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카셀 도쿠멘타(13documenta Kassel) : 전시의 기능과 문화권력
글: 철학박사 김승호 Kim, Seung-Ho (동아대학교수)
frkim62@naver.com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상황을 고려하면 미술전시는 미술을 위한 기획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네트워크로 묶여진 세상에 살고 있고, 시리아에서는 아직도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13회 도쿠멘타 총감독 케롤린(Carolyn Christove-Bakargiev)인터뷰 중에서-
21세기 전시의 기능이 변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생산하고 생산된 작품은 전시에서 선을 보이는 관계가 사라 진지가 오래됐다. 그리고 도쿠멘타와 비엔날레전시에서 설치미술이 생명력을 획득한지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나아가서는 도쿠멘타가 사진을 미술로 인정한 전시였다는 것도 벌써 70년도 일이다.
미술전시의 첨단을 달리는 전시 현장을 들렀다. 2012년 여름 전시문화의 총아로 거듭난 독일 중부도시 카셀시를 찾았다. 전시문화의 첨단을 달리는 도쿠멘타는 100일간 진행되는 카셀역 에서부터 시작된다. 국제적으로 가장 영향력과 권위가 있다는 13회 도쿠멘타. 60년에 달하는 역사를 강조한 이번 전시는 카셀(6월 9일-9월 16일), 카불(6월 20일-7월 19일), 카이로(7월 1일-7월 8일), 캐나다의 반프(8월 2일-8월 15일)로 이어 달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현대미술전시의 메카이자 권위 있고 볼거리가 가장 견고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파리의 퐁피두센터 큐레이터인 크리스틴(Cristine Marcel), 뉴욕 현대미술관 관장 글렌(Glenn D. Lowry), 제30회 상파올로 총감독 루이스(Luis Perez-Oramas)의 평가는 지나칠 것은 아니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미술시장(아트페어)도 없는 카셀시에 5년에 한 번씩 도쿠멘타가 개최되어 전시에 집중하기 적합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3명의 한국작가를 포함하여 150명이 넘는 작가들이 "붕괴와 재건"으로 동석한 도쿠멘타다. 그들이 던지는 미학적 질문은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의 현실을 직시하고 깨우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가 속해있는 세상을 직시하고 성찰하기 까지는 꼼꼼한 분석과 예민한 감각을 요청한 국제전시다. 21세기 삶의 현장을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이자 작가의 눈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려는 관객들의 진지한 태도를 요구하는 도쿠멘타. 전시장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자.
수많은 인파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프리드리히시아늄(Museum Fridericianum)박물관. 그 앞에는 1980년도 도쿠멘타의 상징물인 요셉 보이스의 돌덩이와 떡갈나무 두 구루가 나란히 자라고 있다. 그리고 1992년 제9회 도쿠멘타에 초청된 육근병이 비디오작품을 설치하고 막걸리와 함께 풍악놀이를 즐겼던 메인관 앞이 올해는 천막을 치고 환경문제를 행인들과 공유하는 프로젝트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도판 1)하얀 텐트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옆의 천막은 전시기간동안 거주공간으로 활용되어 어수선하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전시의 꽃이라 불리는 메인관 일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텅 빈 전시 공간의 한 구석에 덩그러니 세워진 자그마한 유리 상자 하나. 이 전시공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고작 작가가 총감독에게 보낸 편지 한 장만 있을 뿐이다. 카이(Kai Althoff)는 이렇게 전시참여를 거부한다는 편지 한 장으로 메인전시장을 찾은 관람자들을 당황케 한다. (도판 2) 총감독인 케롤린은 작가에게 허락받고 작가가 보내온 편지를 유리관에 넣어 전시했다고 한다. 그녀의 두둑한 배짱에 놀랄 뿐이다. 사진미술의 대부인 만 레이(Man Ray)와 최후의 정물화가인 모란디(Giorgio Morandi), 초현실주의자인 달리(Salvador Dali)가 21세기 동시대 미술전시에 동참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첨단의 자연과학, 도자기, 설치미술로 연출되었다. 이로써 그들 작품의 이미지가 실험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사라지질 않는다. 지하에서 2층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회화, 드로잉, 설치, 사진, 도자기, 영상, 음향, 실험 작품들은 아시아와 유럽, 아랍과 아프리카와 남미와 북미에서 “붕괴”되고 “재건”되는 현장을 시각적으로 펼쳐낸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정치와 사회, 폭력과 파괴, 탄압과 사망, 현실과 희망, 미래와 현재의 소통을 종이, 사진, 나무, 철, 천,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으로 던지는 미학적 질문. 관객과 가까워지려는 그들의 미적 전략일 것이다. 어느 누군들 이러한 기획전에서 튀고 싶지 않겠는가. 2차대전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제작된 양탄자 작품은 폴란드 작가 고시카 마쿠가(Goshka Macuga)(도판 3)의 커다란 반원형 흑백의 양탄자 벽화(역사화)와 함께 출품됐다. 고시카의 역사적인 양탄자 벽화는 현대미술의 대부로 추앙받는 요셉 보이스의 1972년 “꿀 펌프”설치작품과 함께 도쿠멘타의 기념비로서 오랫 동안 기억 속에 자리 할 것이다.
