지의 상이하지만 연결성을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하늘의 인공위성과 연결된 듯이 연출된 원형의 빛 기둥은 이 공간의 중심으로부터 바닥을 관통하여 천정을 너머 향한다. 이는 공상 과학 소설의 거장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의 소설『낙원의 샘(The Fountains of Paradise)』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우주 엘리베이터, 즉 지상에서 우주까지 수만 킬로미터를 연결해 주는 공간을 실제적인 사례 연구들을 통해 조형적으로 재현해냈다. 작품의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전통 다실은 “공간”과 “우주”가 겹쳐지는 상상의 통로로써 형상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로와 세로의 철학적 사유의 개념적인 접근을 통해 바닥을 공간으로 상정하여 시작되고 생성되는 다양한 실재, 마치 건물이 지어지고 지하가 조성되는 것 같은 무형의 공간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자연의 근본적인 현상과도 소통될 수 있다.
시라이시는 이번 전시에서 설치작업과 함께 일련의 추상 회화를 선보인다. 그녀는 색면회화나 단색화의 형식적 접근을 시작으로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은 기하학적 형상의 중첩 혹은 단색의 수평선이 사유하는 조형적 요소의 개념적인 접근들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전시장에 채워진 색면의 환영과 작가가 수집한 일상의 색채에 따른 개인적 심상의 표현은 사회적으로 약속된 동일한 색일지라도 문화, 역사, 개인의 정서 및 환경에 따라 다양한 인지와 사례가 있음을 함축한다. 역으로, 이러한 현상을 통해 우리가 개인적으로 인식하는 색면은 사회적 합의에 따른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개인에게는 감성에 관한 기억으로 남겨지는 것과 같다.
뿐만 아니라 평면을 기반으로 작품 세계를 지속해 온 작가의 회화는 철저히 시지각적인 탐구로써의 접근을 지니고 있다. 조형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이 지니고 있는 실재하지 않는 환영의 범주와 일상에서 해당 요소들이 전달하는 무언의 직관적인 소통 언어, 곧 수평이 주는 평화로움 혹은 수직이 주는 권위적인 심리적 요소는 마치 음악이 전달하는 것과 같은 작가 개인의 시적인 언어로 귀결된다. 환영의 의미를 지향하지만 이는 개인의 경험 축적을 통한 실재에 근간한 시라이시의 작품세계는 평면이 지니는 너머의 가능성과 다양한 우주적 세계관에 대한 타진을 담고 있다.

작가소개 및 작품세계
시라이시는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은 추상회화를 주로 작업해왔으며 1980-90년대에는 캔버스 위에 두 가지 색을 배치함으로써 이들간의 치열한 상호관계를 빛과 톤의 균형으로 보여주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캔버스를 벽 속에 매립하여 회화의 면과 벽의 표면이 균일하도록 설치하거나, 입체적인 색면큐브를 벽에서 돌출되도록 설치하는 등 평면회화를 넘어서는 건축적 실험을 시도해왔다. 이후 그녀의 작품은 색채와 분할된 벽, 의자 등을 이용해 관람자의 눈높이를 이동시키며 공간을 유희하는 방식으로 점차 전개되었다. 기존의 미니멀리즘 회화가 보여주는 매끈한 표면과 물성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태도와는 달리, 시라이시는 캔버스의 색면과 설치되는 공간, 또 이를 관람하는 사람들의 관계적 측면을 보다 중요시하였다. 이후 작가는 타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런던 BBC 방송국, 리젠트 운하, 독일의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일본과 런던 소재의 병원 같은 다양한 장소에서 색면회화를 공공 프로젝트로 확장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미술과 건축의 관계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스트 미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서구 현대미술에서 점차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반(反)모더니스트적 회화 방식과 건축 공간의 물리적인 확장, 변형을 통한 심리적인 반전이라는 중요한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유코 시라이시(b.1956)는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1988년 런던의 에드워드 토타 갤러리의 첫 번째 개인전 이후 전세계 유수의 갤러리 및 미술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독일 빌헬름 학 미술관(2007), 영국 리즈 시립미술관, 아일랜드 크로포드 아트 갤러리(2003), 독일 비스바덴 미술관(2002), 영국 테이트 미술관 세인트 이브스(1999), 부다페스트 에른스트 미술관(1998) 등이 있으며, 뉴욕의 레오나르드 허튼 갤러리(2006), 런던의 아넬리 주다 파인 아트(2009), 스위스 바젤의 지젤 린더 갤러리(2010), 도쿄 시게루 요코타 갤러리(2011)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주요 소장처로는 영국예술진흥원, 영국문화원,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헝가리 루드비히 미술관, 일본 오사카 국립미술관, 스위스 막스빌-조르주 반통엘루 재단 등이 있다.


About the Exhibition
Kukje Gallery is pleased to present SpaceSpace, a solo exhibition by the London-based artist Yuko Shiraishi. In her first solo exhibitionin Korea, Shirashi highlights her ongoing interest in space and color as well as her exploration of architecture; the artist expertly combines these disparate interests in her paintings and installations.

Shiraishi works primarily as an abstract painter, exploring themes initially set forth in Minimalism. It was this formal vocabulary that formed the basis for her practice in the 1980s to 1990s, a major period wherein she juxtaposed colors on canvas to demonstrate the reciprocal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tones by balancing light and hue. Beginning in the late 1990s, Shiraishi began to conduct various architectural experiments, exploring the intersection of color and plane. Since then her practice has evolved to include multimedia installations that activate space using both her attuned palette and subtle architectural interventions. While conventional minimalist paintings tend to focus on sleek finish and materiality, Shiraishi emphasizes the resonance between bodies of color and the relationship of the work to its surrounding space. This approach allows the artist to engage directly with the viewer

For this solo exhibition, the artist presents recent paintings as well as a major installation. The paintings contain overlapping geometric forms or horizontal monochromatic lines that cut across the canvas; by using a rectangular rather than a square canvas she clearly emphasizes these dynamic abstract forms. In a continuation of the artist’s interests, the works explore concepts of space and the power of abstract line combined with color.

The ambitious architectural installation that Shiraishi creates in the exhibition draws on her sensitive mastery of line and color. The ephemeral installation brilliantly captures the volume of an architectural form while remaining a meditation on light and space. The work, titled Space Elevator Tea House, is made from stainless steel tubes and plexiglass, creating an elegant and ghostly construction defined by profoundly spare lines reminiscent of askeleton. The building replicates an early 17th-century traditional Japanese Tea House but also evokes a space age vehicle for travel. Inspiration for the project came from ArthurC. Clarke’s novel The Fountains of Paradise in which the transportation of people and objects into space is made possible on a rigid metal ribbon. (NASA scientists are currently seriously exploring space elevators as a mass-transit system for the next century.)Shiraishi has expanded the idea to incorporate architecture, as she considers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ity and space?and between Japanese tradition and Western science. The work, installed in a darkened room with dramatic lighting beneath the teahouse, creates a profound atmosphere of contemplation and possibility.

