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14, 2012

광해 왕이 된 남자


픽션으로 팩트를 말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8년 재위시절 사라진 15일간의 기록을 과감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재위기간 내내 정통성 시비와 역모에 시달리다 폐위까지 당하는 광해군의 무거운 이야기를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역사와 허구를 넘나들며 예상치 못한 웃음과 감동으로 풀어 내고 있다.
사라진 15일간의 시간에 왕의 대역이 있었다는 마치 마크트윈의 ‘왕자와 거지’의 대역 바꾸기 같은 과감한 픽션에 1인2역을 소화해내는 광해역 이병헌의 연기는 명불허전답게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숨 막히는 그의 눈빛 연기는 어느새 해악으로 가득 찬 웃음으로 바뀌어 근엄한 왕과 저잣거리 하층민 ‘하선’을 넘나든다.
역사에선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영화에선 모두가 가능하다.
처음엔 술판의 흥을 돋우며 살던 광대 하선이 그저 한바탕 광대극을 하듯 임금을 흉내 내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하선은 자신이 앉아있는 임금이라는 자리와 시간의 무게감을 느꼈을까?
어느새 왕의 면모를 갖추고 "대체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요?" 를 외치고 호패법과 대동법을 실시하는 하선을 보면 관객은 묘한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조정의 대신과 신료들 사이의 반목과 대립, 권력암투의 모습 또한 생생한 배경 화면과 함께
실감나게 다가온다.
조선왕조가 "여봐라~"의 나라일 뿐 아니라 "아니 되옵니다"의 나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사실을 알려주는 듯,
“신의 등을 밟고 지나시옵소서~ ” 하는 신하들의 등을 징검다리 밟듯 밟고 지나는 씬은 찡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개혁군주 광해와 적서의 신분차별을 바꾸고자 했던 홍길동의 저자 허균의 설정 또한 기막히다. ‘판서보다 승지가 낫다더라'는 옛말처럼, 요즘 버전으로하면 장관보다 청화대 수석비서 자리가 더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허균은 광해와 밀착되어있다.
도승지 허균은, 앓아누운 광해와 그를 대신한 가짜 광해와 모두 밀착되어있다.
허균 역의 유승룡은 진짜 허균 같다.
유승룡의 무게감 있는 연기는 왕과 도승지, 하선과 도승지, 왕 역할의 하선과 도승지를 오가며 촌각을 다투어야 하는 극의 흐름 속에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장치적 역할을 하고 있다..
조내관 역의 장광 역시 진짜 거세라도 한 양 무심한 듯 진중한 역이 돋보이고 중전 한효주는 진지하고도 곱다.
사월이는 어떤가? 가짜 광해를 대신해 비상을 삼키며 피를 토하고 죽을 때는 나도 울었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가을의 문턱에서 최대의 화제작이 될 만하다.
이 작품의 자연스럽고 소소한 웃음과 감동은 '마파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행복한 장의사'의 추창민 감독 영화라는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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