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0, 2012

삶은 떠나보내도, 우주 한 귀퉁이에 작은 나이테를 남기는




곡성 죽곡열린농민도서관


삶은 떠나보내도, 우주 한 귀퉁이에 작은 나이테를 남기는
김재형 관장


인류의 생각창고, 도서관
‘노인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전하는 말이다. 책방도 서점도 아니고 도서관이라니, 아프리카의 정신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 말의 씨앗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위와 비슷한 하나의 문장으로 정착했는지는 따져볼 일이지만, 인류의 시원이라는 아프리카답다.
‘한 사람의 노인은 도서관’, 이 말은 도서관보다 한 사람에 방점이 찍힌다. 사람마다 그 삶의 궤적은 하나의 도서관이라는 말일 테다. 이때 삶의 궤적은 ‘이야기’다. 특히나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고 생생한 삶이다. 도서관이라는 오로지 기록된 것들로 이루어진 공간과 같이 놓인,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 한 사람의 삶. 거꾸로 도서관은 사라질 것들을 그러모아 문자라는, 이미지라는 형태로 차곡차곡 쌓아놓은 인류의 보물창고이다.

문자와 활자의 소유방식을 거스르는 시도
‘삶을 기록하는 도서관’이라고 했다. 삶을 기록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삶의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록과 삶의 거리’를 좁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다. 그런데 도서관의 역사에서부터 현재까지 그 거리, 삶과 기록의 거리는 사뭇 멀었다. ‘사뭇’은 도서관이 만들어지고 5,000년이 넘도록 기세등등해왔다. 그 거리는 문자의 소유방식이 바뀌는 역사이기도 하다. 말과 닮은 민중의 문자가 만들어지는 것에서 폭은 크게 좁혀졌다. 그러나 문자가 활자가 되어야하는 출판 방식이야말로 여전히 그 ‘사뭇’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그러나 그 기세를 잡는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시작되고 있다. 그것도 국가 단위의 큰 도서관이 아닌, 작은 도서관에서 말이다. 그 한 시도가 전남 곡성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전남하고도 곡성이라니, 거대 정보가 이합집산하는 뉴욕도 맨하탄도 아니다. 서울‘특별시’도 광주‘광역시’도 아니다. 그저 곡성이다.

문자로부터 도서관까지, 도서관의 역사
삶과 기록의 거리, 5,000년이라고 했다. 도서관의 역사를 되짚은 수치다. 그 전제는 문자다. 문자로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그것을 보관하는 풍습이 도서관의 원형이다. 서양 문명 발상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인들은 그림문자로 세계 최초인 ‘우르남무(Urmanmu) 법전’을 남긴다. 바빌로니아 왕국의 우르크(Uruk), 라가시(Lagash), 니푸르(Nippur) 등지에서 수많은 점토판 유물들이 확인된다. 이를 토대로 기원전 3,000년 경에 이 어딘가에 옛 도서관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현존하는 최초의 도서관은 어디일까. 멀지 않은 이집트다.
인류 최초 도서관으로 공인된 곳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4세기~기원전 1세기) 때 설립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 이름 그대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을 정복한 후에 자신의 이름을 따 이름을 지은 도시이다. 대왕은 ‘아슈르바니팔’이라고 하는 도서관과 비슷한 형태의 공간에 실용문서, 예언서 같은 문헌을 보관했는데, 도서관은 거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대왕의 생전엔 실현하지 못하고 사후에야 친구인 프톨레미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서관 설립과 운영 당시 도서관에는 약 70만 권의 장서가 소장돼 있었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도서’가 아니라 점토판이나 양피지 묶음을 생각한다면 ‘70만 권’의 ‘덩치’가 현실적으로 환산될 것이다. 지금도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다. 이 현대식 거대한 도서관은, 1990년대에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호소로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다시 지은 것이다.