생각하면서 보는 즐거움은 도쿠멘타할레(Documenta Halle)로 이어진다. 입구엔 천으로 가린 드로잉 작품이 전시장의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고, 이디오피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하고 현재는 세네갈과 베를린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메레투(Julie Mehretu)의 대형 평면 작품(도판 4)과 마주친다. 국제화의 물결은 도시공간에 권력, 정체성, 허무함, 전쟁과 파괴를 촉발한 현장을 드로잉으로 촘촘하게 담아낸 작품, 이와는 달리 전준호와 문경원은 국내의 유명한 배우가 출현한 두 개의 비디오 작품과 일본 후쿠시마를 연상케 하는 피해와 복구를 설치작품으로 참가했다. (도판 5) 그리고 66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 인도 작가 말라니(Nalini Malani)는 인도의 전통인 미니어쳐 회화를 평화주의자 간디의 윤리와 크리사나 교리가 선동한 전쟁영웅을 혼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렇듯 메인 전시관이 전시와 미술이 무엇인지 질문을 유도했다면, 중국작가 얀라이는 내용적으로는 빈약한 벽과 천장과 미술품 보관소를 가득채운 360점의 회화작품으로(도판 6)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도쿠멘타할레는 전준호와 문경원, 말라니 그리고 얀라이의 동참으로 붕괴와 재건의 기획력은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전시공간에서 생명력을 얻었다.
도쿠멘타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중앙역(Hauptbahnhof)에서도 펼쳐진다. 2012년 6월호 미술잡지(art)에 집중 조명된 함경아. 그녀의 설치작품은 기차 레일위에 매달려 있어서, 어두운 전시 공간에 흙으로 설치된 작품을 지나서 나무로 만든 양복점 설치작품을 보고나서야 만난다. (도판 7) 암튼 미소가 절로 나오는 나무작품과는 달리 양혜규는 차가운 샬로진 설치작품으로 응수했다. 작업실 공간이 부족하여 시작된 설치작품이 여기서는 중앙역에 길게 놓인 철로와 조화를 이루었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기차레일에 일상적인 사물이 첨가되어 미학적 가치가 돋보인다. (도판 8) 중앙역 서쪽건축물의 끝에서 진행 중인 And And And프로젝트로 중앙역의 관람은 끝난다.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공간엔 관객과 소통하는 진행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칠판에는 토론내용과 계획 등이 매일매일 새롭게 쓰여 지고, 다른 공간에서는 스파게티를 요리하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이렇듯 도쿠멘타 기획팀은 현대화의 노정으로 방치된 중앙역의 빈 건물을 활용하여 100일간 관객과 소통하고 토론하는 문화역전으로 탈바꿈시켰다. (도판 9) 이러한 미학적 전환에 양혜규의 설치작품이 어디까지 기여할지는 미지수로 남겨놓자.