유쿄 시라이시,Yuko Shiraishi

▲Look Up 2012 oil on canvas 183 x 167.5 cm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Here We Go 2012 oil on canvas 214 x 193.5 cm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Space Elevator Tea House 2009 wood, painted and stainless steel tubing, electro-luminescent cable, perspex and fluorescent lights 312 x 330 x 300 cm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유쿄 시라이시 Yuko Shiraishi (b. 1956)

1956 일본, 도쿄 출생
1974 ? 76 캐나다, 밴쿠버 거주
현재 런던에서 거주 및 작품활동



학 력
1981 - 82 첼시 스쿨 오브 아트, MA, 석사, 런던, 영국
1978 - 81 첼시 스쿨 오브 아트, BA, 학사, 런던, 영국
1994 저우드 페인팅 프라이즈 수상, 로얄 스코티쉬 아카데미, 에딘버러, 스코틀랜드
&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 런던


개인전
2012 SpaceSpace,KukjeGallery,서울
2011 Specimen, Shigeru Yokota Gallery, 도쿄
2010 Placetobe,GalerieGiseleLinder,바젤, 스위스
Phil Coy & Yuko Shiraishi, The Russian Club Gallery, 런던
2009 SpaceSpace,AnnelyJudaFineArt,런던
2008 Projects with Architecture 2001 ? 2008, Peer, 런던
2007- 08 even if love (with Birgitta Weimer), Kunstverein Ludwigshafen and Wilhelm-Hack-
Museum, 루트비히스하펜, 독일
2007 YukoShiraishiContact,GalerieDorotheaVanderKoren,마인츠, 독일
2006 A Way of Seeing Josef Albers, Yuko Shiraishi, Leonard Hutton Galleries, 뉴욕
Above and Below (with Werner Haypeter), Galerie Konig, 하나우, 독일/Galerie
Konstruktiv Tendens, 스톡홀름, 스웨덴
8 x 2 (with Katsuhito Nishikawa), Gesellschaft f?r Kunst und Gestaltung, 본, 독일
8 Japanese Colours (with Katsuhito Nishikawa), Galerie Friedrich M?ller,
프랑크푸르트, 독일

Yuko Shiraishi (b. 1956)

Lives and works in London


1956 Born Tokyo
1974 ? 76 LivedinVancouver,Canada
1978 ? 81 ChelseaSchoolofArt,BA,London
1981 ? 82 ChelseaSchoolofArt,MA,London
1994 Jerwood Painting Prize, Royal Scottish Academy, Edinburgh, Scotland &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SELECTED ONE PERSON EXHIBITIONS
2012 SpaceSpace,KukjeGallery,Seoul,Korea
2011 Specimen,ShigeruYokotaGallery,TPH,Tokyo
2010 Placetobe,GalerieGiseleLinder,Basel
The Russian Club Gallery, London (with Phil Coy)
2009 SpaceSpace,AnnelyJudaFineArt,London
2008 ProjectswithArchitecture2001-2008,Peer,London
2007 ? 08 eveniflove,KunstvereinLudwigshafenandWilhelm-Hack-Museum(withBirgittaWeimer)
2007 YukoShiraishiContact,GalerieDorotheavanderKoelen,Mainz
2006 AWayofSeeing-JosefAlbers,YukoShiraishi,LeonardHuttonGalleries,
New York
AboveandBelow,GalerieKonig,Hanau,Germany(withWernerHaypeter)
Konstruktiv Tendens, Stockholm
8x2,Gesellschaftf?rKunstundGestaltung,Bonn,Germany(withKatsuhito
Nishikawa)
8 Japanese Colours, Galerie Friedrich M?ller, Frankfurt, Germany (with
Katsuhito Nishikawa).

첸 웬링,Chen Wenling



웃음의 사회학적 상상력


윤진섭(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호남대 교수)

Ⅰ.
의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어떤 계기에 맞닥뜨릴 때 마다 변신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가령, 2009년에 발표한 <당신이 보는 것은 반드시 진실이 아니다(What you see is not Necessarily true)>는 미국의 금융위기에 버나드 매도프(Bernard Madoff)라는 희대의 금융사기꾼이 저지른 사기행각이 겹쳐 세상을 놀라게 한 시기에 탄생했다. 조이아트센터(Joyart Center)에서 발표한 이 대작은 첸의 이력에서 분기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넓은 전시장의 한 가운데 설치된 이 거대한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성난 황소에 치받인 버나드 매도프가 벽에 부딪히는 장면, 둘째는 매도프를 향해 허공을 날아가는 황소의 몸통 부분,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황소의 꽁무니에서 나온 흰 분사물이 전시장 바닥에 커다랗게 엉겨 붙은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이 독립된 세 부분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돼 스펙타클한 장관을 연출한다.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은 미국 발(發) 뉴스를 통해 이 사기극의 내용을 접한 사람은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즉, 황소는 뉴욕의 월가에 있는 황소 청동 조각상(The Charging Bull)이며, 치받는 장면은 매도프에 사기를 당한 투자자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의미가 덧붙여져 있다. 그것은 곧 신자유주의의 발신지인 미국에 대한 제3세계의 분노가 아닐까? 지금 막 성난 황소는 땅의 표면을 뚫고 허공을 날아가 매도프의 엉덩이에 날카로운 뿔을 들이박고 있는 중이다. 고통에 일그러진 매도프의 얼굴 표정에 눈을 부릅뜬 황소의 모습과, 황소의 엉덩이에서 뿜어 나오는 흰 분사물이 겹쳐 관객들에게 웃음과 함께 커다란 충격을 선사한다. 파이버글라스에 채색을 가한 이 작품은 중국 화단에 조각가로서 첸 웬링의 역량을 깊이 각인시켰다. 초사실적(hyper realistic) 기법과 풍자를 통한 사회비판가로서 첸 웬링의 위치를 굳건히 한 대작이었던 것이다.
미국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작품은 하얀 분사물을 내뿜으며 ‘자유의 여신상’을 들이받는 황소를 묘사한 작품()(110x50x106cm, 2009)이다. 이 작품에서 돌진하는 황소의 힘에 충격을 받은 자유의 여신은 허리가 휠 정도로 휘청거린다. 제트기처럼 흰색 분사물을 내뿜으며 허공을 나는 황소의 등에 올라타 거세게 뿔을 부여잡고 있는 남자를 묘사한 <탈출방법(How to Escape)>은 그런 상황에 걸맞지 않게 희극적인 작품이다. 이런 유(類)의 작업은 첸 웬링 특유의 초(超) 현실적(hyper real) 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코믹한 상황을 통해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분노를 촉발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통해 관객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것을 권고한다. 그것은 어쩌면 정치처럼 사회를 개조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지니지 못한 예술의 무기력에 대한 첸의 자조일 수도 있지만, 대중의 잠재적 의식을 끌어올려 각성시킬 수 있는 예술에 거는 그의 기대일런지도 모른다.


