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0, 2012

런던 올림픽을 통해 본 K-컬처의 명암

런던 올림픽을 통해 본 K-컬처의 명암
올림픽 성적은 기대 이상이라는 데 문화 올림픽 성적은?


얼마 전에 끝난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를 넘어 문화 전반에서 전 세계인이 축제를 펼친 그야말로 문화올림픽이었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주최국인 영국 정부와 영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일찌감치 ‘2012 런던문화올림픽’을 선포하고 자국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총망라하는 축제 플랜을 내놓았다.

올림픽 기간 전후의 문화축제는 자칫 메달경쟁에만 매달려 황폐하기 쉬운 올림픽에 많은 풍요로움이 가미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올림픽 참가국들로 하여금 스포츠 부문의 메달 경쟁 못지않은 문화 경연을 통해 올림픽의 문화제전으로서의 초심을 되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난 런던 올림픽은 앞으로 올림픽의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또한 이러한 런던 올림픽 취지에 충실히 함으로써 세계10위권 유지라는 당초 목표를 초과달성한 것 이상의 개가를 올렸다고 생각된다. 올림픽에 맞춰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이벤트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런던 올림픽의 경우는 달랐다. 두세 개 행사나 갈라 콘서트 형태로 선보인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에다 주요공연이나 전시가 올림픽 기간인 7월 말에 집중되었고, 다수의 공연, 전시가 유럽 최대 규모의 복합 예술 공간이며 연간 2,0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다는 런던 명물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열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주영한국문화원은 이미 1년 전부터 2012년을 영국 내 한류문화 확산 원년의 해로 정하고, 코리아하우스를 오픈하여 런던올림픽을 한국 문화를 확산하는 계기로 삼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올림픽 선수단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태릉선수촌에서 땀을 흘릴 때 문화올림픽 기획단 역시 머리에 땀을 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올림픽 선수단이 세계5위라는 기대 이상의 훌륭한 성과를 올리고 개선했듯 문화올림픽단도 최고의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올림픽 기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는 런던 시내 곳곳에서 '오색찬란, All Eyes on Korea: Shining Bright, Korea through Colours'라는 이름의 문화축제를 100일간 개최함으로써 개최국인 영국과 올림픽에 참가한 세계 각국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데 힘을 쏟았다. 런던 현지의 세계적 예술기관인 사우스뱅크센터(South Bank Centre)와 함께 미술, 음악,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진행한 문화축제는 스포츠 강국뿐 아니라 ‘문화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면모를, 그 오색찬란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1951년 설립된 음악, 무용, 시각예술, 공연 등의 예술 장르를 포괄해 다루는 유럽 최대의 예술 복합기관인 사우스뱅크센터의 여러 부대시설을 이용하여 영화와 한식뿐 아니라 미술과 문학, 국악 등의 전시와 공연을 펼침으로써 한국에 K팝이나 드라마 외에도 세계인과 즐길 수 있는 한국문화가 있고, 더욱이 전통과 현대가 한데 어울려 법고창신의 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성을 강조한 기획이 돋보였다. 드라마나 K팝으로만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경기장 밖에서 펼쳐진 문화올림픽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류의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오색찬란, 한국의 색을 입힌다(All Eyes on Korea)’는 당초 취지가 그대로 살아났다는 평이다.

특히 미술 분야에서는 올림픽 개최 훨씬 전부터 세계적인 작가 이불의 작품전시를 했던 사우스뱅크센터가 초청한 최정화, 김범 등의 작가들이 돋보였는데, 사실상 처음 축제의 문을 연 것은 설치미술가 최정화 작가였다. 최 작가의 야외조형물전 'Time After Time'은 한국적인 소재를 모티브로 한 팝아트 작품을 헤이워드갤러리 야외 외벽에 설치함으로써 한국 팝아트의 일면을 잘 보여주었으며, 역시 설치미술가인 김범 작가의 'The School of Inversion'전은 회화, 드로잉, 오브제 등 폭넓은 매체를 이용해 교실이라는 친숙한 공간을 새롭게 보도록 했다.

사우스뱅크센터의 초대전과는 별도로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신미경 작가는 런던 옥스퍼드가의 카벤디쉬 광장에 좌대만 남아 있던 18세기 컴버랜드 공작의 기마상을 부활시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Written in Soap'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카벤디쉬 광장에 세워졌다가 지금은 좌대만 남은 기마상을 비누로 재연한 설치작품은 앞으로 약 2년 동안 자연 풍화되면서 ‘시간’과 ‘역사’의 개념을 표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주영한국문화원 전시실에서 열린 '꼭두, 또 다른 길의 동반자'는 상여, 꼭두 인물상, 봉황 등 100여점의 전통 조형물들로 한국적인 익살과 색채감을 전했고,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에서는 단청, 조각보를 활용한 이상봉의 패션쇼와 요리사 레오 강과 김소희의 한식 시연ㆍ만찬회가 같이 열렸으며, 해롯백화점에서 열린 한국 브랜드 특별전 기간 동안에는 십장생도, 의궤행렬도, 신윤복 김홍도 그림 등을 보여주는 8폭의 55인치 LED TV 병풍이 전시되었다.