2012년 카셀 도쿠멘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근현대 미술품이 소장된 뉴갤러리(Neue Galerie)로 이어진다. 노랑 오랑제리(Orangerie)와 오토네움(Ottoneum)전시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그림형제의 박물관도 도쿠멘타전시장으로 활용됐다. 뉴갤러리 초입에서는 교도소의 현장을 조각으로 변신한 콘크리트 조각 작품이 전시됐고,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작가의 육성이 귓전에서 멀어지면 봉사가 삼성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작품이 그리고 아프리카의 동성애자들을 다룬 자넬레(Zanele Muholdi)의 흑백사진과 기록영상물이 방문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피에르(Pierre Huyghe)의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자넬레다, 기독교의 상징인 마지막 만찬회가 아프리카에서 재현된 작품과 함께 뉴갤러리 전시장은 다국적 시각미술의 보물창고로 변신했다. 그리고 나무가 울창한 넓은 녹색 공원에 설치된 작품들은 피로에 누적된 관람객의 발걸음을 아늑한 자연공간으로 인도한다. 중국작가 송동(도판 10)은 흙으로 쌓은 작품으로 명상의 시간을 선사했다. 13회 도쿠멘타의 의미를 종합하고 음미하기 안성맞춤인 자연 공원. 시각미술에서 전시의 기능과 역할을 음미하고 도쿠멘타가 선사한 미적 경험을 사색하기 위한 배려다. 며칠간 돌아본 여운은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겠지만, 이번 전시는 질문을 유도했고, 참여 작가가 화답하고 관객이 경험하고 참여하는 도쿠멘타가 되었다. 미술을 위한 기획이 아니라 미학적 경험이 풍부한 카셀시의 여정은 도쿠멘타가 진행되는 100일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 여행에 CCB로 불리는 총감독의 기획력도 동반해야 하질 않을까.
이번 전시는 많은 과제를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회 도쿠멘타 총감독인 오쿠이 엔베조가 아프리카를 흡수하여 2002년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는 의식을 일구어냈다면, 13회 도쿠멘타의 총감독인 케롤린은 정치로 혼란한 지역도 대거 흡수하여 미술전시의 기능과 범위를 실험했다. 생존한 동시대 작가뿐만이 아니라 미술사에 수록된 작가와 더불어 미술외적인 분야의(철학, 문학, 정치, 경영, 물리, 생물학, 건축, 문화, 에너지) 전문가들도 동참한 기획전이다. 이렇듯 미술이 이제는 인문과 자연과학의 연구대상뿐만이 아니라 어깨를 함께하는 동무/동지로 자리매김 했듯이, 백남준에서 육근병 그리고 이제는 양혜규와 문경원과 전준호로 이어가는 전시문화의 권력. 시작된 고민에 진지하게 그리고 역동적으로 동참해야 하질 않을까. 우리에겐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가 있지 않은가.
글: 철학박사 김승호 Kim, Seung-Ho (동아대학교수)
frkim62@naver.com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상황을 고려하면 미술전시는 미술을 위한 기획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네트워크로 묶여진 세상에 살고 있고, 시리아에서는 아직도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13회 도쿠멘타 총감독 케롤린(Carolyn Christove-Bakargiev)인터뷰 중에서-
21세기 전시의 기능이 변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생산하고 생산된 작품은 전시에서 선을 보이는 관계가 사라 진지가 오래됐다. 그리고 도쿠멘타와 비엔날레전시에서 설치미술이 생명력을 획득한지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나아가서는 도쿠멘타가 사진을 미술로 인정한 전시였다는 것도 벌써 70년도 일이다.
미술전시의 첨단을 달리는 전시 현장을 들렀다. 2012년 여름 전시문화의 총아로 거듭난 독일 중부도시 카셀시를 찾았다. 전시문화의 첨단을 달리는 도쿠멘타는 100일간 진행되는 카셀역 에서부터 시작된다. 국제적으로 가장 영향력과 권위가 있다는 13회 도쿠멘타. 60년에 달하는 역사를 강조한 이번 전시는 카셀(6월 9일-9월 16일), 카불(6월 20일-7월 19일), 카이로(7월 1일-7월 8일), 캐나다의 반프(8월 2일-8월 15일)로 이어 달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현대미술전시의 메카이자 권위 있고 볼거리가 가장 견고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파리의 퐁피두센터 큐레이터인 크리스틴(Cristine Marcel), 뉴욕 현대미술관 관장 글렌(Glenn D. Lowry), 제30회 상파올로 총감독 루이스(Luis Perez-Oramas)의 평가는 지나칠 것은 아니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미술시장(아트페어)도 없는 카셀시에 5년에 한 번씩 도쿠멘타가 개최되어 전시에 집중하기 적합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3명의 한국작가를 포함하여 150명이 넘는 작가들이 "붕괴와 재건"으로 동석한 도쿠멘타다. 그들이 던지는 미학적 질문은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의 현실을 직시하고 깨우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가 속해있는 세상을 직시하고 성찰하기 까지는 꼼꼼한 분석과 예민한 감각을 요청한 국제전시다. 21세기 삶의 현장을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이자 작가의 눈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려는 관객들의 진지한 태도를 요구하는 도쿠멘타. 전시장의 내면을 속속들이 들여다보자.