Ⅱ. 첸 웬링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에서 소재를 끌어오고 있다. 그의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돼지, 소, 물고기는 물론, 매화나 산수와 같은 소재들은 서유기(西遊記)를 비롯하여 <山海經>과 같은 고전이나 중국의 전통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은 기이하게 일그러져 있으며, 때론 희극적이기 조차 하다. 뿐만 아니라 그가 다루는 동물들 역시 <산해경>에 등장하는 것처럼 반인반수(半人半獸)인 경우가 많다. 즉,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라든지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인 경우가 허다하다. 가령, <환상적 이미지(Fantastic Image)>(185x99x86cm, 브론즈, 2006)는 두 다리로 버티고 서 있는 남자를 묘사한 작품인데, 몸통과 얼굴이 붙어있는 기이한 모습은 <산해경>에 나오는 이상한 동물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현실을 초월한 세계는 <멋진 차와 예쁜 소녀(Handsome Car and Pretty Girl)>(220x390x210cm, Painted Fiberglass, 2008)에 등장하는 인간과 동물의 얼굴을 결합한 괴상한 차의 모습이나, <낭만적 여행(Romantic Journey)>(73x35x26cm, 청동, 2005)에 나오는 몸은 가슴이 풍만한 여자이나 머리는 물고기인 기이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오성홍기(五星紅旗)에서 보듯이 붉은 색은 가장 중국적인 색으로 간주된다. 장이머(張藝謀) 감독의 <붉은 수수밭>에서 보듯이, 외국인의 눈에 중국은 곧 붉은 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붉은 색은 가장 강하게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있는 색이며 ‘중화(中華)’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색으로 간주된다. 이는 첸 웬링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 역시 많은 현대 미술가들이 그렇듯이 드러내 놓고 붉은 색을 사용한다.
<붉은 추억(Red Memory)> 시리즈는 첸 웬링의 자전적 작품이자 중국의 상징인 붉은 색에 중국인 특유의 낙천적인 웃음을 결합한 대표적인 조각이다. 벌거벗은 소년들의 천진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시리즈는 첸 웬링의 유년기의 추억에서 유래한다. 시골 마을의 몰락한 지주계급 출신인 첸은 어렸을 적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새집을 찾거나 친구들과 물싸움을 하며 자연에서 뛰놀던 정겨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유년시절의 말더듬 증세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고, 그러한 경멸과 놀림은 급기야 마음속에 분노를 쌓는 기제가 되었다. 분노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래에 그림(graffiti)을 그리거나 흙으로 인형을 빚는 일이었다. 그는 행복감에 젖어 그 일을 했고, 예술은 점차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다. 분노와 함께 저하된 자존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인 첸의 예술은 그렇게 서서히 그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Ⅲ. 자세히 보면 첸 웬링의 어떤 작품들-예컨대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인데-에서는 마음속에서 이는 분노가 보인다. 그러나 매도프를 향해 질주하는 황소의 부릅뜬 눈에서 느낄 수 있는 분노는 첸의 분노라기보다는 약자들의 분노이다. 그것은 개인의 분노라기보다는 사회의 분노이며, 정의를 위한 민중의 외침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년기의 정신적 외상(trauma)을 간직한 그에게 있어서 분노를 직설적으로 촉발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에 그는 다양한 장치들을 동원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알레고리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수사법이다. 그는 주로 동물의 모습을 통해 인간세계의 모순과 탐욕을 통렬히 풍자한다. 돈에 대한 인간의 맹목적 숭배와 미에 대한 여인들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이 돼지의 모습을 통해 비춰진다. 그의 작품에서 동물은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예컨대 탐스러운 유방을 만들기 위해 가슴에 주사기를 꽂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욕망의 화신인 돼지로 묘사된다().
컨셉추얼 아트와 뉴미디어 아트,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활용하여 작업을 풀어가는 첸 웬링은 매번 색다른 작업을 시도한다. 소재와 제재(題材)는 물론이고 재료와 기법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은 첸 웬링 작업의 기초를 이룬다. 작은 스케치 북을 가지고 다니는 그는 호기심을 끄는 장면이나 사물이 있으면 늘 메모나 드로잉을 한다.
핀갤러리에서 열린 첸 웬링의 이번 개인전에 각별히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다. 친구의 고향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폐선(廢船)을 해체하여 그 부품들로 설치작품을 만든 것이다. 첸은 낡고 녹슨 배의 기관을 중심으로 각종 부품들을 구불구불 연결하여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품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매화나무를 연상시켰다. 그 긴 가지 끝에 쇠로 만든 상어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그것이 내 눈에는 마치 벽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운 상어가 매화나무를 토해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첸 웬링에게 전통이 살아있었던 것이다.

Dialogue between Wonil Rhee and Wenling Chen


? Date: Sep 4, 2009

Won-il Rhee:
You started to produce “Red Boy” series in the late 1990s, followed by “Happy Life”,
“Valiant Struggle”,“China Scene”, “God of Materialism”, and for now you take inspirations from the Wall Street golden bull and Bernard Madoff. All these animals symbolizes some qualities of mankind. What impels you continuously to change along your road?

Wenling Chen:
The various animal images appeared in my works serve as symbols or metaphors of some human mental condition in consumption times, such as expansion, inflation, violence, desire, greed, and alienation. The “Red Boy” series is created when I was in my hometown Xianmen, which is a comparatively closed environment.
As a mirror of my childhood, this series reflected my genuine qualities in my childhood, represented my sentimental attachment to my childhood, and became the turning point of my art career. It was the “Red Boy” that took me to the track of contemporary art.

Won-il Rhee:
I noticed a huge red photography work concerning a pig head feast in your studio. Does this sort of local culture have a great impact on your “Happy Life” and “Valiant Struggle” series?

Wenling Chen:
I do acknowledge the influence that grass-root folklore had on me, however, I’m still not a regionalism artist. I always believe that over-emphasizing nationalism is narrow nationalism. Extreme nationalization and extreme westernization are the two trends which will result in difficulty in reading and reduction of audience. I strive to mingle nationality, internationality, popularity, and elitism into my works, in order to provide a kind of spiritual demand and reading possibility for more people.

Won-il Rhee:
I find you are making larger-sized works in the recent years, inputting enormous manpower and material resources. How do you think of this?

Wenling Chen:
I never think size is the decisive criteria for evaluating an artwork. Actually I’m obsessed with a kind of aura diffused by artwork, which cannot be explained in words. You can sense the aura only on site, while looking at pictures is entirely another matter. I hope my works can arouse people’s thinking as well as visual sense, more than a topic or a story. China has a long-standing tradition stressing the beauty of breadth, for instance, Chinese grottoes, mausoleums, Forbidden City, Great Wall and so on.
Your question reminds me that many Western artists make much larger artworks than that of mine, including earth artists and device artists.
I believe elephants have their own reasons to be big, while butterflies have their own reasons to be small, allowing no explanation.

Won-il Rhee:
You are very brave to mention China’s beauty of breadth and large population on vast land,
and these topics are very sensitive to nations outside China. A number of Chinese contemporary artists are producing larger and larger artworks as a kind of fashion.
Don’t you believe small things have power?

Wenling Chen:
I believe in big power as well as small power. Indian artists Anish Kapoor and Subodh Gupta have made much larger artwork. Italian artist Maurizo Cattelan have made much smaller artworks. However, they are all first-rate artists. Large or small only relates to the artistic temperament of an artist, rather than international politics, economics, military affairs, or hegemonism. It does not belong to the threat theory, so there is no need to be too sensitive about that. Large and small have their independent value in aesthetics.
Take Borofsky’s sculpture ‘Walking to the Sky’ at Kassel Documenta as an example,
the inclined steel pipe was as small as a chopstick , it must be a failure. Another example, if the Italian artist Cattelan’s kneeling Hitler is not much smaller than are all person, but made into a 20meters high city sculpture, it would be a failure too. Sense of space of art works gives off different aura and visual glamour. I think large or small should serve the thought and concept of an artwork. Anyway, I would like to thank you for your question. I have confidence to challenge myself with excellent small artworks in future.

Won-il Rhee:
I appreciate the focus on external explosiveness and inner impact. Later on, you can gradually search into those tiny but culturally rich artworks in your heart, and discuss the overall cultural issues through your artwork.
Some of your artworks in your solo exhibition are quite large, some very small, while, large and small make a harmonious match. The large work rushes towards the wall, and another seems to struggle out of the wall, therefore, it creates an ingenious association.

Wenling Chen:
The most distinctive feature of the two artworks is that they abolish the sense of gravity created by traditional sculpture which should stand vertically against ground. They take the wall as the weighted plane directly. Such a manner presents dangerous and terrifying feelings. Besides, I obtained many inspirations through device art and conceptual art, to transfer traditional sculpture language into contemporary sculpture features. I do not support the evaluation criteria of artwork from the perspective of art taxonomy; however, I firmly believe that great artwork can be produced with any art media. Easel painting and sculpture will remain alive, depending on how to produce them.

Won-il Rhee:
Several of your series works revealed the unbalanced relationship between material and spirit in consumerism times.

Wenling Chen:
All the innovations of my form language and methodology are in consistent with the theme concept. I would never be an artist who creates form only for form’s sake.
Today the mainstream value is quite different from that of Axis Era two thousand years ago when integral humanity was respected.
After stepping into the industrial era, the so-called “powerful” countries, for instance, the US , UK , Germany, Japan , are powerful in material and economic aspects,
and are characterized with expansionism and exploitation.
They have been seeking the material world day and night.
They also set up the standard of the world's mainstream value, which all the other countries must obey and follow, otherwise they might suffer beating or bullying.
This is also true to military affairs. Real “denuclearization” and “military mutual trust” put forward by Obama could hardly be realized.
At least it can not be accepted by King Jong. That is to say, science is far more developed than humanities. If some politicians were crazy, the world would have been bombed several times. The world is lacking in sense of security.
I feel it is a kind of material and spiritual unbalanced or weightless relationship.





