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nstdoc Project Space 난지”에서 드러나는 원형과 파괴의 변주
쿤스트독이 2009년부터 종로구 통의동 골목에서 한 대의 컨테이너로 실행해 온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일 년의 휴면기를 지나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강시민공원으로 장소를 옮겨 다시 진행한다. 예술문화 수용계층의 하위구조 확장과 작업방식의 탈정형화 등 컨테이너를 활용한 현대미술의 실험적이며 실천적인 과제와 더불어 “Kunstdoc Project Space_난지”는 오늘날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의 소통구조에 부합하는 발전적 전시개념으로 ‘작업공간의 이동과 증식’에 프로젝트의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화환경 조성에 예술이 다가가는 하나의 구체적 방법임과 동시에 예술방식의 가변적 성질을 지속적으로 배양하여 자본의 시장논리에 종속된 예술의 일방적 존재가치를 수평관계로 ‘평가절하’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한강 난지캠핑장 입구에 위치한 두 대의 컨테이너는 공간 앞면을 유리로 오픈하여 전시의 효율성을 강조한 흰색의 컨테이너와 2009년 울산 태화강 국제설치 미술제에서 카페로 사용하였던 자색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시민참여 공간 및 작가의 워크룸과 같은 공공적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화이트큐브의 형태를 일정부분 유지하면서 특정지역에서의 실천프로젝트를 통한 커뮤니티 공간 확보라는 면에서 “Kunstdoc Project Space_난지”는 제도와 실험, 인습의 전형과 새로움과 같은 한국 현대미술 현장의 양면성/경계를 포괄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곳에서 예술가들은 그들이 심화하는 ‘자의적 아름다움’과 갈등하거나 역사적 현실 안에서 예술이 지닌 제도적 위상을 유보한 채 불특정 다수에게로 접근을 시도한다.
2012.07.20._08.08. “영원한 빛”, 한호
“어린 시절 밤하늘 별들의 움직임과 그 속에서 보여 졌던 희망들. 감성과 서정성이 그 먼 빛의 이야기들과 교감한다. 그리고 별들의 운집 속에 낙서를 해 나간다. 슬픔과 괴로움, 기쁨과 그리움 모두가 그 빛의 환영에 포함된다. 모호하고도 현상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끝없이 펼쳐지는 동심처럼 말이다.” 설치작가 한호의 기억 속에 자리한 우주공간에 대한 동경과 이에 기인한 삶의 초자연적 섭리는 그의 미적 행위를 빛의 현상을 구현하는 범주에 귀결시킨다. 예를 들어 뉴욕 첼시의 텐리 갤러리에서 전시한 그의 작업에서, 한지와 같은 부드러운 물질로 구성된 커다란 원형의 구조체와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는 푸른빛의 조합은 우주에 관한 그의 환영을 빛과 물체의 질료성을 통해 재해석한 것이다. 이는 하나의 낯선 개념적 설치물로 인식되기 보단 천체과학 잡지나 판타지 필름으로부터 익숙한 우주공간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며, 관람자를 시공간이 응축된 추상적 세계로 유도한다.
작가는 쿤스트독의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그가 유지해 온 미니멀적 작업에 삶의 구체적 흔적을 부가한다. 우주공간을 의미하는 컨테이너의 어두운 실내에서 빛은 바닥에 놓인 구식의 작은 TV와 공중에 떠 있는 의자를 반사한다. 그 형상들은 모호한 생물체가 그려진 유리벽에 투영되어 일상과 동화의 내러티브가 교차하는 형광 빛 환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이 추상적으로 정제된 그의 설치작업이 정형화된 전시공간을 이탈하여 ‘날것의 상태’로 순환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작업일지에 기술한 빛으로부터 발현되는 감정과 갈등, 희망의 이야기들이 시각적 형상을 통해 여과되는 사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의사전달 맥락에 있어 작가의 이 ‘실험적’ 작업방식은 대중과 소통하는 구체적 언어로 작용함은 물론 특정한 미술형식에 경직될 수 있는 그의 예술적 세계관에 유연성을 더하고 있다.