미술 분야 외에도 클래식과 국악공연 역시 사우스뱅크센터 내외에서 동시에 벌어져 축제의 흥을 돋웠는데,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 런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지휘자 라이프 세겔스탐이 협연을 펼쳤으며, 타악기와 관악기로 구성된 국악그룹 ‘공명’과 또 다른 음악단체 ‘바람곶’의 공연도 열렸는데, ‘바람곶’은 <한국음악앙상블>이라는 제목으로 산조, 시나위, 굿 등 국악 및 전통문화 공연을 창조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전통 음악에 무용, 영상 등을 접합한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해온 한국음악 프로젝트 그룹 ‘비빙’은 <이면공작>이라는 제목아래 한국 가면극을 재해석한 공연을 선보였고, 이자람은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사천의 선인’을 21세기 한국적 상황에 맞춰 판소리와 뮤지컬 형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창작 판소리 <사천가>를 공연했다.

이밖에도 무성영화를 포함한 한국 영화도 런던 시내 몇 개 극장에서 올해 말까지 상영되고 있으며, 주영한국문화원에서는 ‘글로벌 코리아(Global Korea)’라는 주제로 한국미술, 공연, 음식, 문학 등에 관한 현지 전문가들의 초청 강연을, 그리고 현지인 서포터스의 플래시몹도 마련했다. 문화부 관계자는 "주요 행사들을 사우스뱅크센터의 기존 프로그램에 맞춰 마련해 비용 대비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처럼 미술을 비롯한 음악, 패션, 음식, 공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K-컬처를 아낌없이 보여준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류 확산에 크게 기여한 K-팝 공연이 오색찬란의 핵심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K-팝 공연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6월 23일 오후 올림픽을 34일 앞두고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런던 밀레니엄 파크에서는 세계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K팝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생생하게 선보이기 위한 종합 문화이벤트진 'MBC 코리안 컬처 페스티벌 인 런던 2012'이 개최되기도 했다.