홈ㆍ테이블데코페어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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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ㆍ테이블데코페어2012


대구: exco(엑스코) 2012. 11. 30 _ 2012. 12. 02
서울: coex(코엑스) 2012. 12. 06 _ 2012. 12. 09
Tel. 02 _ 555 _ 7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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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테이블데코페어2012, 개최
럭셔리 공간, 가구와 그림 그리고 2013 디자인 트렌드 대공개

‘100% 디자인런던’ 한국지사인 K.Firs(주)와 라이프 매거진 월간 까사리빙이 공동주최하는 ‘2012홈·테이블데코페어’가 11월30일부터 12월2일까지 대구, 12월6일부터 12월 9일까지 서울에서 각각 개최된다.
이번 전시회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확장되고 서울뿐 아니라 떠오르는 신흥 마켓 선점을 위해 대구에서 동시 개최되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속의 전통을 인테리어 스타일링으로 풀어보는 The QUEEN(Tradition in Modern Times): ‘현대 속 전통’을 통해 현대속에 영국인테리어 전통의 공존, 조화 그리고 재해석된 영국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세계적인 럭셔리 리빙 브랜드, 예술작품이 생활 공간 안으로 표출된 모습을 보여주는 갤러리 파빌리온, 국내 최고 권위의 테이블 데코 공모전 그리고 2013 트렌드, 신기술 세미나 및 포럼, 디자인 경영 교육과 세미나, 이천시의 70여개 도자기 업체가 참여하는 2012이천도자페어 등 품격 있는 홈스타일링을 위한 리빙 전문 전시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교류 및 비즈니스 전시회로 기획된다.

Tradition in Modern Times/ 현대 속 전통 ‘더 퀸’,

지난 여름 막을 내린 런던 올림픽은 영국의 디자인과 예술 등 문화 저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축제였다. 이런 영국 디자인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2012홈·테이블데코페어’의 특별 이벤트로 진행되는 영국 특별전 ‘더 퀸(The Queen)’ 이 바로 그것이다. 영국 특별전 ‘더 퀸(The Queen)’은 올해 즉위 60주년을 맞이한 영국 여왕에서 영감을 받은 전시다. 21세기에 존재하는 영국 여왕은 현대 속에 전통의 공존, 조화 그리고 재해석의 상징으로 영국 디자인을 더욱 유니크하게 발전시킨 큰 원동력이 되어왔다.
더 퀸 전시는 Tradition in Modern Times란 주제 아래 런던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자 큐레이터인 로이드 최가 영국에서 직접 선정한 8개의 독립 디자인 브랜드를 선보인다. 전시될 디자인들은 영국 내에서 전통 깊은 크래프트맨쉽(craftsmanship: 장인정신)으로 수작업 되는 홈웨어, 데코 아이템, 프린트 아트, 조명 그리고 가구들로 원오프(one off: 단일품)이거나 한정 생산되는 독특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회는 영국의 유니크한 가구들을 직접 보고 구매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다
또 전시기간 동안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스토리투어와 전시 연계 강좌도 진행될 예정이다. 따라서 이번 행사는 영국 디자인과 문화 그리고 인테리어 스타일링에 대한 유익한 경험을 선사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를 한자리에
- 르쏘메, 이루나니, 파넬, 로렌랄프로렌홈, 알노, 모노콜렉션, 이모셔널, 서울힐튼 등

‘2012홈·테이블데코페어’에서는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고품질의 침구, 가구, 소품, 꽃 등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른 유럽지역과 달리 나무와 자연자원이 풍부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의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은 물론 풍부한 상상력을 표현한 패턴디자인이 특징이다. 노르딕디자인 by이노메싸는 천연의 환경 속에서 감각적인 디자인과 실용성,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소개한다.
프랑스가구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1980년대부터 국내의 프랑스전통가구를 수입·판매해 온 ‘르쏘메(LE SOMMET, 옛 장인방)는 클래식&모던가구 뿐만 아니라 주방가구, 마감재, 패브릭, 홈 컬렉션 등을 아우르는 가구 매장이다. 서울 방배동 서래마을에 위치한 총 6개층, 850평 규모의 매장을 2012홈테이블테코페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한다.
이루나니(elunani)는 실용적이고 생활밀착형 아이템을 다수 선보인다. 식사를 하다 보면 쉽게 더러워지는 테이블 매트를 물이나 스폰지로 감쪽같이 얼룩을 지울 수 있는 이루나니 테이블 매트 등 합리적인 가격에 주부들을 만족시키는 리빙 제품들을 다수 만날 수 있다.
㈜파넬에서는 클래식한 프렌치 스타일에 모던한 컬러와 패브릭으로 마무리한 몽티니(Montigny)를 선보인다. 2007년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 엠마누엘 드 스토파니(Emmanuel de Stoppani)가 설립한 가구 브랜드 몽티니는, 최고급 디자인과 품질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는 2011년 론칭하였으며, 지난 2011년 홈·테이블데코페어에서 멋진 부스 디자인과 디스플레이로 가장 많은 블로그 포스팅을 낳았던 브랜드다. 2012 홈·데이블데코에서도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홍민영 대표와 디자이너가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셀렉해 온 다양한 제품으로 구성되는 로렌 랄프로렌 홈(Lauren Ralph Lauren Home)은 미국식 실용주의와 고급스러움을 보여주는 브랜드로 국내에서 만나기 힘든 하이퀄리티의 침구, 가구, 소품들이 만족스런 가격에 소개한다.
알노(ALNO)는 내츄럴한 유러피언 디자인과 실생활에 최적화된 다양한 수납공간의 주방가구로, 80년 전통의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독일 명품 주방가구로 명성이 높다. 알노는 독일과 이탈리아, 런던 등 유럽 전역과 북미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로 전 세계 64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2012홈테이블데코페어에서는 메인브랜드인 ‘Alno’와 ‘Inpuls’가 소개될 예정이다.
한국의 패치워크(Patchwork) 기술을 적용한 리빙브랜드 모노콜렉션은 패치워크 특유의 독특한 도형성과 심미성이 두드러진 가구, 침구, 조명, 커튼, 러그 등을 선보인다. 디자이너 장응복의 심미적인 안목으로 수평과 수직의 직선과 색상의 대비, 질감의 대비를 이어가며 모던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고품격 웨딩의 대명사인 밀레니엄 서울힐튼에서는 새로운 웨딩개념은 The h wedding at Millennium Seoul Hilton을 선보일 예정이다. 2012홈·테이블데코페어에서는 웨딩 스페셜리스트들과 함께 지혜와 정성 그리고 섬세함으로 특별한 웨딩 디자인을 전시를 통해 제안한다. H는 Heart, Happy, Hug, Honey, Honesty, Honor, Heaven, Holy, Human을 뜻하는 것으로 순수하지만 매혹적인 사랑에 대한 동화 같은 순간을 아름답게 풀어줄 예정이다.
그 외에도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포르투칼의 MALABAR, Bat eye, a Maria criativa 이 세 개의 브랜드가 한국을 찾아온다. 이들 브랜드는 ‘100% 디자인런던’에서 이미 대호평을 받은 바 있다.