수많은 형태 도서관의 분화, 학교도서관과 마을도서관
그리고 5,000년 뒤다. 이집트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도시가 아니라 면소재지다. 곡성군 죽곡면 열린농민도서관을 찾아간 것은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막 끝나갈 즈음이다. 섬진강과 만나는 보성강 줄기를 타자, 강 가까운 도서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5,000년동안 도서관도 수많은 형태로 분화했다. 운영주체에 따라서, 이용주체에 따라서, 형태에 따라서 수많은 형태다. 가장 많은 숫자는 아무래도 학교도서관이다. 학교마다 도서관을 갖고 여가시간마저 ‘학습’으로 끌어당겼으니. 그 학교도서관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도서관의 책무에 충실한 공간으로다. 마침 방학이 끝나면서 학교 도서관도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학교 공간 곳곳이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 역시 학교는 웅성웅성, 북적북적, 와글와글, 해야 학교다. 조용히 책 읽는 공간,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때에 따라서는 책속에 활자로 납작하게 ‘억눌린’ 소리들이 도저히 못 참겠다, 활개를 치고 터져 나오기도 하고(물론 아이들이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따라 읽는 소리를 통해서다), 제 몸 만한 그림책을 끼고 뒹굴기도 하고, 아직 방학습관이 몸에 밴 아이들은 책을 펴고 졸음에 못 이겨,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 풍경. 학교도서관이 이제 몸을 푸는 때, 강변에 제 몸을 누이고 마치 도서관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농민’을 명칭으로 붙이고 그 작은 도서관이 서 있다.

시, 너와 함께 살아온 지 몇 해이던고
열린도서관의 정체를 알게 된 계기가 있다. 도서관에서 여는 인문학강좌를 통해서다. 열린도서관에서는 여름 겨울 농한기 때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을 연다. 혹자는 전국 최초로 농민인문학 강좌를 열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3년 전부터 시작한 인문학강좌는 올 여름엔 ‘농민과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6월말부터 7월말까지 여섯 차례 열렸다. 백현기, 안도현, 강위원, 기덕문, 배병삼 같은 이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정체를 알 수 있는 ‘전국적인’ 인물부터 지역에서 공동체운동을 하는 ‘곡성적인’ 인물까지 등장인물의 면면도 다채롭다.
강좌를 소개하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올해로 3년째 농민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공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일’이라고 한다. 농촌살이는 그 자체가 ‘일’이다. 완벽히 낯익은 언어다, ‘일’.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숨쉬고 먹는 것부터 본격 농사까지 일 아닌 것이 없다. 이 때의 일이란 노동만이 아니다, 놀이, 휴식, 섭생 같은 살림살이 전부를 말한다. 그러니, 공부는 어떻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공부 또한 ‘일이다!’ 하는 일종의 선언으로 읽힌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하는 일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결론 하나가 풀어졌다. 마을시집이 태어난 것이다. 『소, 너를 길러온지 몇해이던고』이다. ‘죽곡마을시집’이라는 작은 설명을 달고 240쪽 남짓한 분량을 한 작은 판형 책이다. 책의 내력에 대해 책을 엮고 제작한 편에서는 2004년 도서관 개관 준비 당시로 이야기를 거슬러 설명한다. 다음카페에 도서관 공간을 마련했는데, 한편한편 이야기들 속에 시들이 올라오더라는 것, 그 시편들이 모이고, 마침 인문학강좌에서 백무산 시인을 초대해 시 이야기를 제대로 펼쳐보면서 한권의 시집으로 세상에 선을 보이게된 것. 이 몇 줄의 행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이 시집 한권이 ‘삶과 기록’의 거리를 바짝 좁혀놓은 결과다. 다듬은 입말이 한글이라는 문자로 기록되고, 문자는 지역에 정착한 마을출판사의 도움으로 활자로 옷을 갈아입었다. 말에서 문자로, 문자에서 활자로 이어지는 5,000년 동안의 기상천외한 줄다리기를 일거에 끝내버린 것이다.