한강 난지캠핑장 입구에 위치한 두 대의 컨테이너는 공간 앞면을 유리로 오픈하여 전시의 효율성을 강조한 흰색의 컨테이너와 2009년 울산 태화강 국제설치 미술제에서 카페로 사용하였던 자색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시민참여 공간 및 작가의 워크룸과 같은 공공적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화이트큐브의 형태를 일정부분 유지하면서 특정지역에서의 실천프로젝트를 통한 커뮤니티 공간 확보라는 면에서 “Kunstdoc Project Space_난지”는 제도와 실험, 인습의 전형과 새로움과 같은 한국 현대미술 현장의 양면성/경계를 포괄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곳에서 예술가들은 그들이 심화하는 ‘자의적 아름다움’과 갈등하거나 역사적 현실 안에서 예술이 지닌 제도적 위상을 유보한 채 불특정 다수에게로 접근을 시도한다.
2012.07.20._08.08. “영원한 빛”, 한호
“어린 시절 밤하늘 별들의 움직임과 그 속에서 보여 졌던 희망들. 감성과 서정성이 그 먼 빛의 이야기들과 교감한다. 그리고 별들의 운집 속에 낙서를 해 나간다. 슬픔과 괴로움, 기쁨과 그리움 모두가 그 빛의 환영에 포함된다. 모호하고도 현상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끝없이 펼쳐지는 동심처럼 말이다.” 설치작가 한호의 기억 속에 자리한 우주공간에 대한 동경과 이에 기인한 삶의 초자연적 섭리는 그의 미적 행위를 빛의 현상을 구현하는 범주에 귀결시킨다. 예를 들어 뉴욕 첼시의 텐리 갤러리에서 전시한 그의 작업에서, 한지와 같은 부드러운 물질로 구성된 커다란 원형의 구조체와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는 푸른빛의 조합은 우주에 관한 그의 환영을 빛과 물체의 질료성을 통해 재해석한 것이다. 이는 하나의 낯선 개념적 설치물로 인식되기 보단 천체과학 잡지나 판타지 필름으로부터 익숙한 우주공간의 한 부분을 연상시키며, 관람자를 시공간이 응축된 추상적 세계로 유도한다.
작가는 쿤스트독의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그가 유지해 온 미니멀적 작업에 삶의 구체적 흔적을 부가한다. 우주공간을 의미하는 컨테이너의 어두운 실내에서 빛은 바닥에 놓인 구식의 작은 TV와 공중에 떠 있는 의자를 반사한다. 그 형상들은 모호한 생물체가 그려진 유리벽에 투영되어 일상과 동화의 내러티브가 교차하는 형광 빛 환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이와 같이 추상적으로 정제된 그의 설치작업이 정형화된 전시공간을 이탈하여 ‘날것의 상태’로 순환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작업일지에 기술한 빛으로부터 발현되는 감정과 갈등, 희망의 이야기들이 시각적 형상을 통해 여과되는 사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의사전달 맥락에 있어 작가의 이 ‘실험적’ 작업방식은 대중과 소통하는 구체적 언어로 작용함은 물론 특정한 미술형식에 경직될 수 있는 그의 예술적 세계관에 유연성을 더하고 있다.
2012.08.15._09.04. “춤추는 대괴수사선”, 제로바이트/ 이성욱
비주류 아트를 표방한 제로바이트(ZERObyte+)는 작가 이민재, 정다운, 정형산이 주제의 성격에 따라 상이한 문화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소통의 다양성과 협력을 슬로건으로 하는 이 그룹은 현대 자본사회가 은폐하고 있는 인간적 삶의 실체를 찾아 들어간다는 점에서 제도와 권력체제에서 비롯된 허위적 현실과 부조리를 한국 예술현장의 담론과제로 삼고 있는 여타의 저항적 신세대 집단과 다르지 않다. 정치와 자본의 메커니즘과 관련한 사회 비판의식은 미술제도의 정책과 개념으로부터 크게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생활현실과 맞물려 예술의 가치를 비물질과 비주류의 영역에 위치시키고 있다.
