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Vs. 일러스트작가
객원기자 박형연(법무법인 코러스 대표변호사)
일전에 화가와 일러스트 작가의 분쟁사례에 대하여 이곳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지난달에 2000명이 넘는 일러스트 작가들을 회원으로 가진 산그림 사이트(www.picturebook-illust.com)의 고문변호사가
되었다. 일러스트 작가들이 산그림과 같은 사이트에 가입하는 이유는 그들은 화가와 달리 화랑이라는 존재를 통하여 자신들의 작품을 거래하거나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나 그림을 필요로 하는 출판사와 직접 거래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업계에서 가장 큰 사이트인 산그림에 자신의 작품을
올리면 출판사들이 그중에서 적당한 그림과 작가를 섭외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화가는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이고, 일러스트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책이나 기타 매체에 판매하는 사업가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사업적 필요에서 산그림과 같은 사이트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요즘 미술계 내부에서도 순수미술과 Pop 아트의 경계, 조각과 회화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 그림이 화랑이 아닌
auction을 통하여 거래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화가들을 중심으로 산그림과 같은 사이트가 발생하는 미래가 도래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위 산그림 사이트에 산그림이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고 무료법률자문을 하는 작은방을 개설하였더니 3개월 동안 정말로 많은 일러스트 작가들이
법률자문을 요청해 왔다. 물론 그중에는 자신의 작품 활동과 관련 없는 성형 의료분쟁, 가족법적 법률자문도 있었지만 업무와 관련된 자문에
한정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컬처오션과 개인적 친분으로 알게 된 화가들에 대하여 2년 넘게 법률자문을 해주었던 것보다 불과 3개월 동안의 법률자문
숫자가 훨씬 많았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만일 2,000명의 화가들을 회원으로 가진 사이트가 존재하고 그 사이트에 무료법률자문 사이트를 만든다면
동일한 현상이 발생할까 생각해봤더니, 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법률상담의 경우에는 화가든 일러스트 작가든 각자 2천명을 모아놓고
모든 법률상담을 하라고 하면 그 빈도수는 비슷할 수 있다. 우리 인생에 닥치는 불행과 분쟁은 직업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거의 무차별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업무와 관련된 분쟁은 직업의 속성이나 업무의 속성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겪은 화가들의 분쟁과
일러스트 작가들의 분쟁을 한번 정리하여 보려고 이 글을 쓴다.
화가들의 분쟁사례
나 같은 변호사에게나 화가들에게나 일러스트 작가에게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내 용역의 댓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이다. 화가의 경우에는 그림을
팔고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이다. 내가 몇 개 자문한 것은 공교롭게도 화랑을 통하지 않고 직접 고객에게 작품이 판매된 경우였다. 그런데 화랑을
통하여 그림이 판매된 경우에는 화랑에서 책임을 지기 때문인지 그림 값을 못 받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내 경우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화가와 화랑 사이의 분쟁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둘 사이에 계약(전시계약)을 하지 않은 경우에 화랑과 화가 사이에 견해차로 인한 분쟁이
있었고, 계약을 했음에도 화랑이 판매한 그림 값을 늦게 치루어 맘 고생하는 화가가 몇 있었다.
화가나 화랑의 경우 집주인과 임대차분쟁이 몇 건 있었다. 그 분쟁의 내용에는 일반 임대차분쟁(보증금 문제, 임대기간 문제, 권리금
문제등)도 있었으나 임대한 화랑에 누수가 발생하여 그림 값에 대한 배상문제도 있었다. 내가 이곳에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듯이 작가 사이의
동업자(공동작업자)분쟁도 적지않게 발생하는 것 같다. 공동작업의 결과이다. 조작가와 건축가의 분쟁과 같이 다른 분야의 예술가 사이의 협업 시에
사용하는 언어가, 공감대가 달라서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던 것 같다. 미술계나 일반 사회나 동업의 분쟁이 많은 것을 보면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한다.
일러스트작가의 분쟁사례
일러스트 작가의 분쟁은 거의 대부분이 작업하고 돈을 못 받는 경우이다. 그 딱한 사정도 너무 다양하다. 똑똑하게 계약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마음에 안든 다고 가격을 깎거나 안주는 경우, 회사가 어려워져서 배째라 하고 나오는 경우들이었다. 아예 계약서도 없이 책에 들어갈
그림이나 일러스팅을 요구하고 막상 작업이 완료되면 작품이 마음에 안든다고 돈을 안주면서 소송하고 싶으면 하라고 적반하장인 경우도 적지 않았고,
마치 큰일을 줄 것처럼 하면서 간단한 그림 작업등을 시킨 다음에 중요한 그림 작업을 다른 회사에게 맞기는 경우 등 정말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많구나 실감하는 사건들이 많았다.
그 경우 화가도 마찬가지겠지만 법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문을 받아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계약서(주고 받은 이메일 포함)가 없이 구두로 계약이 이루이진 경우에는 소송을 제기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적지 않고, 계약의 증거가 있어
판결문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막상 상대방 회사가 재산이 거의 없는 영세업자인 경우가 제일 문제이다. 회사에서 돈을 못 받는 경우
근로감독관에게 신고를 하여 임금을 받는 경우가 있으나 이때 일러스트 작가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방법은 곤란하다. 그런데 많은 일러스트
작가들이 단기근로자라고 주장하면서 이런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돈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의 다른 방법일 뿐이다.
결국 방법은 사전적인 예방밖에 없는 것 같다. 돈 줄 것 같지 않은 놈들에게는 그림을 그려주지 않는 방법이다. 미리 선금을 받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세상물정 모르는 형식적인 자문,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 누가 그것을 모르는가! 내가 그런 반열에 오르지 못한
작가이거나 새롭게 고객을 만들어볼 마음에서 모험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약서를 잘 작성하지 않는 우리의 문화도 일조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돌아가는 길이 정답이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계약은 결국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가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나의 결론
대형로펌에 근무하다가 10여년전에 내 사무실을 오픈했던 나의 경우도 동일하다. 로펌에서는 의뢰만 들어오면 무조건 나는 일하고 돈을 받는
문제는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개업을 해보니 로펌에서는 구두계약도 계약이었는데 사정이 달랐다. 사무실을 찾아와 문서로 계약서를
쓰고도 사건을 다른 변호사에게 가져가는 경우가 비일비재였다. 계약서 있다고 나를 신뢰하지 못하고 가는 사람에게 계약서에 따라 소송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아예 처음부터 사건을 맡길 마음도 없이 사건을 맡길 것처럼 하면서 열심히 다른 법률자문을 구하고 돌아가는 사람등 다양한 실패
사례가 있었다. 로펌에서는 없는 수임에 관련된 맘고생이 심했다. 그래서 마음을 마꾸었다. 계약서를 쓰는 것이 계약이 아니라 돈이 사무실 통장에
들어올 때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 정도는 나에게 충성하는 고객에게 나도 변호사로서 충성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예를 들어가면서 일러스트
작가에게 법률자문이 아니나 인생자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열심히 일러스트 작가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여 오직 그림만 잘그리면 된다는 의욕으로
세상에 나왔다가 좌절하는 젊은 작가들을 볼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서 훌륭한 사회인이 되고,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세상살이는 작가에게나 변호사에게나 우리 모두에게 멀고 힘든 길이다. 그래서 우리가 예술품을 찾는지도 모르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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