김길숙,Kim Kil Soog


이성과 감성의 한계를 지워낸 멈춤의 회화



작가 김길숙의 작업은 무엇을 모사하거나 구체적 형상을 재현하는 회화가 아니다. 현대미술사에서의 비대상적 추상회화는 회화의 본질을 찾아가는 행위이었기에 자칫 그의 회화 역시 평면 회화 공간에 대한 형식 실험이라는 미술사적 흐름에 빗대어 그림을 읽고자 하는 일반적 습관에서 바라보기 쉬울 듯 하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직접 보게 되면 어떤 사물의 형상이나 상징물이 없음에도 꿈틀대는 그 무엇인가가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에서는 가시적 형상을 재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어떠한 존재를 만나거나 어떠한 에너지에 흡수되어 들어가는 것 같은 미묘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작업의 스케일이 상당히 크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붓의 움직임의 흔적과 그 붓질로 그려내는 공간이 화면의 면적 이상의 세계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가의 이러한 붓의 움직임은 무엇을 그려내기 보다는 지워내거나 멈춰선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가 하나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몇 달이나 몇 년을 빈 캔바스와 맞서서 감성적으로 느끼고, 흥분하기도 하며, 에너지를 쏟아내어 시간 보내기를 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 어느 시점이 되어서야 붓질이 시작된다고 한다. 작업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몰입하고 멈춰서거나 그려낸 화면을 지워내면서 그가 그리워하고 만나고자 했던 그 어떤 것을 찾게 되는데, 바로 그 즈음에 작업은 멈춰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작가에게 있어서 캔바스라는 빈 공간은 어떠한 감흥 혹은 전율과 같은 비언어적 감성이 되살아나는 공간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작가에게 있어서는 캔바스는 원래 백색이라기 보다는 기억이 하얗게 지워져서 비워져 있어 보이는 공간일 수 있기에 작가가 찾고자 하는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존재, 어떠한 느낌과 같은 비형상적 세계를 찾기에 더 적절할 수 있는 공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영속적인 망각의 공간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 백색 공간을 거꾸로 그의 작업 과정을 통해 망각의 막을 걷어내고 지워 나간다면 기억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을 향해 열린 공간일 수 있을 것이다.
흐릿했던 초점이 어는 한 순간 맞춰졌을 때 선명해질 수 있듯이 작가는 그리기보다는 어떻게 지워내고 걷어내어 그가 바라는 감흥의 순간을 만날 수 있는가에 집중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작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캔바스 앞에서 기대하며 기다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만나게 되는 캔바스의 현장이라는 것은 산모가 출산할 때 타자인 아이를 보고 나서 자신을 발견한 것과 같은 감격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자신과 동기화된 혹은 어쩌면 원래 하나인 그 무엇을 만났을 때의 본능적으로 울려 나오는 감흥을 느끼는 경험을 할 때의 상황과 유사할 것 같다.
오랜 산고는 두려울 정도로 모호하고 막연하지만 탄생한 생명체는 가슴 벅찰 정도로 신비하며 자신을 만난 것과 같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기에 작가가 작업할 때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캔바스를 만나게 되고, 기나긴 시간의 기다림 후에 작업의 절정에 이르며, 그 작업을 마칠 때마다 열병을 앓은 것처럼 녹초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산고의 고통처럼 그 창작의 과정들이 작가에게는 순간순간 절체절명의 현재들이 되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억의 소리’라는 그의 작품 명제들은 빈 캔바스라는 망각의 지점에서 시작되었지만, 산고의 고통과 같은 창작의 과정에서 작가적 에너지를 쏟아지고 또 다시 그것을 지워내는 반복된 행위 가운데 떠오른 기억들에서 연유하였거나, 작업의 결과로 자신의 분신처럼 태어난 타자이며 어떤 의미에서 자기 자신인 그 어떤 존재를 만난 감흥의 떨림과 이때 마치 기억을 되찾은 것과 같은 흥분으로 인해 발생되는 파장과 같은 울림들에서 찾게 된 텍스트인 듯 하다..
그리고 작가는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명확한 형상으로 재현하기 보다는 너무 선명하게 기록되지 않도록 그리기와 지우기의 간극 사이의 긴장감이 흐르는 흔적 속에 남겨두고자 한다. 그는 미지의 공간에서 서성이다가 그 무엇인가에 가까워졌을 때 멈춰서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기 보다는 지우거나 멈춰선 지점이 어느 시간 어느 지점이어야 할 것인가에 주의를 집중하고자 한다. 작가는 이렇게 할 때 막연하지만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어떤 것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에게 있어서 멈춤은 이렇듯 그가 미지의 어떤 존재와 만나는 교차점을 발견하는 절정의 한 순간 이며 찰나적이지만 영겁의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듯한 공간과 시간의 해방의 한 순간일 수 있다. 그가 그리워하는 미지의 대상이라는 존재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가둬지거나 규정될 수 없기에 재현적 형상에서 탈피하여 마주치는 그 한 순간의 불확실하고 모호한 흔적만을 남겨두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마치 상처 입은 환자의 상흔 자체가 환자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어떤 문서나 사진보다 강렬한 것처럼 일체의 묘사나 재현을 제외하고 감흥의 순간을 마주한 작가적 흔적만을 캔바스에 남겨 두고자 한다. 왜냐하면 대상을 일정한 형상이나 한계에 고착시킬수록 그 대상의 존재적 실제와는 더 멀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결국 단순히 회화라는 예술장르에서의 행위 이상의 어떤 지점으로까지 향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재적 흔적이자 작가가 세계와 관계하는 독특한 방식을 일종의 파장과 같은 울림으로 들려주는 비언어적 기록일 수 있기에 그의 회화는 하나의 예술적 장면이지만 동시에 작가가 만난 어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감성들 즉 고통과 기쁨과 흥분과 같은 정서가 담겨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Still Paintings Erasing Limitations of Reason and Emotion
The artist Kim, Kil Soog’s works are not painting of copying something or of reproducing specific shape. Since non objective abstract painting in modern art history is an act for seeking essential of painting, it is likely to see her works from a view of an experiment in forms on flat painting space based on the flow in modern art history, which is a common practice.
If you directly see her works, however, you will feel something stirring even without any shapes or symbols of a concrete object. Although her works do not reproduce visible shape, they make you feel weird as if you encountered huge existence or you were absorbed into some energy. That can be partly because her works are of a huge scale but more significantly because they imply beyond what canvas shows with overwhelming movements of brushes and screens themselves painted with those strokes of the brushes.
What the artist says is, however, that these movements of brushes are results from erasing or making a stop for something rather than for drawing one. She says she would spend a few months or even years getting emotional and excited or focusing her energy before canvas to create a piece. It takes a while more before she starts making the brush strokes. Once she begins to work on the piece, in the blink, she finds something that she has longed for and intended to see after focusing, stopping and erasing the screen which has already been painted. It is exactly when she stops the work.
From this point of view, the empty space called canvas can be space where nonverbal emotions such as shivers or inspirations are coming back to the artist. In some sense, because the canvas can be seen as empty space where all the memories are erased rather than nothing is on, it can be rather appropriate space where the artist can find the non-shapable world with some existence or feelings which is not subject to verbal expressions. Though it can seem to be space of oblivion at a glance, it can also be open space of hope where the memories can be found by raising and erasing the curtain of oblivion through her work.
As blurred focus can suddenly be sharp, the artist focuses more on meeting the moment of inspiration which has been longed for by the artist by erasing than on making a drawing. That is why the artist could wait before the canvas so long.
The scene of canvas encountered through these processes can be as similar to when one person experiences instinct inspiration which is coming from meeting synchronized or identical existence as a mother gives birth to her child with an overwhelming feeling that she would find herself in the baby, the other existence.
Though a long period of birth pangs is horribly ambiguous, the life after the pain is of overflowing mystery and impression. The artist, therefore, faces canvas with excitement every time she works on pieces. After a long wait, she reaches its peak in her painting and is exhausted on finishing the work because every moment of her creation would be desperately dangerous moments like those of a mother.
In that sense, though the proposition of her works ‘Sound of Memory’ starts from canvas, the space of oblivion, it seems to be text which is caused by repetitive actions of focusing and erasing energies during the process of creation like labor pains or which is discovered in an impact or an echo from the excitement that the artist experiences on the artist’s other self created by her or some existence equal to herself as a result of her work.
In addition, the artist intends to leave her works between stressful traces of painting and erasing not to make her thoughts or feelings reproduced with so much vivid shape. The artist wants to stop when approaching something after wandering unknown space. Therefore, she focuses more on when and where to stop and erase than on making a drawing. It seems that the artist vaguely believes she can come near to something that has been longed for.
The halt for the artist can be a climactic moment when she and other unknown existence meet and a moment of liberation from time and space which is instant and eternal at the same time. As the unknown object that the artist longs for cannot be locked up in or defined as any physical limitations such as time or space, the artist would just leave the uncertain and ambiguous traces faced when escaping from reproducible shape.
Thus, the artist only wants to leave her traces from the moment of inspiration on canvas except detailed description or reproduction as a scar is more powerful to express patient’s pain than any other realistic literature or photograph. The more fixed an object is to specific shape or limitations, the farther it gets from the existing reality.
Her works are heading a point beyond a mere art genre of painting. Since it can be vivid traces as a human being and nonverbal record to express her unique way to communicate with the world by a kind of echoes, her paintings are not just one of artistic scenes but also one incident implying artist’s various emotions such as pain, pleasure and excitement to the unknown world which she encounters.
Lee, Seung-hoon, Cyart Research Institute