한국의 얼·흥·멋을 주제로 펼쳐진 이날 페스티벌은 오프닝 무대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상영한 후 타악그룹 '야단법석'의 '다이내믹 코리아' 대북 공연이 울려 퍼졌고, 사물놀이와 퓨전국악, K팝 커버댄스 유럽챔피언팀, 그룹 '포미닛'의 무대가 이어졌으며, 한복디자이너 박술녀씨는 궁중의상 패션쇼로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K팝도 아쉬운 대로 런던 올림픽 현장을 밟기는 했다. 하지만 연초(지난 1월 3일) 발표된 해당사의 2012년도 사업계획에 따르면 이날 페스티벌은 K팝을 끼워넣기 하는 방식의 페스티벌이 아니라 K팝 중심의 페스티발이었다. 당시 MBC는 구체적으로 형식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콘서트를 펼치는 그간의 K팝 페스티벌과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왜 6개월 뒤의 현장에서는 K팝 팀이 한 둘 끼어든 페스티발로 전락했으며, 그나마 일개 방송사의 프로그램 말고 ‘오색찬란’ 본 프로그램에서 K팝이 철저히 배제된 것일까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는 런던 올림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7월 9일 당시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300여명의 K팝 팬들이 투애니원과 빅뱅 등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춤과 율동을 따라하는 플래시몹(일정 시간과 장소를 정해 똑같은 행동을 벌이는 것) 퍼포먼스를 벌여 화제가 된 바 있었다. 그에 앞선 앞서 7월 6일에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와 할리우드에서 K팝 팬 170여명이 'SM타운' 공연을 열어달라며 플래시몹을 벌였다는 기록과 함께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렇게 대서양을 오가며 벌어진 한류 스타들의 공연을 촉구하는 깜짝 시위가 자연스런 한류열풍이 아니라 기획사끼리의 라이벌 대결처럼 펼쳐지는 양상에 국내 언론들이 과민하게 반응한 결과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비판의 최고조는 바로 런던에서 나왔다. 그리고 한국 언론 K팝 띄우기 너무 심한 나머지 일종의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로밖엔 보이지 않는다는 현지 교포사회의 비판이 나온 게 시작이었다. 당시 런던의 플래시몹도 준비과정이나 실행이 현지 팬들의 자발적 모임이 아니라 국가 기관인 현지 한국문화원이 과도하게 개입했고, 한국 언론들 역시 비뚤어진 애국심 즉,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유럽에서의 신한류 확산' 담론에 무책임하게 일조했다는 것이다. 비판에 따르면 행사 전 언론에 배포한 보도 자료만 보더라도 행사 일정, 이동 동선, 행사 진행 방식, 심지어 기자 회견 대상자와 참석자 등 모든 것을 문화원에서 미리 알고 조율했음이 쉽게 파악됐으며, 실제 현장에서는 행사 참여자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한국 언론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가 예상보다 현격히 적은 참여자들에 실망하는 목소리까지 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에 소개된 기사내용은 과장일색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한국에서 직접 방문했다는 YG측도 오히려 기자에게 영국에서의 한류에 대한 정확한 현실을 물으며 혼란스러워 했다고 한다. 결국, 영국 혹은 유럽에서의 신한류는 한국 문화원과 일부 한국 언론에 의해 지나치게 속성으로 '재배'된 것으로 여겨지면서 영국 공영방송인 BBC 등 일부 유럽 언론들도 K팝을 두고 한국의 글로벌 전략상품이라 의심하며 부정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바로 1년 전 그런 사건이 K팝 한류에 역류를 일으켰던 것이며, 1년 후 K컬처에 K팝이 빠진 이유일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대중문화의 홍보도 해외 한국 문화원의 역할임이 분명하지만 지원은 뒷전인 채 현지 한류의 성공에 대한 엄청난 성과와 자긍심을 강조하는 방식의 한류를 기치로 내세운 과시성 정책 홍보가 문제였던 셈이다. 특정 거대 연예 기획사와 지나치게 공조하여 성과주의의 K-POP 홍보에 치중하는 것이 해외 주재 국가 기관으로서의 적절한 역할인지도 생각해 볼 대목이다. 그렇게 말만 앞세우다가 정작 발로 뛸 때는 뒷전으로 밀려 버린 것이 바로 런던 문화올림픽에서의 K팝의 신세였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당연히 땄어야 할 메달이라는 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정부나 각 체육단체로부터 특별한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세계적인 성과를 올린 펜싱 선수단과 역시 변변한 지원이 없는 상황 속에서 개인적으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해서 메달을 거머쥔 비인기종목의 여러 선수들이 대한민국을 5위로 올려놓은 영웅들이다. 한정된 자원 등을 고려할 때 선택적 지원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치더라도 1일 여삼추와도 같은 1초에 눈물을 흘려 그것만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펜싱선수, 심판이 갑자기 청기백기 놀이를 하는 바람에 역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유도선수와 아무리 테입을 돌리고 또 돌려도 알 수 없는 부정출발에 역시 눈물을 삼켜야 했던 수영선수, 그리고 욱일승천기는 괜찮은데 독도 그려진 한반도 지도는 정치적이라며 메달도 받지 못한 축구선수에 이르기까지, 아랫것들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되는 동안 과연 높으신 분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선수들은 잘 하는데 그 반에 반도 못 따라가는 체육행정의 낙후성이나 문화올림픽에서 천시당한 K팝이나 오십보 백보 아닌가 싶다. K팝은 사실 문화 행정이나 문화 예산 항목 중 가장 소외된 분야다. 관련 진흥기구도, 발전 기금조차 없음에도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대한민국 빅 브랜드가 된 K팝이 올림픽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유감이다. 그런 점에서 펜싱이나 핸드볼 같이 참여는 가능했던 스포츠 비인기종목들은 그나마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세계 각국이 문화 전쟁에 올인하는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인 K-팝 지원 정책이 절실한 타이밍에 문화부와 영국문화원이 1년 전에 그 과잉친절의 반만이라도 보여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런던 올림픽은 스포츠와 관련해서도, 또한 문화와 관련해서도 정부의 지원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번 런던 올림픽을 사상 최고의 문화올림픽으로 만들어낸 영국의 문화지원정책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셰익스피어와 비틀스, 해리 포터의 나라인 영국은 문화대국이 아니라고 하면 섭섭하다 싶을 정도로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읽고 쓸 줄 아는 나라였다. 특히 난세에 오히려 강력한 문화 정책을 펼침으로써 국민 사기를 진작시키고 위기탈출의 원동력을 얻어낼 줄 아는 나라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영국 정부는 문화 진흥을 목적으로 영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신인 CEMA(Council for the Encouragement of Music & the Arts)를 설치한다. 그리고 초대 회장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경제학자 J.M. 케인스를 선임했다. 나중에 영국문화예술위원회로 확대 개편된 CEMA는 영국이 전쟁, 산업화를 겪으면서 일찌감치 문화예술의 사회적 경제적 효과를 중시하는 정책을 유지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으며, 케인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

케인스가 이끄는 CEMA는 전후 영국의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분야 지원에 적극 노력했다. 팔 닿는 데까지 지원하되 정부의 간섭은 받지 않는 ‘팔길이(Arm’s Length) 모델’이란 비아냥을 들었지만, 사실 ‘간섭하지는 않으면서 조건 없는’ 영국식 문화 지원 모델이야말로 메세나 정책의 원류라 해도 좋을 정도였기 때문에 비아냥거림을 당해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영국이었기에 모처럼 자국이 개최한 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뭔가 부러운 나라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