프로젝트 “춤추는 대괴수사선”에서 제로바이트는 한국사회의 즉흥적 도시개발정책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매개로 자본과 욕망의 허울을 재조명한다. 한강 하류의 꽃 섬 “난지도”에 가해진 현대문명의 이기는 후기 산업사회의 생태문제와 탈형식적 미술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제로바이트는 여기에 동세대 작가 이성욱과 연동하여 영화적 픽션과 하찮은 것의 수집이라는 플럭서스의 한 개념을 융화시킨다. 미스터리 범죄와 스릴러 장르로서 대중의 지지를 받은 영화“춤추는 대수사선”과 “괴물”에서 그들은 행위의 상징과 소재의 묘사를 차용한 가상적 시나리오“춤추는 대괴수사선”을 작성한다. “아름다운 잔디로 포장된 공원 아래 잠들어 버린 역사는 냄새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중략- 그곳에 괴물이 살고 있다. 우리는 두 대의 컨테이너에 위장막을 치고 괴수의 생태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실재로 작가들은 실험자 복장을 하고 7일간 난지의 구석구석을 탐사하고, 채집한 물건들을 컨테이너 연구실에 정갈하게 배치한다. 필름으로 재구성한 그 과정은 유머와 냉소적 시선이 혼재된 블랙코미디의 성격을 빌어 인간본성의 물성화/ 괴물화가 야기한 형이상학적 불안과 공포를 역설한다.
예술의 다양한 장르들과 상이한 표현방법의 융합은 오늘날 한국미술계 전반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형식의 성향화는 과거 한국 현대미술현장이 겪었던 부작용을 반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이 기존의 과도한 개념적 집착을 넘어 현대문화의 저변을 아우르는 새로운 지형을 창출한다는 관점에서는 그 작업방식의 세심한 관찰과 능동적 발전을 도모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비주류 아트를 표방한 제로바이트(ZERObyte+)는 작가 이민재, 정다운, 정형산이 주제의 성격에 따라 상이한 문화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소통의 다양성과 협력을 슬로건으로 하는 이 그룹은 현대 자본사회가 은폐하고 있는 인간적 삶의 실체를 찾아 들어간다는 점에서 제도와 권력체제에서 비롯된 허위적 현실과 부조리를 한국 예술현장의 담론과제로 삼고 있는 여타의 저항적 신세대 집단과 다르지 않다. 정치와 자본의 메커니즘과 관련한 사회 비판의식은 미술제도의 정책과 개념으로부터 크게 자유롭지 못한 작가의 생활현실과 맞물려 예술의 가치를 비물질과 비주류의 영역에 위치시키고 있다.
프로젝트 “춤추는 대괴수사선”에서 제로바이트는 한국사회의 즉흥적 도시개발정책과 역사의 아이러니를 매개로 자본과 욕망의 허울을 재조명한다. 한강 하류의 꽃 섬 “난지도”에 가해진 현대문명의 이기는 후기 산업사회의 생태문제와 탈형식적 미술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제로바이트는 여기에 동세대 작가 이성욱과 연동하여 영화적 픽션과 하찮은 것의 수집이라는 플럭서스의 한 개념을 융화시킨다. 미스터리 범죄와 스릴러 장르로서 대중의 지지를 받은 영화“춤추는 대수사선”과 “괴물”에서 그들은 행위의 상징과 소재의 묘사를 차용한 가상적 시나리오“춤추는 대괴수사선”을 작성한다. “아름다운 잔디로 포장된 공원 아래 잠들어 버린 역사는 냄새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중략- 그곳에 괴물이 살고 있다. 우리는 두 대의 컨테이너에 위장막을 치고 괴수의 생태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실재로 작가들은 실험자 복장을 하고 7일간 난지의 구석구석을 탐사하고, 채집한 물건들을 컨테이너 연구실에 정갈하게 배치한다. 필름으로 재구성한 그 과정은 유머와 냉소적 시선이 혼재된 블랙코미디의 성격을 빌어 인간본성의 물성화/ 괴물화가 야기한 형이상학적 불안과 공포를 역설한다.
예술의 다양한 장르들과 상이한 표현방법의 융합은 오늘날 한국미술계 전반에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형식의 성향화는 과거 한국 현대미술현장이 겪었던 부작용을 반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술이 기존의 과도한 개념적 집착을 넘어 현대문화의 저변을 아우르는 새로운 지형을 창출한다는 관점에서는 그 작업방식의 세심한 관찰과 능동적 발전을 도모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김숙경/ 전시기획
김숙경은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독일 칼스루헤 대학에서 미술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04년 이후 소규모 테마전시와 연례기획에 집중한 전시기획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쿤스트독 운영위원으로 그는 올 해부터 재가동하는 “Kunstdoc Project Space난지”의 기획, 컨설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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