김길숙,Kim Gil Sook





김길숙


청주사범대학교미술교육과
개인전
1회(현갤러리,서울) 2011
2회(물파 스페이스 갤러리,서울) 2012
그룹전
5인5색전(인사동 현갤러리,서울) 2011
Art and Love( 갤러리 그림안,서울) 2012외 다수
주소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185-6 mobile 010-2747-9227

Kim, Gil Sook

Fine Arts Education, Cheongju University

Solo Exhibition
2011 Gallery Hyun, Seoul
2012 Mulpa Space Gallery, Seoul

Group Exhibition
2011 五人五色 (Gallery Hyun, Seoul)
2012 Art and Love (gleeman, Seoul)

Address
185-6 Buam-dong, Jongno-gu, Seoul, Korea
Mobile
+82.10.2747.9227

헬렌 김연태





헬렌 김연태의 여정
글 Nikki Liaw(아트말레이시아 예술잡지 에디터)
모든 개개인은 인생에서 자기 만의 여정을 떠나지만, 우리가 부러워 하는 것은 예술가들은 그들의 독창적인 해석들로 여정을 묘사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의 진보를 열렬히 추종하고, 예술의 발달 과정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 애쓰며, 그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의 걸작품에 대한 외경심에 휩싸여 왔다 : 예술가의 생애의 그 시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이러한 연구는 일종의 자기 반성이 되고, 보는 이들은 자기 자신의 삶에서 똑같은 과정과 단계와 얽힌 일들을 발견하게 된다.
헬렌 김(김연태)의 창작에는 그 해답이 담겨있지만, 모든 이가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도, 문자화 하지 않으며, 사연을 말한다는 개념이 필요하다. 결국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에 결정적인 것은 자기 해석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헬렌김의 작품은 작품의 개념에서 재료의 종류 그리고 그녀가 택한 색깔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져 그녀의 여정의 특정한 부분이나 순간에 대한 핵심적인 본질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예술 활동 20년 동안, 헬렌의 매개체의 선택은 설치에서 그림 대상까지, 강한 기초와 예술 철학으로부터 서서히 발전해 왔는데, 헬렌은 이것이 자기에게 가장 맞는 매개체라고 표현한다. 지난 수년 동안, 캔버스의 그림 세팅의 선택들은 야심찬 시설의 짜맞춤 보다는 실제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것에 기인한다. 그렇다고 해서, 캔버스의 작품이 덜 정교하거나 장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품들은 가까이서 보면, 다양한 층과 선들로 꼼꼼하게 만들어져 소박한 파스텔 감각을 전달하고 있다.
내비치는 특성의 배경을 만들어 내는 것만 해도 그렇다. 원하는 반투명성과 방울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20여층의 수채아크릴물감과 잉크가 조심스럽게 채색되어야한다.
가까이서 자세히보면 그녀의 주제들은 마치 그림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유기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는 색색의 실들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나타난다. 의도적인 여백의 사용은 작업 동안에 홀로 있는 헬렌의 감정을 반영하고, 부족함 또는 무엇인가가 사라짐을 암시한다. 예술가로서 헬렌의 철학 핵심은 자크라캉의 욕망의 이론에서 유래한 ‘내면을 향하는것, 주시의 내면화와 영감을 얻기 위해 외부를 향하는것'자신이 다른사람의 영역에 있다고 상상하는 균형과 조화이다. 그녀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혹은 그녀가 말하듯 학적으로 인류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그녀의 철학의 한부분이다.
유기적이고 변화하는 것들에 의존하는 경향은 헬렌의 초기작품에 그 뿌리를 둔다 . 그녀의 감정적인 무명 벨벳설치와 스케치 벽화는 주된 몸에서 분리된 기관이나 외괴 식물체처럼 보이고 그녀의 그림들은 직물과 실의 합성이다 . 헬렌김의 3차원창작은 만지고 싶은 유혹을 주는가하면 3차원의 그림들은 시각적인 유혹을 유발한다. 매개물과 상관없이 헬렌의 작품들은 단순히 보이는 것보다 확실히 더 많은 것을 담고 있기에 매력이 있고 보는 사람들을 경탄하게 한다.
매개물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거울이 흥미로운 선택이기는 하지만 헬렌은 당연히 금속이나 돌처럼 딱딱하고 윤기 나는 표면을 싫어 한다. 2차원에서 창작은 제한된 재료의 선택을 넘어서서 탐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헬렌은 '캔버스를 넘어서서 다른 재료 혹은 나무와 벽화 같은 캔버스를 사용하여 동일한 생각을 나타내고 변화시키고자한다.
헬렌김은 여행가이다. 미국뉴욕대학에서석사학위취득)과 자신이 태어난 한국서울에서 전문화가로서 활동등 여러나라에서 경력을 쌓은 이후 그녀는 자기의 비전을 동남아시아로 확장하기로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여류예술가로서 활동하는 것이 헬렌에서게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다른 문화와 예술현장뿐 아니라 대중이 바라보는 견해 또한 달랐다.
스스로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헬렌은 동남아시아에서 단독으로 등극하기위 한즉각적인 길이나 지름길이 없었다. 말레이시아에 머물면서 사람들이 한국인 여성으로서 자기에게 많 관심을 나타내지만 그이상은 아니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 이유중하나는 말레이시아 청중이 자기의 예술에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더욱이 갤러리들과 회사들이 지역 예술인을 지지하고 개발하는데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중이나 수집가들은 계속해서 그녀의 작품을 즐기게 되는데 헬렌은 이경험을 '인생에서 가장 멋진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


똑같은 갤러리와 청중은 있을 수 없다는 헬렌의 깨달음은 말레이시아에서 전시회를 하는 동안에 얻게 된 것이다. 동일한 공간에서도 다른장소에 걸려 있는 그림이, 그림을 해석하고 감사하는 데 다른조건을 부여하는 것을 목격하고, 헬렌은 자기의 작품을 둘러싼 공간들의 역할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었다.
헬렌은 아직도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지까지 긴여정이라고 느낀다. 말레이시아에서의 경험들이 다른 여정에 도움이 될 거라 여기며 헬렌은 싱가폴, 인도네시아, 필리핀,그리고,동남아시아의,다른국가들로의여정을소망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헬렌이 다른장소와 더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녀의 이해력은 본인의 의도처럼 그녀의 작품과 예술작업에 새로운 차원과 깊이를 더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헬렌의 그림이 자신의 여정과 인생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순간을 전달하고 또 어떤 기억을 사로 잡고 있는가? 그녀는 자기의 비밀을 노출하지 않으려 한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이미 깨닫지 못했을 지 모르지만, 이미 그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여러분이 할 것은 그녀의 낭만적인 작품 하나 하나를 창문으로 생각하고, 그 창을 통해서 그녀의 내면의 풍경을 바라보며, 가까이 감찰하며 그 속에 담긴 자신의 반영을 발견하는 것이다.