수많은 인파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프리드리히시아늄(Museum Fridericianum)박물관. 그 앞에는 1980년도 도쿠멘타의 상징물인 요셉 보이스의 돌덩이와 떡갈나무 두 구루가 나란히 자라고 있다. 그리고 1992년 제9회 도쿠멘타에 초청된 육근병이 비디오작품을 설치하고 막걸리와 함께 풍악놀이를 즐겼던 메인관 앞이 올해는 천막을 치고 환경문제를 행인들과 공유하는 프로젝트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도판 1)하얀 텐트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옆의 천막은 전시기간동안 거주공간으로 활용되어 어수선하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전시의 꽃이라 불리는 메인관 일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다. 텅 빈 전시 공간의 한 구석에 덩그러니 세워진 자그마한 유리 상자 하나. 이 전시공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고작 작가가 총감독에게 보낸 편지 한 장만 있을 뿐이다. 카이(Kai Althoff)는 이렇게 전시참여를 거부한다는 편지 한 장으로 메인전시장을 찾은 관람자들을 당황케 한다. (도판 2) 총감독인 케롤린은 작가에게 허락받고 작가가 보내온 편지를 유리관에 넣어 전시했다고 한다. 그녀의 두둑한 배짱에 놀랄 뿐이다. 사진미술의 대부인 만 레이(Man Ray)와 최후의 정물화가인 모란디(Giorgio Morandi), 초현실주의자인 달리(Salvador Dali)가 21세기 동시대 미술전시에 동참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첨단의 자연과학, 도자기, 설치미술로 연출되었다. 이로써 그들 작품의 이미지가 실험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사라지질 않는다. 지하에서 2층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회화, 드로잉, 설치, 사진, 도자기, 영상, 음향, 실험 작품들은 아시아와 유럽, 아랍과 아프리카와 남미와 북미에서 “붕괴”되고 “재건”되는 현장을 시각적으로 펼쳐낸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정치와 사회, 폭력과 파괴, 탄압과 사망, 현실과 희망, 미래와 현재의 소통을 종이, 사진, 나무, 철, 천,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으로 던지는 미학적 질문. 관객과 가까워지려는 그들의 미적 전략일 것이다. 어느 누군들 이러한 기획전에서 튀고 싶지 않겠는가. 2차대전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제작된 양탄자 작품은 폴란드 작가 고시카 마쿠가(Goshka Macuga)(도판 3)의 커다란 반원형 흑백의 양탄자 벽화(역사화)와 함께 출품됐다. 고시카의 역사적인 양탄자 벽화는 현대미술의 대부로 추앙받는 요셉 보이스의 1972년 “꿀 펌프”설치작품과 함께 도쿠멘타의 기념비로서 오랫 동안 기억 속에 자리 할 것이다.
생각하면서 보는 즐거움은 도쿠멘타할레(Documenta Halle)로 이어진다. 입구엔 천으로 가린 드로잉 작품이 전시장의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고, 이디오피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하고 현재는 세네갈과 베를린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메레투(Julie Mehretu)의 대형 평면 작품(도판 4)과 마주친다. 국제화의 물결은 도시공간에 권력, 정체성, 허무함, 전쟁과 파괴를 촉발한 현장을 드로잉으로 촘촘하게 담아낸 작품, 이와는 달리 전준호와 문경원은 국내의 유명한 배우가 출현한 두 개의 비디오 작품과 일본 후쿠시마를 연상케 하는 피해와 복구를 설치작품으로 참가했다. (도판 5) 그리고 66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 인도 작가 말라니(Nalini Malani)는 인도의 전통인 미니어쳐 회화를 평화주의자 간디의 윤리와 크리사나 교리가 선동한 전쟁영웅을 혼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렇듯 메인 전시관이 전시와 미술이 무엇인지 질문을 유도했다면, 중국작가 얀라이는 내용적으로는 빈약한 벽과 천장과 미술품 보관소를 가득채운 360점의 회화작품으로(도판 6)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도쿠멘타할레는 전준호와 문경원, 말라니 그리고 얀라이의 동참으로 붕괴와 재건의 기획력은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전시공간에서 생명력을 얻었다.