작은 공동체의 교육과 문화를 기획하는 도서관
열린도서관을 설명하는 글귀에 ‘죽곡면의 교육과 문화를 기획하는’이라는 수식어가 있다. 도서관이 작은 공동체의 중심에 있다는 설명일 테다. 책, 도서관, 사람, 이야기는 자연스레 교육과 문화로 확장한다. 열린도서관은 2004년 8월 마을주민들이 소소한 자치공간을 만들고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작은도서관으로 일정한 활동을 인정받아 2006년 ‘희망의 작은도서관’ 공모에 선정되어, 새 집을 갖게 된다.
교육과 문화를 기획, 하는 도서관과 함께 스스로 붙인 다른 수식어가 있다. ‘마을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설명이다. 열린도서관의 활동으로 그 정체를 알 수 있을까? 도서관은 24시간 자율개방이라는 형태로 운영한다. 늘, 문이 열려있다는 것은 늘, 여기서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 사람 모두가 열린 형태라는 것.
앞에 길게 이야기한 농민인문학강좌다.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라, 바로 우리 농민의 삶을 저 근본부터 살펴보자는 ‘일삼아 하는 공부’다. 또한 농촌에서 ‘희귀종’이 되어가는 청소년들의 생활을 지원한다. 문화감성을 충전하도록 하는 것. 더불어 영화와 미술, 음악이라는 예술 친구되기다. 그리고 한권의 책으로 엮어냈던 ‘시 짓는 마을’, 게다가 도서관은 보성강, 섬진강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몸 누일 공간을 열어주곤 한다. 여행자들의 사랑방이다. 열린도서관은 2,000명 죽곡면의 14개 단체 대표가 운영위원이다. 여기서 지역 공동체의 운영, 경영의 새로운 모델을 찾아가고 있다.

부산에서 홍동 거쳐 곡성 죽곡면까지 이야기의 주인공
이 모든 일들의 바탕에 한 사람이 있다. 도서관 관장을 맡고 있는 김재형 선생이다. 그는 부산태생이며 전직 교사이다.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와 교육방식을 꿈꾸며 충남 홍성군 홍동을 거쳐 연고가 전혀 없는 죽곡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열린’ ‘농민’ 도서관이며, 농민인문학강좌며를 시작한 장본인이다. 한편으로 보따리 학교를 열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 관계망(網, 네트워크)으로 존재하는 열린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가 언젠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아침 6시 15분부터 7시 57분까지 인기 시사라디오 방송)’에 초대손님으로 등장한다. 조금 어눌한 듯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시집의 우여곡절, 도서관의 우여곡절과 재미를 전국에 퍼트리기도 했다. 그에게서 엿보는 삶의 노하우 역시, 공부다. 공부가 그의 삶을, 그를 둘러싼 농촌의 삶을 어떻게 바꿔왔고 바꾸어갈지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말한다.
“…… 이 공부를 10년만 할 수 있으면 아마 그때 죽곡은 상당히 많은 변화가 일어나 있을 겁니다. 그 변화가 어떤 의미를 가질 지 지금 다 알 수 없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10년을 보낸 것과 공부하면서 10년을 보낸 차이가 있을 겁니다. 농민에게서 희망의 싹이 움트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희망은 없습니다. 그 희망의 싹을 같이 키우고 물주고 보살피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공부를 통해서다. 도서관에서다.

소비를 넘어 생산의 공간으로서 도서관, 도서관의 미래
노인 한사람의 죽음과 도서관의 사라짐을 함께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서관은 무릇 소비의 공간이다. 책의 생태계에서 최종 단계에 이른 공간이 바로 도서관이다. 도서관이야말로 무엇인가를(그것은 대체로 책이다) 읽고, 보고, 듣고, 놀고, 이야기 나누는(심지어 베고 자는) 소비의 공간이다. 그 소비의 공간에서 지역 공동체와 함께 책의 생산을 도모하고 있다. 소비와 생산의 혼융(prosumer), 이것이 우리 문화와 산업의 현재를 풍미하는 하나의 ‘원리’라면 도서관과 책, 한 사람의 삶 또한 그 원리에 마땅하다.
그리하여 모든 삶들의 죽음은, 비록 하나의 도서관은 사라지는 것이나, 벌써 우주 한 귀퉁이에 작은 나이테 하나 남기는 일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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