The Journey of Helen Kim, Yeon tae

written by Nikki Liaw


Each person walks their own paths in life and it is the enviable advantage of artists to be able to convey their journey through their own creative interpretations. The world has awed at the masterpieces of the greatest painters of our time, fervently following their progression and attempting to glean clues to their artistic process: what could be going on in that point of the artist’s life? More often than not, this study becomes an introspective and the viewer discovers the very same instances and intricacies within their own lives.
Within the creations of Helen Kim, Yeon tae, the answer is present but not readily apparent to just anyone. The concept of telling a tale without literally telling the tale is a necessary one, after all, self-interpretation is crucial in the experience of viewing art.
There is little doubt that Helen Kim’s works are deeply personal, from their concept right down to the type of materials and colours she chooses; it is all for the sake of conveying the core essence of a chosen part or moment of her life’s journey.
In her two decades of practising art, Helen’s choice of medium ranged from installations, objects to painting, all evolved from a strong foundation and philosophy in drawing, which she describes as her most fitting medium. Over the years, her choice of settling for painting on canvas is also due to it being less physically-taxing than the setting up of ambitious installations, yet her works on canvas are no less intricate or tedious; they convey a pastel sense of simplicity which, upon closer inspection, is meticulously constructed out of multiple layers and lines. Even to create the diaphanous quality of her backgrounds require about twenty layers of watered acrylics and inks carefully 'steered' on the canvas to produce the desired translucence and drip-effects.
A closer look at her subjects reveals flowing rivers of coloured thread that give Helen's artwork an organic atmosphere, as if the painting itself was living and breathing. An intentional use of void spaces reflects Helen’s feelings of being solitary in the act of painting, and it also alludes to a ‘lack’ or disappearance of something. The core of Helen’s philosophy as an artist is a balance and harmony of looking inwards (the internalization of the gaze) and outwards (imagining ‘the self’ in the realm of the other) for inspiration, derived from Jacques Lacan’s theory of desire1. She believes that to be able to understand herself, she needs to understand the people around her as well. Her interest in others, or as she says academically 'human beings', is part of her philosophy.
The tendency to refer to the organic and metamorphic is rooted in Helen's earlier works. Her sensuous velveteen installations and sketchy wall drawings seem to be organs separated from their main bodies or alien plant life, her paintings are compositions of fabric and thread. While her 3-dimensional creations tempt a touch, her drawings and paintings are visual temptations. No matter the medium, Helen's works are magnetic and certainly does make one wonder as there is certainly more to be seen that what is merely visible.
As for mediums, not surprisingly, Helen dislikes hard and shiny surfaces such as metal and stones, although mirrors present an interesting option. Working in 2D meant exploring beyond what seems a limited choice of materials; Helen wishes to go beyond the canvas, representing and transposing the same idea but through a different material or ‘canvas’ such as wood or murals.
Helen Kim is a traveller; after paving her career in countries such as America (where she obtained her Masters from New York University) and her native South Korea (Seoul, where she was an Art professor), she chose to expand her vision to Southeast Asia. Yet being a female artist working independently in a foreign country has not been an easy journey for Helen; not only is the culture and art scene different but the public’s perceptions are different as well.
As a self-representing artist, Helen had no immediate routes or shortcuts to establishing herself in Southeast Asia. While in Malaysia, she experienced that there was much interest towards her as a Korean female artist, but the interest rarely extended beyond that. Part of the reason is because Malaysian audiences were unfamiliar with her art, furthermore the emphasis of the galleries and corporations is on supporting and developing their local art. Nevertheless, that didn't stop audiences and collectors from enjoying her work, an experience Helen describes as 'the best feeling in life' 2.

A realisation that Helen has come to while exhibiting in Malaysia is that no two galleries and audience are the same. Having viewed how the same painting while hung in a different location even in the same space, presents a different condition for interpretation and viewing the painting, Helen began to increasingly appreciate the role of the spaces surrounding her artwork.
Helen feels that she still has a long way to go till she reaches her desired destination. As to where Helen wishes to journey to next, she has set her sights on Singapore, Indonesia, Philippines and the rest of Southeast Asia, believing her experiences in Malaysia will help in her coming journey. No doubt as Helen goes places and meets more people, her understanding as she intends it will increase to give her artwork and art-making new dimensions and depths.

So what do Helen’s paintings say about her journey and her life? What moment is it conveying, what memory does it capture? Well, she isn’t about to let you in on the secret because, although you may not yet realise, you already know it. All you have to do is consider each of her poetic artworks as windows, into which you can view her inner landscapes and upon closer inspection, discover your own reflection within them.


1. Artist Statement, Non-resident Artist, RBS- Malihom, http://www.malihom-air.org/modules.php?name=Artist&pa=showartist&arid=4
2. Baring her soul through art, Jeremy Tan, StarMetro, 3 October 2009.

김연태 Helen Kim Yeon Tae
helenkimart@hotmail.com

학력
1991 B.F.A 덕성여대 예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1994 M.A 뉴욕대학교 미술대학원 스튜디오아트 졸업

개인전
2012 Hearing You Helen Kim solo exhibition a2 Gallery, Penang, Malaysia
2010 Gallery min 기획초대전 Gallery min, 서울
2009 Mystical Phenomenon Mutiara Gallery, Penang, Malaysia
2008 E&O 초대전 E&O Property gallery I, Penang, Malaysia
2006 보이는것과 보이지않는것 갤러리 팩토리, 서울
2004 끊임없이 그래서, 거쳐가는 피쉬 갤러리, 서울
2002 Wall work-works 아티누스 갤러리, 서울
2002 이브갤러리 이전 개관전 이브갤러리, 서울
2000 유기체의 숲 사이에서 조흥갤러리, 서울
1997 신체들, 유기적 형태들 관훈갤러리, 서울

2인전
2011 매혹되다 김연태,황혜선 전 DM 아트센터, 서울
2009 Duo Show Wei Ling Gallery, 쿠알라룸프르, 말레이시아

단체전
2012 Art Works on Display a2 Gallery, Penang, Malaysia
2011 Once upon a time in New York 스칸디아 갤러리 국립중앙의료원, 서울
2011 Rituels Vitaux galerie 59 Rivoli 파리, 프랑스
2010 Three men & a lady NN Gallery, 쿠알라룸프르, 말레이시아
2009 소원을 말해봐 갤러리 나우 , 서울
2009 Foot Bridge Gaya Art Space, 발리, 인도네시아
2008 2회 국제아트페어 2008 MVEC , 쿠알라룸프르, 말레이시아
2008 Dunia Seni Lukis 개관전 Gallery Dunia Seni Lukis,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2007 조용한 울림 문화에술위원회,경기문화재단후원 KOFIC 남양주영화종합 촬영소
2007 Still Moving Space Noon, 베이징, 중국
2007 Malihom Launch Exhibition 페낭 , 말레이시아
2007 #1 Exhibition ABN AMRO Bank 페낭, 말레이시아


한국화장사

▲고구려 여성화장

▲조선시대장소품

▲고려시대화장법

▲고구꾸기

▲흰 분과 가장법
한 국 화 장 사
글 권경애


【 1. 서론 】

화장은 인간의 미적 본능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화장은 신체 보호, 종교적인 욕구 충족, 사회적 지위 등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부터 발전해서 현대에 와서는 자신의 개성과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화장은 사회가 지닌 미의 개념에 부합하도록 선천적인 외모를 수정함으로써 자기 만족과 심리적 안정을 얻도록 해주며 타인에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다양한 예술 장르와 매체가 발달한 현 시점에서 화장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기본적인 욕구뿐만 아니라 배우, 모델, 가수 등의 외모를 이미지나 배역에 맞도록 재창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화장 분야는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화장에 대한 개념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먼저 화장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논의하게 될 부분은 화장의 변천사에 관한 내용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메이크업 분야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20세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화장의 문화사와 발전 방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 2. 화장의 기원 】

인간은 태고적부터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욕구를 다양하게 표출해 왔다. 이러한 본능이 화장의 기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화장욕구는 성욕이나 식욕과 더불어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화장이 신분, 계급, 종족, 남녀 성별을 구분하기 위한 치장이 미화 수단으로 발전했다는 신분표시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개 사회를 보면 부족의 추장은 매우 화려한 장신구나 문신을 하고 있으며 종족에 따라서도 매우 개성 있는 치장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신분에 따른 의복이나 장신구등이 발달한 점도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을 하고 있다. 예전에 통치자나 귀족등과 같이 상류층이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멋을 낸 것과 같이 요즘에도 부유층은 명품이나 고가의 장신구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의견을 잘 반영하고 있다.
또 자신을 보호하거나 위장하기 위한 치장이 미화 수단으로 발전했다는 보호설이 있다. 부족 내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에 칠을 하거나 수풀 등을 몸에 달았던 것과 고대 이집트의 여성들이 태양열과 독충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눈두덩에 발랐던 푸른 색깔이 눈 화장으로 발전되었다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있는데 삼한시대의 바닷가에 살았던 사람들이 바다와 강에 들어가기 전에 쪽으로 손과 발에 물감을 들인 기록이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주술적,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전승을 기원하기 위해서 얼굴에 칠을 하는 관습은 지금도 미개발 민족간에 남아있고 질병이나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마귀를 쫓기 위해서 얼굴이나 몸에 색칠을 하는 관습도 계속 남아 있다.