도쿠멘타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중앙역(Hauptbahnhof)에서도 펼쳐진다. 2012년 6월호 미술잡지(art)에 집중 조명된 함경아. 그녀의 설치작품은 기차 레일위에 매달려 있어서, 어두운 전시 공간에 흙으로 설치된 작품을 지나서 나무로 만든 양복점 설치작품을 보고나서야 만난다. (도판 7) 암튼 미소가 절로 나오는 나무작품과는 달리 양혜규는 차가운 샬로진 설치작품으로 응수했다. 작업실 공간이 부족하여 시작된 설치작품이 여기서는 중앙역에 길게 놓인 철로와 조화를 이루었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기차레일에 일상적인 사물이 첨가되어 미학적 가치가 돋보인다. (도판 8) 중앙역 서쪽건축물의 끝에서 진행 중인 And And And프로젝트로 중앙역의 관람은 끝난다.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공간엔 관객과 소통하는 진행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칠판에는 토론내용과 계획 등이 매일매일 새롭게 쓰여 지고, 다른 공간에서는 스파게티를 요리하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이렇듯 도쿠멘타 기획팀은 현대화의 노정으로 방치된 중앙역의 빈 건물을 활용하여 100일간 관객과 소통하고 토론하는 문화역전으로 탈바꿈시켰다. (도판 9) 이러한 미학적 전환에 양혜규의 설치작품이 어디까지 기여할지는 미지수로 남겨놓자.
2012년 카셀 도쿠멘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근현대 미술품이 소장된 뉴갤러리(Neue Galerie)로 이어진다. 노랑 오랑제리(Orangerie)와 오토네움(Ottoneum)전시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그림형제의 박물관도 도쿠멘타전시장으로 활용됐다. 뉴갤러리 초입에서는 교도소의 현장을 조각으로 변신한 콘크리트 조각 작품이 전시됐고,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작가의 육성이 귓전에서 멀어지면 봉사가 삼성휴대폰으로 찍은 영상작품이 그리고 아프리카의 동성애자들을 다룬 자넬레(Zanele Muholdi)의 흑백사진과 기록영상물이 방문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피에르(Pierre Huyghe)의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자넬레다, 기독교의 상징인 마지막 만찬회가 아프리카에서 재현된 작품과 함께 뉴갤러리 전시장은 다국적 시각미술의 보물창고로 변신했다. 그리고 나무가 울창한 넓은 녹색 공원에 설치된 작품들은 피로에 누적된 관람객의 발걸음을 아늑한 자연공간으로 인도한다. 중국작가 송동(도판 10)은 흙으로 쌓은 작품으로 명상의 시간을 선사했다. 13회 도쿠멘타의 의미를 종합하고 음미하기 안성맞춤인 자연 공원. 시각미술에서 전시의 기능과 역할을 음미하고 도쿠멘타가 선사한 미적 경험을 사색하기 위한 배려다. 며칠간 돌아본 여운은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겠지만, 이번 전시는 질문을 유도했고, 참여 작가가 화답하고 관객이 경험하고 참여하는 도쿠멘타가 되었다. 미술을 위한 기획이 아니라 미학적 경험이 풍부한 카셀시의 여정은 도쿠멘타가 진행되는 100일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 여행에 CCB로 불리는 총감독의 기획력도 동반해야 하질 않을까.
이번 전시는 많은 과제를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회 도쿠멘타 총감독인 오쿠이 엔베조가 아프리카를 흡수하여 2002년 세계의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는 의식을 일구어냈다면, 13회 도쿠멘타의 총감독인 케롤린은 정치로 혼란한 지역도 대거 흡수하여 미술전시의 기능과 범위를 실험했다. 생존한 동시대 작가뿐만이 아니라 미술사에 수록된 작가와 더불어 미술외적인 분야의(철학, 문학, 정치, 경영, 물리, 생물학, 건축, 문화, 에너지) 전문가들도 동참한 기획전이다. 이렇듯 미술이 이제는 인문과 자연과학의 연구대상뿐만이 아니라 어깨를 함께하는 동무/동지로 자리매김 했듯이, 백남준에서 육근병 그리고 이제는 양혜규와 문경원과 전준호로 이어가는 전시문화의 권력. 시작된 고민에 진지하게 그리고 역동적으로 동참해야 하질 않을까. 우리에겐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가 있지 않은가.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