【 3. 한국 화장 문화 】
(1) 고대 세계 화장의 유래
화장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이 이집트이다. 이집트에서의 메이크업의 문화는 이미 4천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집트에서는 그 시대에 이미 연지, 분 등의 미안료가 제조되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목욕 또한 고대 이집트에서 먼저 시작된 것으로 본다. 더운 기후로 인해 목욕과 향유가 발달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헬레니즘시대에는 머리 모양, 장신구의 모양과 위치, 베일의 색깔 등이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로마는 향유, 마사지, 향수와 함께 목욕 문화가 발달했다. 눈 아래쪽에 초록색을 눈꺼풀에 코올로 검게 칠한 이집트 여인들의 강렬한 눈 화장이 잘 보여주듯이 색채화장을 비롯한 화장 기술은 클레오파트라시대에 극치를 이룬다. 이 시대는 미용에 관련된 기구 중에 가슴 발육 기구까지도 끼어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메이크업의 역사는 매우 일찍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한국의 화장 역사 ( 20세기 이전 )
1) 고조선 시대
단군신화를 살펴보면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었다는 애기가 나온다. 쑥과 마늘은 미백 효과를 지닌 미용 재료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곰과 호랑이에게 햇볕을 보지 못하게 하고 쑥과 마늘을 준 것은 백색 피부를 가꾸기 위한 일종의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백의 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은 고대부터 백색을 숭상하였다. 따라서 백색 피부는 고대에 있어서 미의 중요한 요소였으며 메이크업도 이 관점에 맞추어져 발전했다. 예를 들어 한반도 동북방에 거주했던 읍루 사람들이 겨울에 돈고라는 돼지기름을 발랐다는 기록이 있는데 돼지기름은 햇볕에 그을림을 예방하고 피부를 희고 부드럽게 하는 성분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오줌으로 세수한 말갈인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채협총에서 출토된 채화칠협을 살펴보면 이마를 넓히기 위해 머리털을 뽑은 흔적이 뚜렷하고 마한에서는 문신이 유행했다는 기록이 내려오고 있다. 마한의 문신은 장신구, 색깔 무늬 등의 장식이 포함된 멋내기 수단이였고 신분과 계급을 표시하는 방편이였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한국인 최초의 정형화된 치장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고조선에서는 수렵을 위해서 독약을 제조하는 기술이 매우 발달했는데 이는 고도의 화학 지식을 필요로 하므로 고조선 사회의 경제와 문화 수준을 보았을 때 문신 이상의 화장과 화장품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피부 보호제나 미백제 따위가 제조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2) 삼국시대
신라의 화장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신라인의 미의식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박혁거세의 왕후인 알영은 입술의 닭의 주둥이와 같은 결점이 있으므로 북천에 데려가 목욕시켰더니 그것이 빠져 완벽한 미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서 목욕의 의미는 단순히 씻는 것을 벗어나 분장이나 문신등을 나타내고 있다. 화랑 역시 미소년이라는 조건하에 선발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미소년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분을 바르고 구슬로 장식한 모자를 썼다고 한다. 이것은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는 ‘영육일치사상’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미의식의 추구가 화장품과 화장술의 발달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전래는 화장과 화장품의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 교리가 향을 중시하고 종교의식에 향을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목욕재계를 중시한다는 점은 향과 목욕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몸을 깨끗이 해야만 마음도 정결해진다는 사상을 통해 가정에도 목욕 시설이 구비되었으며 팥, 녹두, 쌀겨 따위로 만든 세제 등의 목욕 용품 또한 나타났다. 신라인의 화장기술 및 화장품 제조기술은 매우 뛰어나서 이를 중국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동백, 아주까리, 수유의 열매는 머릿기름을 만드는 데 이용되었고 유두날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내려오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한 쌀이나 분꽃씨의 분말, 백토, 활석 등으로 분을 만들었다. 신라인들은 또한 연지를 만들어 볼과 입술을 치장하였는데 연지는 홍화로 만든 것이었다.

3) 고려시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화장을 장려하고 화장법을 가르친 것은 고려 태조 왕건 때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왕건은 궁궐 안에 교방을 설치해 기생이 갖춰야할 여러 가지 교양과 몸매를 익히게 했으며 화장법도 가르쳤다.
고려시대의 화장술과 화장품의 제조는 신라의 화장 문화가 전승, 발전된 것이었다. 고려 태조가 신라의 정치제도와 문화를 계승하는 정책을 시행한데다가 종교 역시 불교를 계속 신봉하였고 영육일치사상이 계승되었다. 그 결과 고려의 화장 문화는 외형상으로는 사치스러워졌고 내면으로는 탐미주의적인 색채가 강해지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목욕 문화가 더욱 발전하여서 고려도경에 의하면 하루에 서너 차례나 목욕을 할만 큼 깨끗한 신체를 간직하고자 노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흰 피부로 가꾸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강구되었는데 이를 위한 전신 목욕이 성행하였다. 부유층에서는 갓난아이 시절에 복숭아 꽃물에 세수시키거나 전신목욕을 시킴으로써 희고 부드러운 살결을 간직하도록 하였다. 또한 부유층 여성들의 경우 난초를 넣어 삶은 난탕 즉 향수에 목욕함으로써 희고 부드러운 피부를 간직하고자 하였고 늘 몸에서 향내가 나도록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신분에 따라서 화장하는 법도 달랐는데 기생들은 분을 도포한 듯이 하얗게 바르고 눈썹을 가늘게 가다듬어 또렷하게 그리며 빰은 복숭아빛처럼 입술은 앵두빛처럼 연지를 칠하였고 머릿기름은 반질거릴 정도로 많이 바르는 분대화장을 주로 많이 하였다. 이러한 분대화장법은 교방에서 가르쳤다. 이 시대에는 구리로 만든 면약호가 유행했으며 염모가 행해졌다. 면약호는 액상으로 된 안면용 화장품으로 피부를 희고 부드럽게 하는 영양크림과 로션의 중간형태로 추정되어 진다. 가장 널리 사용된 화장품은 백분이었다. 납분이 제조되었는데 이는 일부 계층에 한정되었을 것이다.
고려인들의 화장구로는 족집게와 손톱다듬기가 있었다. 대부분의 족집게는 오늘날의 그것과 거의 비슷한 모양이나, 가리마를 타는 동시에 이마의 솜털을 뽑는 데 사용했음직한 족집게도 있었다. 또 손톱을 다듬던 기구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하릴없는 여인이 손톱만 다듬고 있노라’라는 시구로 미루어 볼 때 일부 여성들만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권경애

상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한성대학교 패션예술학과 분장예술학
이화여자대학교 의류학과 박사과정
독일 (서울분원)스테이지 메이크업 스쿨 수료
프랑스 크리스챤 쇼보 메이크업 스쿨 수료
프랑스 아뜨리에 인터내셔널 마끼아제 수료
일본 야마노 미용대학 연수
일본 시세이도 화장품 연수
일본 가네보 화장품 연수
독일 CMS-cosmetic ursula schneider
퍼머넨트 메이크업 수료
독일 CMS Pink Temtoos - Zeichnerin (타 투)수료
플로라 웨딩드레스 , KA516 메이크업 스튜디오 운영
KA516 메이크업 스튜디오 운영
권경애 뷰티과학 (KBS) 대표















권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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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학교 패션예술학과 분장예술학
이화여자대학교 의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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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애 뷰티과학 (KBS) 대표


권경애

상명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한성대학교 패션예술학과 분장예술학
이화여자대학교 의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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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애 뷰티과학 (KBS)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